[re] [내글내생각] 자유로부터의 자유
상병 김무준 2009-01-04 23:10:18, 조회: 206, 추천:2
나는 정해진 흐름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 몇 시까지 학교를 가야만 했고, 학교를 마친 후에는 학원에 가야 했으며, 학원을 마친 후에는 집에 와 밀린 숙제 따위를 해야만 했다. 교육과정은 수행평가라는 듣도 보도 못한 야릇한 보고서 아류작을 내 놓으라 폭력을 휘둘렀다. 창의적인 사고? 개나 줘버리라지. 쳇바퀴 돌듯 삶이 탈탈탈 굴러갔다. 앞으로 나갔을 리가 없다. 제자리. 제자리. 다시 제자리. 반복에 반복은 사람을 반쯤 미치게 만들었다.
기숙사 학교는 시스템이 체계적이다.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에 밥을 먹고 씻고 출석해서 공부하고 밥 먹고 공부하고 밥 먹고 씻고 자습하고 씻고 자습하고 자는 생활이 삼년 동안 반복되었다. 집에도 갈 수 없었다. 집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적어도 느껴지기에는 그랬다. 좀 더 공부하기를 바라고 좀 더 높은 성적을 원했음이 분명하다. 폭력이었다. 꿈조차 잃어버려 껍데기만 덩그러니 품고 있는 소년에게는 폭력이었다.
그 폭력이 극에 달했을 무렵. 드디어 미쳤다. 책상을 차 엎고 복도의 유리창을 맨손으로 박살냈다. 학생들은 뛰쳐나왔고, 동물원 원숭이를 구경하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들아. 나는 탈출할 거다. 이 미친 제도와 맛이 간 사춘기에서 나는 벗어날 거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쏟아져 나왔고, 담임선생님이 복도를 걸어가는 나를 불렀다. 손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조각난 유리를 뽑아내며 걸어갔다. 복도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정신은 있어서 양호실로 향했다. 교도소 같은 학교에서 도피처라고는 양호실 밖에 없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참으며 양호실에 들어갔다. 담임선생님은 어쩔 줄 몰라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고, 나는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 내리던 겨울 어느 날, 나는 짐을 싸 학교를 떠났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였다.
그 시절에 나는 분명히 미쳤다.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흘을 내리 잤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문을 열었다. 밥 먹자. 일단 살아야했다. 밥을 먹었다. 또 잤다. 일주일이 지났다. 부모님을 앞에 두고 처음으로 말했다. 나 힘들어요. 미칠 것 같으니까 정신병원에 좀 넣어줘요. 부모님은 나의 광기를 사춘기 시절의 뜨거운 열병정도로 생각했다.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 무어냐. 이유? 이유 따위가 있을 리가. 사람이 미치는 데에 이유가 필요한가? 나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정신병원에 좀 넣어줘요.
정신병원으로 갔다. 이런 저런 검사를 받았다. 며칠이 지나고 결과가 나왔다. 아드님은 지금 네다섯 가지 정도의 정신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울증과 조증은 확실히 있고, 정신분열병 증세가 보입니다. 사회생활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의 대인기피증과 약간의 난독증이 있습니다. 입원치료의 경우 최소 한 달입니다. 통원치료를 하는 경우는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혹 병을 고친다 해도, 정신병이란 게 재발 가능성이 높아서… 저희도 뭐라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느냐고? 할 수 없었다. 우리 집은 한 달에 백만 원 가량을 쏟아 부어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돈은 없었으니까. 미쳐있었어도 현실은 판단할 수 있었다. 내게는 정신병원조차 사치였다. 그럼 약이라도 주세요.
차라리, 절에 가 있겠습니다. 사람이 싫었기에 산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귓가에는 언제나 나를 부르는 환청이 들려왔고, 눈에는 이 세상 것이 아닌 어떤 존재들이 떠돌았다. 조울증이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해서 나타났고,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사람에게서 고립되었고, 텍스트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집에서 삼사십 분 쯤 떨어진 절에 들어갔다. 멍하니 연꽃을 바라보고 잠을 잤다. 산사는 평온했고, 사람은 없었다. 주지스님은 나를 퍽이나 좋아했다. 삼일이 지나고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전생의 업인지 현생의 업인지 어쨌거나 자신의 업을 위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있단다. 삼년 째였나. 아저씨는 지극히 맞는 말을 했다.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지. 나는 밥값을 하기 위해 아저씨의 일을 도왔다. 빗자루를 들고 산사 앞마당을 쓸었다. 열심히 비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니 깨끗하게 쓸어야지. 나뭇잎이며 돌들을 치우고 있는데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이놈아. 그렇게 다 쓸어버리면 어쩌냐. 솔잎은 쓸지 마라. 뒹구는 낙엽이라도 있어야 할 곳이 있는 법이야. 그러니까 좀 남겨둬라.
머릿속으로 무언가 번쩍하고 지나갔다. 그 짧은 순간이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라 하겠다. 청소가 끝나자마자 주지스님을 찾아갔다. 스님. 이제 내려가 보렵니다. 벌써? 며칠 더 있다가지 않고. 사물에는 무릇 있어야 할 곳이 있다는 걸 깨우쳤습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닌 듯합니다. 좋든 싫든 학교로 돌아가는 게 맞겠죠. 학생이 있어야 할 곳은 학교니까요. 주지스님은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 날로 절을 떠났다.
그리고. 약을 한보따리 싸들고 학교로 돌아왔다. 두 달 만이었던가. 악몽과, 환청과, 헛것과 홀로 싸웠다.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했다. 자유로워야만 했다.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정신병과 현실 앞에 맞서야했다. 마지막으로 믿었던 부모님마저 나를 도와줄 수 없었다. 나는 약에 취해 하루하루를 버텼다. 미치고 미치기를 수십 번. 마음은 썩을 대로 썩어버렸지만 그래도 무사히 졸업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자유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여행이 떠나고 싶었다. 이 지긋지긋한 나라를 벗어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수중에 현금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부모님은 이혼해 집안은 반 토막 콩가루가 났다. 하다못해 비행기 표라도 끊어줄 사람이 내게는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병역이었다. 병역을 해결하지 않은 대한민국 남성이 해외로 도피하기에는 심각한 애로사항이 있었다.
나는 복무라는 것이 족쇄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내 자유를 위해서, 해결해야 할 최후의 문제라고 느꼈다. 어차피 나는 몇가지 제도적 부분을 빼면 충분히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자 빠른 입대를 택했다. 그리고 일 년 하고도 육 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마지막 배터리를 준비하고 있고, 백 오십 밤 정도를 보내면 나는 자유를 얻게 될 테다.
이곳은 상념과 사유를 펼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걸으면서, 근무를 서면서, 잠들기 직전까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사유를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깨달았다. 나는 나를 이겨내고,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자유로워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왔었다. 자유에서 출발한 구속이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자유가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뿌리쳤다. 자유로부터의 자유를 꿈꾸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모든 생각과, 문제와, 현실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이 방법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읽으며 텍스트를 작성하고 사람을 만난다.
스물 두해가 지나는 동안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는 아직 세우지 못했다. 자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자유롭기 위하여 낑낑거리는 중이다. 자유를 향한 날개는 돋았다. 아직 날개 짓을 배우지는 못했다. 아무도 나를 광기에서 구해주지 않았듯 누구도 나에게 날아오르는 법을 가르쳐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새들처럼 벼랑 끝에서 뛰어내려보면, 살기 위해 날아오를 수 있겠지.
영혼은 자유를 향해 달리고 있다. 슬프지만 아직 내 몸은 자유롭지 못하다. 조금 더 자유롭기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 글을 읽는다. 이따금 찾아오는 광기의 폭력에 휘둘리고 뻗더라도 나는 내 광기를 이겨냈다. 다시 지지 않으리라. 글쟁이는 좋은 글을 읽으면 좋은 글로 답해야한다. 내 이 철없는 고백이 좋은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 이제 무너진 나를 딛고 일어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따라 가야지. 자유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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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18:54
병장 이동석
무준씨 저도 난독증인가 봅니다. 윽. 세줄을 넘기기가 힘들군요. 꼭꼭 씹어먹을께요. 2009-01-05
06:47:00
병장 박윤수
저도 부모님을 잡고, 1년만 휴학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간청을 드렸는데,
결과는 불가. 였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잘한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하구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치열하게 싸워야할때가 오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게 싸움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때면, 비로소 입지 ㅡ 진정한 20대의 길에 오를 수 있는게 아닐까 하네요.
아직도 속에 꿈틀거리는 생각들의 대립을 막지 못하는 저로서는, 아직도 입지까지 가야할 길이 멀고도 멉니다. 하지만 누가 압니까. 대기만성이랩디다. 워낙 큰그릇인가보다 하고 스스로를 위로 중이니, 요 정도 자유로우면 안되겠습니까? 하하 2009-01-05
07:53:35
병장 문두환
솔잎은 쓸지 마라. 뒹구는 낙엽이라도 있어야 할 곳이 있는 법이야. 그러니까 좀 남겨둬라.
아, 탁-하고 치니 억-하고 무너지는군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부여한 당위라는 것이 때로는 더 많은 나의 가능성을 뭉개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부여한 당위에 휘둘리다보면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참 고마운 아침이네요. 2009-01-05
08:41:53
병장 김민규
무어라 다른 말을 더 할 수가 없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2009-01-05
16:19:47
상병 김용준
아이고 하고 싶은 말들이 위에 다 있네...흑흑.
어찌되었든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후후후.
오늘도 끝나가는 이 시간...훈훈해지네요. 흐흐. 2009-01-06
15:51:57
병장 고은호
자유라면...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길을 정해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자유롭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똑바로 알 수 있는 지혜와,
가야할 때 그 길을 갈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곳, 이 시기가 이 모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아닌가 싶네요.(웃음) 2009-01-07
10:42:26
상병 황호상
책가지로 옮겨진 덕에 뒤늦게나마 이 글을 보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두환님 글도, 무준님 글도..
'내가 가진 모든 생각과, 문제와, 현실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이 방법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읽으며 텍스트를 작성하고 사람을 만난다.'
저의 오만함, 그리고 그 바닥의 무지가 너무도 부끄러워집니다. 2009-02-25
09:4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