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베스트-독서후기] 자신의 날개로 월경(越境)을 꿈꾸다.  
상병 이동열   2009-01-15 12:05:39, 조회: 274, 추천:2 

한 남자가 있다. 주위에서 보기엔 퍽 모범적인 길을 걸어온 그였지만 내심 어딘가로 날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장남으로 살아간다는 굴레 탓인지 쉽사리 모범적인 길의 경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런 굴레 속에서 한 가지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은 걸어가는 와중에 접할 수 있었던 문화였다. 그리고 문화란 것을 접했을 때 가까운 것은 책, 그것도 역사책이었다. 길을 걸어가며 읽은 책 덕분인지 그는 한번은 전봇대에 부딪치기도- 논두렁에 빠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장 큰 고비는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였다. 과연 그가 사랑하는 과거의 길로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결국 그는 현실과 타협하고 현재의 길을 택하고 말았다. 하지만 일말의 알량한 자존심이었는지 현재의 길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 보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도구는 문화의 힘을 살릴 수 있는 문화정책가가 되는 것이었다.

한 여자가 있다. 주위에서 보기엔 상식에서 벗어난 길을 걸어온 그녀였지만 내심 자유롭다는 것에 당당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차녀로 살아간다는 굴레 덕에 그 반발로 모범적인 길의 경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가시밭길 속에서 한 가지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은 걸어가는 와중에 접할 수 있었던 문화였다. 그리고 문화란 것을 접했을 때 가까운 것은 공연, 그것도 공연기획이었다. 이곳저곳 전전하며 다닌 공연판 덕분인지 그녀는 한번은 좌절하기도- 한번은 공연을 말아먹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장 큰 고비는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였다. 과연 그녀가 걸어가던 현재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길로 걸어갈 것인가. 결국 그녀는 현실을 이겨내고 미래의 길을 택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보다 많은 배움을 위해, 미래를 위해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 도구는 문화의 힘을 살릴 수 있는 문화정책가가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판이하게 다른 남녀가 한권의 책을 통해 만났다.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있었다. 일상과 다를 바 없이 선배와 다과를 나누는 도중 그는 우연찮게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실 그는 전까지 그녀를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선배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녀의 이야기는 그로 하여금 설레게 만들었다. 다른 길을 걸었지만-사실 그가 걷고 싶은 길을 그녀는 걸어왔던 것이다- 결국 방향은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녀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인가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그는 선배에게 그녀를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냐고 다그쳤다. 놀란 선배가 그녀의 에세이집을 추천하자 그는 마침 선배가 가지고 있던 책을 빼앗듯이 빌렸고 그녀가 걸어온 길을 좇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로 다녔던 그 역시 이런 생활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억압하는 억압자가 되어 있었고 어느새 단단한 껍질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억압받는 스스로가 억압하는 안타까운 형상의 껍질에 조금씩 금이 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녀의 덕이었다. 배타적인 과거 한국 가부장제 사회에서 프랑스인과 결혼하는 것부터 그녀의 행보는 예사롭지 않았다. 차녀라는 가부장제적 폭력의 굴레를 벗어나 프랑스로 향했지만 국제결혼을 한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가족들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이에 맞서 가족들을 설득해나가는 모습을 바라본 그는 그녀가 말하는 ‘생활왼손잡이’의 의미와 자신의 껍질을 조금씩 깨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절정은 그녀의 베이비시터 경험담이었다. 프랑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베이비시터를 하며 그들과 가까워지고 인정받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는 그녀를 존경스러운 눈길로 훔쳐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외쳤다. 만약 한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베이비시터를 하는 베트남인은 어떠한가? 라며 던진 이 한 문장은 그를 한동안 멍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편협한 사고에 갇혀있던 자신에게 경종을 울린 이 한 줄은 수백 쪽에 이르는 책보다 큰 무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무게가 더해져 껍질에 금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길을 개척하던 그녀도 자신의 출발점을 잊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대한민국으로 돌아왔고 소위 ‘새로운 당’으로의 잠입을 성공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지금껏 쌓아온 문화정책에 대한 것들을 펼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 혼자의 힘으로는 모든 것을 펼칠 수가 없었다. 새롭다고 생각한 정당에서도 발견되는 기성세대의 모습에 그녀는 당황했고 좌절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본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밖에서 바라본 모습보다도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모습은 가히 절망적이었다. 끊임없는 편 가르기와 진흙탕싸움으로 결국 그녀가 몸담았던 정당은 분열되고 말았다. 이러한 시점에서 그녀가 만들었던 문화정책들은 그 정당의 대선후보가 숙지도 못한 채 대선에 패배함으로써 사장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후보를 패배시킨 국민들이 예리하다고 읊조렸다. 파시스트적인 대학 내의 운동선수들에게 조소를 날리던 그녀를 보며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던 그는 여기에 이르자 그녀를 좇기, 아니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문화정책들을 찾아 배우고 새롭게 검토해 되살려 내리라 마음먹었다. 그녀에게서 자신의 지향점을 보다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된 그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길라잡이를 찾은 듯 했다.

지금까지 판에 박힌 길로만 다녔던 그가 이제야 껍질을 깨고나올 자신을 얻었다. 자신이 걷고 싶었던 길을 힘들지만 걸어온 그녀를 보며 얻은 용기가 그 껍질을 조금씩 금이 가게 만들어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금을 뚫고 나가는 것이다. 뚫고 나가서 그녀가 걸었던, 그를 인도할 길로 향할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하늘을 날기를 소망했던 그의 겨드랑이가 조금씩 간지러워졌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돋아난 날개- 이제 조금씩 돋아나지만 그의 노력에 따라 좌우가 균형 잡힌 건강한 날개가 될 것이다. 비록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서 월경(越境)했지만 그는 자신의 날개로 월경(越境)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날개로 월경(越境)을 꿈꾼다. 그 방향은 정해져 있다. 그 방향으로 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또 다른 껍질이 기다리더라도 이제 깨고 나올 수 있는 날개가 그에게 돋기 시작했다.

N#1. 자신의 날개로 월경(越境)을 꿈꾸다. 
-목수정의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 속까지 정치적인』을 읽고-

사족. 독서후기이지만 독서후기같지 않은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독서라는 일련의 행위로 일어난 브레인스토밍의 결과(?)라고 우긴다면 후기라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만은…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 책이었지만 이미 제 손을 떠나버린 책이라 텍스트에 집중을 못해 곁가지가 많습니다. 사실 제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해도 이런 식의 글로 토해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좀 더 세밀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아무리 고쳐도 성에 차지가 않는군요.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토해내지 않으면 더더욱 아쉬울 것 같기에 그만 손을 거두어 봅니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2-12 10:12)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19:04 

 

상병 김형태 
  좋은 독서 후기 같습니다, 
왜냐면 저도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근데, 독서에서 연결된 브레인스토밍은 독서후기 맞지않나요? 

우기지마세요 
책마을에 양보하세요 2009-01-15
12:14:42
  

 

일병 송기화 
  독서후기 같은 독서후기는 무엇인가요? 
날개를 얻으셨다니, 부럽습니다. 이젠 날개짓 연습을 하시겠군요. 
아-, 부러워라. 2009-01-15
12:19:59
  

 

병장 김민규 
  허, 최근 제가 느끼고 몸서리치던 일련의 과정과 나란히 서 있네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억압하는 억압자가 되어 있었고 어느새 단단한 껍질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고, 그것을 깨겠답시고 한창 방황하던 차에 유망주를 보게 되었었죠. 금이 커져가요. 나를 모두 깨트릴 기세로 터져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내게는 새로운 꿈이 자리잡고 있지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2009-01-15
12:52:25
  

 

병장 고동기 
  저도 저 책, 읽어봐야겠습니다. 2009-01-15
12:55:46
  

 

상병 이지훈 
  이런! 또 희망 독서 목록이 추가되었습니다. 책마을에 들어오기 무섭군요. 허허허 

잘 봤어요. 고마워요. 2009-01-15
15:23:27
  

 

병장 이동석 
  저도 겨드랑이가 간지러웠습니다. 그러나 암내만 폴폴나는군요. 저의 날개는 언제쯤 돋아날까요. 이게 독서후기지 무엇이 독서후기겠습니까. 간만의 동열님 글을 읽으니 이게 책마을의 글이지 무엇이 책마을의 글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논두렁은 어쩌다 빠지신건가요. (방긋) 2009-01-15
17:50:24
  

 

병장 이우중 
  전 딴에는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고 지X거리기도 했었는데요, 
생각해 보니 같은 길을 뒤로 걷고 있을 뿐이더라구요. 

문제는 어떤 길을 걷느냐보다 무슨 길을 걷든지 어떻게 걷느냐인 것 같아요.(뭐래?) 2009-01-15
19:46:20
  

 

상병 김정용 
  저는 저렇게 너무나 자유로운 사람을 보면 저와는 너무 달라서 사람 같지가 않더라구요. '안정에 대한 강박'이 적을수록 행복할 확률은 높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모험을 꺼리는 편이거든요. 

얼마 전 교사를 하고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요. 그 친구의 동료교사 한 분이 수년째 사귀어 온 남자(10월에 결혼 예정이었음)와 겨울에 헤어지고, 헤어진 지 한달 후 쯤에 다른 남자를 만나서, 이번에는 초고속으로 역시 10월에 결혼하기로 했답니다. 딱 이 남자라는 느낌을 받아서 망설임없이 결혼을 결정했데요. 
그 집안의 가족들 모두 그런 그녀의 선택을 지지하고 있고, 삼십대 중반인 그녀의 언니는 아직 딱 이 남자라는 느낌을 못 받아서 아직 미혼이랍니다. 

친구랑 이 이야기 하면서도 "와, 그 집 대단하다"라고 입을 맞췄는데 목수정씨는 대체 뭔가요... 2009-01-16
04:40:23
  

 

상병 김정용 
  아, 그리고 추천! 2009-01-16
04:40:39
  

 

상병 이동열 
  서두는 요란한데다 점점 거대담론이 되어가는 것같고- 제가 책 내용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한것에 대한 아쉬움이 커서 독서후기같지 않다는 말씀을 드린것이랍니다(땀) 

그리고 동석님의 예리한 질문에 답변드리자면 '그'는 어릴적 시골에 있는 도서관을 다녔는데 그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 논 옆에 있었답니다. 그런데 길이 논보다 1~2M는 높은데 난간은 없었지요. 어느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면서 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길가변으로 걸어갔고, 결국 논으로 빠지고 만것이랍니다. 다행히 추수가 끝나서도 '그'도, '논'도 아무런 피해는 없었습니다. 모두 어릴적 추억이지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