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장 윤정기   2009-11-05 11:04:56, 조회: 353,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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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에게서 아무 연락도 없이 책 한권이 도착했습니다. 책 제목은 「취업 뽀개기(취업 상식사전)」 이라는 것이더군요. 그리고 또한 얼마 전, 다른 친구 녀석 한명이 거액의 연봉을 받고 S모 기업의 계열사에 취직했습니다. 첫 번째 친구는, 보낸 책에 첨부된 익명의(!) 편지를 통해 저의 미래에 대하여, 그 상황을 어둠이 깃든 중간세계(톨킨의)로 묘사하여 절절이 설명하며,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피같은 피 2200ml를 팔아 사 주는 종이뭉치에 감사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헌혈해서 책 사주는 친구라니요!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가 진정 저의 미래를 생각하고, 저의 안위와 ㅡ 그가 묘사한 오르크와 흑마법사로 넘쳐나는 중간세계에서의 작달만한 프로도(나)의 위치를 고려할 때 ㅡ 행복을 걱정한다는 사실에 저는 새삼 참된 우정을 논할 기회를 잡았구나, 하는 용솟음치는 감상에 흠뻑 젖게 되었지요. 게다가 두 번째 친구는, 한국사회에서 그리 유리한 학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녁을 먹은 후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여 좋은 학점과 토익, 그리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우리세대의 대부분이 부러워할 만한 연봉을 받고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아, 정말이지 축하할 일입니다. 경사지요. 녀석 집에선 아마 신종독감으로 객사한 돼지라도 한 마리 잡아서 꼬치에 꼽고는 뱅뱅- 하고 통구이라도 돌렸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졸지에 저는 꽤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친구 녀석으로부터 피가 잔뜩 묻은 자기계발서(라고 하기도 부끄러운)를 받아든 녀석입니다. 왜요? 친구는 아마도 저를 걱정했을 겁니다. 사실, 녀석이 왜 그런 걱정을 하게 되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녀석은 성실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좀 불성실하고. 아마도 그것이 이유라면 이유겠지요.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닙니다. 녀석이 준 책을 한-두시간에 걸쳐 다 읽고 저는 문득 공포를 느꼈습니다. 아아.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그 공포 말입니다. 문득 괴롭습니다. 햇볕 좋고 날씨 끝내주는 주말에 저는 왜 어두운 내ㅁ반에 앉아 맛별 음료와 건빵을 쭉쭉 빨며 동시에 아이들이 보는 삼류영화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문득 깊은 자괴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의식의 흐름이 여기까지 흐르면 이제 끝입니다. 끝나는 겁니다. ‘나’라는 인간의 자괴프로세스가 가동되는 순간입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아아, 왜 나는 쌀밥을 이렇게나 많이 처먹고 아직도 이 시공간에 존재해야 하는가. 왜 나는 그렇게도 나태했던가. 아아! 왜 나는 소녀시대를 그토록 갈망하고 자빠져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두 번째 친구의 취직소식마저 들려오면 이제 상황은 종료됩니다. 저는 축하의 한마디마저 들려줄 수 없습니다. 이제 공포는 질투가 됩니다. 질투는 나의 힘. 저는 너무 많은 하청공장을 세웠으며(그래서 부도났으며),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저를 사랑하지 못했나 봅니다. 윽. 이쯤 되면, 저는 저 자신을 위한 한 가지 이상의 자기위로의 방책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상처받은 영혼은 위로받아야 하잖아요. 괴로운 현실입니다. 예. 현실이요. 저는 그 현실 속에서 자기위로를 위해 크림빵을 먹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이로군요. 예전에 처음으로 알바를 하고 난 뒤, 눈물 젖은 첫 월급을 받았다고 하자, 어머니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현실은 그렇게 냉혹하단다. 아, 어머니. 그때 왜 저에게 한 마디를 더 해주시지 않았나요. 얘야, 근데 현실이 뭔지는 아니? 라고. 저는 (누군가에게)아직도 현실을 모르는 짐승입니다. 먹잇감을 앞에 놓고 고민하는 짐승입니다. 


2 
청춘은 고장난 탱크와 같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누구나 그런 모습으로
내일의 문 앞에 서 있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p.185


문득 우리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무소처럼 달려간다는 사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쾌락을 동반하는 바로 그 기제에 덜렁거리며 달려있는 ‘소규모동력’을 생각해 봅니다. 그 ‘소규모동력’이란, 대부분 우리의 마음에 따라 추진력을 부과받는 듯합니다. 그것은 때로 20Km/h의, 경운기속도로 갑니다. 어떤 충동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지요. 충동의 주체요? 글쎄요. 저는 가끔 그러한 운전drive 자체가 충동drive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망상에 빠져들곤 합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반대로 그것은 200Km/h가 넘는 고속으로 달려 나가기도 하는데, 중요한 건, 그때 소규모동력은 그것을 조절하던 우리의 ‘마음’을 잃어버린 채 달려나가게 된다는 사실이지요. 그럼, 그 추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이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뗀 굴뚝에서 볼케이노가 솟아오르는군요. 허허.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 모두가 스피드 레이서인 우리는 달려나가는 길의 도로상태 따위를 볼 수는 있지만, 달려나가는 자신의 헝클어진 얼굴은 살펴볼 수 없겠지요. 이것은 꽤 슬픈 일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프로야구를 시청하는 것보다는 제 친구가 준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는 것이 말 그대로의 ‘가기계발’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저 자신은 이것에 대해 꽤 회의적인데, 우리는 과연 ‘자기계발서’를 읽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 때문입니다. 그거, 자기계발 하는 서적 맞을까요? 사실 저는 그것을, ‘사회편입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계발’ 서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앞서도 말했듯 우리는 충동질하는 무엇인가가 이끄는대로 달려나가게 됩니다. 그 사이에 우리의 마음은 사라지지요. 우리는 맹수가 뒤쫓는 초원의 한 마리 물소가 되어, 잘 알지도 못하는 초원을 왜 뛰는지도 모르면서 내달리게 되는 겁니다. 

두 번째 친구를 생각해 봅니다. 녀석은 고등학교 시절 저와 비슷한 면이 많은 녀석이었지요. 우리는 너무 평범했고, 조용했지요. 수능 이후, 녀석과 나는 만나서 가끔 당구를 치는 것 외엔 한 일이 없습니다. 녀석과 나는 당구대 사각형 내부에서만 존재하는 당구공들에 관해 생각하기 일쑤였지요.(300이하 맛세이로 인해 튕겨나간 자존심 따위는 잊어버려야지요.) 녀석과의 당구는 그래서 꽤 치열했습니다. 우리는 실력도 서로 비슷했거든요. 꿈이요? 꿈은 달랐습니다. 나는 녀석의 꿈이 뭔지 몰랐어요. 물론, 저의 꿈도 명확하지는 않았지요. 그저 사회학과에만 들어가면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갈 줄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사회학과 졸업생들 중 다수가 공무원시험을 본다는 황당무개한 소식을 듣고는 진학을 그만두었습니다. 아니, 당최 사회학과 공무원은 무슨 관계가 있나요? 그것이 만약 꿈이라면, 저는 꿈을 버리고 말겁니다. 하여간, 녀석은 자랑스럽게도 자신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녀석에겐 그것이 꿈이었을 겁니다. 아니, 그랬기를 바랍니다.


3
이것은 꿈이자, 그 속에서 펼쳐지는 새드무비입니다.

저는 화창한 오후, 패스트푸드점 2층에 앉아 여유롭게도 치킨버거세트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엔 마치 프로이트를 닮은 늙은 중년 신사 한명이 한 손으로 목발을 짚고선, 저와 마찬가지로 불고기버거세트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습니다. 그는 동시에 시가를 피고 있는데, 잘 보니 그의 턱에는 ‘암 덩어리’라고 이름 붙여진 혹이 하나 달려 있네요. 그치만 저는 그 암덩어리가 도깨비 이야기에 나오는 노래주머니라고 착각하고는, 당돌하게도 그 프로이트를 닮은 아저씨에게 다가가, “아저씨! 노래 하나만 불러주세요!” 라고 속삭입니다. 아저씨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하지만 곧 불고기소스가 묻은 누런 턱수염을 슥-닦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투애니원의 아이돈케어가 흘러나오네요. 아아, 음. 젠장! 못 들어주겠어요. 저는 곧 그 프로이트를 닮은 아저씨에게서 눈을 돌리고 맙니다. 귀도 막구요. 말 그대로 신경을 끄는 게 낫겠네요. 저는 다시 먹다만 햄버거를 마저 우적우적 씹어먹다가, 문득 이상하지만 익숙한 소리를 듣지요. 탁탁탁. 어라? 프로이트 아저씨가 햄버거를 먹다말고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네요? 아, 저러면 안되죠. 저건 분명히 풍기문란입니다. 실수 행위라구요. 어? 게다가 지금 2층으로 여자손님들이 깔깔거리며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네요! 큰일입니다. 큰일이에요. 저는 무척이나 당황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프로이트 아저씨는 절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네요. 망할. 근데 왜 제가 당황하죠? 응?!

저는 꿈에서 깨어납니다. 하지만 가끔 그럴 때가 있죠. 현실이 꿈인지, 꿈이 현실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때. 그럴 때 저는 볼을 꼬집어봅니다. 아얏. 현실이네요. 이게 현실이군요. 아픈 거.

자기계발이란, 자위행위가 아닐까요. 남들이 하니까, 자신도 덩달아 따라하게 되는 본능 같은 것. 왜 ‘나’라는 주체는 박민규의 말처럼 ‘개발’도 아닌 ‘계발’의 대상이어야 하는지. 또한, 왜 그러함으로 인하여 우리는 위로받아야 하는지. 더불어 왜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ㅡ 즉, 자기 자신의 계발이라는 마스터베이션을 통해 ㅡ 자기만족을 얻어야 하는지, 저는 궁금합니다.

스펙의 시대ㅡ 우리는 자신의 어깨에 ***자격증, ***점수, ***학교의 이름들을 가방처럼 매고 살아갑니다. 그것만이 자신을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따위를 읽고 쓴 진지한 독서후기 따위는 입사원서에 포함될 수도 없지요.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기업에서는 독후감을 쓰지 않거든요. 경제학 개론서도 필요없어요 사실. 게다가 기업이 ‘원하는’ 인간상을 만들도록 우리는 ‘피를 2200ml쯤 흘리며’ 노력해야 하잖아요. 하지만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되려면 백악기를 한두 번 더 거쳐야 할지도 모르거든요. 아 괴롭네요. 이런 간극이라니.

우리는 왜 달리는 걸까요? 그리고 왜 끊임없이 자신을 위로해야 할까요? 저는 사실 이런 물음들을 저 멀리 내던져 버리고 싶습니다. 슬픈 꿈속에서 깨어나고 싶습니다. 선험된 절망은 이제 우리에게 절망으로 불릴 수나 있을까요? 왜 주체는 타자의 욕망인가요? 타자로부터 비롯되는 마스터베이션도 그만 끊고 싶어요. 더불어 저는 우리가 ‘왜 당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탐구해가는 ‘고장난 탱크’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내일도 태양이 뜬다면요.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11-07 09:20)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10-01-27
13:32:07 



병장 이 원 
  아. 가지로- 

아 정기씨. 왜이렇게 가슴아프게 하는거예요. 
토익공부하는거 억지로 참고 있었는데 낄낄 2009-11-05
11:25:14
  



상병 박정민 
  자기계발이란 말 자체가 약간 오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기자신을 스스로 연마하고 내면 깊숙히 들어가서 숨어있는 재능을 일깨우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핵심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멀리서는 캘커타의 지저분한 오두막을 찾아가서 콜레라와 이질에 시달려 야윈 어린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기쁨으로 여기셨던 마더 테레사의 경우나, 가까운 예로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담배를 끊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저같은 경우까지 자기계발이라 부를 수 있겠네요. (취업뽀개기같은 경우까지 자기계발서에 들어가나요? 흠.. 제가 볼때는 처세서나 실용서적정도로 보입니다) 
아마 스펙 갖추기 = 마스터베이션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요, 저 또한 거기에는 어느정도 동의 합니다. 
대다수의 주민들도 남들이 하는데로 학교에 다니고 적당히 학원도 다니고, 대학에 와서는 남들도 하는만큼 술도 마시고 책도 읽고 연애도 했을테죠. 부당한 병역체계에 대해서 인간의 기본권 침해라고 헌법 소원 한번 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데로 입궁까지 한 처지라서 제가 이런 말 하기는 좀 뭐합니다만- 
왜 달리냐고 물으신다면 남들도 달리기 때문에 라고 대답할 것 같네요 낄낄. 중요한 것은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있느냐가 될 것 같구요. 굳이 달리지 않아도 되는데 왜 달리냐.. 그걸 알고 달리는지 모르고 달리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목적을 잊은 달리기 만큼 쓸모없는 짓도 없을테니까요. 2009-11-05
12:23:34
  



병장 권홍목 
  "자기계발"과 "사회편입"을 둘다 깔짝대는 저같은 사람은 참 그 괴리가 고민될때가 많죠 
귀로는 스톤로지스를 들으면서 눈으로는 토익책을 보고있자니.... 
정민씨 말처럼 '목적을 잊은 달리기'가 되지 않도록 항상 노력은 합니다만. 
침은 안뱉더라도 침 뱉을 마음가짐은 항상 가지려고 해요-그렇지 않으면 결정적일때 "퉤!"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오늘 밤에도 자위행위를 할것같네요. 탁탁탁탁탁... 2009-11-05
13:17:47
  



병장 정인환 
  안뛰면 도태될 것이라는 막연한 아니면 현실적인 불안감 때문에 
모두가 뛰는것이 아닐까요. 뛰기 싫은건 모두 마찬가지 일 겁니다. 

가지로- 2009-11-05
14:41:35
  



병장 윤정기 
  정민 / 정민님이 제시하신 자기계발의 의미를 발판삼아 저는, 자기계발이란 것의 의미를 두 갈래로 양분하여 생각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인 자기계발과 사회적인 자기계발. 마더 테레사의 경우가 개인적이자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라면, 정민님이 담배를 끊은 것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였다는 점에서 그것은 개인적이자 (타인에게 담배로 인한 피해를 줄인다는 점에서)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겠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오히려 어떤 '사회적 소명'calling이라는 개념에 의해 지배되는데, 제가 생각하는 자기계발의 의미가 언제나 자기위로적이며 자기만족적인 것이 된다는 점에서 둘은 분명히 상반되는 지점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즉, 정민님이 말씀하신 자기계발 ㅡ 숨어있는 재능을 일깨우는 것으로서의 ㅡ 이 다분히 어떤 개인의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것이라면, 저의 입장에선 그러한 사회적 실천의 내부에서 사회가 개인에게 주입한 소명의식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여기서 사회적 선행이 자기계발이 될 수 없느냐는 식의 논리는 거부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런 선행을 통해 우리가 반대로 주입받는 도덕률이 우리들의 사회구조를 지탱하는데 합의된 가치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더불어, 저는 '왜 달리냐'고 물으면서도 그 속에 하나의 물음을 내재했는데, 그것은 정민님이 말하신 '알고/모르고 달리는 것'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진정 '모르고 달리는'것일까요? 저는 언제나 우리는 '알고' 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목적은 지나치게 명확하지요. 저는 그러한 태도 내에서 바로 '왜 달리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외려 그러한 물음은, 우리가 '자기자신을 알고' 달리는지에 대한 물음에 연결되어야 하겠지요. 우리가 늘 달리면서도 당황하는 이유는, 어쩌면 타자의 욕망에 지배당한 자신의 주체를 '알아채는' 순간에 있으니까요. 2009-11-05
15:18:25
  



병장 김진호 
  '가지로-'가 두개면 항상 한번 더 말하고 싶어지는 심리가 작용하네요. 큭큭. 

이 글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지로-의 활성화를 위해 

그리고 잊고있던 질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끔 해준 것에대해 감사하며 

가지로- 2009-11-05
17:17:17
  



상병 박정민 
  정기/답변 감사합니다. 자기계발을 사회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정기님의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본 것 같네요. 아 부끄러워라. 

그리고 '달린다'는 부분에 관해서는 제 표현이 미숙했던 것 같아요. 저는 '우리가 모르고 달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라고 말한게 아닙니다. 우리가 '구태여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말입니다. 정기님의 표현을 빌자면 사회가 개인에게 주입한 소명의식으로 인해 본인의 의지가 거세된 채, 혹은 본인의 선택이라 착각한채로 사회라는 거대시장이 요구하는 규격화 된 상품이 되어 좀 더 비싼값에 팔리길 바라는 신세가 된다는 것은 씁쓸한 현실이겠죠. 그러나 꼭 팔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달리니까 달리겠죠. 불안하고 뒤쳐지만 안될것 같고. 하지만 반드시 달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죠. 꼭 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달리겠다면 흔히 말하는 자기계발로 좀더 달리기에 특화된 자신을 만들수는 있겠죠. 
논리적으로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렵네요. 글을 잘 못 써서 엉엉. 결국 정기님 말씀을 동어반복하는 결론이 나오네요. 살기 팍팍한 사회인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가지로- 2009-11-05
17:40:31
  



상병 송단아 
  아오... 갑갑한 사회네요.... 
네 우린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자기계발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게 만들어주시는군요. 2009-11-06
15:20:59
  



상병 남중현 
  지나왔던 길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유용하게 읽었습니다. 특히 피를 팔아 사주는 종이뭉치라.. 
독특하고 좋은 표현으로 여겨집니다. ^^ 2009-11-09
20:58:41
  



일병 지승인 
  잘 읽었습니다. 가지로- 왔네요 하하. 2009-11-16
13: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