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양자효과 
 병장 이승일 05-13 09:57 | HIT : 170 



<instruction>
1. 한쪽 눈을 감고 엄지손가락을 눈에 거의 붙여 시야의 반절 정도를 가린다. 
2. 반 쯤 남은 시야를 통해 1 ~2 m 떨어진 사물을 응시한다.(그곳에 초점을 맞춘다.)
3. 엄지손가락을 좌우 상하로 미세하게 움직이면서 응시하고 있는 사물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관찰한다.
4. 엄지를 움직일 때마다, 메트릭스 처럼 상이 일그러져 보이면 성공! 


 이 실험(?) 에 성공하신 분들은 이제 의문을 가지셔야합니다. 
' 어째서 상이 일그러질까?'
 너무 흔한 일이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엄지손가락으로 가린 부분도 아니고, 가려지지 않은 부분인데 어째서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면 상이 왜곡될까요? 빛은 직진하니깐, 가려진 부분의 빛은 막힐테고 안가려진 빛은 엄지와 상관없이 그냥 눈에 꽃혀야 될텐데 말입니다. 분명 그렇겠죠. 문제는 빛이 그렇게 단순 무식한 놈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비밀을 알기 위해선 우선 보통 때 빛이 어떻게 우리 눈에 들어오는지를 먼저 알아야합니다. 일반적으로 빛은 명백히 직진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또 그렇지 않습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빛은 사실 '잠재적인 형태로' 모든 경로를 통해 진행합니다. 사물에서 눈에 이르는 모든 경로를 잠재적으로 거쳐온다는 것입니다.  한줄기 빛은 수없이 많은 잠재적 경로들의 중첩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닿는 순간 (혹은 그 이전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유에 의해서 그 경로 중 단 하나만 현실적으로 선택됩니다. 선택의 기준은 경로함수에 곱해진 확률진폭이라고 불리는 값인데, 일반적인 경우에는 거의 최단거리 경로에 곱해지는 확률진폭이 가장 큽니다. 그래서 그 경로가 선택되고, 우리 눈에 빛은 거의 직진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즉 다음과 같이 말이지요. (굵은 선이 최종적으로 선택된 경로입니다.)



 ↗→→→→→→→→ →→→→ →→     ( 눈 ) 
[ 사물]→→→→→→→→→→→→→→→→↗      
 ↘→→→→→→→→→→→→→ ↗    
 ↘→→→→→→→→→→→↗      


 그런데 시야를 반절 쯤 가리면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엄지 손가락이 가린 것은, 시야에 보이지 않는 사물들의 빛만이 아닙니다. 시야 안에 있는 사물에서 나오는 빛의 잠재적인 경로도 함께 가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가능성의 일부를 원천봉쇄해 버린 것이죠. 그래서 나머지 잠재적 경로들 사이에서만 확률 진폭이 계산되고, 그 결과는 앞의 경우와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계산을 '경로적분' 이라고 부릅니다. 수많은 경로들은 서로 연속하는 값이기 때문에, 실제로 적분을 해줘야하거든요.) 


 ↗→→→→→→→→ →→→ →→→→ ( 눈 ) 
[ 사물]    →→→→→→→→→→→→→→→↗
 ↘→→→→→→→→         ┃ ┃
 ↘→→→→→→            ┃ ┃
 엄지


 우리는 실제로 관측되는 빛의 경로를 막은 것이 아니라 단지 '가능한' 경로를 막은 것인데, 이를 통해 실제 빛의 경로가 달라진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양자역학은 아주 가까운 일상에서도 항상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카메라를 아시는 분은 '색수차' 가 무엇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물체의 경계선이 빛의 파장별로 갈라지는 현상인데, 이 역시 양자역학적인 효과입니다. 빛의 경로적분시 중요한 변수는 파장입니다. 파장에 따라서 선택되는 경로가 다르다는 이야기이지요. 선택된 경로가 직선일 경우야 파장에 따른 차이가 없지만, 장애물이 가능한 경로들을 막아서 최종 경로가 휘어질 때에는 파장에 따라 경로가 달라지게 됩니다. 
 이쯤 되면 빛이 휘어지는 대표적인 현상, 즉 렌즈에 의한 굴절이라든가 물 속에 넣은 젓가락이 휘어보인다든가 하는 것들 역시 양자역학적 효과임을 어렵지않게 추측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 모두 매질의 특성에 의해 확률진폭이 가장 큰 경로가 달라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직선이 아닌 경로가 선택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매 순간 최고의 확률을 따라 빛의 경로가 움직여야하니까요. 그러니 세상을 너무 자주 보지 마세요. 경로적분에 지친 광자가 파업을 선언할지도 모릅니다!(농담)  


 병장 홍연택 
 인스트럭션하다 눈 찔렸어요. 우엉 05-13   

 병장 심승보 
 따라 해 보니 재밌네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망막에 맺히는 상이 곡선처럼 스르륵 밀려 나가는 것처럼 보이네요. 05-13   

 병장 김민준 
 색수차가 그런 원리였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05-13   

 상병 최희원 
 어릴때부터 자주 경험해보고 의문을 가진 부분인데 양자효과의 한 부분이라는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신기하네요. 05-13   

 상병 안상우 
 난시라 그런지 그냥 다 뿌옅게 보입니다;; 05-13   

 병장 이승일 
 상우 / 다행히 이X티콘도 뿌옇게 보이는군요(세미콜론 세미콜론) 05-14 * 

 병장 김대환 
 안경끼고 있는 사람은 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