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Arrangement : Disorganization  
상병 김무준   2008-12-12 17:51:33, 조회: 116, 추천:0 

머리를 쥐어짜며 눈을 굴리다보면 한 번씩 정신을 차릴 때가 온다.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채 무언가에 빠져있다 보면 잠에서 깨듯 순간이 돌아온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고 잠시 눈을 옆으로 돌리면 엉망이 된 책상이 보인다. 항상 내 책상은 너저분하다. 물통이며 필통, 간식거리와 공책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일기장이나 잡기장을 펴도 마찬가지. 네모난 칸 안에 빨간색으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적고, 파란색으로 평가를 내린다. 검은색은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잡담이다. 그나마 달력처럼 구겨져있는 네모 안이라 가능할 게다. 몇 장을 더 넘기면 엉망진창이다. 뒤죽박죽 섞인 글과 사진, 그림과 낙서들 사이에서 원하는 것을 찾기란 너무 힘들다.

막살았다. 성적과 대학 따위는 개밥으로 줘버리라지. 꿈? 그딴 게 알게 뭐야. 삶을 증명하기 위한 아가씨 한 명이면 족한 게 인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도 믿지 않았고, 사랑도 믿지 않았다. 스스로를 믿을 수 없는 인간에게 믿음은 너무 큰 짐이었다. 내키는 대로 살았다.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만 구분하는 게 삶의 방식이었다. 그래도 기준은 있었다. 남에게 피해는 주지말자. 받은 피해는 받은 만큼 돌려주되, 까닭 없는 해코지는 말자. 양아치가 되기는 싫었고 자유롭게 살고 싶긴 했다. 열네 살부터 달려온 삶에 정리라는 건 없었다. 기준만 있었으니까. 언제부터였을까. 

지금은 사진을 전공하는 친구 녀석은 철없던 시절 학원에서 만났다. 우리는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도, 어려서부터 알아온 것도 아니었지만 죽이 잘 맞았다. 어머니는 언제나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당당하게 주장하라 가르쳤다. 학원 원장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부당하다 생각했고, 대놓고 대들었다. 나가! 나가 이 (자체검열)들아! 예. 나가드리지요. 떳떳하게 가슴을 펴고 동네 최고로 꼽히는 학원에서 키득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길로 어머니 앞에 붙들려갔다. 맞아 죽을 각오를 했다.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깔깔깔 웃으며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어머니가 친구에게 물었다. 

무준이가 너랑 제일 친하니? 아니요, 저는 친구는 다 똑같은 친구지 더 친하고 덜 친하고 라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친구의 답을 듣고서 이놈을 평생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정리라고는 할 줄 모르던 소년이었다. 인간관계의 정리 따위도 없던 소년에게 약간의 기준이 생겼다. 한 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는다. 친구는 다 똑같은 친구다. 뭐, 여전히 자신도 못 믿는 꽉 막힌 인간이었지만. 구분 같은 건 없었다. 물건도, 관계도, 나 자신에게도 구분이나 정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준선이라고 그어 놓은 것이 워낙에 모호한지라. 내키는 대로 바뀌곤 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면서 정리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만화방은 정해진 곳에 책을 꽂아야 하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컴퓨터도 없이 모두 수작업으로 장부며, 책을 바로 잡아야 했으니. 넓디넓은 책장에 책을 구분하는 기술을 전수받고 위치를 외웠다. 재미가 붙어 어지럽게 꽂혀있는 책들을 순서대로 놓았다. 일을 그만둘 때쯤에는 사장보다 책의 위치를 잘 알았다. 돈과 현실은 학습의 이유로 충분했다. 그렇게도 정리하기를 싫어하던 소년이, 결벽증에 가까운 짓으로 쾌감을 느꼈으니. 바에서 일할 때면 항상 술, 잔, 의자 등은 제 자리에 있어야했다. 직장의 물건이 뒤틀리면 불안함이 앞섰다. 바로 잡아야해. 바로 잡아야해.

물류 창고에서 일하며 일에 대한 집착은 극에 달했다. 욕을 먹어가며 컨테이너 박스에 각양각색 크기를 가진 상자를 쌓다보니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십 톤 컨테이너를 하루 네 대 비우고 두 대 채웠다. 텅 빈 창고에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한 달 만에 창고가 가득 찼다. 십 미터 높이의 상자더미위에  누워 단잠을 잤다. 조금이라도 물건을 더 싣고, 더 쌓으면 하루가 뿌듯했다. 

그리고 관광공사에 입사했다. 완벽을 요구하는 곳에서 역설적이게도 ‘완벽해 보이는 법’을 배웠다. 현실은 간단하다. 뭐든 완벽해 보이기만 하면 된다. 톡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질 카드 탑이라도, 빛나기만 하면 됐다. 두 해를 보냈다. 세 번째 해가 온다. 

정리를 못하기에 이제껏 가진 것을 잘 버리지 못했다. 연말이라 이것저것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읽지 않고 박아두었던 책들을 읽고 쓰지 않는 물건을 정리했다. 컴퓨터에 쓸데없는 파일을 지우고 글을 갈무리했다. 요즘은 작년에 쓰던 공책의 자료를 모으는 중이다. 빈 사물함에는 약간의 공간이 생겼고, 책장도 말끔해졌다. 뭐 버릴 것도 정리할 것도 얼마 없었지만. 정작 정리해야할 건 따로 있는데.

나도 저 위태로운 카드 탑처럼 것만 그럴싸했던 건 아닐까. 삼각형과 삼각형이 만나 거대한 삼각형을 이루는 거대한 피라미드는, 그 빈 공간만큼이나 텅 비어있었으니까. 나도 그랬던 건 아닐까. 아니, 그런 건 아닐까. 마음의 집을 받쳐주던 거대한 기둥이 뿌리 채 뽑혀나갔다. 대들보가 사라졌다. 폭삭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집 한 채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웅장한 피라미드만 남았다. 가까이 보면 톰과 제리에 나오는 치즈처럼 미친 듯 구멍나있는 피라미드가.

엉망이 된 생각을 다시 조립해야하는데. 철이 들면서 짐과 물건 따위를 정리하는 법은 터득했어도, 아직 스스로를 정리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여기 던져놓고 저기 처박아둔 생각이, 사람이 머리로 꾸역꾸역 밀려나온다. 이건 분명히 연말이라 그럴 거야 하고 중얼거리고 나라는 존재가 무너졌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뭔가 좀 제대로 된 정리가 필요하다.

정리라고는 쥐뿔도 모르지만 요즘 나름 정리하고 살려고 노력중이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단단해보이던 벽도, 할 수 없는 일들도 어떻게 정리했는데 정작 중요한 것들은 마무리를 못하고 있다. 올해도 십구일 정도 밖에 남질 않았다. 이달의 마지막을, 이해의 마지막을 마음먹은 만큼 잘 보낼 수 있을까. 쉴 새 없이 공책을 뒤적거려 생각의 조각을 메워본다. 일단 하는데 까지 해봐야할 테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4:10:20 

 

병장 정병훈 
  요새는 일상이야기로 자주 만나는것 같습니다? 
흠- 2008-12-12
18:15:08
  

 

상병 김무준 
  활활 타올랐다 팍 식어버렸습니다. 2008-12-12
18:46:30
  

 

병장 김동균 
  음.............................................. 2008-12-12
19:29:53
  

 

병장 정병훈 
  팍 식어버린건 무준님 뿐 아니라, 책마을 전체적인 분위기 같아 보입니다만. 
물론 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휴- 2008-12-12
19:40:10
  

 

병장 이동석 
  이런날이 있으면 저런날도 있을겁니다. 연말이라 이것저것 할일이 많잖아요. 동네마다. 2008-12-12
20:04:22
 

 

병장 정병훈 
  이런말 할때마다 정말 '형'같단 말입니다? 허허허- 포근해.(하트) 
아... 얼른 여자 만나야지. 더이상은 안돼. 2008-12-12
20:06:57
  

 

병장 이동석 
  전 후배들에게 엄청 인기가 많긴 합니다. 남자 후배들한테만. 된장. 고추장. 2008-12-13
00:4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