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한숨을 길게 내쉬며.
상병 손근애 [Homepage] 2009-04-30 13:02:44, 조회: 103, 추천:0
제목을 작성한뒤, 잠시 멈칫한다.
어떠한 제목으로 일상을 기록할지 고민하다 나온 제목이 겨우 저것이라는 것에. 숨을 내쉰다는 것에는 두가지 의미가 함유된다. 마음의 여유가 없이 복잡하다는 것과 어느정도 자신이 디딜 발판이 마련되었음에 안심이 되서.
나는 지금 어떤 상황일까.
4월의 마지막에서 4월을 반추한다. 너무나 많은 일이 짧은시간에 집약적으로 일어났던 4월 이었기에 내 지나온 1년 6개월의 시간중 가장 빠르게 지나간 시간이기도 하고, 하염없이 느렸던 시간이기도 하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솔로몬이 반지에 새겼다던 문구는 버팀목이 되었던 것과 동시에 불투명한 미래를 더더욱 불안하게 했다. 지나가고 나면, 내가 서있는 자리는 과연 어디가 될것인가.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무너진 다음이라면 지나간 것이 과연 어떠한 의미로 남을 것인가.
지나가기때문에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를 준비하라는 의미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내 자신이 더할나위없이 무력해진 현실에서는 그저 어떻게든 될거라는 의미로 퇴색되어 받아들여졌고 그 무기력감은 그동안 가져온 마음의 여유를 남김없이 빼앗아 갔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 성격의 문제이리라. 일어나는 모든 일을 조율하고자 하고, 항상 최악을 상정하고 그 최악이 다가왔을때의 대비책을 마련하려 하는 내 성격의 문제.
편하게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정신을 차리면 내 모든 신경은 주어진 문제에 첨예하게 곤두서있었다. 아무것도 할수 없음에도, 나는 그저 조급해했고, 정력을 쏟았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걸 어쩌겠나. 하,하.
결국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주어진 몇가지의 선택지를 끌려다니지 않도록 한가지로 선택하는 것 뿐이었다.
짐덩어리로 취급받기 싫어서, 그리고 끌려다니기 싫어서, 나는 내 스스로 번호를 골라잡은뒤, 묵묵히 내 선택에 대한 책무를 나에게 부여했다. 최선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차선이었다.
늘상 해오던, 이병때부터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했던 연등도 집어치웠다.
띄엄띄엄 했지만, 그래도 즐겁게 꾸준히 달렸던 구보도 중단했다.
항상 손에 들고 있던 책도 손에서 놓아버렸다.
늘 이곳에서 얻던 즐거움도 포기했다.
나는 그렇게, 모든걸 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였다. 내 궁생활의 비중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것들을 포기할 정도로 나는 내 생활이 절박했다. 한번에 여러가지를 하던 자원을 한가지에 쏟음으로써 신속한 정상화를 이루려 했다. 그리고 다시금 마음의 여유를 찾기를 원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간을 쪼개어 접속한 책마을은 접속이 되지 않았다. 내가 허우적 거리고 있을 동안 책마을 역시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처럼 보여졌다. 안도했다. 사실,고백하자면, 책마을에 가지고 있는 내 마음의 무게도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의식중에 내쉬어진 내 한숨은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내쉬어진 한숨이었을까, 어느정도 자신이 디딜 발판이 마련되었음에 안심이 되어서였을까. 실상, 마음의 여유가 점점 없어져만 가는 현 상황에서 과연 이것이 여유가 없기에 다급한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한다. 내 스스로가 나를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가.
다시한번 크게 내쉬고, 하복을 준비한다.
붙어있는 계급장을 떼고, 새로운 계급장으로 바꿔 달고, 붙어있는 먼지를 떼어내며 새로운 한달을 준비한다. 일단 다음 숨은 바깥에서 쉬고 생각하자. 정체되어 있는 이곳을, 복잡하게 꼬여있는 이곳을 벗어나고 나서.
여유를 찾기보다, 여유를 만드려 한다. 성격상 안되더라도, 계속해서 숨을 들이 마시면서 깨끗하게 잊어버리려 한다. 지금의 이 독특한 경험이, 내가 성장하는데에 있어 새로운 자양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내일은, 몸과 마음의 휴식으로 새로이 시작하는 첫 달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4:19
상병 국용상
벌써 월말입니다. 이래저래 사정이 있었던지 책마을도 접속이 안되고.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이래저래 바쁜 일이 많아서 그냥 4월 달 중의 하루라고만 생각했는데, 손근애님의 글을 읽어보니 벌써 마지막 날이 다가왔네요.
입궁한지 1년째 되는 달이기도 하고, 이제 물이 빠진다고 하던가요. 어느새 세줄을 단 지도 한달이 지나버린 달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숫자가 들어간 달이기도 하고, 친한 사람의 생일이 들어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의미가 많았던 4월달이 지나고, 이제는 5월달이 다가왔네요.
겨울이 끝나고, 이제 슬슬 여름이 다가온다는 소리겠죠. (..봄은 하늘 나라로..)
당장 내일부터 반팔을 꺼내 입고, 다들 겨우내 새하얗게 변해버린 팔뚝들을 다시 새까맣게 불태울 계절입니다.
5월달에도. 다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09-04-30
16:46:43
상병 김유현
만랩 달성. 고생하셨습니다.
근애님의 글들을 기대하는 마음은 언제나 컸었는데, 여러 사정 탓으로 그렇게 되지 못한 것 같아 적잖이 아쉽습니다. 문득 멈추어 서 있는 곳을 확인할 정도의 여유도, 정말로 바쁠 때엔 쉽게 허락되지 않는 축복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이 순간에, 이만큼이라도 충만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강인하고도 섬세한 필치로 내밀어진 담담한 내밀함에 활력이 넘치기를. 2009-05-01
01:35:56
상병 김태완
모든 것을 버리고 택한 한가지라는게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