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풍이 온다
상병 이동석 [Homepage] 2008-06-10 20:56:42, 조회: 163, 추천:0
풍이 온다
풍이 왔다. 아무짓도 안하고 그저 철봉에서 회전하다 공중제비로 착지하는 척하며 벌써부터 날아드는 모기떼들에게 거침없이 드롭킥을 날리며 그 유명한 뒷목낙법을 했을 뿐인데 온 몸을 움직일수가 없다.
사실 살아있는게 신기하긴 하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군견아닌 군견, 애완용인지 비상식량인지 잔반 처리용인지 모를 변견 몽이조차도 움찔 할 정도로 다이나믹한 착지였다. 그렇다고 오줌을 지리다니, 약한녀석. 그러나 몽이는 배운 암컷이었다.
몽이의 오줌내가 향긋하다. 녀석은 일주일째 물만 먹고 있다. 그렇다고 녀석이 광우병 걸린 소고기 먹느니 굶어죽고 만다며 단식투쟁을 하는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요즘 식성이 유난히 좋아져서 잔반이 남아나지를 않는 탓이다. 몽이는 그러니까 화학전을 시도한것이다. 자신의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건 밥짓는 연기도 보일정도로 가까이 있는, 몰래 잡입해서 개만 잡아먹고 간다던 북괴도당의 특수부대도 아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개가 끼나 천둥이 치나 쓰나미가 몰려오나 마나 개떼처럼 몰려드는 저 인민군, 아니 중국 어선도 아니고 단지 밥만 좀 많이 먹는다뿐 잘생긴게 죄라면 죄고, 똑똑한게 죄라면 죄인 나인것이다. 몽이의 나른한 향이 밴 오줌이 흘러 뒷목을 붙잡은체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사색에 잠겨있는 나의 볼을 간질인다.
노을은 참 아름답다. 성급한 하얀 달도 구석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었는데, 갸름하고 날렵한게 꼭 매일 아침마다 거울에서 보는 내 턱선 같다.
아 달이 아니라 안경에 벌레가 붙었구나. 내가 누구한테 여기온다고 말했었나. 굳어가는 목은 움직일줄을 모르고 노을은 물들어가다가 좀 과하게 붉어졌다.
짐작했겠지만, 해는 이미 거의 저물었고 안경에 피가 좀 튀었다. 어디서 나온피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는 눈과 안면근육을 이용해 몽이의 위치를 추적하기로 했다. 몽이의 오줌냄새와 온도를 볼 때 그래 넌 이쪽에 있다. 휘익. 부릅.
라고 고개를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전방 미니스커트를 주시하기 위한 최적의 각도 (에스컬레이터의 각도와 미니스커트와의 거리, 그리고 두꺼운 뿔테안경에 최대한 고개를 움직이지 않은체로 시야만 넓히는것이 중요)만 움직였을뿐인데 용솟음치는 신음과 통증.
아흥
이게 진정 내가 낸 소리란 말인가. 나는 묘한 흥분마저 느끼게되었지만, 더 이런식으로 했다간 책마을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므로 여기까지만 하자.
어쨌거나 몽이놈은 생존의 라이벌인 나를 이김에 아예 보낼 참인지 내 주위로 결계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암컷인 놈이 내 주위를 빙빙 돌면서 오줌을 누기 시작한다. 아?
아 안돼. 똥만은, 제발.
나의 이 간절한 바람이 통하였는지 몽이는 풀었던 괄약근을 다시 조였고 십년치 식량이라도 발견한듯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분명 난 개의 표정을 보았다. 녀석은 분명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망할 자식. 그러고도 네가 공군 에이스의 군견이란 말이냐. 이 연평도의 수호자. 그러니까 네가 개-삐-지. 내가 뭔소리를 하건 말건 그는 그나마 움직일수 있는 손이 닿지 않을 다리쪽으로 유유히 돌아오더니, 다리가 얼마나 긴지 그 순간이 천년같았다, 갑자기 다리사이로 파고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DNA의 소명에 충실하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성생활을 지켜나가기 위한 방어를 하려했지만, 몸은 생각처럼 움직이지를 않았고 몽이는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망할놈의 개-삐-.
그리고 그는 딱 움찔하기도 그렇다고 아무짓도 안하기도 뭐한, 바지로 치면 핫팬츠의 끝자락쯤 될 곳에 자리를 잡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도 지구는 멸망했다.
혼절한 나를 깨운건 근무서다 돌아온 초병 아저씨들이었다. 아저씨. 여기서 뭐해요? 살아나는 의식속에서 반가운 목소리들이 들렸다.
야 이 아저씨 똥쌌나 본데. 지린내도 쩐다. 아 이 아저씨 진짜 생긴데로 논다. 여기서 똥싸다가 쥐와서 쓰러졌나보다. 아 더럽다. 야 그냥 가자야. 지 알아서 하겠지. 카악 퉤.
아, 안돼. 나의 의식은 다시 혼미해졌다.
사족
이건 연의라고 해두지요. 뻥 30에 실화 70. (뻥은 주로 제 외모와 지성에 관한 내용)
물론 버리고 간건 친한 타부대 사람들의 장난이지요. (쓴웃음)
그리고 개똥은 실화입니다.(울음) 정말 식량으로 써버릴까부다.(그러나 개고기 안 먹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17:58
병장 김별
킬킬대면서 읽었습니다.
우째이런일이...
살다보니 1박2일에 나가시려나 봅니다(응?) 2008-06-10
21:30:10
상병 이동석
그리고 보니
다들 몽아 몽이야 부르는게
딱 1박 2일에서 강호동이 엠씨몽 부르던 뉘앙스였군요. (웃음)
자고 일어났는데도 이거 죽겠습니다. 허허. 2008-06-11
06:56:40
병장 강석희
위트가 흘러넘치는 표현력, 부럽습니다(웃음) 2008-06-11
08:14:57
병장 장재혁
..이런 잔혹한 일이..
잘읽었어요. 아.. 배아파..흐흐.. 2008-06-11
08:19:35
상병 이동석
음, 전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제가 쓴 글들 보다
제가 단 리플들이 더 재밌는거 같아요.
죽어도 170은 넘을수 없나봅니다. 2008-06-11
11:03:12
병장 정연홍
그리고 오늘도 지구는 멸망했다에서 간부뒤에 있는 거도 까먹고는 미친듯이 웃어댔네요.
아, 요즘 체력단련 강화로 윗몸일으키기를 아침마다 100개씩 하고 있는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2008-06-20
21:27:56
병장 이동석
우히히,
그런 최종병기 선생님들께는 언제나 상큼한 미소를 날려드려야할듯.
맞으면서도 욕먹으면서도 계속 상큼하게 미소를 지으면
그분도 식겁해서 피하실듯? 히히. 2008-07-08
20:0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