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지리멸렬
병장 이동석 [Homepage] 2008-08-11 21:14:20, 조회: 265, 추천:0
지리멸렬
서태지의 노래가 아니라도 우리는 집으로 돌아올수밖에 없다. 이제는 뭐 학수고대할것도 없는 가출도 늘상 그렇듯 시시하게 끝났다. 돌아온지 일주일이 되가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에게나 전화를 해댔고,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젠 [전화를 했다. ‘하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보다 [전화를 했다. ‘그리고’ 아무도 받지 않았다.]가 더 자연스러워졌다는걸 깨닫고 새삼 씁쓸해했다.
금메달을 따고 울고, 은메달을 따고 울고, 탈락해서 울고, 우리 누구는 어려서부터 참 운동만 했어요, 시원하게 이기고, 아쉽게 지고, 참 제가 할말은 아니지만 우리 누구는 제가 키웠습니다, 총 이천명의 군인이 사망했습니다, 마침내 사장이 해임됐습니다, 무효에요, 무효,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열대야가, 내일 중으로 한두차례, 장새벽 이 나쁜아이, 크크섬의 비밀은 왜 안해?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그게 한두푼이냐? 말을 해봐.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그럼 그렇게 알고 있는다. 꼭 부쳐. 금메달을 따고 웃고, 은메달을 따고는 못 웃고, 탈락해서는 울수밖에 없고, 우리 누구는 참 어렸을땐 운동만 했는데, 이겨도 덥고, 져도 덥고, 참 제가 할말은 아니지만 전 책임 없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이 마을에선 총 이천명의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기어코 사장님께서 회임하셨습니다, 제 아이가 아닙니다, 아니에요, 유가폭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다가 올림픽 보느라 잊어먹어, 내일 중으로 한두차례, 윤아는 나오지도 않구만, 크크섬의 비밀은 올림픽 내내 안하는거야? 따르릉.
따르르. 오빠 나야. 일 하느라 못 받았어. 아직 안 끝났어. 그럼, 덥지. 남자친구가 데리러 오기로 했어. 미안, 바쁘다. 다음에 나올 때 연락해. 안녕. 잘 지내.
응. 너도.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18:34
병장 이태형
슬픈데요.
전 밖에 있는 녀석들에게 연락을 안 하죠.
집 & 전역한 베스트프렌드
이것뿐.
쵸재깅엔 입궁할 때부터 주소 따위는 쓰지 않았음.
왜?
어차피 편지 보낼 사람도 없으니까.
그나저나 더워요 정말.
작년엔 이런 날에 R로 시작하는 훈련을, 그것도 출발항군을 사십이나 하면서 버텼는데.
어떻게 했지? 2008-08-11
22:27:16
병장 이현승
올림픽 기간에 실로 무서운 일들이 우리곁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뉴스는 -마치 80년대 땡전뉴스처럼- 온통 올림픽에 관한 소식들로
넘쳐납니다. 하나의 가쉽거리라도 놓치지 않을려고 온나라가 몸살을 앓고.
올림픽, 올림픽 누가 합창소리가 더 큰가 경쟁 해요.
피살사태가 한달이 넘어가고, 공기업 부문에 대한 대거 민영화가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고, 그루지아에 대한 러시아의 폭격이 시작되었음에도 우리들의 관심은
이미 아오안(아웃오브안중)입니다. 2008-08-12
09:40:12
일병 강지구
입궁한지 얼마 안된 저도
밖에서 희희덕 놀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면
별로 반가워하지 않더군요
(그나마 한두명과 가족들만 반가워하고...)
이곳에서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필요에 의한 가식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을...
그러나 그 중에 한 두명은 저를 진정으로 아껴준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아, 9월 초는 시원할까요...부대찌개 2대 테스트중 하나인 하계 그것을 하는데
처음이라... 2008-08-12
09:40:45
상병 박찬걸
휴가 나가서 만나봐도 반가워 하고 잘 놀아주는 사람들은 몇 안되더라구요.
뭐 인간 관계가 다 그런건지...
나름 친했다고 생각했던 녀석들도 좀 어처구니 없게 대답할때도 있더군요.
군대에서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정리했다고나 할까요. 2008-08-12
10:25:15
상병 양순호
아.. 왠지 모르게, 갑자기 첫경험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네요. 2008-08-12
11:25:17
병장 황인준
쩝,
사는 게 다 그런거죠 뭐. 허허. 2008-08-12
13:05:10
병장 허기민
지리멸렬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이었군요. 지금 내리는 소낙비처럼 잠시뿐이길.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무슨 상황이신지는 모르지만, 이 댓글이 주제 넘는 글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힘내시길. 2008-08-12
15:19:00
병장 이동석
저도 이제 답장 기다리기 지쳐서 편지쓰기는 포기하렵니다.
입궁하기 전에 느낀건데, 편지라는게 사바세계에선 너무 번거로워요, 정말이지 좋아하는 친구고, 사랑하는 사이고 해도 편지 쓰는건 정말이지 큰맘먹고 하는 일인것 같아요. 그래서 부담주지 않기로 했어요. (뭔가 처연하군요)
올림픽에 함몰되고 나서 뭔가 재빨라진 것들이 몇몇 있죠. (하하) 사바세계의 소식 접할 매체가 티비밖에 없는 저로서는 심각한 위협이더군요. 이제 사람들은 거리에서 촛불대신 태극기를 들고, 한마음 한뜻으로다가 대한민국을 외치겠죠.
소고기? 그게 뭐지? 먹는거잖아. 꿀꺽.
흔히들 입궁해서 인맥의 옥석을 가른다고, 관계의 진가를 깨닫는다고 하던데 꼭 그런것 같지만은 않아요.
물론, 쿠닌 아껴주는 사람들은 진정 소중한 분들이겠지만, 쿠닌이거나 말거나, 늘 한결같은 사람들도 있죠. 그런 사람들에게 서운해한적도 있지만, 너무 성급하게 판단한건 아닌지 할때도 있지요. 집에 가서 다시 연락하면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예전처럼 대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꺼라 믿습니다.
지리멸렬한 저의 세계는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이거 쓰고 나서 예전에 함께 영화찍었던 89년생 꼬마한테 편지 받았습니다. 어찌나 글씨도 귀엽던지. 하하하하 (자랑)
(이따위로 일희일비하다니...) 2008-08-12
20:5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