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지나간 시간을 파는 사내
상병 김민규 [Homepage] 2008-10-30 13:34:19, 조회: 268, 추천:0
굽이굽이 능선을 따라 난 산길로 버스가 달려 올라가고 있었다. 앞쪽으로는 두어 대의 차가 더 있고, 양옆으로는 빠알간 가을의 절정이 물들다 못해 진갈색 땅인지 이파린지 구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차 안에는 서너명의 사람이 앞뒤로 앉아 떠들어대고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른 채로 기사는 계속해서 버스를 채찍했다. 그 때였다. 왼쪽으로 깊이 굽어진 길을 돌아가려는데 도로 오른쪽 편으로 사람 서넛이 차를 바라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이미 속도가 나 있을 만큼 나 있던 버스는 그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에게로 그대로 돌진해가는 듯 했다. 짧은 순간이라 많은 말도 못하고 어! 하며 굳어버린 찰나. 버스는 그 직진의 관성을 그대로 이어받아 굽어지는 도로 오른편에 마련된 넓다란 예비차로를 밟고 행인 넷을 오른편으로 비껴가며 계속해서 산을 오를 뿐이었다. 기사가 태연한듯 말했다. "감사한 일이지." 무엇이 감사하다는 것일까 그는, 사고를 면한 것이? 아니면 그 곳에 그런 예비차로를 마련해 준 것이? 충분히 차가 비껴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고서 뒤를 돌아보니 스님 두 분이 풀셋 승복을 입고 목탁을 치며 사고가 날 뻔 한 자리에서, 마치 재수없는 일을 겪고 마당에 소금을 뿌리듯이, 공중제비를 한바퀴 돌더니 목탁을 탁! 치고 계속해서 걸어간다. 뭐지, 여긴?
버스는 봉고차가 되고 그 안에 같이 있던 서너명이 여전히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앞으로 나란히 가던 버스 두 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그들을 따라 어느 목적지로인가 가고 있다는 느낌이 인지된다. 차가 멈춰선다.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잠시 쉬었다 가는 듯 하다. 자연스럽게 차에서 내린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빠져들어버린다. 기나긴 길이 뻗어있고 양옆 폭은 5m쯤 되는데 그 길을 따라 버드나무인지 플라타너스인지 그것도 아니면 메이플인지 하는 잘 생긴 나무가 들어차있다. 발 아래 서늘한 느낌이 들어 보니 물이 고여있다. 차에서 오른쪽 문으로 내려 고인 물을 피해 차 앞쪽으로 가자니 울퉁불퉁한 땅을 밟고 조심조심이다. 그 길을 한동안 감상하다 누군가 두 명의 사람이 내 옆에 서 있는 것을 의식하고 돌아본다. 아니, 서 있다고 느꼈던 그것은 사실은 사람이 아니라 물에 반사된 내 그림자였다. 저 멀리서 스님 한 분이 아까와 같은 복장으로 목탁을 치며 걸어오는 것을 본다. 그러더니 이내 그것 역시도 흐릿하게 사라지며 일렁인다. 아니, 걸어오고 있다고 느꼈던 그것 마저도 사실은 진짜 스님이 아니라, 물에 반사된 스님의 그림자였다. 그러고 보니 길은 흙바닥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고여 있는지 모를 일종의 운하다. 다만 물이 반짝이는 햇살을 받아 진짜인 것 처럼 사물을 반사해내었을 뿐, 나는 경치에 취해 찬찬히 눈을 위로 들어본다. 아름다운 갈색의 땅과 길 - 아마도 물길-, 그리고 그 위로 놓여진 회색 돌다리에는 초록색 이끼가 흘러내리는 빗물을 따라 자란듯이 일자로 위에서 아래로 끼여있다. 늘어트린 버드나무 이파리는 특히나 싱싱한데 역시 물에 반사되어 마치 두 그루의 나무가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하나는 아래에서 위로 자라오른 듯 하다. 한참을 설레는 가슴으로 음미하다 한 마디 말을 슷떳며 그 짧은 꿈에서 깬다. '이게 전라도의 색色인가?'
방금 밥을 먹고 잠시 엎어져 졸던 20분사이에 너무도 생생한 꿈을 꿔서요. 이렇게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억나는 꿈은 정말 오랜만이예요. 무슨 꿈이냐구요? 지금까지 읽으신 내용이요, 저게 다 꿈이었답니다. 20분짜리 단편영화. 이런 꿈 혼자 갖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팔러 왔어요. 바람빠진 공 들고요.
한 일주일 쯤 전에, 꿈에서 후임프 녀석이 담배를 꺼내는데 그게 '초록색' 타임 멘솔이더랍니다. 그래서 꿈이 천연색으로 인지될 수 있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했었는데, 오늘의 짧은 꿈은 좀 충격적이네요. 총천연색의 동원이라니.
표현력의 한계로 그 느낌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지만, 어후, 아직도 완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곰씹고 있습니다. 보통은 바로 까먹는게 정석일텐데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꿈 특유의 뜬금없는 판타지성도 유별나군요.
사실 분?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5:37:26
상병 양순호
전 저의 관심1g에 살께요. 이거 귀한거에요. 자주 거래하는것도 아니구요. 그리고 전 멘솔이 좋아요. 입담할때 딱 좋거든요. 사람들은 입담을 그다지 좋게 보진 않더라구요. 나쁜사람들. 그런데 그런 꿈 정말 부럽네요. 전 꿈꾸면 이루기 힘든 환상이던데말이죠. 아니면 나중에 그 꿈이 현실이 된다거나 . . . 2008-10-30
15:19:02
상병 김민규
요새 잠만 자면 꿈이고 꿈만 꾸면 장편 어드벤처라서 자도 잔 것 같지가 않고 피곤하고 그러네요. 그 자면서 내내 용쓰는 느낌 있죠? 뭔가 엄청 간절한 목표가 있어서 밤새도록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는데 이룰 때 쯤 되면 깨버리는
전형적인 개꿈들, (웃음) 2008-10-30
18:09:48
상병 김민규
그나저나 피버노바 내지는 팀가이스트 정도면 팔려고 했는데 관심 1g이라니 안되겠군요.
유감입니다(흥) 2008-10-30
18:17:30
병장 이동석
제 내글내생각을 부끄럽게 만드는 알찬 일상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불교적인 색채가 은은합니다. 허허.
그런데 민규님은 교회 다니시지 않나요? 별 상관은 없지만,
얼마면 되나요? 흐흐. 2008-10-30
22:58:06
상병 김민규
잠 덜 깨서 혼자 잠꼬대 해놓고는 그걸 판다고 하니 팔릴 리가 있겠나 싶었는데
\320,988,423,200,300입니다. 부가세는 포함이예요. 입금확인되면 착불배송드릴게요. (웃음)
꿈속에 등장했던 스님은, 엄숙하고 진중한 이미지라기보다는, 소림축구를 보는듯한 그런 분위기였어요. 물위를 떠서 걸어오지를 않나, 제자리에서 공중제비를 돌지를 않나. 덕분에 어젯밤에는 피곤해서 꿈도 얕게 꾸고 죽은듯이 잠만 잤네요. 2008-10-31
08:23:52
병장 김낙현
사실, 최창순 병장님께 주문제작 부탁하면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도망- 2008-10-31
10:0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