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정모후기 - 비하인드 스토리  
병장 문두환   2009-01-03 17:56:46, 조회: 239, 추천:0 

   신호음이 간다. 전화를 받는다. 어라. 의외로 얇은 톤의 목소리. 약간의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건너온다. “아...그 맥도날드 앞 Lotto파는 곳 앞에서 시커멓고 담배 피우는 놈 하나 보여요?” 허허, 거 참 그렇게 간결한 설명을 듣고 생전 모르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어찌되었든 만났다. 

   그의 날카로운 글을 보며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참으로 온순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후드를 뒤집어쓴 채로 추위에 벌벌떨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란...시간에 맞춰서 왔건만 그에게 미안한 감정을 자아낼 정도였다. 뒤이어 공을 차자고 했으면서 혼자 저녁밥을 먹으러 가버린 해성씨가 나타났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이 글을 훔쳐보고 있을지 모를 상원씨가 캠코더를 들고 나타났다. 일단 못해도 고스톱은 칠 수 있는 사람이 모였으니 들어갈 곳을 고민해 보았으나 역시 결론은 고깃집이었다. 남자 넷이 모여 시커먼 기운을 뿜어대며 카페에 들어설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아마도 그 참을 수 없는 정적을 다들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모임이 진행된지 한시간 즈음이 지났을까. 광주에서 숙취에 헤매던 동슥씨가 상경에 성공했다. 현대백화점 사잇길로 오라고 했더니 그 큰 덩치로 달리는 모습에 그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첫마디는 ‘죄송하다’인 것으로 보아 무준씨가 말한것처럼 그는 요즘 사과하는 것에 재미를 붙인 듯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제가 무릎이라도 꿇을까요?’(그럼요, 당연히 그러셔야죠)라며 선빵을 날려버려서인지 다들 별다른 타박없이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저녁식사를 알리는 인사도 없이 가버린 형주씨도 동슥씨와 함께 합석, 이하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하신 분들의 얼굴을 뵙지 못했으나 어찌되었든 첫 만남은 설레고 반가운 것이라. 

   공을 차자던 해성씨가 제안했던 문집은 다름 아닌, 여태 책마을에 비축되어 있던 주옥같은 글들을 모아 책을 내자던 의미였음과 함께 가는 마당에 문집의 T/F팀장을 나를 거론했던 것은 그저 내가 만만했기 때문이었음이 밝혀졌다(쿵). 유쾌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어찌되었든 정식 정모라고 하기에는 턱 없이 적은 사람이 모였고 급조된 모임인지라 대화의 주제조차 불분명했지만. 그때 내가 받은 느낌으로는 그 적은 숫자의 사람 사이에서도 시즌2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었다.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시니컬하고 쉬크한 도시 남자 이미지를 상상하게 했던 무준씨가 자신이 막내임을 강조하며 고기를 자르기 시작했다. 술이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원화가치가 땅바닥을 치고 있어서인지 유난히 외국인 손님들이 많았던 가게, 술은 조금 더 쓰게 들어가고. 

   자리를 옮겼다. 일단 다들 배는 채웠으니 이제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좀 하자는 분위기, 그래서 선택한 곳이 (내가 선택하기는 했지만) 맥주바였다(헐). 이 즈음에서 무준씨는 입이 귀에 걸린 채 누군가와 계속 문자를 주고 받고 있는 중이었고 틈 날 때마다 “저는 일어나야…”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나마 실내가 그리 시끌벅적하지는 않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그리고 10시가 넘어서 홍대로 옮겨갔다가 1시가 다 된 시간 즈음에야 시즌 1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동슥씨와 나, 그리고 상원씨 세명이었다. 사실 우리 셋도 그날 처음 만난 사이인지라 그리 폭넓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고 서로가 어색했기에 시즌1 사람들을 만나 단결된 힘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인 것은 마찬가지였고 이미 시침이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터라 이야기의 집중도는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었다(아아-나만 그랬던건가).

   일단 내가 관찰한 번개모임의 모습은 이 정도이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만남의 시간이 좀 짧았다는 것이었지만 일단 누가 되었든지 ‘우리’가 만난 것이므로 그것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다음 2월에 모임을 계획하고 있으니 그때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모임을 통해서 느낀 것인데 일단 사람 수를 봐서 결정할 일이지만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1.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서 일단 이야기를 조금 한 상황에서 술자리로 옮겨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하나. 이번 번개모임이야 그저 얼굴보고 술 한잔 하자는 의미가 조금 더 컸을(것이라고 받아들이고 나갔던)것이 기에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더 많았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면 오히려 조용한 곳에서 진득하게 이야기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모두가 뻘쭘하다면, 병을 하나씩 잡고 나발을 불고 나서 카페에 가는 것은 어떠한가(헉).

2. 그리고 이번 모임에서 개인적으로 먼저 꺼낸 이야기지만 소위 말하는 시즌 2의 공간에 대한 논의를 조금 구체화 할 필요가 있다. 가령 회원의 형태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시즌 1과 같이 외부의 사람의 유입문제가 될 것인데, 정태적인 성향에서 조금 벗어나 탄력을 받을 수는 있다. 나는 물론 책마을이라는 코드를 벗어나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듯 하기에 이것 역시도 말을 꺼내야 할 필요를 느낀다. 

3. 반드시 친목성향이냐 학술성향이냐를 구분짓자는 것은 아니지만 시즌2가 그땐 그랬지-를 회상하는 곳으로만 기억되고 그렇게만 찾는다면 모임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어떤 목적은 있어야 모임이 조금더 생명력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잠시 클럽에 가 보았는데 잠정적으로 운영자가 결정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인 듯 하다. 더불어 꾸준히 글을 써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시즌2에서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다.

4. 조금 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수유+너머와 같이 시즌2 안에서도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조금 더 특화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혹시 4번이 땡기시는 분은 회원 파도타기를 해서 족적을 남겨주시면. 흐흐흐.

참 곁가지를 하나 더 붙이자면 우리의 동슥님은 생각만치 그리 험악한 편은 아니다. 그도 그 나름대로 굉장히 온순하며 실제 대화상에서는 마구를 던지는 것 같지는 않으며(첫 만남이라 그랬던 것이라면 나의 엄청난 오해겠지만),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듣는 쪽에 더 가까운 편이라는 것 정도. 그 날 결국 무준씨와 동슥씨의 나체쇼는 깜박하고 주문을 못했지만 이는 다음 모임으로 넘기리라. 

덧 - 굉장히 빠르게 적어나가고 퇴고도 하지 않은 글이라 말의 어폐가 있을 수 있다.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쪽지로 연락주시면 성심성의껏 찾아가는 서비스로 보답해 드리리라.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20:01:23 

 

상병 김무준 
  이 즈음에서 무준씨는 입이 귀에 걸린 채 누군가와 계속 문자를 주고 받고 있는 중이었고 틈 날 때마다 “저는 일어나야…”를 반복하고 있었다. 
깔깔깔깔.... (뜨끔) 어쨌거나. 저는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닙니다. 해치지 않아요. 2009-01-03
18:16:31
  

 

병장 문두환 
  흐흐. 전에 올리신 후일담이 참 마음을 더 뜨겁게 해주는군요. 이제야 읽어 보았습니다. 역시 글을 무준님 같은 분이 쓰셔야 합니다. 저는 옆에서 박수를 쳐 드릴 수 있어요. 여튼 새해의 그 상콤한 문자 메시지와 무준님의 훈남 얼굴이 여전히 기억나는군요. 1월이든 2월이든 언제든 나오시면 술자리 콜-입니까?푸흐흐. 2009-01-03
18:24:36
  

 

병장 이동석 
  김무준씨는 일단 물지는 않더군요. 게다가 생각보다 귀여워요. 새해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까지 보내는거나 멀리서 온 여자친구에게 쩔쩔매는걸 보니 실은 따뜻한 남자인듯 (흐흐) 

주해성씨는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낫구요. 역시 먹이를 줘도 물것 같진 않군요. 집에 가셔서 전화하셨는데 전 평소처럼 전화 온줄도 몰랐습니다. 

윤형주씨는 정말 말끔-하게 생기셨더군요. 다음날 주행시험 보기전에 전화하셨는데, 하필 제가 머리감는 중이라 긴 이야기를 못했네요. 

장상원씨는 딱- 촬영감독의 표본-처럼 생기셨던데, 둥글둥글 하니 푸근하시더군요. 역시 제가 집에 내려갔을때 전화주셨는데, 하필 배터리가 나가서 제대로 못받았습니다. 

이전 사람들과 만났을때, 김대현씨는 생각보다 유머러스한 사람이었지만, 주변의 반응이나 스스로의 반응이 주사-였음을 반증하더군요. (허약한 지식인, 허세체력-이라더군요) 
그리고 김대현씨 여자친구는 아름답고 똑똑해보였습니다. 물론 제가 평소 컨디션이었다면 대차게 싸웠을 발언들을 하시긴 했지만... 

일전에 촌장하셔 명예의 전당에도 흔적을 찾아볼수 있는 노지훈씨는 친한 분들 앞에서도 조용하신걸로 보아, 그냥 말이 없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김형진씨는 그야말로 멋진 인간이었습니다. 그 무기력함 조차도 매력적이더군요. 권담씨는 그야말로 영민하고 강한 사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를테면 의식적으로는 동조하지 못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친근한 래디컬한 막내삼촌이나 사촌형-쯤의 느낌이었죠. 

끝으로 두환님 집은 뭔가 지나치게 비싼 전세금을 내야했지만, 입지가 매우 좋았고 (두환님 집에서 나가며 본 이대생들은...) 안락했고,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두환님은 꼭 예부터 알아온 사람처럼 친근하고 좋더구만요. 저 같은 경우엔 별 불편함을 못 느꼈습니다. 

제 생각엔 우리에게 부족했던건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생각보다 술을 안 즐기시는 분들이 많아 좀 놀라긴 했습니다만, (내가 이상한가?) 

아 김준호씨는 레폿때문에 지척에서 모이는데도 안나오시더군요. 낄낄. (물론 사정이 있음을 전화로 알렸기에 봐주기로 했습니다) 

최도현님은 알려주신 전화번호가 없는 번호로 밝혀져 당황, 이재민님은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를 않으셔셔 그냥 망각. 2009-01-03
18:36:32
 

 

병장 이동석 
  음 저도 정모후기-를 올릴까 했는데, 확실히 쓰는사람마다 다른 버전이라 더 재미가 있겠군요. 낄낄. 세개의 시선-같은 느낌이랄까요. 아, 저는 왜 글을 쓰지 못하는지 갑갑합니다. 댓글은 저렇게 쓸데없이 뽑아대면서 2009-01-03
18:46:49
 

 

상병 김무준 
  근데, 대체 왜 제가 귀엽다는 겝니까. 2009-01-04
00:52:05
  

 

병장 박윤수 
  고기 자르는 모습에 다들 반한게 아닐까요? 

고기 자르는 남자의 뒷모습은 귀엽다 ㅡ 라거나. 훗 2009-01-04
10:58:48
  

 

병장 이동석 
  생각보다-라는 전제가 딸려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장상원씨마저 덩치에 비해 사뭇 귀여웠으니 그런 의미로 보시면 됩니다. (귀엽다-라는 말이 뭔가 그로테스크한 의미가 되는군요) 

이를테면 귀엽다-라는 의미엔 최홍만이나 오징어 외계인 인형을 보러 귀엽다-고 말하는 맥락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점점 더 안드로메다로 가는 귀엽다-의 의미) 

심지어 저도 여자들에게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귀엽다-인데, 
제 경우엔 성적으로 위협적이지 않으며, 그만큼 매혹적이지도 않으나 싫지는 않음-을 표현하려고 귀엽다-라는 말을 쓰는것 같더군요. 2009-01-04
14:29:54
 

 

병장 김민규 
  일단 동슥씨의 이미지는 '꿀단지만 들면 곰돌이 푸'로 낙인 완료. 낄낄 2009-01-04
16:11:05
  

 

병장 이동석 
  곰돌이 푸는 바지를 안입는걸로 유명하지요. 그리고 꿀을 시도때도 없이 빨며 헤헤-거리는 겉모습과는 달리 의뭉스럽고 음흉한 면이 많습니다. 게다가 꼴받으면 바지도 안입고 날뛰기에 차마 눈뜨고 볼수가 없죠. 

이동슥과 딱이네요. 낄낄. 2009-01-04
17:52:46
 

 

병장 김동욱 
  이건 완전히 잡소리지만 

날카롭기만 하던 무준님의 이미지가, 몇차례의 글들로 인해 점점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거 좋은 건가요? 낄낄. 2009-01-05
00:52:45
  

 

병장 김민규 
  아 진짜, 동슥씨, 나 초성체로 웃고 경고 먹는걸 보고 싶어서 그러우? 
낄낄낄 2009-01-05
04:12:54
  

 

병장 박찬걸 
  다음에 언제 하나요. 나가서 술이나 한잔 얻어마셔 보게요. 2009-01-05
07:08:43
  

 

병장 문두환 
  /민규 

초성체는 2회까지 사용이 가능하니 한번쯤은 질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그나저나 정말 2월 모임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군요. 저도 갈 수만 있다면 꼭 가고 싶은데. 허허. 2009-01-05
08:54:29
  

 

병장 김민규 
  아, 그냥 한번 질러? 끼끼끼끼끼끼 
(주성치..) 2009-01-05
16:22:20
  

 

병장 이동석 
  하긴 그렇군요. 사상 초유로 제가 초성체를 갈기고 제 스스로 경고-를 주는 퍼포먼스도 재밌을것 같은데, 언제 한번 제대로 초성체를 써야겠어요. 낄낄. 

앗, 그리고 보니 2월 정모도 미리 질러놔야 설탕을 조절하겠군요. 2009-01-05
19:4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