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편지
상병 김무준 2009-01-13 00:42:16, 조회: 210, 추천:1
환상소설. 대한민국에서 환상소설이라 하면 문학도들은 질 떨어진 문학, 혹은 텍스트라고 삐딱한 시선으로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성세대들은 환상소설을 도저히 교훈이나 도움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쓰레기 텍스트로 몰아갑니다. 꿈을 먹고 자란 이들은 자신의 환상을, 삶을 이끌어온 환상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그릇된 것, 잘못된 것, 부당한 것이라고 느끼고 분노합니다. 환상은 꿈이나 다름없었고, 꿈꾸는 삶을 펼쳐주었거든요.
글쟁이는 글로 말해야합니다. 이건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을 명제입니다. 음악가는 노래로, 영화감독은 영화로, 사진가는 사진으로, 마이미스트는 행위로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표현하듯 글쟁이에게는 글이 곧 붓입니다. 부당한 현상. 고정관념과도 같은 사회의 의식에 ‘No'를 외치고 싶은 이들은 직접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기존의 가치와, 문학으로써의 정체성, 환상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이들은 노력합니다. 글쟁이기에 글로 말해야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씁니다. 목적은 오로지 자신의 환상을 펼쳐 보이고 싶고, 환상소설이 특별한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우선은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글쟁이들은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스스로를 작가라 칭하고 텍스트를 소설이라 부릅니다. 환상소설의 1세대 작가이며, 드래곤라자로 환상소설의 백만부 시대를 열었으며, 이제는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이영도마저도 본인 스스로를 ‘타자’로 불렀습니다. 이는 타자(他者)인지, 타자(打者)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지금은 어떨지 모르나 폴라리스 랩소디를 연재하면서도 [타자는 무덤으로 돌아갑니다.] 라며 스스로를 작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그 어떤 글쟁이도 스스로를 작가라거나, 평론가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텍스트에 어떠한 부끄러움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 부끄러움은 스스로를 갈고 닦는, 수련장의 거울 쯤 되겠군요. 날카로운 칼이 되기 위해서, 굳건한 방패가 되기 위해서, 원고지 위를 날아다니는 만년필의 펜촉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고, 글을 쓰며, 되돌아보고, 반성합니다. 국민타자 이승엽이 매번 스윙 폼을 교정하고, 버릇을 고치는 것처럼. 그는 아시아의 홈런왕이자 WBC 최고의 슬러거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진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실함과 꾸준함을 보여주기에 이치로와는 달리 겸손한 일인자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자판을 두드린다는 점에서 우리는 타자(打者)입니다. 꼭 야구선수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 목적이 보다 완벽한 사랑에 있든, 자신의 자리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든, 학문의 끝을 보고 싶어서든, 더 많은 돈을 위하여든 더 높은 곳을 보고 나아갑니다. 부끄러움은 자기반성을 불러오고, 자기반성을 통한 깨달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됩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작가라 부르는 이들이여 한 번 되돌아봅시다. 당신들이 보고 자란 주옥같은 환상에 비하여, 자신의 ‘소설’이 어떠한지를. 착각에 빠진 이들이 갈겨놓은 텍스트에는 예전의 열정이나 옥석이 없습니다. 이는 환상문학비평이라는 이름하에 어설픈 삽질을 계속해온 본인의 눈이 아닌, 환상을 사랑하는 독자 한 사람의 시선입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견고한 설정과 세계관이 바탕으로 되어야하며, 뚜렷한 주제의식과 그를 풀어갈 수 있는 사건이 필요합니다. 사건과 현상에 대하여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해석을 늘어놓을 인물도 필요합니다. 그 인물들이 사건을 바탕으로 서로 갈등을 겪으며 작가가 말하려는 의도를 지닌 인물이 승리해 앞으로 나아갔을 때, 소설은 뚜렷한 주제의식과 소설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생각하며 뛰어든 이들이 쉽사리 포기하는 까닭은,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열장 분량의 짤막한, 혹은 한 편의 짤막한 단편을 쓰면서도 하려는 이야기를 다 하기는 어렵습니다. <얼음마녀 이야기>의 시놉시스를 단편으로 써놓고도, 다시는 이런 글을 쓰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이유도, 어려움을 알고 있어서입니다. 복수의 사건을 시간위에 정렬하고, 창조한 인물들로 거대한 서사시를 풀어나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헌데, 어째서, 너무도 쉽게 환상을 시작하고 너무도 쉽게 포기합니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에게 환상은, 단 한발자국도 나아갈 자격을 주지 않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에게 독자들은 작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에게 텍스트를 소설이라 부르고 스스로를 작가로 부를 수 있는 자격은 없습니다. 자기성찰 없이는 한걸음도 딛을 수 없습니다. 독선과 아집에 빠진 이들은 하나같이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습니다. 역사가 증명하였고, 이십년 넘는 삶을 살아오면서 스스로가 깨달아왔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합니다. 수치를 겪어야합니다. 그래야 이 악물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분노에 찬 발걸음이라도 내딛을 수 있습니다. 성난 황소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깽깽이는 그래서 스스로를 깽깽이라 부르며, 여태껏 써온 수많은 텍스트에 대하여 텍스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스스로가 부족함을 알기에 입을 닫기로 마음먹었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작가를 꿈꾸는 수많은 글쟁이들이여. 부끄러움을 알아야합니다. 그 부끄러움을 거울삼아 노력해야합니다. 당신네 작가들의 소설은 기성세대가 말하는 ‘쓰레기’밖에 될 수 없습니다. 분노하세요. 화를 내세요. 이 더러운 독선과 아집에 처절한 한 방을 날려주세요. 당신들의 환상이 가치 있으며, 나는 작가이고, 내 글은 소설이다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비평은 사물의 미추를 구분하기 위하여 시작되었으나, 스스로를 객관에 가까운 상태에 두고서, 독설로 밖에 보이지 않는 텍스트를 늘어놓으며, 글쟁이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외로운 길입니다. 이렇게 변명하는 깽깽이에게, 부끄러움을 부르짖는 글쟁이에게 통렬한 스윙을 보여주세요.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휘두르다보면, 시간이 흘러 국민타자(打者)가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4:13:20
병장 주민호
저도 누구나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명검이 나오기 위해선 오랜 기간의 담금질이 필요한 법이죠. 2009-01-13
02:33:00
병장 김도환
딱히 이렇다하고 생각해본건 없지만,
본인의 글을 다른이가 즐겁게 읽고,
글쓴이도 자신의 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많다면
충분히 작가라고 불러줘도 되지 않을까요?
작가 = 시가,소설,회화,조각 등 예술품의 제작가, 특히 소설가를 일컬음
저 문장 자체를 맹신하는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땀) 2009-01-13
04:23:34
병장 이동석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서 가지로는 안 외치렵니다. 그런데 마지막이라니. 흑. 2009-01-13
07:50:15
병장 고은호
작가라는 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글쎄요.
적어도 작가가 되기를 자기 인생의 목표로 정했다면,
좋은 환상문학을 쓰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삼았다면,
'작가'라는 말은 쉽게 거론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자기 자신을 '작가'라 칭함은
다른 사람이 그렇게 인정을 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정말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가치있는 글'이라고
인정해주었을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무준님이 위에 말씀하신 영도님을 비롯한 '글쟁이'분들 역시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자신의 작품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기에 '작가'라고
자부하지 못하는게 아닐까요?
정말 자신의 글이 자타가 공인할 만큼 잘 쓴, 멋진 글인지 아닌지,
부족한 부분, 아쉬운 부분,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그렇게 치열하게 퇴고하고, 반성하며 자신과 함께 제련해 갈 때,
그 사람은 스스로를 작가라 칭하지 않더라도
세상 모두가 작가라 인정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9-01-13
08:07:45
일병 송기화
도환님/
남들이 자신을 작가라고 불러주는 것과
자기가 자신을 작가라고 칭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9-01-13
08:25:18
상병 김요셉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쓰레기를 만들다보면. 끊임없이 만들다 보면, 언젠가 그 쓰레기를 좋아하는 독자가 생기겠지요. 독자가 있으면 작가도 있는거구요. 2009-01-13
08:35:14
일병 강호
중요한건 시작한 이야기는...
끝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자식을 사생아로 버려두는건...
좀 그렇죠? 2009-01-13
09:49:26
상병 이동열
무준님이 이렇게나 좋아질줄은 저도 몰랐군요- 부끄럽습니다(아잉(?))
저는 요즘 글을 '못' 씁니다-
이런저런 바깥사정도 있고 최근 책마을의 사정도 있겠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글을 뱉어날 만큼의 자신이 없기때문이지요.뱉어낼 만큼 먹은 것도 없고 단순히 배설하고 싶지도 않기때문입니다. 지저분한 배설물이 아니라- 적어도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지렁이만큼은 되고 싶은데 안 되기 때문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저의 습작들은 책마을을 화목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기 힘들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못' 쓰고 이렇게 간간히 보이고 있지요. 2009-01-13
09:50:22
상병 차종기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머지 반은 아마도 끝인가 보군요-. 2009-01-13
14:5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