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어제, 다시 걸레를 잡았습니다.  
상병 김소망   2009-06-02 11:19:10, 조회: 247, 추천:0 

  보통 상병이 되면 인원이 모자라지 않는 한 청소에서도 열외시켜주는 것이 저희 부대의 관행입니다.
다른 부대 역시 그러한 관행이 어느정도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이등병 때 이러한 관행을 꼭 바꿔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라고 생각하며 "나에게 힘이 있을 때 바꾸어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저에게 "짬"이라는 힘이 주어지자 저는 제 선임들이 했던 식으로 청소에서 빠져 유유히 책을 들고 병영도서관으로 도망쳤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점점 부끄러워지더군요. "모든 문제제기는 실천지향이어야 한다"라는 저의 논리와 걸레를 손에서 놓는 저의 행동이 지니는 간극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내일부터는 진짜로 다시 걸레를 잡아야지"하는 생각을 잠에 들면서 수차례도 넘게 했지만 막상 청소선이 제 아래 선에서 끊길 때는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 독서실로 발길을 돌리는 저를 계속해서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똑같이 책을 들고 독서실로 가는 도중에 제 눈길이 책을 든 저의 손으로 향했습니다. 이념적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의 양면성이 공존하는 한국사회 좌파운동의 전체적 양상을 질타(임지현 선생이 지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의 에필로그 부분에 나온 개념입니다.)하는 그 책을 들고 저는 독서실로 도망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짬이 찼다고 청소에서 빠지면서 "이념적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을 질타하는 책을 들고 독서실로 향하는 모습이 얼마나 머저리 같았던지 모릅니다. "이념적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이라는 개념은 바로 한국 좌파운동권이라는 "환상 속의 그대"(예찬씨의 개념)가 아닌 바로 저 자신에게 있었던 게지요.
  전 독서실에 책을 내려놓고 "망할 책"이라 혼잣말을 지껄이고는 다시 걸레를 잡았습니다. "문제제기"가 실천으로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는 제 주장을 당당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제 다시 걸레를 잡아야지요. 우리 모두 걸레를 다시 잡아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11:37 

 

병장 김범수 
  전, 집에 갈 때가 다 되었는데도, 이 때까지 청소 열외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 걸레 잡는 것은 기본이고요. 똑같은 처지에 누구는 안하고, 누구는 하는 꼬라지가 우스워서요. 2009-06-02
11:32:26
  

 

병장 이동열 
  저 역시도 범수님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릴없이 걸레를 잡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직도 "환상 속의 그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양면성이 부끄러움에도 헤어나지 못하는 걸 언제까지 공간의 탓으로 돌릴지... 2009-06-02
12:08:46
  

 

병장 김동혁 
  저 역시 열외해본적 없습니다. 2009-06-02
13:01:58
  

 

상병 권홍목 
  저는 기분따라 집었다 놨다 합니다(땀땀) 2009-06-02
13:19:47
  

 

상병 김예찬 
  이거 엄청 부끄러워지네요. 휴. 2009-06-02
13:23:37
  

 

병장 윤영석 
  저희 부대도 좋게 말하면 관행, 나쁘게 말하면 악습이라는 이 모습들은 거의 사라졌답니다. 
(웃음) 
조금은 아쉬운 면도 없지않아 있지만, 속 시원하게 후임프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후회도 적을것같아요(웃음) 2009-06-02
16:13:09
  

 

상병 이재익 
  용어가 책마을규정과 적합하지 않은 듯 합니다 2009-06-02
16:36:02
  

 

상병 김태완 
  재익님의 지적이 저보다 조금 빨랐군요. 
소망님 이러실 분 아닌데 실수하셨네요. 

그나저나 그저 고개를 들지 못할 따름입니다. 진짜 부끄럽네요. 2009-06-02
17:33:29
  

 

일병 이재용 
  이거뭐 3, 4학년분들 리플속에 물찬3학년이 리플을 달아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명예의 전당에선가 봤던 '모두가 웃는 생활관을 위하여'라는 글이 떠오르네요. 
'걸레잡기'라는 사소하면서도 작지않은 의미를 가진 일을 해내신 소망씨께 우선 축하드려요. 

근데 난 왜 아직도 2학년으로 뜨지.. 2009-06-02
19:45:15
  

 

상병 김지호 
  중학생때 원성스님이 쓰신 시집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시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청소를 하고 있노라면 더러웠던 곳이 깨끗해 지는 것처럼 

내 마음도 깨끗해지고 있노라고. 

저는 여태껏 그런 생각으로 해 오고 있답니다. 2009-06-03
01:57:13
  

 

병장 양동민 
  저는 딱 20일 남았을 시점에서 걸레들고 설쳐대니까 
후임들이 밀면서 걸레 P들어버리던데요. 끙. 

... 평소에도 안하던 사람이 지금 해봐야 얼마나 도움 되냐고..... 2009-06-03
05:36:58
  

 

상병 홍명교 
  지금은 파리에서 교환학생하는 제 대학교 친구 강세희가 궁에 있던 시절에 쓴 글인데 비슷한 고민과 결심이 보여요. 그 녀석 스타일답게 제목은 거창하지만.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1&sn1=&divpage=1&category=3&sn=on&ss=on&sc=off&keyword=강세희&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151 2009-06-03
08:59:14
  

 

상병 이재원 
  다 다르던데요. 흑흑 제가 잡으면 자기들이 안할라고 도망치는곳에 있답니다. 저는..그래서 제가 도망을...아 부끄러워 2009-06-03
12:07:02
  

 

병장 김무준 
  여기서 보낼 시간 나들이 빼질 않고 9일 남았음에도, 취사지원 다니고 담당구역 청소하고 걸레잡고 할 거 다합니다. 분리수거장에 보스몹 상태로 출현해 보셨나요? 2009-06-03
12:41:45
  

 

병장 김정환 
  김무준님이 진리인듯...전 열외하는데 2009-06-03
15:47:18
  

 

병장 김범수 
  보스몹 상태에서 마시던 녹차 뿜을 뻔, 뭐 제가 사는 동네는 보스몹이 아니라 밥이라서 문제지만요. 2009-06-03
15:52:38
  

 

병장 최규호 
  아직 화장실 청소하는 나는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