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어느 훈련병 이야기  
일병 김예찬   2008-08-08 14:43:22, 조회: 471, 추천:0 


한번 만나본 적도 없어 얼굴도 모르고, 또 그가 어떠한 삶의 궤적을 그리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그의 나이나 가족관계, 사는 곳과 같은 개인적인 사항도 모르는, 당연히 그도 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남남'인 관계인 어떤 훈련병에 대한 글입니다. 제가 아는 것은 단지 그의 군번과 이름 뿐... 하지만 가끔씩 완전한 '타인'인 그를 생각하며 조용히 마음 속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서XX 훈련병... 지금쯤 진주의 무더위 속에 훈련을 받으면서 고생하고 있겠지요. 저번 겨울, 쏟아질 것 처럼 무수히 반짝이는 진주 밤하늘의 별들이 훈련병이었던 저를 위로해주었던 것처럼, 그 역시도 불침번을 서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피곤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주 전 쯤이던가, 여느때처럼 사무실에서 인트라넷을 뒤적거리면서 다섯시의 퇴근만을 기다리고 있는 더운 오후였습니다. 최근 한 달 차이로 연달아 친구들이 공군에 입소했기 때문에 요새 매일 같이 인사정보체계를 통해 친구들의 특기 배정과 배속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인사정보체계로 공군교육사의 문서를 보고 있었죠. 마침 새로 문서가 떴길래 바로 클릭해보았습니다.

이병 07-700XXX 서XX 08-7차 기본군사훈련과정 재입과

흠.. 누가 유급해서 재입과했나보구나.. 뭐 나랑 상관 없지, 라는 생각으로 창을 닫으려는 순간, 그의 군번이 눈에 띄었습니다. 07군번? 아니, 내가 08군번인데 07군번이 기훈단 재입과를? 제가 08군번으로 08-1차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07군번이 이제와서 7차 훈련을 받는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의 군번으로 인사명령 조회를 해보았죠.

그의 군번이 등장하는 문서들은 12월 부터 등장했습니다. 11월 말에 신병으로 입대.. 12월 유급 후 1월 국군 병원 입원.. 4월에 퇴원 후 5월에 기본군사훈련과정 재입과.. 그리고 6월에 또 다시 유급하고 7월에 세번째로 기본군사훈련과정 재입과.. 작년 11월 부터 9개월에 걸친 그의 군생활이 인사명령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훈련소와 군 병원을 오가는 그의 9개월 간의 군 생활.. 그가 어떤 병으로 인하여 유급하고 입원해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보다 두 기수나 높은 그가 아직도 이병 계급으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더군요. 그것도 이렇게 더운 여름날 다시 훈련소 생활을 하게 되다니..

그 날 이후로 666기로 진주에서 훈련 받고 있는 제 친구가 생각날 때 마다 그의 이름도 함께 머릿 속을 스치게 되었습니다. 서XX 훈련병... 이번에는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수료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남은 군 생활 역시 무난하게 마치고 몸 건강히 제대할 수 있기를.. 잠깐이나마 그를 위해 기도해봅니다.

덥다고 칭얼대며 업무 의욕을 상실하고 있던 차에, 이렇게 더운 날에 다시 훈련 받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마음을 다잡게 되는군요. 다시 밀린 업무와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일병 김예찬입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36:56 

 

병장 어영조 
  지금 사무실 밖에서 그들이 훈련받는 소리가 들리네요. 
전술학교관이 확성기에 대고 고함을 치고 있답니다. 2008-08-08
14:57:24
  

 

일병 이지환 
  병 660기때 들었는데.. 그사람이랑 제가 들은 사람이 동일인물 인지는 잘 모르겟습니다만.. 

그분 유급으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기도 하더군요.. 

3번 유급하면 그냥 최하점으로 통과시켜주는 정책이 있는가 봄니다. 

갑자기 글을 읽고 생각이 나서 저도 리플을 달아봄니다. 2008-08-08
15:22:05
  

 

병장 이동석 
  음, 제 때도 정보 통신을 배우는 학교에서 일병을 달고 있던 사람이 있었죠. 
(제가 12월 군번이었는데 그 전 겨울에 살얼음에 미끄러졌었다니 거의 상병될때까지 특기교육을 받은 셈이죠. 땀.) 

어쨌거나, 차라리 일찌감치 어디론가 배치받고 자기 일이라도 하면 뭔가 나이지는거라도 있을테지만, 그런 식으로 어정땡이하게 시간만 보낼수 밖에 없다면 초조하고 비참하고 뭐 그런 감정들이 몽울져서 병이라도 걸리진 않을지 걱정입니다. 

종교는 없지만 저도 기도해야겠습니다. 2008-08-08
15:54:17
 

 

병장 김원택 
  전 요즘들어 남은 기간을 신병 훈련만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것만 하면 됐었다는 생각 때문에. 

5주짜리로 2번 정도 하면 끝날 때가 가깝겠다는 생각.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되도 괴롭긴 하겠죠. 집에서 저녁밥을 먹는 그날이 오길 엉엉. 2008-08-08
15:58:58
  

 

병장 이동석 
  크크, 
사실 저도 그게 속편할꺼라는 생각은 합니다. 
모두 몸짱이 될지도. (하하) 
조금만 지나면 익숙해져서 딱히 힘들것 같지도 않아요. 

(훈련소를 그리워할정도의 생활) 2008-08-08
16:06:29
 

 

병장 김원택 
  동석 / 그렇죠. 처음 들어와서의 어색함과 긴장감 때문에 그렇지. 사실 뭐 그 후의 생활들에 비하면 그렇게 힘들지도 않을 것 같은 느낌. 

정말 무엇보다도 알아서 하는게 아니라 시키는 것만 하면 되고, miner들하고 부딪힐 일도 없고, 동기들이 대부분이니까. 

무엇보다도 주말에 해야 할 일이 그다지 없으니까. 훌쩍. 저에게 이번 주말은. 없습니다. 엉엉.(한 두번도 아니면서 뭘 새삼스래 우울해 하는 지 원. 저녁밥 먹는 날도 새벽 2시까지 일하다가 간 사람도 있는데.) 2008-08-08
17:10:54
  

 

병장 이태형 
  정말 마이너하고 마주칠 일이 없다는 게 최고겠죠(웃음) 

요즘같이 (누구의 말마따나)삭막한 시대에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예찬님을 예찬합니다. 
혹 나중에 ST가 될 의향은 없으신지? 
(ST는 서프라이즈에 나왔었죠) 2008-08-10
11:3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