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아들  

병장 김형태  [Homepage]  2009-04-13 20:20:46, 조회: 109, 추천:0 

아들


오늘, 한 남자가 끌려왔다. 겉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폭행’이라는 죄로 끌려 올 것이라는 예상에 맞추어 다소 무섭게 생겼었다. 키는 조금 작은 편이었으며, 얼굴은 거무스름했고 이곳저곳에 여드름을 연상케 하는 곰보자국이 있었다. 목소리도 조금 낮은 편이었고, 항시 인상을 쓰고 있던 탓에 그의 첫인상은 더 좋지 않게 느껴졌다. 그가 들어오고 그에게 맞았다는 두 사람도 곧 들어왔으며 그들의 표정에는 ‘저 사람이 날 때렸으니 엄중히 처벌해 달라.’ 라고 명백히 나타나고 있었다.
형사들은 무서운 얼굴을 한 그에게 다가가, ‘정말 때렸습니까? 왜 때렸습니까? 그래도 때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까?’ 라는 말을 하며 그의 잘못을 추궁했다. 하지만 그는 기죽지 않았다. ‘저들이 무조건 내 말을 듣는 다는 것이 다소 불쾌할 수는 있으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고, 저들이 해야 하는 일에 충실하지 않음을 당연히 생각하여, 때린 것이다.’ 라고 말했다. ‘때린 것에 대해서는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은 했지만 그의 주장은 결코 때렸다는 것보다 그들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듯 했다. 그는 이외에 일절 말을 하지 않았고 계속 그를 주시하던 나는 그에게 자술서를 내밀며 ‘이곳에 자세하게 적어보세요.’ 라고 얘기하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그의 눈빛을 피했다.
자술서의 간략한 내용은 이랬다. ‘내가 한 잘못도 잘못이지만, 그들은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려 했으며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오히려 덤벼들었다.’ 자술서를 본 형사들은 그들만의 회의를 갖는다며 들어갔다. 그와 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바쁘게 돌아가는 시계의 초침만이 그와 내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으며 가끔씩 울리는 전화를 받는 내 목소리에 내가 신경을 쓰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자술서를 계속 읽어보는 나를 그는 아니꼽다는 듯 바라보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그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많이 힘드시죠?” 그는 대답이 없었고 나는 멋쩍은 듯 고개를 숙이고 마치 내가 죄를 지어 이곳에 끌려온 사람처럼 그 앞에서 내 행동에 그가 불편하지 않도록 행동했다. 나는 그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때리는 일은 옳지 않다며 얘기하려 시도했으나 그의 굳은 얼굴에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되자, 형사들은 나에게 그와 밥을 먹고 오라고 했다. 그를 데리고 근처 식당에 가기 전, 담배 한대 필 생각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에 불을 붙이고 그에게도 담배를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리며 단번에 사양했다. 조금이라도 얘기를 해볼까 하는 마음에 다시 담배를 권유해봤지만 그의 단호한 모습에 한 번 더 권유하지 못했다. 그는 그가 처음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담배냄새가 났었음으로 가정해본 바로 담배를 피운다. 하지만 내 담배는 받지 않았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그의 담배도 꺼내 피지 않았다. 왜 그가 나의 관심에 무관심으로 대응하는지 궁금해 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는 걷는 모습도 남들과 달랐다. 조그맣지만 떡 벌어진 어깨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제압했으며 조금 치켜 뜬 눈을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그와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내가 조금이라도 말을 꺼내보려하면 그는 투명한 유리잔에 물을 한 번에 들이킴으로 내 말을 억눌렀다.
사무실로 돌아와보니 형사들은 난리가 났다. 가해자인 그의 아버지가 형사들과 친한 사람이었으며 누구나 신세를 진 적이 있고, 반장도 본인 후배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얼핏 본 바로 그 선배라는 사람과 조금 닮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의 아들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반장이 그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번 와보지 그러냐. 네 아들이면 애초에 알았어야 했는데 이제와 알아서 우리가 해결해줄 만한 방법이 없다. 와서 얼굴한번 보고 격려라도 해줘라.” 잠시 귀에 들리는 가해자의 아버지는 가도 되겠냐며 다소 불편한 내색을 내비쳤고, 끌려온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했지만 반장의 말에 지는 척 사무실로 찾아왔다.

두 개로 나누어진 사무실의 한 곳에는 그의 아들이 형사들에게 조사를 받고 있었으며 다른 한 곳에는 그의 아버지와 반장이 얘길 하고 있었다. 

“우리아들이 저쪽 사무실에 있는 겁니까?” “지금 조서 받고 있으니까 조금 기다리면 올 거야, 아니면 지금 가서 얼굴이라도 보던가. 격려라도 해주고와.” “아닙니다. 제가 잘한 사람에게는 잘했다 칭찬하지만, 못한 사람은 호되게 혼내는 성격이라, 얼굴을 보면 화를 낼 것 같습니다.” “아들 보러 온 거 아니야? 가서 보고 얘기 좀 하다가 와.” “…….그럼 제가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아들이 있는 사무실을 찾아 걸어갔다. 문을 열자 그의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잠시 놀란 기색을 보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의 앞으로 걸어갔다. 아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뚜벅뚜벅. 그의 발에서 나는 구두소리가 사무실을 휘감았다. 역시 아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이 상기된 아버지는 아들의 앞으로가 섰다. 고목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아들의 앞에 아버지가 섰다. 아들은 고개를 숙였고, 이내 아버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많이 힘드냐.”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0:10:39 

 

병장 김민규 
  허...... 2009-04-14
00:26:34
  

 

상병 김치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이 떠오르는군요..... 2009-04-14
07:34:17
  

 

상병 한영빈 
  '모이는'을 '보이는'으로 고쳐야 할 것 같네요.. 2009-04-14
09:39:43
  

 

상병 김태완 
  부모 자식간의 실타래가 엉켜 있지 않군요. 
부모에게까지 고개를 쳐들고 보는 요즘 자식들의 모습과 
실수하거나 방황한 아들에게 다짜고짜 손찌검하는 아버지의 모습보다 훨씬 정상적이네요. 
이 부자에게서 아직 망나니의 춤사위가 보이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경찰서 풍경이 저렇게만 되어도 마구잡이 범죄를 짓는 청소년의 수가 절반은 줄어들텐데. 
옛시절의 묵직함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