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생일  
병장 고동기   2008-10-31 16:38:37, 조회: 136, 추천:0 

어제는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가슴에 노오란 스마일 마크를 달고 다녔습니다. 축하인사도 많이 받았습니다. 살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축하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이곳에 와서 많이 담대해졌는지, 그런 말을 듣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운이 좋아 아침으로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몇 달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온 후임이 케익을 사왔습니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15명의 사람들이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줬습니다. 그들의 눈빛은 테이블 위의 치즈케익으로 쏠려 있었지만 참 고마웠습니다. 선임의 생일이라 어쩔 수 없이 박수치고 노래 부르는 아이도 있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런 누군가의 감정들도 고려하며 축하곡을 들었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저녁에는 회식도 했습니다. 삼겹살에 소주 세 잔을 먹으니 기분도 좋았습니다. 회식이 끝나고 생활관에 돌아와 보니 편지가 와있었습니다. 대학동기 세명과 동아리친구의 편지였습니다. 고마웠습니다. 편지 속 친구들은 내가 이렇게 변한걸 알지 못해 나름대로 추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렵사리 옛기억들을 꺼내 한줄 한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편지를 읽으며 그들과 내가 진정한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고민으로 더욱 돈독해지려면 좋으련만, 다시 만나게 되면 철부지 대학생처럼 이유 없이 들뜬 기분으로 그들을 대하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오늘이 되서 생각이 났는데 집에 전화를 안했습니다. 저번 주말에 뵈었으니까, 그때 미역국도 먹고 왔으니까, 어제 회식이어서 바빴다고, 그러면 엄마는. 그래 생일 축하한다 아들 하실 겁니다. 저는 친구의 생일이라며 편지를 모아보내준 그녀보다도 생각이 짧고 마음이 얕습니다. 

지나온 제 생일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엄마 아빠 누나 나. 엄마와 누나가 폭죽을 듭니다. 누나가 형광등 불을 끄고 제가 촛불의 불을 끕니다. 커팅식 같은 걸 합니다. 케익은 아마 제가 좋아하는 초코케익일 겁니다. 케익을 몇 조각 먹고 냉장고에 넣습니다. 이틀정도는 간식 걱정이 없습니다. 다음날이나 다다음날에 혼자 냉장고에 케익을 꺼내 먹습니다. 냉장고에서 꺼낸 생일 케익은 흰 우유와 먹으면 맛있습니다. 생일파티의 대부분이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저는 제 생일을 위해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때는 조용히 내 생일이 묻혀 지나가길 바랐습니다. 친구들이 너 생일이였냐며 미안한 듯 말하면, 에이 괜찮아 괜찮아 뭘 하고 그랬습니다. 이런 저의 성격 때문에 그가 떠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제의 제 생일을 돌이켜보니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즐거운 듯합니다. 스물세살의 고병장이 15명 앞에서 짐짓 의연한 표정을 지어보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기분이 들어 조금 싫기도 합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 역할을 다해냅니다. 테이블 위에 치즈케익은 3초만에 동이 났고 제 생일도 그렇게 지나갑니다. 어제 새벽엔 비가 내렸습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합니다. 발이 시립니다. 집에다 전화나 해야겠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22:24 

 

병장 고은호 
  꾸에에에엑... 
아무도 모르게 넘어가고 별다른 축하도 못받고 미역국도 못먹은데다가 
그저 혼자 쓸쓸히 생일을 보냈던 또 다른 고병장으로써 도저히 축하는 못드리겠습니다. 
(웃음?) 

우에에에~ 부러워라~ 
나도 케이크 먹고 싶었는데에에에에에~ 

에라! 그래도 난 시크한 도시남자니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겠지? 잇힝~ 2008-10-31
16:57:53
  

 

병장 문두환 
  사랑받고 있네요.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요. 고병장님. 푸흐흐. 2008-10-31
23:58:45
  

 

병장 이동석 
  다시- 생일 축하합니다. 내년 이 맘때엔, 생일 축하한다고 문자 한통할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왠지 작업 멘트 같지만, 허허. 2008-11-01
00:42:58
 

 

상병 고동기 
  저도 그랬던 기억이 드네요... 그래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었는데... 그건그렇고 생일축하드립니다 늦었지만~ 2008-11-01
08:24:21
  

 

병장 정병훈 
  생일이었군요. 
알수 있는 길이 없어 축하가 늦네요. 

그나저나 동기님은. 이름이 참 이쁩니다. 2008-11-01
09:22:19
  

 

상병 이바름 
  생일축하드립니다. 
처음에 제 후임프와 성과 이름이 똑같아 깜짝 놀란 기억이 있네요. 으흐흐... 2008-11-01
11: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