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새해?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9-01-02 11:09:04, 조회: 112, 추천:0 

잠을 잤다. 평소처럼 나팔소리를 들으며 일어났다. 평소처럼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2008년은 사라지고 2009년이 되어있었다.
카운트다운도, 종소리도, 제 시간에 처리되지 않아서 새벽 3시까지 윙윙거리는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도, 알딸딸한 목소리의 전화통화도 없었다. 심지어 아침메뉴에는 떡국조차 없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기분도, 새해에는 무슨 일이 펼쳐질까 하는 기대도, 올해는 꼭 해야지 하는 계획도 없었다.
아침에 상황판에 1/1이라는 숫자를 적어넣으면서도, 덜렁 한 장 남아서 문을 열고 닫을때마다 바람에 펄럭이던 달력이 다시 두꺼워져 끄덕없이 버티는 것을 보면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사방에 날리면서도, <신년특집>아침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정규방송 채널에서 하루종일 연말시상식 재방송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대학동기들의 쵸재깅클럽에 올려진 새해에 가장 먼저 나들이나오는 궁인 리스트에 있는 내 이름을 확인하면서도, 해가 바뀌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의 새해는 그래도 늘 재미있는 이벤트와 함께 시작했었다. 미묘한 급류에 휘말려 연락이 끊겼던 첫사랑의 문자가 날아오기도 했었고(그리고는 두시간을 통화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술에 취해버린 여자친구에게서 새벽 4시에 전화가 온 적도 있다.(교회에 밤샘예배를 하러 간다고 했었다.) 보신각에서 LIVE로 실황중계를 해주던 닭살커플의 전화도 있었고(집에는 어떻게 갈꺼냐는 내 질문에 안간다고 대답해주는 거짓을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새해에 처음 얼굴을 마주치는 친구에게 전해줄 편지를 쓰는 이벤트도 있었고 07년에서 08년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에는 친한 친구들이 모인 자리의 가운데서 소맥만 마시면 필름이 나가는 나와 소맥으로 술을 배운 여아가 소맥으로 배틀을 붙고 있었다. 그리고 엉뚱하게 정신줄을 놓아버린 08년 1월 입궁예정자 덕분에 배틀은 흐지부지 되었고 계산은 정줄을 놓은 아이의 지갑으로 슥삭 끝냈다.(다음날 네가 계산한다고 행패를 부렸다며 우리는 입을 모았다.) 어쨌건 난 매년 내 사람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아무리 많이 해도 질리지 않는 인사를 쏘았다. 그런데, 이번엔 그걸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새로운 해가 시작된 것 같지 않다. 이렇게 머릿속의 달력을 09년으로 바꾸기에는 뭔가 약간, 아쉽다. 안온다 안온다 하던 09년이 왔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냐며 09년에 저녁밥이 예정되어 계신 분들이 말을 하시지만. 아무래도 난 아직 새해를 맞이할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 32일 이라고, 33일 이라고 나에게 1월 1일은 없다고, 오늘은 12월 33일이다. 다음주에 잠깐이나마 나가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전파를 통하지 않은 생목소리를 쏟아붓고 나야 미련없이 새해를 맞을 것 같다. 난 아직 08년과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 나누었고 09년에게 어서 오라며 환영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가버리고 와버리다니. 이런 버릇없는 년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55:24 

 

상병 차종기 
  이런 버릇없는 년들. 큭큭큭 , 
그래도 새해복 많이 받으셔야죠! 2009-01-02
11:12:47
  

 

병장 김동균 
  독하시네요- 하핫 

요즘은 독한컨셉이 대세라죠? 낄낄- 2009-01-02
11:13:53
  

 

일병 조영수 
  하하. 
묘하게 공감되네요.(웃음) 
새해 福 많으 받으세요! 2009-01-02
11:18:18
  

 

병장 김민규 
  우리 이렇게 독한 놈들이야, 다음주에 또 온다- 2009-01-02
11:20:04
  

 

상병 박은규 
  그 나팔소리 내가 튼다. 
난 우리 부대찌게 5천 명 아저씨들 
재우고 깨운다. 2009-01-02
11:29:43
  

 

병장 김동균 
  혹시 은규님은 영화 "집결호" 속의 그, 그 나팔수!? 

졸다가 혹시 나팔트는걸 잊으신적은 없는지 (웃음) 
낄낄- 2009-01-02
11:33:44
  

 

병장 김민규 
  아, 은규씨 댓글에 혼자 낄낄거렸더니 옆에 앉은 후임프가 슬쩍 쳐다보네요. 민망해 2009-01-02
11:40:20
  

 

상병 김예찬 
  공감 글입니다. 저도 여기서 처음 맞는 새 해인데, 이거 해가 바뀐것 같지가 않군요. 2009-01-02
12:10:05
  

 

병장 이우중 
  아, 오늘은 12월 33일이군요.. 허허. 
이상하게 제 기억에는 새해가 거의 없어요. 

넋 놓고 봄까지 겨울잠을 자다가 날씨가 풀리면 그제서야 해가 바뀐 것을, 새로운 해도 얼마간 지나갔음을, 그런데 정작 나는 변화가 없음을 깨닫고는 춘래불사춘이니 하는 잡소리만 미니홈피에다가 끄적여놓곤 했드랬죠 2009-01-02
12:25:28
  

 

상병 박은규 
  허허. 집결호. 그거 재미있나요? 
저희 방 사람들은 12시까지 전부 안 자고 있다가 11:59:59초에 전부 점프를 뛰어 우주로 
갔다가 1년 뒤에 지구로 떨어졌다는.(웃음) 2009-01-02
13:13:17
  

 

병장 이충권 
  집결호 망한 영화지요 허허. 

저도 소맥 슈가나가서 먹고는 홀딱 반해버렸는데 이런.. 

어제는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를 반복 했지요 2009-01-02
13:24:30
  

 

병장 이동석 
  낄낄낄, 2009-01-02
14:3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