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사람에 대한 환상  
상병 김무준   2008-11-23 08:51:09, 조회: 225, 추천:0 

아침부터 다른 비정규직 직원과의 짜증나는 대화가 있었다. 언성을 높여가며 이십분 가량 대화하고 나니,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두 사람 모두가 사과할 필요도, 기분 나쁠 필요도 없었던 일이었지만 바로 아래 직원이 사과를 했고 일요일 아침을 상큼하게 잡친 후 끊으려했던 담배를 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친한 사이에 서슴없이 걸쭉한 욕을 늘어놓는 부산사람이다. 약간 지나칠 정도로 소심하고, 과할 정도로 미쳤다. 기분이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오르락내리락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터트려야 직성이 풀리는. 쉽게 말하면 또라이랄까. 관심 없는 일에는 아무리 중요할지라도 철저히 무관심하다. 오늘 일도 그런 내 성격 탓에 생긴 일이다.

책마을 연명부에는 개인 홈페이지의 아이디가 날로 늘어가고, 두 번째 시즌에 대한 일은 척척 진행되어가고 있다.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문제로 삐걱거리는 것 같지만 내가 볼 때는 잘 돌아간다. 처음부터 내 이야기 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었고 지금도 그렇기에 그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이곳 공사가 그렇듯 다른 곳의 직원들도 하나 둘 집으로 갈 테고, 좀 더 지적인 유희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과 사람만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두 번째 시즌에서 계속 볼을 차리라 생각한다. 뭐, 조기축구회가 그렇듯 어디까지나 개인의 현실이 바탕이 되는 한에서 볼을 차겠지만.

처음 이곳에 입사했을 때 만났던 멋진 직원들이 저녁식사 전까지 남았던 시간만큼 나도 딱 그만큼이 남았다. 사람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닮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키가 백구십 쯤 되고 언제나 시원시원한 모습으로 웃곤 하던 직원은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쿨가이라고나 할까. 그는 올해 칠월 쯤 맛난 저녁식사를 했고 다가올 내년 초여름에는 나도 그럴 것이다. 한참 멋모르고 장판 위를 기어 다니던 시절에 본 그는 여유가 넘치고, 매사에 자신감이 가득 찬 락앤롤을 사랑하는 경상도 싸내였다. 한 번씩 거울을 볼 때면 내가 그 사람을 많이 닮아간다는 착각을 한다. 나는 그 사람보다 키가 십 센티 정도 작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지지도 않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닮아간다고나 할까. 쿨한 남자가 되고 싶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한가보다.

내가 품고 있는 이것이 그에 대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누구나 사람에 대해서 환상을 품고 살아간다. 동석씨는 적당히 듬직한 덩치에 술을 좋아하는 약간은 까칠한 형일 것 같다. 병훈씨는 살짝 슬림한 몸매에 안경을 쓰고 벤치에 앉아 씨-발을 날리며 담배를 피고 있을 것 같다. 종대씨는 딱 Singing in the Rain에 나오는 JD와 닮았을까? 황민우씨는 독일 문학책을 옆구리에 끼고 바람머리를 휘날리며 캠퍼스를 누비고 있을까?

나는 어디까지나 환상은 환상으로 존재할 때 딱 그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이라 믿는다. 초등학교 때 담임이셨던 미모의 선생님도 화장실은 간다는 사실에 아주 약간의 충격을 먹었던 적이 있다. 김혜수가 옷을 벗는다는 소리에 눈이 시뻘게져 밤늦게 타짜를 쳐다보고, 손예진의 (자체검열)가 나오지 않는다는 소문에 영화를 보지 않는 것도 다 환상 때문일 테다.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 딱 맞아떨어질까 하는 호기심. 정작 그 호기심이 해결된 후에는 으레 실망이 밀린 업무처럼 닥쳐오는 게 사실이건만. 어쨌거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확인한다.

내 아래 직원들도 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을까. 모르겠다. 환상이란 긍정적 감정이 있는 대상에게나 생겨나는 법이니까. 나는 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멋지게 보이진 않을 거다.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건드리면 상당히 까칠하고 피곤한 경계대상 삼호 쯤 되겠지.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이건 사진이나, 그림이나, 음악도 마찬가지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적잖게 미친 경우가 많아 그만큼 성격을 알아보기도 편하다. 공통적인 건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의 미친 양반들이라는 거다. 나는 예술을 하지는 않지만, 흉내는 내기에 적당히 정신이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서 어떤 환상을 가졌을까. 이것도 모르겠다.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이해하려는 노력만이 존재할 뿐이니까.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좋아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좋아한다. 그래서 수시로 뒤통수를 효도르 파운딩 펀치만큼 후려 처 맞는다. 소심한 성격 탓에 두고두고 그 일을 곱씹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을 만난다. 아니다 싶은 인간은 한 겨울 바람보다 차갑게 뿌리쳐 버리지만.

내 홈페이지 주소도 추가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두 번째 시즌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지만. 참는다. 내년 여름은 멀기만 하고, 아직 배터리 네 칸도 채우지 못했다. 제일 중요한 건 내가 가진 기분 좋은 환상을 깨고 싶지도, 다른 이들의 환상을 박살내 버리고 싶지도 않아서다.

딱 이만큼이 좋은 것 같다. 하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4:09:04 

 

상병 방수현 
  어떤 분일지 상당히 궁금하네요. 2008-11-23
09:07:26
  

 

병장 정병훈 
  '아직'은 참는다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무준님의 글을 보면서 저도 무준님을 대충 넘겨 잡아 봅니다. 몇몇 무준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현실 가능한 환상속의 그대의 모습을 현실 속으로 보여주는것 또한 좋을 듯 싶은데요. 

먼저 나가서 기다리겠습니다. 마음 가는데로 다가오세요. 2008-11-23
09:28:06
  

 

병장 고은호 
  정말 진한 사이가 되려면 이런 환상을 극복하는 시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시기가 없다면 결국 환상에 '속아' 버리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그게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요. 
(이건 남녀를 불문하고 꼭 필요하다고 봐요.) 

하지만- 확실히 '환상'은 '환상' 그 자체로 남을 때 아름답죠. 
음.. 역시 현실은 시궁창??? 

에고고고.... 2008-11-23
09:44:06
  

 

일병 이신호 
  환상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거 

같습니다. 물론 현실도 환상과 같다면 좋겠지만 말이죠(웃음) 2008-11-23
14:43:23
  

 

병장 이동석 
  크크크 당분간 잘 못들어와서 이 아이디로는 댓글 안남길랬더니, 
[동석씨는 적당히 듬직한 덩치에 술을 좋아하는 약간은 까칠한 형일 것 같다.] 
이 구절을 보고 뜨끔-한걸보니 

병훈님이나 종대님이나 황민우님이나 왠지 그럴것 같군요. 
무준님 돗자리 깝시다. 이것 또한 환상? 
초등학교때 여선생님이 화장실을 갈수 밖에 없는 존재였던것처럼, 우리도 화장실을 갈수밖에 없는 존재니까요. 

물론 환상이나 기대도 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건 어렵겠지만, 
피곤하니까 여기까지. 2008-11-23
20:10:18
 

 

병장 고동기 
  무준님은 담배연기처럼. 2008-11-24
13:17:17
  

 

상병 김무준 
  신비주의 컨셉일 뿐. 캬캬캬캬캬캬! 2008-11-24
14:27:45
  

 

상병 한규배 
  무준씨도 부산사나이이군요. 저도 부산산답니다 

저녁식사 날짜도 비슷할래나..(웃음) 2008-11-24
16: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