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병장즈음에
상병 김형태 [Homepage] 2009-04-03 11:36:08, 조회: 244, 추천:0
병장즈음에
점점 더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또 하루 잊혀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어느덧 병장. 기다리던 날은 아니지만 기다리던 날에 가까워진 것임에는 틀림없다. 앞으로 7개월 24일 간 이곳에 있으면 어느덧 본인보다 주변에서 더 난리라는 집으로 복귀의 날이 찾아온다. 이곳은 시간에 공평하다. 어느 정도 지나면 저절로 계급이 올라가 그 위치에 맞는 일을 하게 되어있으며 그에 대한 대가도 따라온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시간은 불공평하다. 분명 지내온 시간보다 앞으로 지낼 날이 짧음에도 더욱 시간은 더디게 간다.
병장이 되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노란 금빛의 내의를 입고 이곳저곳을 비집고 다닐 수 있다는 것뿐, 또 이젠 집단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는 것뿐이다. 처음 이곳에 처음 왔을 때에는 노란 내피를 위아래로 입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아무 곳에서나 잠을 청하며 지나가는 길을 하나, 두 개가 비켜주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워 보였다. 또 그들은 우리만의 대장이었으며 과감히 혼내고 질타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부러웠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여유. 그들은 여유를 갖고 있었다. 허겁지겁 뛰어다니고 땀을 뻘뻘 흘려서 완성한 내 것보다. 그들이 조금만 손가락을 움직여 만들어 낸 것들의 성과가 뛰어났다. 예기치 못한 일들에도 그들은 능숙하게 대처했으며 오히려 호들갑 떨지 말라며 안심시켰다.
난 ‘친절한 병장씨’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이병, 일병시절 가졌던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을 병장이 되어서도 잊지 않고 그 마음들을 헤아릴 것이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아직 그러길 원한다. 지금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변해가지 않음이다. 시간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이곳에 평생 있을 것처럼 행동하며 ‘현재의 신분에 최선을 다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물론 그 말도 타당한 이치이지만 설탕과 출타에 환호하는 누구나 같은 모습을 보면, 어차피 나가길 원할 것이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 그들의 사고방식에 내가 길들여져 있고, 후배들에게 같은 행동을 답습하고 있노라면 한없이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멋진 선배’라는 것이 애당초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가끔씩 너무 잘 해준 것에 대한 후회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젠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아이러니한 문제들이 많다. 기존에 지켜져 왔던 무언의 규칙들을 무너트릴 수 있는 시점에 왔음에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고 ‘네가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니?’라는 압박에 못 이겨 포기하기도 한다. 이제와 빗자루로 구석진 방바닥을 쓸어내고, 매일매일 닦아도 수북이 쌓이는 티비 뒤쪽을 손걸레로 닦아낸다면 이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누구나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잘못된 현실을 조금이라도 터치하려고하면 당장 후배들도 불편해 할뿐더러, 선배들도 가만있지 않는다. 그렇게 나도 잊혀 간다.
나는 이곳을 떠난 후에도 이곳을 잊고 싶지 않고, 매일매일 함께 했던 소중한 선배, 후배들과 지독한 연을 이어가고 싶다. 그렇기에 미운 정情 보다 고운 정情으로 남고 싶고,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이제 곧 병장이 될 후배들이 함께 손걸레를 들며 먼지 나는 구석구석을 정情으로써 닦아냈으면 한다. 그리고 이는 오늘부터 내가 실천해야 할 정正이 아닐까.
지난밤 늦은 시간에야 야근을 마치고 올라가 잠을 청하려 스탠드만 조그맣게 켰을 때, 내 옆자리에 잠들어 있는 막내의 모습을 보았다. 정말 힘들고 괴로울 그에게 평소 따듯한 말 한마디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이 아쉽고 또 원망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는 어린아이처럼 배시시 웃으며 잠들어 있었다.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 혹여나 깰까 걱정하며 베개를 다잡아준 후 내 자리에 누우니, 집에 있을 남동생 생각이나 옆자리의 행복한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마인드를 다시 찾으려 한다. 다시 잡지 않으면 더 돌이키기 힘든, 점점 더 멀어져가고 또 하루 씩 잊혀 가는 그때의 나를 찾길 원한다.
? 김광석 - 서른즈음에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0:10:31
상병 김태완
오르골 버전으로 연주되는 '인생의 회전목마'(하울의 움직이는 성ost)가 생각나는군요.
회상, 추억, 다짐으로 파생되는 인생.
매일 새로운 일상을 치르면서도 인생의 선율은 뒤돌아보면 평화로움이 유지된 듯 유유로이 흘러가 있죠. 그리고 유유한 선율에 취해 앞으로의 음도 부드럽게 흐르도록 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형태님과 같이 아름다운 형태로 떠오르기 쉬운 회상과 추억을 접하고, 그것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미래도 아름답게 만드리라는 다짐을 하기 때문 아닐까요.
저도 오르골 소리 안에서 살아가고 싶군요. 2009-04-03
13:36:56
병장 김용준
좋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가요. 흐흐흐. 2009-04-03
14:54:42
상병 전승배
정이라는것은 정말 좋은 것이죠
아직까지도 정을 잃지 않아 연락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이야 말로 인생에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