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눈물이 타는 향기를,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  
상병 김무준   2008-12-28 12:57:42, 조회: 124, 추천:0 

어디선가 당신의 향기가 흘렀다. 당신을 품에 안을 때 흐르던 그 향기가. 어딘가에서. 풀내음과도 비슷하던 그 향기는 무엇이었을까. 나지막하게 내리 깔리는 듯 달짝지근하고, 상큼하지만 너무 자극적이지는 않은. 십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아련한 향이 바람을 타고 흘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마 만에 맡는 당신의 향이던가. 터질듯 한 가슴을 내리누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머리가 핑 도는 어지러움 속에서도 당신을 찾았다.

그러다 곧 향기는 사라졌다. 차갑게 얼어버린 시린 눈의 내음과, 딱딱하게 굳어버린 나무의 살갗 냄새가. 깨질듯 치밀어 오르는 아스팔트의 쓰린 현실의 냄새가 가득 찼다. 조금이라도 더 당신을 느끼기 위하여 가슴을 움켜쥐고 밖을 내달렸다. 차오른 것은 현실의 향일 뿐. 그렇게 다시 당신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눈물이 울컥하고 솟았다.

마음의 방으로 찾아가, 조그마한 창을 열면 손을 뻗어 나를 안아주던 당신이. 당신의 체온이 이제는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당신을 느끼려 다시금 그곳을 찾지만, 당신은 뜨겁게 안아주지 않는다. 슬픈 눈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당신. 나는 알았다. 마음의 방문을 열고 슬픈 당신을 저 멀리 보내주어야 함을. 나는 마음에 감옥을 둔 것이 아니니까. 누구든 오갈 수 있는 사랑방을 마련해뒀으니까.

춥다. 차가운 기운이 온 몸을 타고 올라와 미친 듯 휘감는다. 내 몸은 싸늘하게 굳어만 가는데, 뜨겁게 나를 안아줄 당신은 없다. 춥다. 얼어버린 입술로 당신을 찾는 들 깨어진 입술 사이로 이름이 새어나올 수 있을까. 아아. 아픔. 당신도 이렇게 아팠을까. 당신도 이렇게 아플까. 터져버린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흐르고, 피에 섞인 눈물이 줄줄줄 텅 빈 가슴을 채우지만.

비고 텅 비고 다시 비어버린 가슴에는 무엇도 차오르지 않는다. 당신이 떠나며 열고 간 마음의 문으로, 모든 것들이 흘러내린다. 미치도록 추운 이 겨울에 날카로운 겨울바람이 마음에 휘몰아치고 나면, 꽁꽁 얼어붙어 아무것도 흐르지 말아야 할진데. 왜 뜨겁게 타올랐던 가슴의 재들이 피 섞인 눈물을 타고 저 어딘가로 흘러버릴까.

당신은 화마가 들이닥친 내 마음의 방에서 얼마나 아팠을까. 타오르는 것만이 사랑을 떼어주는 법이 아님을 왜 몰랐을까.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그저 당신의 손을 잡고서, 슬픔에 찬 당신 옆에서,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줄 수 있었음을. 왜 지금에서야 깨닫는가. 왜 이별에서야 깨닫는가.

까맣게 탄 기둥에 손을 기대어 본다. 마음의 방이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열려진 마음의 문도 슬프게 무너져 내린다. 뒤돌아서서 마음을 바라본다. 까맣게 타버린 재들이. 무너진 가슴의 방들이. 슬프게 아프게 마음에 흔적만을 남기고 타버렸다. 다시 당신의 향을 느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아픔으로 우리의 사랑을 확인해야할까. 까맣게 타오르던 내 마음 안에서 혹여 다치지는 않았을까. 확인할 수 없는 물음이 머리를 뒤덮고, 남은 눈물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4:12:01 

 

상병 김지웅 
  아, 좋아요, 나도 요즘 무준홀릭에 빠졋는가봐요, 아웅, 2008-12-28
20:07:57
  

 

병장 방수현 
  전 왜 낯설게 느껴지는지. 2008-12-29
00:40:55
  

 

상병 정근영 
  그녀와 헤어진 지금, 저번주에 읽었을 때와 지금 읽을 때는 느낌이 또 다르군요. 
죽을만큼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가슴 한편이 주먹으로 쥐어질린 듯이 먹먹합니다. 2008-12-30
09: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