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노래를 듣는 법
병장 허기민 2008-08-04 16:58:37, 조회: 335, 추천:1
4분여 정도마다 한번씩 미디어 플레이어 위치를 4분전으로 다시 돌려놓기를 반복합니다. 여기선 음악 파일을 소지하면 안 되므로 미디어 플레이어의 반복 기능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저 같이 한 곡만 며칠 동안 듣는 사람에겐 정말 귀찮은 일입니다. 4분마다 계속 신경을 써줘야 하니, 문서 작성을 하다가도 노래가 끝나면 다시 돌려주고(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한번 돌렸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 쉬려다가도 4분마다 한번씩 돌려주는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돌려주려면 미디어 플레이어의 재생 막대기를 유심히 보고, '아, 이 곡은 이쯤에서부터 나온다' 는 것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번에 옮겨놓을 수가 없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또한 노래 듣는 중에 끊김이 생겨버려서 김이 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곡에 집중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다른 곡이 끼어들었을 때의 불쾌한 기분이란! 저는 모 군에서 최근 방송하고 있는 라디오xx을 청취하는데, 제가 듣고 싶은 곡이 제일 끝자락에 있으면 이 역시 난감합니다.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방송이 끝나 처음 대기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에, 재생 버튼을 눌러주고 제가 듣고 싶은 곡이 나오는 위치를 어림잡아서 재생 막대기를 옮겨놓아야 합니다. 이 곳만의 특수한 환경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매우 불편했으나(밖에선 한 곡만 열어놓고 반복 기능을 체크해 놓으면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조금씩 적응이 되어버려서 아무렇지도 않게 바꾸는 제 자신에 놀랍니다.
최근 제가 듣고 있는 곡은 윤종신의 '너에게 간다' 입니다. 윤종신 씨는 최근 '패밀리가 간다' 나 '라디오스타' 등에 많이 나오시더군요. 제 주변 사람들 중에 윤종신 씨의 노래를 즐기는 사람이 몇 없어서, 그 분의 노래는 거의 접하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빙수야~ 싸랑해싸랑해~' 라고 흘러나오던 '팥빙수' 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연세는 좀 되신 거 같은데, '빙수 타령' 하시는 모습이 독특해서 제 좁은 기억의 방에는 윤종신 씨는 '조금 코믹한 가수' 로 박혀있었습니다. 최근에서야 윤종신 씨가 예전에 '너의 결혼식' 이라는 유명한 곡을 불렀다는 것도(이건 제가 좋아하는 만화 '위대한 캐츠비' 를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성시경의 '거리에서' 를 작곡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에게 간다'는 라디오xx 16화 끝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실은 문차일드의 '태양은 가득히' 를 듣다가 이 노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4분이 지난 후 처음 듣던 곡이 흘러나와서 타이밍을 놓쳤다 생각하고 재빨리 재생 막대기를 돌려놓으려다가 '그래도 한번 다 들어보고 바꾸자' 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까지 제 컴퓨터에서 매일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들은 지 1주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물리지 않는 걸 보니 8월 초까지는 이 노래를 계속 들을 거 같습니다.
이렇게 계속 들으면 질리지 않냐는 반응을 몇몇 사람들은 보이곤 합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접해야 하는 음악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신곡들은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 한 곡만 들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 등등. 때문에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인터넷 삼매경에 빠져 2~3시간 동안 한 곡만 틀어놓을 때ㅡ이때는 재생 막대기를 건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인심 좋은 블로거가 있는 곳에 들어가서 창만 띄워놓으면 알아서 반복이 되니까요ㅡ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노래 좀 듣자, 국방부시계 멈춘 거 같아' 라면서요(웃음). 그래도 이렇게 한 곡만 듣는 게 좋습니다. 집에 있을 땐, 24시간 한 곡만 틀어놓는 나날들이 많았습니다. 잘 때도 듣고, 밥 먹을 때도 듣고, 화장실 갈 때면 볼륨을 키워서 듣고. 만화책 보면서도 듣고. <주유소 습격사건>에 나온 '난 한 놈만 패!'라는 유오성 식의 철학과 비슷한 거랄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이유가 없듯이(그냥 좋잖아요),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유별난 습관입니다.
이처럼 과청(寡聽)하는 습관이 배어서 그런지, 한 달에 듣는 노래는 2곡에서 4곡 정도밖에 안 되는 나날들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인기 있는 최신 곡엔 무덤덤하고, 유명한 가수 분이라도 저와 만나려면 꽤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그 분들은 신경 안 쓰시겠지만). 일상이 된 느낌이 이런 걸까요. 1주~2주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한 노래만 듣는데 쏟다보니, 제가 노래를 듣는 건지 아니면 노래가 저와 함께 숨쉬고 있는 건지 가끔은 착각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듣다 가도 막상 한 번 불러보라고 하면, '어떻게 시작했더라?' 라는 반응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뭐야, 그렇게 오래 들으면서 그런 것도 모르면 노래를 듣긴 하는 거야?' 라는 반응이 봇물처럼 터져 나옵니다만, 듣는다는 것이 굳이 그 노래의 음을 기억하고 가사를 외운다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렇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물론 가사를 듣고 가수의 목소리를 음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노래 특유의 분위기나 노래 속에 감춰져 있는 반주를 느껴보는 것도 음악을 듣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봅니다(둘 다 놓쳐서는 안 되겠지요). 듣고 싶은 노래가 생기고, 계속 듣을 수 있는 것부터가 제겐 행복이고, 따라 부르진 못하더라도 그 노래와 만나는 그 순간만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니까요.
오늘도 제 컴퓨터에서는 윤종신의 '너에게 간다'가 흘러나옵니다. 재생 막대기 옮길 타이밍이 돌아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4:01:59
상병 양순호
그 행복과 즐거움을을 조금이나마 흥얼거리면서 다시 부를 수 있는것도,
음악을 듣는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이자 즐거움이 될 수 있는게 아닐까요. 히히.
예전엔 자주 들었지만 요 근래에는 아쉽게도 그다지 많지가 않네요.
나중에라도 시간이 지나면 시도해봐야겠지요? 2008-08-04
18:22:18
상병 이중원
윤종신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차분하게 지난 일들을 생각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노래를 통해 나누는 공감이랄까? 요즘 노래들도 좋지만 오래전 그날이라던지 애니같은 윤종신의 매력을 흠뻑 느낄수 있는 노래도 한번 들어보시면 더욱 윤종신이라는 뮤지션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2008-08-04
22:36:16
병장 허기민
순호 님// 아,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네요. 가사를 구해서 옆에 붙여놓고 들어봐야겠어요(웃음).
중원 님// 오오, 노래 추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사지방 가서 검색 해보겠습니다(웃음). 2008-08-05
08:59:08
병장 박재혁
윤종신 최고의 명반은 5집인거 같습니다.
처음 여자를 만나서 다가가고 함께 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잊어가고,,
한편의 소설같은 플로우를 그리고 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나와요. 2008-08-05
10:13:17
상병 최광준
저와 굉장히 비슷하시다는~
저도 윈앰프목록에 한 곡뿐입니다. 하하 2008-08-05
13:07:24
병장 허기민
광준 님// 제 주위엔 한 곡만 듣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더욱 반갑네요(웃음). 2008-08-05
13:08:57
병장 이태형
윤종신씨 노래 중에는..
그 뭐냐 기억이 안나네요.
쿨 6집이 미저리였던가.
그때 나왔던 노래인데, 배웅이었나?
잔잔하니 좋았죠. 2008-08-07
18:4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