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내 악몽에 관한 객관적 해석  
상병 김무준   2008-10-18 06:53:02, 조회: 222, 추천:0 

악몽을 자주 꾸는 편이다. 오늘도 잠을 자다 악몽을 꾸고야 말았다.

어릴 적 악몽은 정말 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무지막지한 거인이 (이 거인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면봉보다도 작은 역기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거인의 면봉보다도 작은 소인이 거인보다 더 큰 역기를 들고 끙끙대고 있었다. 어둠뿐인 공간 속에서 두 존재는 안간힘을 다했다. 대부분의 꿈이 그렇듯 그 둘의 고통은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왔다.

이건 뭐, 이게 도대체 왜 악몽이냐고 물을 정도로 생뚱맞은 꿈이다. 하지만 악몽을 꾸고 나면 늘 식은땀에 젖어있었고 빛과 시야와 소리가 일그러지는 현상이 생겼다. 이 현상을 딱히 뭐라 표현해야할 지 모르겠다. 시계의 똑딱똑딱 소리가 1초 간격이 아닌 어떤 특수한 리듬에 따라 들려오고, 타인의 말은 일정한 음절에 따라 끊어져 들어왔다. 사물은 그 소재가 무엇이냐에 따라 패턴화 되어 (주로 벽지가 심했다.) 눈으로 쏟아져왔다.

사실 꿈에서의 공포 때문에 악몽이라 부르기 보다는, 꿈에서 깬 후 찾아오는 육체적 인지의 변화 때문이리라. 유년 시절의 악몽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괴이하고, 초감각적인 것이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것을 정확히 무엇이라 설명하지 못하겠으며 아련한 괴리감만을 기억하고 있다.

다양한 지식을 통해 해석해 보건데, 두려움은 현실에서 느끼던 초감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지켜져 왔던, 당연해야 할.’ 어떤 것들에 변화에서 오는 것이었다. 분명히 전혀 변화는 없을 터인데, 나만이 변화를 인지하고 있다. 엄마 이상해. 뭐가? 악몽 꾸고 나면 나 매번 이상하다 하는 거 있잖아. 괜찮아 질 거야. 그렇긴 하지만… 어릴 때인지라 뭐라 설명할 수도 없었고 다시 잠을 자고 나면 거의 괜찮아 지곤 했으니 악몽은 점점 익숙해졌다.

나중에는 그 초감각을 즐기는 수준까지 되어버렸다. 한 두 번이야 공포로 찾아오지만, 여러 차례 겪다보니 일상에서 누릴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말이 특수한 음절에서 끊어지고 사물을 새로운 시야로 볼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감각이 아니니까. 그렇게 감각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

심리학적으로 뜯어보면 별것 아닌 꿈이 악몽으로 받아들여졌던 이유가 있었다. 유년시절 나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유망주였고, 그 기대를 훨씬 초과하는 결과물을 늘 끌고 다녔으니 그 기대가 무게로 표현되었으리라. 여섯 일곱 살의 작은 꼬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짐이었으니까. 그 무거움 아래서 신음하는 소인은 나였으며, 거인의 역기는 나의 소망이 무게감으로 표현됐으리라 생각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리라 선언하고 포기해버린 시점부터 그 꿈을 꾸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얼마 후. 어른이 된 지금 새로운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꿈속에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혼자 탈 때도 있고, 타인과 함께 탈 때도 있다. 익숙하게 우리 집 층수에 해당하는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 거기서 악몽이 시작된다.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터무니없이 빨라진다. 관성에 의해 빨라진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내 몸은 한없이 아래로 쏠리며 층을 표시하는 숫자가 미친 듯 올라가기 시작한다. 1,2,3,4,5,6… 엘리베이터의 버튼이 25까지 있다면 40, 60까지 솟구친다. 존재해야 하지 않을 층의 숫자가 표시되고 엘리베이터는 미친 듯 요동친다. 그렇게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문이 열리면 잽싸게 탈출한다.

꿈 속 공포는 존재할 수 없는 층수의 존재에서 찾아오고, 엘리베이터의 속도에서 찾아온다. 이렇게 솟구치다 보면 건물의 옥상을 뚫고 말거야. 근데, 숫자판이 계속 올라간다는 건 대체 이 건물은 뭐란 소리지?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존재에서 찾아오는 괴리감이랄까. 나는 엘리베이터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관성에 휘둘리는 몸을 지탱해 계속해서 버튼을 누르는 방법 밖에. 간절히 탈출을 염원하다 그 간절함이 극에 달하는 순간 문이 열린다. 나는 건물로 튀어나간다. 헌데 이 폐쇄라는 개념이 참 우스운 것이, 결국 건물 속의 나는 크기만 커졌을 뿐이지 건물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안도한다. 이런 부분에서 나의 두려움이 폐쇄공포증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릴 적 꿈과의 공통점은 익숙해야 할 것들의 변화에서 공포를 느낀다는 점이다. 어릴 적에는 변화를 통한 공포가 꿈 밖에서 찾아왔다면, 지금의 공포는 꿈속에서 찾아온다. 정해진 층수가 있음에도 심각하게 빨라진 엘리베이터의 속도와 그 속도를 가늠할 수 있는 숫자판과 관성에 따르는 무게감. 이 모든 것들은 현실에서와 다른 변화다. 일상적이어야 할 것들의 탈일상적인 변화. 변화는 아직도 내게 공포로 작용한다.

사실 그 변화보다 더 큰 두려움은 솟구친 엘리베이터는, 중력에 의해 반드시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다. 나는 꿈속에서도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기준으로 ‘현실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현실의 기준에 맞는 것이 그렇지 아니할 때 공포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폐쇄된 공간 속에서 내가 속도를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엘리베이터의 숫자판뿐이다. 항상 숫자판의 변화와 함께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니 꿈속에서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는데, 숫자판의 변화를 보고 지레짐작해 신체가 심리적으로 반응하는 것일지도. 하지만 이 모든 해석은 꿈 안에서 해당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꿈속에서 내가 어떻게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으랴. 엘리베이터는 폐쇄구조이므로 내가 밖을 확인해 높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언제나 엘리베이터는 처음 내리려던 층에 도착하고, 무사히 내리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엘리베이터가 요동 친 시간과 정상적으로 작동해 원하는 층에 도착하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다. 내가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방법은 없다. 단지 숫자판이라는 시각적 요소에 의지할 뿐. 그렇다면, 처음부터 엘리베이터는 고장 난 적이 없었고 모든 공포는 내 안에서 나의 착각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현실이라면 나의 해석이 타당할지도 모르지만, 모든 해석은 꿈속이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꿈속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을 층이 갑자기 불어날 수도, 엘리베이터가 미친 듯 움직일 수도 있으니까.

어쨌거나 나는 아직도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 두려움이 어릴 적 꿈에서 온 트라우마든, 어릴 적 현실에서 온 트라우마든, 나도 모르는 사이 쌓인 무의식적 심리불안이든 간에 나는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꿈이 반복될수록 공포의 크기는 줄어든다. 현실에서 점점 변화를 인지하고 수용하기 때문일까.

프로이트가 맞는지 모르겠다. 그는 꿈의 해석을 통해 심리와 인간을 재해석하려 노력했다. 꿈은 잊고 살아가는 현실과 심리를 대변해준다. 나는 악몽을 꿨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 이제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좀 더 능동적으로 변화를 수용하고,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겠다. 나는 날아가고 싶다. 날개는 이미 달려있다. 이제 나는 법만 배우면 된다. 나는 법을 배우고 나면, 나는 꿈속의 엘리베이터를 탈출해 건물을 뚫고 꿈 속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게 되겠지.

생각이 많은 밤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4:07:56 

 

상병 김민규 
  꿈속에서 혼자 용쓰고 나면 자고 일어나도 좀 그렇죠. 
달린다거나, 도망친다거나, 주먹을 휘두른다거나 하는 것들, 사람 진을 빼 놓잖아요. 

엘리베이터 꿈은 저도 종종 꾸곤 했는데요. 막 미친듯이 올라가다 어느순간 탈출. 
키 크는 꿈이려나(땀) 2008-10-18
07:12:13
  

 

상병 손민웅 
  엘리베이터 꿈은 저도 꾸곤합니다.. 분명 15층에서 내려야 할 것인데 엘리베이터 

는 멈추지 않고 25층 30층 40층 계속 올라가곤 하죠.. 

꿈속에서 익숙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간다는 안정감이 

존재하지도 않는 층을 만들어내며 계속 치닫을때 느낌은 .. 

당혹과 곤욕스러움 그자체입니다.. 휴가나가서 엘리베이터 타면 이런생각도 해봅니다. 

우리 아파트가 몇층까지 있었더라.. 꿈속에서 처럼 너무 올라가버리는건 아닌지. 

그나저나 다행인게 이거 저만 꾸는게 아니였군요. 2008-10-18
08:17:13
  

 

병장 이동석 
  그런데, 악몽을 제외한 수많은 꿈들은 눈뜨면서 잊어먹거나 하니까요, 

필름 끊긴 상태에서 순간 순간 남는 잔상들이 중요한 장면이라기 보단, 단순히 우연적인 기억인것처럼, 사실 우리의 의식으로 넘어온 무의식은 단지 우연에 불과하고, 그걸 스스로 해석하는것 또한 "인문학적 상상의 산물"에 불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스스로의 문제는 스스로가 가장 전문가겠지요. 2008-10-18
10:28:20
 

 

상병 김무준 
  저만 꾸고 사는 게 아니었군요. 동석님, 전 필름이 끊겨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가질 않네요. (긁적) 2008-10-18
13:32:01
  

 

일병 최규호 
  제목 보고 리모트 뷰잉에 관련된건줄 알았네요.. 2008-10-20
10:3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