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기류에 편승해 나도 옛이야기.  
병장 윤영돈  [Homepage]  2008-08-07 17:09:30, 조회: 229, 추천:0 

어쩐지 팩션이 되버린 것 같네요. 오래된 기억에 의지해서 써서 그런가.
너무 미화된 면도 있고 그러네요. 그냥 감안하면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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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할 얘기가 뭐야?"
얄밉다. 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 그런 물음을 하다니.
"어, 음... 일단 그 쿠션부터 내려놔."
그애는 싫다는 듯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더니 나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가위바위보?
"내가 이겨."
내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그애는 비웃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어?"
"정해져 있으니까."
"웃긴다. 해봐."
가위 바위 보. 당연한 결과.
"뭐야 어떻게 이겼어."
"정해져 있다고 얘기했잖아."
"그냥 말해본거지? 다시 해"
가위 바위 보. 당연한 결과.
"말했지?"
"다시해."
가위 바위 보. 당연한 결과. 응? 뭐지 이 상황은. 생각없이 낸건데 3분의 1의 확률을 3번 연속으로 해낸건가. 그애도 신기하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이, 나도 신기하다고 하지만 얼굴을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한 표정을 짓자.
"말도안돼. 다시해"
가위 바위 보. 당연한 결과. 졌다.


"거봐, 정해지긴 뭐가 정해져 내가 이겼잖아."
"4번을 해서 내가 3판을 이겼어, 그러면..."
"알았어, 알았어."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 말을 끊은 그애는 쿠션을 잠시 바라보더니 더 꽉 껴안았다.
"이리내"
나는 거의 빼앗듯이 쿠션을 빼앗았고 그애는 어떤 드라마에서 나온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빼앗겨서 억울하다는 내용이 담긴 대사를 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하지?
"얘기해봐."
어느새 평소와 똑같이 얄미운 표정으로 돌아온 그애는 마치 준비해온 크리스마스 선물이 뭔지 알고 빨리 주기만을 바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말로 얄밉다.
나는 그 자리에서 누웠다. 와인 초보자들은 취하는줄 모르고 계속 마셔대다가 나중에 머리가 띵하다고 하더니 내가 그꼴이었다. 와인때문에 아픈 머리를 느끼면서 눈을 감고 말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음.. 사랑같은거 느껴본적도 없다면서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면 좀 웃기지? 많이 좋아하는거 같아. 아니, 사랑해."
사랑해라는 말을 하며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일단 꺼냈으니 끝까지 가기로 했다.
"보기만해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서양 레슬러가 상대방의 쓰러트릴 생각으로 꽉 껴안는 것보다 더 강하게 안아주고 싶어."
"푸핫, 그 묘사 웃기네."
"인정."
내가 말했지만 정말 바보같은 말이군. 하지만 남이 애써 고백이라고 하는걸 하고 있는데 웃어버리면 민망하잖아. 그애는 곧 웃음을 멈추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틀어졌네. 나쁜버릇 또 기어올라왔구나.
"음... 안돼."
"... 알고있어."
알고있지. 아주 잘. 사람들이 죽을걸 알면서도 살고 있는것과 같은 이치니까. 그냥 표현하고 싶었다. 가치가 있으니까.
"우린 서로 너무 잘 알아. 하나부터 열까지, 연인사이만 알고 있을 만한 것, 가족사이만 알고 있을 만한 것까지 전부 알고 있잖아. 게다가 나는 너를 너무 좋아해. 남녀관계를 초월해서."
남녀관계를 초월한 관계는 뭐라고 표현해야 옳을까? 외계인? 무성생물? 아메바?
"남을 좋아해서 사귀거나 한다는건 어차피 유한적이야. 그럴바에.. "
"이해해."
이해한다. 우리는 너무나 멍청하다. 팜므파탈을 룰모델로 잡고 연기에 너무 빠져 현실과 구별하지 못하는 그애, 남과 경쟁하는 걸 즐기고 고집불통이라 자기생각이 곧 현실이라 믿는 나, 이 두 사람이 같은건 극적인 것을 너무 좋아하는 빌어먹을 로맨티스트라는 것이다. 정말 싫어하는 서정적 감수성에 푹빠진 바보들. 언제나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로 남길 바라는 바보들.
"한병 더 마실까?"
나는 더 마실 것을 제안했고 둘은 다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애는 술에 취해 구석에 잠들어 있었다. 귀여웠다. 체형도 초등학생 만큼 작고 얼굴도 가만히 내버려두면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동안이다. 이런 녀석이 일어나면 팜므파탈을 연기하다니. 개인적으로 불가사의에 하나 추가해야지. 나는 잠시 그애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자는 척하지마. 안 취한거 알어."

반응은 없었지만 알고 있었다. 무방비상태를 연기해서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따윈 이미 알아챌 수있을 만큼 그애를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그애는 잠시 뒤 일어나더니 화장실을 간다고 나가더니 계산을 하고 와서 나가자고 했다.(장소가 혜화역에 위치한 자리마다 작은 벽으로 둘러싸져 있어 조그마한 방에 들어온 기분이 드는 독특한 분위기의 좌식 와인바임. 이름이... 다락방이었나?)


아까까지 취한척 잠들었으면서 지금은 멀쩡하게 걸어다닌다. 자존심이 좀 상했겠지. 그애는 이대로 들어가기 싫다면서 새로운 바를 찾아서 들어갔다.
다시 시시껄렁한 이야기의 시작. 하지만 얘기는 아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멍청할 정도로 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두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신기할 일은 없다. 둘은 마치 악당임을 자처하는 비운의 주인공들처럼 상대방에게 맹렬한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심기를 비틀어 끊어버릴 심산인지 은근히 기분나쁘고, 화보단 짜증난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들게 만드는 말이 오갔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자기를 비하하는 말을 하는 대단한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아마도 둘다 자신들의 행동이 동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먼저 참지 못한 것은 나였다.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먼저 간다는 말을 하고 일어서려 했지만 그 애가 잡았다. 실랑이. 오늘 참 많이 싸우네.
둘은 아까까지의 맹비난이 오가는 대화가 남의 일이라는 듯 손을 잡고 바를 나왔다.

그애의 집으로 갔다. 집이 정 반대라서 여기서 자고 가는 경우가 많았고 이젠 내 집인양 들이드는 집.
"내가 만약에 덮치면 어떻게 할건데?"
"너는 못 덮쳐."
서로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보았다. 뭐, 이미 썸씽이야 예전에 일어났었지만 고백한 후와 전은 다른 것이니.
"또 오기자극하게 하지마."
"못 한다니까. 할 수 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하."
나는 그애를 눌러서 위에서 내려다 보았다.
"이래도?"
"히히히."
재밌다는 듯이 웃어버리는 그애를 보면서 나는 한숨을 쉬고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못하겠다."
확실히, 왜 못하겠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내 행동을 그애는 알고있다는 얘긴가.
"못한다고 했잖아. 잘자"
비웃는 건지 재밌다고 웃는건지 헷갈리는 웃음을 지으면서 그애는 방에서 나갔다.
나는 방안에 누워 바닥의 기분을 느꼈다.
"히히히"
그애의 웃음을 따라해 보았다. 이거 괜찮은데. 괜찮네. 



차인거네. 빌어먹을 로맨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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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뭔가 주인공이군요. 그냥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써놓고 보니 뭔가 다이나믹하군요.
다들 쉬러갈때쯤 하나 올리고 총총 거리며 갑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20:09:39 

 

병장 어영조 
  아아, 왠지 안타까우면서도 아슬아슬하네요. 
(그리고 저라면 덮쳤을..) 2008-08-07
17:26:28
  

 

병장 이태형 
  히히히. 
잘 읽었습니다. 
저는 차여도 좋으니 그런 추억거리가 좀 있으면 싶네요. 
두근거림이랄까, 그런 것도 좀.. 
이건 뭐 삭막하다못해 따분한 인생만 이어지니.. 제길! 2008-08-07
17:58:12
  

 

병장 이동석 
  음, 이상하게 안 덮치느니만 못한 사이가 있는건 사실이에요. 
뭐 그렇다고 덮치는게 나은 사이가 따로 있는건 아니죠. (땀) 

그걸 굳이 덮치면 정말 후회합니다.. 그러니까 몸도 안따라준다니까요. 
차라리 어떻게 되면 상관없는데 그렇게 되면, 그냥 뒤져버리고 싶어져요. 

(나이 스물하나에 발기부전 경험자) 

그런데 난 왜 여기서 설교하고 있지? 2008-08-07
19:05:16
 

 

병장 정영목 
  흠...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셨군요. (땀) 2008-08-07
21:20:43
  

 

병장 윤영돈 
  자연의 섭리... (땀) 
저도 거의 섭리를 따르는데 그 날은 절대로 못하겠더군요. 
똑바로 보면서 평소와 똑같은 웃음을 짓는데. 

어디선다 남자가 이상한 짓을 하려면 막 비웃으라고 했던 걸 들은적이 있는데 
그거에 당한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