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기분좋은 꿈을 꾸다  
일병 정근영   2008-08-02 13:43:59, 조회: 182, 추천:0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한창 기분좋고 즐겁고 유쾌한 꿈을 꾸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질 때, 
이대로 일어나 버리면 그렇게 생생하고 즐거웠던 느낌이 사라져 버릴까봐 다시 애써 그 꿈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잡힐 듯 잡힐 듯 하다가 결국 의식의 저 편으로 아스라이 사라져 버리는 순간의, 그런 아쉬움이 
찾아오는 날이. 내게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친구인듯 아닌듯 애매한 관계의 여자애가 한 명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내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꽤나 좋아하고 있었던 그 애의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까지 거의 단짝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다. 그 덕에 나와 그 애도 심심치 않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로 단짝인 어머니들과 다르게 우리는 무척 어색한 관계였다.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여자관계에 대해서는 영 쑥맥이었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별로 말도 잘 못 붙이고 
어색하게 인사나 하는 정도였다. 야자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도 꽤 자주 마주쳤지만 별로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굳이 먼저 아는 척을 해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몇 학년 때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야자가 끝나고 집에 오던
중이었는데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녔던 나는 별로 개의치 않고 우산을 쓰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언제나처럼 내리던 영화마을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근데 
같이 버스에서 내린 어떤 여자애가 정류장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서 얼굴을
봤는데 그게 그 애였던 것이다. 난 그때 순간적으로 꽤 고민을 했었다. 우산을 씌어준다고 할지, 아니면 그냥
모른척하고 집으로 갈지.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는 그 순간까지 갈등을 하다가 결국은 그냥 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약간 걱정을 했다. 그 애 어머니께서 금방 데리러 오실지, 날씨도 쌀쌀한데 
한참 기다리는 것은 아닐지..하고 걱정을 하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그 애의 어머니께서 바쁜
걸음으로 오고 계시는 게 보였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에 내가 그걸 보지 못했으면, 다시 돌아가서 우산을 씌어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그때
조금만 용기를 내서, 한 마디만 건넸더라면, 어쩌면 그 애와 나는 꽤나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을는지도
모르는데.

그 때는 정말 왜 그렇게 숫기가 없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좀 바보같았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자랑은 아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주변에 여자들이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여자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 내가 조금 더 여자관계를 비롯한 모든 것에 적극적이었다면 현재의 내 모습도 
꽤나 달라져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 고등학교에 가고 한살한살 나이를 더 먹으면서 꽤나 이쁘게 그 애는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여자친구는 아니더라도 그냥 친하게라도 지냈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고는 했었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져온 인연의 끝자락을 별로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른 초등학교 동창들과 비교적 멀리있는 곳을 가게 된 까닭에 고등학교 
무렵에는 연락이 되는 초등학교 친구들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애마저도 이대로 
놓쳐버리게 되면, 내 기억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그 시절의 즐겁고 유쾌한 추억들이 그대로 흩어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누구와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없는 추억이란, 그저 슬프고 안타까울 뿐이니까. 
그래서 가끔씩 싸이에서 안부를 묻는 정도의 관계는 유지할 수 있었지만, 나도 그 애도 결국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서로 그 이상 다가가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대학교를 가고 2학년이 되면서 
가끔 왕래했던 싸이도 별로 하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가 나는 결국 이렇게 군대에 오게 된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그 애가 오늘 내 꿈에 나왔던 것이다. 현재 여자친구와 1년 6개월 정도를 사귀면서,
그 애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었다. 물론 군대에 있었던 9개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오늘 꾸었던 
꿈에서 꽤나 생생한 느낌으로 그 애를 만났다. 마치, 언제나 곁에 있었던 것처럼 어색하지 않았던 까닭은
아마도 그게 꿈이었기 때문이리라.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를 잘 생각이 안 나지만, 꽤나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아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중간에 잃어버린 우리의 10년을 채우려면, 아마도 할 말이 무척 많았을 테고, 또 그래야만 하니까. 아침의 
그 생생했던 기분은 많이 퇴색되어 지금은 그냥 아련한 잔상만이 떠오를 뿐이지만, 정말 기분좋고 산뜻한 
꿈이었음에는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비워져있던 내 마음속 빈 자리를 채워준 것 같다는 느낌이 생경하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졌다. 
예기치 않게 내 꿈에 찾아와준 그 애 덕분에 이번 주는 내내 즐겁고 경쾌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을 듯하다.
그게 과거에 대한 나의 아련한 그리움과 아쉬움에서 비롯된 단순한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어도 별로 상관없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이번 주에는 편지라도 한 통 써볼까 생각중이다.
아련한 기억속에 희미하게라도 남아있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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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썼던 글입니다(얼마 전이라고 해봐야 6월... 꽤 됐군요.. 하하)
편지는 7월에 써서,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해 주소를 쓰고, 보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리고 혹시나 싸이로 무슨 반응이 오려나.. 하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외박나가서 보니까, 제가 기억하고 있던 주소가 아니더군요
호수는 맞는 것 같은데, 동이 틀렸어요..(울음)
아마 편지도 받지 못했겠지요(이렇게 정성들여서 쓴 편지가 없었는데....)
그래서 맥이 탁 풀리고, 그 꿈도 가물가물해진 터라 요즘은 별 생각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8월 중순에 1차 정기를 나가기는 하는데, 연락해야겠다!! 라는 그런 마음이 그렇게 강렬하게 들지는 않네요.
또 다시 그 꿈을 꾸게 된다면 모르겠지만요(웃음)

아무튼, 가입인사를 제외하고 책마을에 올리는 첫글이네요.
우연찮게도 행운의 숫자인 7이 세개나 있는 777번이라는 점이 절 즐겁게 하네요.
오늘은 또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하고 생각을 하려는 찰나,
아차.. 그러고보니 전 오늘 상황근무였군요(울음)
밤새 책마을이나 지켜야겠네요

모두들,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은 꿈 꾸시길.
비록 저는 내일 아침 피곤에 쩔어서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 있겠지만,
여러분들은 기분좋은 아쉬움과 나른함을 느끼시길 바래요. 

20.3.1.42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43:44 

 

이병 장봉수 
16.36.1.174   결론은... 여자친구가 있으신 겁니까... 아아.. 2008-08-03
10:39:58
 

 

병장 김원택 
20.20.54.54   크크크... 2008-08-04
08:53:50
 

 

병장 이동석 
40.6.1.206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