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개념이란 무엇인가? 
 병장 이승일 04-06 13:21 | HIT : 179 





 우리는 다양한 일반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 
 동물, 호랑이, 인간 등등. 
 고유명사는(이름, 단칭어)는 대상과 1:1로 대응하는 언어표현임에 반해, 이러한 개념들은 1: 多 로 대응하는 표현이다. '늑대와 춤을' 이라는 표현은 단 하나의 대상과 연결되는 반면,  '호랑이' 라는 표현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호랑이들이 연결된다. 이러한 개념을 언어학에서는 '술어' 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술어와는 약간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동일하다.) 그래서 "이 것은 호랑이이다" 라는 말은, '이 것' 이라는 대상이 '호랑이들의 집합'의 원소라는 뜻이 된다. 
' 이 사과는 빨갛다' 라는 말도 동일하다. '이 사과' 라는 대상이 '빨간 것들의 집합' 의 원소라는 뜻이다. 

 이러한 술어, 즉 보편개념들은 모두 일반화의 결과로 구성된 것이라는 시각이 가능하다. 우리는 개별적인 사물들을 관찰하고, 그것들의 공통된 속성을 뽑아서 하나의 범주를 개념화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범주들은 그 범주에 해당하는 개별적 사물이 모두 공유하는 속성으로 구성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위 그림처럼, A, A', A'' 세 개의 개별자를 그 대응물로 갖는 일반개념 α 가 있다고 할 때, α 는 A, A', A'' 모두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속성으로 구성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일반개념들의 원소의 개수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만약 제대로 된 개념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해당하는 모든 원소들을 다 관찰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 수도 없고, 그런 적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인간, 호랑이 등을 다 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호랑이' 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어찌된 일인가? 대체 앞으로 만나게 될 호랑이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을 줄 알고 미리 '호랑이' 라는 개념을 확정지어버렸는가? 

 더욱 큰 문제는 대체 이 집합에 속할 원소가 무엇인지는 무슨 수로 정해놓았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대상이 '인간' 에 속할지 안속할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 이라는 개념이 정해져 있어야하는데, '인간' 이라는 개념은 또한 개별자들의 속성 중 공통된 것을 뽑아서 형성한 것이라고 하니 도대체 앞뒤가 안맞는 것이다. 마치 닭과 달걀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가장 큰 문제는, 위의 문제들을 무시한다고 치더라도, 일반 개념을 구성하고 있는 속성들은 사실 대개의 경우 모든 원소들이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속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호랑이' 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호랑이' 라는 개념의 본질은 무엇인가? 즉 이것이 결여되면 호랑이가 아니게되는, 그러한 속성은 무엇인가? "네 발 달린 포유동물" 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다리가 하나 잘려서 세 발이 된 호랑이는 호랑이가 아닌가? "줄무늬를 가진 고양이과 동물" 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유전자 조작으로 줄무늬가 사라진 백호는 호랑이가 아닌가?
 혹은 호랑이란 그 내부 장기에 의해 규정되는 것인가? 그러나 어떤 호랑이도 완전히 같은 내부 장기를 갖고 있지 않다. 유전자에 의해 규정되는가? 아니다. 어떤 두 호랑이도 유전적으로 완전히 동일하진 않다. 또한 모든 호랑이의 유전자가 공유하고 있는 코드도 없다. 모든 호랑이들의 유전자는 서로 '비슷' 할 뿐, 완전히 동일한 어떤 것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상황은 위의 그림보다는 아래 그림과 더 유사하다. 



 모든 호랑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명확한 속성은 없지만, 이들은 서로 비슷한 점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것을 '가족 유사성' 이라고 부른다. 한 가족을 대표할 수 있는 공통된 속성은 존재하지 않지만, 서로 조금씩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 가족을 떠올려보라. 어떤 이들은 눈 모양을 공유하고 있고, 누구는 성격을 공유한다. 서로 일부분씩 겹쳐있지만 모든 이가 겹쳐있는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적 대상들의 속성은 이처럼 부분적으로 공유될 뿐이다. 

 자, 다시 일반 개념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이제 일반 개념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들에 대한 일반화라는 주장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그 모든 대상을 살펴본 적도 없고, 도대체 어떤 대상들을 살펴보아야할지도 확실히 모르며, 심지어 이미 살펴본 대상들 조차 완벽히 공유하는 속성은 없다. 따라서 개별자들을 일반화한다고 해서 보편적 개념들이 도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관찰로부터 개념이 따라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보편 개념들이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에겐 두가지 선택지가 남아있다. 하나는 이런 개념들이 완전히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개념들이 지시하는 대상은 개별자들과는 별도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첫번째 선택지를 택한다면, 우리는 '개념' 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며, 단지 혼란과 착각의 결과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이 말 속에서도 우리는 일반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혼란' , '착각' 등이 그것이다. 

 한편 두번째 선택지를 택한다면, 그것은 매우 부담스런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다음과 같은 착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맨 처음에 제시한 그림이 개별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속성들의 '최대공약수' 를 의미했다면, 위 그림은 개별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속성의 '최소공배수' 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개별자들은 그보다 더 큰 실체의 한 부분집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개념은 그 모든 부분집합을 포함하는 더 큰 집합을 지시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어째서 개별 대상들이 단지 가족유사성에 의해 연결되어있을 뿐인지 잘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더 큰 실체' 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이다. 일단 이것은 개별적인 물질적 존재일 수가 없다. 어떤 개별적인 호랑이도 모든 호랑이를 포함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이데아' 와 같은 것일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존재의 영역을 물질적인 것에서 그 이상으로 넓여야할 필요성과 마주치게 된다. 이 경우 우리는 단지 이데아의 부분들을 물질 세계 속에서 '발견'하는 것 뿐이라고 말해야한다.
 물론 이것은 아주 부담스러운 주장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대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도저히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시간이 없으므로 이만 줄임.  


 상병 박수영 
 그러니 어떤 AI같은 것들의 개발에서 '일반개념'을 정의 내리기란 대단히 힘들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이러한 '일반개념'을 직관적인 감각으로 카테고라이즈 시켜버리는 것이 가능하지만요. 04-06   

 상병 서동영 
some where over the rainbow...갑자기 이 노래가 생각나네요. 무지개 넘어엔 무엇이 있을까. 04-06   

 병장 성태식 
 조금 무리인듯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식주체'가 다 죽는다면 어떠한 인식도 있을 수 없지요. 이 글의 주장대로라면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 때에도 그 '이데아'에 해당하는 것은 존재해야 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보지요. 인플레이션 이전에 우주는 소립자만한 크기였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에도 '사과'의 이데아가 존재할까요? 만일 '이데아'가 존재한다면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요? 

 전반적으로 '사실은 의미의 원천이다.'라는 비트겐슈타인적 전제를 거부해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논고'에서 그 전제가 굉장히 명확하게 드러나지요. (철학적 탐구는 읽어보지를 못해서...) 최소한 그러한 전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과학적 사실과 배치되지 않으면서 세계를 지시하는 언어는 보편개념의(일반개념) 형성이 불가능하지요. 이 난점은 '신'같은 개념을 도입하지 않는 이상 정당화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승일씨도 이러한 난점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에 적어 두셨군요. 
 저는 오히려 이러한 해결될 수 없는 난점을 지닌 의미이론을 포기하시지 않는 이유가 더 궁금합니다. 04-06   

 병장 이승일 
 태식 /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보단 부담스럽게라도 설명하는 이론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태식씨께서 생각하시는 대안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1. 인식주체가 모두 죽는다면 어떠한 인식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식주체가 모두 죽는다고 모든 존재가 사라진다는 말은 오늘날 그 누구도 받아드리지 않는 유아론입니다. 만약 비물질적인 존재가 실재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시간-공간적 연장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언제부터' 그리고 '어디에' 존재하느냐는 물음은 무의미합니다. 이 모두 물리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형이상학적 대상에 대한 속성과는 그 범주 자체가 다르겠죠. 

2. '비트겐슈타인적그 전제' 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군요. 모든 과학은 오히려 객관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믿음 위에 형성되어있는데, 이 점에서 보자면 그러한 실체를 거부하는 가정이야말로 과학과 철저하게 대립함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어떤 과학도 그러한 가정 위에 성립할 수 없습니다. 유일하게 시도되었던 것이라면 마흐의 어설픈 물리학 정도가 있겠군요. 그나마 구체적인 형태로는 아예 제시조차 못했습니다. 

3. 이데아론이 과학적 사실과 배치된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데아론이 과학에 의해 전혀 지지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혀 거부되지도 않습니다. 서로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죠. 이데아의 존재는 경험과학의 내용과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04-07 * 

 병장 성태식 
1. 저는 인식주체와 관련하여 '이데아'에 해당하는것만 문제를 제기했을 뿐 다른 사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바깥에 사물이 없다.'는 주장도 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걸요. 간단히 줄여서, '이데아'가 그 실질적 내용 없이 단지 인식의 설명을 위해 필요한 대상이라면 인식의 가능 여부를 떠나 애시당초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2. 과학적 사실과 배치된다는건 연장을 갖지 않는 사물에 대한 주장 때문입니다. 연장을 갖지 않는 것은 감각적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감각적 확인이 불가능한 주장은 최소한 과학에서는 거부되어야 마땅하지요. 

3. 언어가 지시하는 '무언가'를 바꾸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문제는 그 '무언가'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덧붙이는 행동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