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를 읽고 - 영화 트로이와 함께
병장 김지민 04-11 12:56 | HIT : 262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호메로스를 읽지 않고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다. 고전으로서의 가치 말고 작품 자체로서의 가치 또한 그리 높다는 말인가. 문학작품으로서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사랑하시는 독자분들께서 나의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분개하실 것이 틀림없지만, 나는 영화 '트로이'를 먼저 본 뒤에 '일리아스'를 보게 되었고, 영화에 비해 센스가 떨어지는 원작 문학에 대하여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고전이라는 것인 현대 플롯에 비하여 센스가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그래서 그것을 감안한다면 시대적으로 보았을 때 혁신적임은 물론(문학의 시초에 가까우니까) 매우 훌륭한 작품이며, 고전으로서 가치 역시 높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 시대 상대적인 비교가 아닌 동시대로 맞춰놓고 해 보는 비교 평가이다.
혹자는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보며, 상업성에 물든 플롯 따위를 어디 고전 호메로스에 비교하려 하느냐 하며 울분을 토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욕을 감안하고 나도 이야기를 해 보려한다. 이 이야기는 영화 트로이와 고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묘사된 부분에 대한 차이점과, 그 호불호에 대해 개인적인 주관을 섞은 이야기로서, 문학적인 가치는 많이 떨어짐을 미리 밝혀둔다.
또한, 이 대조는 픽션과 픽션의 대조일뿐, 역사적으로는 따지고 있지 않음에 대해서도 미리 밝혀둔다.
신의 출연
일단 내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으며 느낀 최초의 놀라움 중 하나는, 신의 출현이 플롯에 있어 인간의 출현과 비율의 50:50에 가까울 정도로 잦다는 것이었다. 트로이를 먼저 보고 신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본 필자로서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영화 트로이에서는 신들이 '엑세서리'에 불과했다. 이런 영화를 본 뒤에 일리아스를 본 나로서는 신의 등장이 갑작스러울 수 밖에 없었고, 생각했던 스토리와는 전혀 다른 스토리의 만남을 겪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차이점을 극대화 시켜 표현해 볼 때, '일리아스'가 신과 인간의 이야기라면, 트로이는 다만 '인간'의 이야기이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학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신의 출연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엄청난 비율을 차지하는 까닭은, 아무래도 '구전문학'의 성격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호메로스가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 '트로이의 목마'이야기를 텍스트로 정리하여 편집하였고, 이로서 문학텍스트의 확립이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구전문학으로서의 성격까지 버려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대 서사시를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그 당시에 무시무시하게 여겼을 '신'들의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구전자들 중에는 또한 얼마나 많은 성직자들이 있었겠으며, 그런 성직자들의 필터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신들이 사건과 사건에 개입했을 것인가를 따져 본다면, 신들의 출연 비율이 어찌하여 그리 높은지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의 출연이 있음으로 해서 얻게 되는 효과는 무엇일까. 문학적인 가치로서 보았을 때 신의 출연이 텍스트 플롯에서 지니는 가치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다만, 어리둥절한 사건의 개연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던가, 극적인 사건의 전개를 위한 도우미역할, 문학 외적으로 보았을 때 종교의 설파 효과 정도를 이야기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플롯을 위해서 사용되기에는 현대적인 가치로 생각해 보았을 때 센스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 같은 세상은 '어떤 일이 이런 신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생긴일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에 대해 대부분 반감을 표하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가치에서는 플롯과 사건의 개연성을 더욱 원하지 신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 인물의 출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웅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하나의 전쟁을 문학 속에 집어 넣었다는 스케일 뿐만이 아니라 그 세세한 묘사 묘사에 있다. 영화 트로이에서 다만 장면 장면 엑스트라들의 죽음으로 전쟁의 스케일을 표현한 것에 비하여,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정말 세세한 엑스트라들의 이름은 물론 출신 지역과, 출신 배경, 계보와, 죽을 때 어느 부위에 창이 찔려 죽는지, 등등의 묘사까지 포함해 나가며 규모와 퀄리티를 함께 높이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물론 이러다 보니 좀 쓸데없이 정신이 없어지고, 주요 플롯에서 오히려 멀어지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세세한 묘사에서 빛나는 그 전쟁의 중량감은 빼놓을 수 없는 '일리아스'의 웅장합이다.
또한 엑스트라는 물론 주요인물의 등장에서도, 영화 트로이가 일리아스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그 인물수가 떨어지는데, 이것은 기껏해야 180분의 러닝타임을 갖는 영화의 측면상 어쩔 수 없는 단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리아스에서 나오는 몇몇 인물들이 영화에 나오지 않는 것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캐릭터의 센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오히려 현대의 작품인 '트로이'의 인물들이 원작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인물들보다도 더 과장되어 있고, 멋들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옛날 작품일수록 오히려 유치한 설정 탓에 인물들이 괜히 멋부리고, 사람 냄새 풍기지 않는 '정의'등을 운운하고 막 그럴 것 같은데 이 '일리아스'와 '트로이'의 경우에는 그런 센스가 반대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헥토르' 인물의 묘사이다.
영화 '트로이'에서 우리는 남자고 여자고 다 '에릭바나'에게 반할 만큼 헥토르역을 좋아했으며, 그의 용감무쌍함과 가정적인 모습과, 명예를 중요시 하는 모습, 동생을 사랑하는 모습 등을 존경했었지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보면 헥토르는 그런 모습과 어느정도 부합하면서도 '에릭바나'의 헥토르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지없이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단 적인 예로, 파리스를 '기집질이나 하는 기생오라비 같은 망할 녀석'이라고 책망하는 부분이라던가, 아킬리스와의 담판에서 겁이나 성 둘레를 세바퀴나 돌며 도망다녔다는 부분 등에서 우리는 조금 실망스럽지만 오히려 인간적이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헥토르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아킬리스 역시, 영화에서와는 달리, 조금 더 이기적이고 추잡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브리세이스를 대하는 면에서 훨씬 더 여성 비하적일 뿐더러 사랑과는 동떨어진 몸종 정도의 생각을 품고 있다. 또한, 영화에서와는 달리 자신의 친구 파트로 클로스에게 직접 자신의 갑옷을 주며 ' 내 갑옷을 입고 싸워서 전장의 사기를 높이되, 적들을 쫒아내면 다시 돌아오라'정도의 부탁을 하는 등, 이기적인 면모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헥토르와 아킬리스의 인간적인 면모가 소설 '일리아스'에서 두드러 지는 것은, 소설 내에 '신'이 직접 등장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때문에 신과 인간은 완벽한 이분법적 묘사로 이루어 지고, 인간은 인간답게, 신은 신 답게, 그리하야 신이 인간을 돕는 당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캐릭터 설정은 고전 호메로스쪽이 더욱 '인간적'이지만, 플롯으로 볼 때, 그리고 캐릭터 자체로 볼 때 아무래도 매력적인 것은 영화 '트로이'쪽이 아닐까 한다.
플롯의 차이
영화 '트로이'와 일리아스는 중요 부분 몇몇 군데에서 플롯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1. 브리세이스와의 러브스토리
2. 파트로클로스의 출전
3. 아킬리스와 헥토르의 대결
4. 프리아모스 왕의 아킬리스 접견
다른 차이점도 수도 없이 많지만 일단은 요정도에서 큰 차이점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일리아스는 '헥토르의 장례'로 그 내용이 마무리 되어있기 때문에 그 이후의 플롯에 대해서는 '트로이'와 비교할 수 없음을 밝혀둔다.
일단 1번 브리세이스와의 러브스토리 면에서는, 영화 트로이가 일반적인 영화의 러브스토리 면면을 갖추고 있는데에 비해서 일리아스가 전혀 '러브'운운할 껀덕지를 가지고 있지 않음의 차이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트로이'에서 보이는 스톡홀롬 신드롬(납치범과 인질이 사랑하게 되는)의 플롯 따위는 전혀 일리아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브리세이스가 미녀인 것은 맞고, 아가멤논이 함부로 뺏은 탓에 아킬리스가 화가 난 것은 맞으나, 아킬리스가 그 자리에서 브리세이스를 되찾는 영화의 플롯과는 달리 소설에서는 다만 화를 삭히는 것으료 표현 되고 있다.
이는 '대 서사시'라는 측면에서의 일리아스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러브스토리가 아니었나 싶다. 아니면 호메로스가 과감하게 삭제시킨 면일 수도 있다. 원래 구전일 수록 너저분한 러브스토리가 들어가게 마련일 듯 싶은데.. (흐흐)
2 번 파트로클로스의 출전면은, 책을 읽는 나로서는 충격적이었다.
소설에서는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리스의 허락 하에 출전하는 모습으로 나와 있다. 물론 명령을 일부 어긴 탓에 죽음이라는 파멸을 몰고 오긴 했지만, 허락을 받고 출전하다니? 아킬리스 몰래 갑옷을 빼입고 출전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영화 속 플롯에 비하면, 훨씬 덜 충격적이고 덜 슬프다. 나는 때문에 영화 트로이에서의 플롯에 더욱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러한 플롯이 더욱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시키기에 훌륭하기 때문이다. 알지 못했던 죽음. 알고 보니 파트로클로스!!
내가 니 애비다! 에 필적하는 놀라움이랄까!!
3 번 아킬리스와 헥토르의 대결
영화에서는 이른바 맞짱을 뜨고 있으나, 소설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난잡한 전투 가운데 둘이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며, 삼국지에서 연상되는 일기토 형식의 싸움을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영화에서의 결투장면이 당연히 관객들을 흥분시키기에 알맞으며, 둘의 싸움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다. 일리아스에서도 좀더 둘만의 싸움으로 부각시켰다면 어땠을까?
4 번 프리아모스왕의 접견 장면은, 다른 대부분의 묘사에서와의 차이점처럼 '신의개입이 그 극명한 차이다. 일리아스에서는 전령의 신 이리스의 도움을 통해 프리아모스가 신의 은총을 얻어 쥐도 새도 모르게 아킬리스의 움막에 들어가 접견을 하게 되는데, '그냥 몰래' 잠입하여 접견에 성공한 영화 트로이의 내용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차라리 개연성의 측면에서 '일리아스'의 개연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영화 트로이에서 무척 아쉬운 부분이랄까.
장르로서의 차이
지금까지 파트별로 나름대로 나누어 비교를 해 보았는데, 사실 이러한 비교는 일리아스와 영화 트로이가 다른 장르인 만큼 사실 조금은 무가치한 비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에 상업성에 측면을 둔 영화와, 구전되어 온 이야기를 문학으로 확립한 호메로스의 두 플롯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냐만은.
재밌자고 하는 짓이기도 하고 뭐. 변명하자면.
하지만, 트로이의 목마 사건에 대해서 다만 '영화 트로이'로만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것은 잘 못된 것이며, 이를 논하기 이전에 일리아스를 읽어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 차이점에 대한 논의가 어느정도 가치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병장 이영준
영화 트로이, 재미있게 본 영화 중 하나입니다.
이런 형식으로 영화와 문학의 비교를 읽게 되어 흥미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 참고로 일리아스는 제가 읽다가 때려친 책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너무나도 세세한 묘사 덕분에 스토리에의 몰입도가 떨어져서 그랬던 것 같네요.) 04-11
병장 김선목
지민씨를 보면 왠지모르게 참 저랑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04 학번 사대생에 05년 9월번이란게..)
우연인지는 몰라도 오늘 저 역시도 일리아스의 마지막장을 덮었고
제가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윗글에 드러나네요.
다만 저는 저렇게 구체적인 표현을 못한다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말예요.(웃음)
소설을 읽는 내내 몇년전 봤었던 영화 '트로이'가 자꾸 겹쳐지는건 어쩔수가 없더군요.
자꾸 나도 모르게 영화랑 비교하게되면서 읽게 되었다는...
그나저나 저는 얼른 '오디세우스'를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04-11
병장 양각산
완독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백일휴가 복귀때 후임녀석이 들고 온 두권과 공교롭게도 똑같아요! 일 빵꾸내면 그 책 모서리로 때리겠다는 진심 섞인 농(음..) 을 건낸 기억이 나는군요. 암튼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페이지수와 존재감을 자랑하는 책이죠.
그 녀석 얘길 좀더 하자면.. 일병 정기를 복귀한 놈의 손엔 이탈리아어로 쓰인 '신곡' 이 들려있었고, 뜨악해 하는 제게 던진 녀석이 제게 한 마딜 하더군요, '지금까지의 독서는 신곡을 읽기 위한 준비작업이었습니다.' 지금 목표는 신곡 '암송' 이랍니다. 어쩌다 싫은 소리라도 했다 치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조용히 이탈리아어를 뇌까리는.. (뭐라고 한 거냐! 신곡 연옥편 84행을 외웠을 뿐입니다.).....
글 잘 읽었다는 리플을 달려던게 이런 헛소릴 늘어놓았네요.(땀과 웃음) 04-12
병장 심승보
지민/ 재밌게 잘 읽었어요. 근데 전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정서적으로 피를 끓게 하더군요. (웃음) 한번 진지하게 읽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까치판이나 김원중 교수 번역본을 추천합니다. 워낙 유명해 이미 읽으셨다면, 한문 원문의 직절한 늬앙스를 느끼면서 재독해 보시면 어떨까요. (퍼억- 이건 사실 제 희망사항입니다.) 신임 보안관 지민씨가 빵야-! 빵야-! 올려주시는 <사기열전> 후기라, 생각만 해도 흥미 만점입니다욧.
각산/ 재밌는 후임이군요. 그 깊은 이유가 궁금할 뿐입니다. 음, 그렇담 아이스퀼로스나 소포클레스 비극은 희랍어로 읽었단 말입니까? (띠용-) 04-12
병장 이승일
저도 지민씨처럼 <트로이> 를 먼저보고 <일리아스>를 나중에 읽었습니다. 저희가 <트로이>를 더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현대적 감각에 맞게 각색한 것이니까요. <트로이> 의 놀라운 점은 <일리아스> 를 단지 요약한 것이 아니라 (사실 왜곡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완전히 다른 주제, 다른 형태로 재해석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지민씨가 느끼신대로 <트로이> 와 <일리아스>는 소재만 같을 뿐, 주제나 다른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다른 스토리이죠.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인간 삶의 비극성" 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에 대한 시각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리아스> 에서의 인간은 신들이 각색하고 연출하는 연극의 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비극성의 책임은 신들에게 있는 것이며, 인간들의 삶만으로는 완성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비극성에 대한 극복은 인간의 힘으로는 사실 "불가능" 합니다. 운명에 대항한다고 해도, 결국은 신들의 뜻에 의해 마무리 될 뿐이죠. 심지어 장난에 가까운 뜻에 의해서 말입니다. 인간으로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밤하늘의 별자리가 되는 것 뿐입니다. 물론 이 역시 오직 신들의 뜻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일이지요.
심지어 신들 역시 세계의 완전한 주인은 아닙니다. 그들 역시 '모이라' 라고 불리는 운명의 꼭두각시일 뿐이지요. 그 어떤 신들도 모이라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로써 인간사의 부조리함은 완전히 불가해한 영역으로 넘어가며, 사람들은 분노를 넘어 숭고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트로이> 는 비극에 대한 현대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트로이> 에서 비극의 원천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인간의 유한함,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 그리고 그 운명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 이라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가깝습니다. 동양문화권에서는 역사라는 것이 신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거든요. 역사적 평가는 가장 최고의 심급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단지 인정을 받는다는 수준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자리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트로이> 가 더 재밌지만, <일리아스> 의 세계관이 훨씬 더 심오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기열전> 은 그 세계관에 있어서 <일리아스> 보다는 <트로이> 와 더 공통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04-12 *
병장 김지민
선목 / 아하. 그런 공통점이! 신기하네요. 04 사범대생에 05년 9월 군번이라!
승보 / 사기열전, 궁금해집니다.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데, 문장은 읽어본 적이 없네요. 구해볼까나~
승일 / 역시, 벙개때 논의 되었던 것처럼 이승일은 요즘 책마을에서 <저 높은 곳에 위치하여 사람들의 글을 읽고 가르쳐주는 역할>을 즐기고 있는 것 같네요. 푸훗훗. 당했다 당했어. 04-12
병장 진규언
지민님 잘 읽었습니다. 영화과 문학작품을 비교해서 글을 올려주시니, 일단 그 노고에 감사합니다. 영화 <트로이>만 재미있게 봤는데, 영웅 대서사시를 이렇게 잘 해석해주셔서 고마와요. 음.. 하나 드는 궁금증이, '호머'의 '일리아드'는 단순히 발음상의 차이겠지요 ? 지금보다 더 어렸을때 제목만 들을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라고 들었던것 같아요..(음..음..) 04-12
상병 박수영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트로이를 볼때 에릭바나와 브랫 핏에 눈돌아가는 여자친구를 견제하느라 영화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핫핫) 04-12
병장 김지민
규언 / 그런 듯 싶어요. 저도 일리아드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표기는 illias더군요.
수영 / 근데 브래드 피트는 갑옷이 별로 안어울리는 것 같아요. 에릭바나는 잘 어울리던데. 브래드 핏은 역시 정장이... 04-12
상병 박수영
지민 / 그러게요. 그 무슨 영화더라 미스터& 미시즈 스미스 던가요.
머리도 짧은데 정장을 빼입으니 어찌나 빛이 나는지.
저도 같은 짧은 머리인데 왜 이리 다를까요 (하하) 04-12
병장 이승일
지민 / 오, 맙소사,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를 너무도 부끄럽게 만드시는 군요... 04-12 *
병장 김은민
저도 트로이를 먼저 보고 일리야스를 읽었는데 정말 공감합니다.
저만 못 느끼는건가라면서 자괴감을 느꼈었는데, 위의 글을 보니 위안이 됩니다.
오히려 저도 사기가 더 흥미진진하고,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