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예술이다-긴장에 대하여 (병장 한상원/051110) 
 
 
 
 
르네상스 이후 우리들은 하나의 회화나 조각품을 단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서 파악한 현실의 집약적 표현, 다시 말하면 광범위한 세계와 여기에 맞서 대항하는 동일체로서의 주체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관계로부터 생겨나는 하나의 현실구조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중

예술이란 무엇일까. 이번에 새로이 필진으로 함께해주신 승민씨의 얼개에 있던 집지 키노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키노가 영화를 예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든 잡지라는 말 이면에는, 영화를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가, 영화는 예술인가 아닌가 등의 보이지 않는 논쟁이 그 잡지 언저리에 있음을 의미한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일독을 마친후, 나는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예술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무엇이 예술이라 불리워질 수 있을까. 예술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은 따로 구비되어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하우저는 앞서 인용한 구절에서 엿볼 수 있듯 그의 저작에서 예술이란 창작하는 개인과 그가 맞닥뜨리는 세계와의 끊임없는 긴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위의 인용된 문구에서 예술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다름아닌 “세계, 주체, 긴장” 이라는 세 단어라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저마다 하나의 개인으로 <자아-타아>의 커다란 이분법 속에서 세계를 만난다. 묘한 것은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는 주체가 어떠한 상상력을 지니는지,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는지에 따라 그 세계는 나에게 다르게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무한히 드넓은 세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 또한 유일한 개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세계와 주체가 만나는 그 긴장이라는 것 역시 무한히 반복되고 무수히 다양한 모습들을 낳게 된다는 것은 논하고자 하는 대상의 초점을 더욱 넓게 만든다. 

다시 말해 혹자는 떨어지는 나뭇잎에서 생명의 유한함을 느껴 괜히 우울해질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보다 효율적인 겨울나기를 위해 자연이 안배해둔 것만 같은 그 진리에 무언가를 발견한 듯 감탄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되겠다.

니체의 철학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최정상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니체의 관점에서는 신이 죽어버린 이 불가해한 세계가 너무나 부조리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개인주의자 혹은 자유주의자나 아나키스트라 칭해질 수 있을 것 같은 후자의 사람에게는 온갖 국가나 민족, 사회 등의 틀이 주어져 한 개인을 존재로서의 순수한 개인으로 보기 이전에 어느 나라의 국민, 어느 민족, 어느 인종으로 규정짓게 되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자연을 둘러싼 다양한 감정과 깨달음, 세계와의 철학적 소통으로 빚어지는 부조리나, 답답함은 주변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넓은 의미의 긴장감이다. 이 긴장감을 양분으로 자라난 문학이나 회화, 음악이나 희곡 등으로 승화된 결과물을 우리는 예술이라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적인 인물들을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키고, 사건을 일으키고 그 사건의 해결을 종교적 선을 지향하는 것으로 마무리짓는 시도를 거듭하는데, 그 역시 도스토예프스키만의 세계와의 긴장, 그리고 그 긴장을 해소하는 문학적 실천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과 긴장관계에서 살아간다. ‘긴장’이라하는 감정적인 상태는 영향력과 영향력의 치열한 자리싸움으로 생각된다. 한편의 영화를 보고 그 영화가 좋거나 나쁘거나의 평을 하게되는 것은 그 영화가 드러내고 있는 의미와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해석과의 긴장에서 비롯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박찬욱이 세계와 빚어내는 긴장을 담아낸 것이라면, 그 긴장감어린 영화 속 세계와 관객은 이차적으로 또 다른 긴장을 빚어낸다. 당연히 그 긴장은 관객 수 많큼 다양하다.

비단 영화나 예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오늘도 주변과 날카로운 긴장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꿈을 펼치고자하는 커다란 욕구와 그 실현의 가도위에 선 커다란 장애물같은 현실의 벽이 마찰을 일으킨다. 이러이러했으면 하는 멋진 세상에 대한 나의 이상과 더없이 삭막하고 무너질 것 같지 않은 현실의 단단한 장벽이 늘상 거기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살아가고 그 긴장관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또 다른 힘이다. 

세계와 내가 일으키는 긴장은 나로 하여금 안도하지 못하게 한다.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주변을 해석해내고, 나를 뒤덮은 그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부단한 시도를 만든다. 그 시도는 소위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는 어쩌면 일탈이나 사춘기로, 이후 20대의 청년기에는 치열한 고독 속에서의 실존적 고민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내 주변에 있는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즐기려는 마음을 품는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실천한다. 나의 노력으로 나는 단순히 부모님 슬하의 한 아들, 딸이 아니라 사회의 그물망 속에 얽혀있는 하나의 사회적 존재가 되고, 영화를 보고 그에 비판을 가하거나 찬사를 보내는 관객중 하나가 되고, 책을 읽고 글을 남기고, 누군가의 글을 보며 댓글을 남기는 행위들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가족을 형성하고, 자신의 가족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것 모두 내가 이 세상과 어떻게 반응하고, 세상이 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포함하는 긴장관계 속에 어우러져 있다. 우리의 인생은 그 긴장관계의 주변에서 모습을 갖추어가는 하나의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예술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계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에게 반응해온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겨울이 되었다. 눈을 보며, 이 고운 눈송이를 결국 언 손을 호호 불며 치워야하는 짐으로 여길 것인가 겨울을 진정 겨울답게 하는 운치 있는 자연의 선물이라 생각할 것인가. 이 웃지 못할 긴장. 내가 누구고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빚어지는 상대적인 긴장관계가 있어, 또한 때때로 인생이 즐거운 것이 아니겠는가.

인생은 말 그대로 한편의 예술작품이다. 기왕 예술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만큼, 우리의 살아냄으로 보다 의미있는 인생의 예술을 빚어내보지 않겠는가.





병장_박대열 (2005-11-10 09:23:14)  
저는 예술을 대단하게(또는 커다랗게) 보지 않습니다. 예술은 그냥 분야의 한 부분이며 인간의 감성적 범주에 속할뿐이죠. 포괄적인 의미의 예술이라면 우리가 감성적(또는 예술적) 감동을 받았을때 '예술이다'라는 표현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고 구체적인 의미의 예술이라면 말그대로 fine arts겠죠.(물론 이렇게 나누어 본다는 것은 말도 안되지만 제가 스스로 구별하기 쉽게 나누어 본 것입니다)
영화가 예술이 될 수 있지만, 저는 '예술'보단 '영화'라는 이름자체를 더 의미있게 생각합니다  

병장 이준영 (2005-11-14 14:21:51)  
저와는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지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같은 긴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충족을 위한 긴장>과 <창조적 긴장>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창조적 긴장 역시 그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무언가 자신을 충족시킨다, 혹은 남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는 측면에 있어서 충족의 범주에 속할 수 밖에 없겠지만- 단순히 자기 자신을 충족시키기 위한 긴장과 다르게 창조적 긴장은 해당 창조물에 의해서 타인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차별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한 가정, 좋은 남편/아내/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도 타인의 변화를 유도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 규범화되고 식상한 긴장이기에 긴 역사동안 역치(자극에 대한 반응도)가 높아져버린 인류에게 이제 그런 긴장은 당연한 활동이지 긴장의 범주 속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오히려 창조적인 긴장이 시들어가는 작금의 현실 앞에서 가끔은 좋은 가장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아나키즘에 입각한 테러리스트가 되어보라! 고 말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편이 차라리 여러모로 강한 긴장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기에.

개인이 온전히 자신을 살아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스스로에게 매여있는 지나치게 많은 관계 - 가족이며 친구며 연인 등 -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긴장 안에 갇혀서 인생의 예술을 빚어내어 보는 것보다 관습화된 긴장의 테두리 밖을 떠돌아보는건 어떨까도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