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병 윤정기   2009-08-14 14:45:33, 조회: 146, 추천:0 

1.
종생終生ㅡ 이라는 낱말은 대게가 생에 대한 거치적거리는 수사修辭를 전제하지는 않는가. 구구한 삶의 궤적을 따라, 영원불멸의 욕망을 넘어, 그것은 어떤 다른 이름으로서의 진득한 혈서본血書本이다. 

불그스레한 그래서 얼마간의 희끄무레함을 간직한 내 생의 색깔이 완전히 바라질 때, 나는 과연 어떠한 전위와 해체의 단어를 내뿜을 것이며, - 그것은 생에 대한 또 다른 2차적 갈망의 발현일는지 모르지만 - 너스레했던 나의 마지막을 장식키 위한 종생의 장章을 어떻게 휘둘러 꾸미려 할 것인가. 아니, 아니, 외려 이러한바 종생은 내게서 종생悰生하나?*



2.
[ “쓰레기.”
  “우거지.”
  이 구지레한 단자의 분위기를 족하는 족히 이해하십니까.]

족히 이해하나? 족하(그대)는 과연 족히 이해하십니까? 
아니, 이해보다도 나는, 단자monad의 실체와 분위기에 치중한다. 과연, 그러하다. 사랑의 실체와 궁극적 요소에 대해 포근히 살펴보듯이, 나는 스무스하게 “쓰레기”와 “우거지”를 종생을 피력함에 있어 가장 긴요한 실재적 요소로써 두둔한다. 어쩌지 못하는 깜냥의 부재다.

[ 미문. 미문. 애하??! 미문.
   미문이라는 것은 적이 조처하기 위험한 수작이니라.]

허지만 그럼으로써 나는 내 생을 전대미문未聞의 사건으로써 모르는 척 치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슷하게도,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고 외쳐대던 희대의 군인 모(某)는 정작 자신의 생이 외쳐대는 목소리는 듣지 못한 모양이더라.

[ 영원히 선생님 ‘한 분’만을 사랑하지요. 어서어서 저를 전적으로 선생님만의 것으로 만들어주십시오.  선생님의 ‘전용’이 되게 하십시오.]

어이야, 정희! 여기서 우리는 모파상의「비곗덩어리」를 생각하자. 

[ 가족은 14세의 딸에게 매음시켰다. 두 번째는 19세의 딸이 자진했다. 아- 세 번째는 그 나이 스물두 살이 되던 해 봄에 얹은 낭자(유부녀)를 내리고 게다 다홍 댕기를 들여 늘어뜨려 편발처자(처녀)를 위조하여는 대거하여 강행으로 매끽하여버렸다.]

정희는 실제 나붓나붓하다. 나스르르하다. 게다가 정희의 입상은 ‘제정 러시아적 우표딱지처럼’ 적잖이 슬픈 것이다. 속달 편지에서, ‘결미의 비견할 데 없는 청초함이 장히 질풍신뢰를 품은 듯한 명문’을 써내려간, 그리하여 종생이 치사한(사치스런) 이 소녀는, 이상의 ‘전용’이 되려 한다만은 사실은 ‘공용共用’이다, 지방덩어리다, 우거지다. 

[ 자진한 ‘우매’, ‘몰각’이 참 어렵다.
보아라. 이 자득하는 우매의 절기絶技를! 몰각의 절기를.]

이 얼마나 근사한가. 자득하는 존재의 우매함, 무지몰각한 생에 관한 깨달음. 그것은 “도련님”으로서의 생에 대한 인정이자 나아가서는 반항이다. 그러하면 이상은 득도하였나? 득생得生하였나? 아니다. 그는 청천벽력, 연옥의 나락으로 떨어지었다. 스러지듯 낙화洛花하였다. 

[ ‘독화毒花’
족하는 이 꼭두각시 같은 어휘 한마디를 잠시 맡아갖고 계셔 보구려?
예술이라는 허망한 아궁이 근처에서 송장 근처에서보다도 한결 더 썰썰 기고 있는 그들 해반주룩한(얼굴이 말쑥한) 사도死都의 혈족들 땟국내 나는 틈에 가 낑기어서, 나는ㅡ ]

무엇을 했는가! 무어를 보고 무어를 생각하였는가, 무어를 먹고 무어를 토해내었으며, 무어를 말하고 무어를 엿들었으며, 무어를 암기하고 무어를 망각하고, 무어를 소유하였으며 무어를 실족하였는가, 삶을?
생을 마름질하는 기술 외에 나는 또 달리, 이상의 말마따나 어떤 연마를 더 거쳐야 할, 초초楚楚한 고독 같은 것을 비루한 운명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은 내가 어찌할 축축한 이부자리가 아닌 어느 오래된 옥상의 비쩍 마른 빨랫감 같은 것이리라.

[ 의료意料하지 못한 이 한 ‘종생’ 나는 요절인가 보다. 아니 중세 최절中世崔折인가 보다. 이길 수 없는 육박. 눈먼 떼까마귀의 매언罵言속에서 탕아 중에도 탕아 술객 중에도 술객. 이 난공불락의 괴멸······(중략)

······내부乃夫(남편)가 있는 불의. 내부가 없는 불의. 불의는 즐겁다. ]

밀려드는 생의 공포에 대항하여 리비도는 눈먼 떼까마귀처럼 푸드득 솟구치고, 그래서 우리는 사정한다. 절망하고, 그리고 무너진다. 요절하고야 마는 것이다. 한웅큼의 피를 두어 번 토해내고 나서야 이상은 자신의 수명을 올바로 인지했다고 하였다던가. 그것이 난공불락의 괴멸인가. 불의는, 아니아니 ㅡ 그럼 로맨스는 공포에의 쾌락인가. 차라리 유아독존의 탕아적 주란酒亂인가.
그리하고도, 정희는 결국 다른 대타자의 욕망을 좇아 S에게로, 떠나간다는 말인가.

[ 나는 물론 그 자리에 혼도하여버렸다. 나는 죽었다. 나는 황천을 헤매었다. 명부에는 달이 밝다. 나는 또다시 눈을 감았다. 태허에 소리 있어 가로되 너는 몇  살이뇨? 만 25세와 11개월이올시다. 요사夭死로구나. 아니올씨다. 노사老死올씨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는 끝나지 않는다. 왜? ]

만 24세와 8개월이올시다. 요사입니까? 아니올씨다. 노사올씨다. 노사입니까? 아니올씨다. 객사올씨다. 객사입니까? 아니올씨다. 안락사이올씨다. 고독이올씨다. 인위人爲올씨다. 죽음이라 함은.

왜? 우리는 왜?

왜 늙었는가. 딴은 자의식의 과잉에 기인하나? 아니라면 조숙한 리비도? 것두 아니라면 이것은 사회적 죽음에 대한 모종의 징후이자 발견일 것이다. 
어불성설. 
이상의 죽음은 나아가 작가의 죽음을 의미할 수 있는가? 그럼 바르트?
그렇다면, 왜 우리의 종생기終生記는 영원한가. 이상은 그 연유를 드로어즈의 끈을 성히 푸는 정희에게로 ㅡ 우거지에게로 ㅡ 돌린 모양새더라. 

[ 자네는 노옹일세.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일세. 아니, 아니.
자네는 자네의 먼 조상일세. 이상以上. ]

굳바이. 나는 문득 내 귀가 가렵다. 아니, 무릎이었나?
굳바이. 나는 내 멀디 먼 귀에다 각혈하느니. 이상以上.



3.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상은 ‘사적 언어’를 뇌까리는 자의적인 언어의 형성자, 그런 의미에서 ‘언어게임’의 파괴자다. 하지만 더불어 어두웠던 시대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신화화된 인물,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비트겐슈타인 후기철학을 대표하는 ‘언어’와 ‘놀이’의 방법론을 추구한 글쟁이다. ‘메타언어’화된 - 하위명제를 설명하는 상위명제의 입장에서 - 언어는 놀이화되며, 이것은 ‘상호 텍스트적’인 글쓰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 나는 내 「종생기」가 천하 눈 있는 선비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놓기를 애틋이 바라는 일념 아래 이만큼 인색한 내 맵시의 절약법을 피력하여 보인다. ]

이렇듯 그가 종생기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독자와의 ‘놀이’는 종생기에서 일종의 ‘독해방법론’이자, 이상이 추구하고자 했던 패러디화된 생에의 욕구표현이었던 것이다.

유언이라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종생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선언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자서전autobiography이라는 장르 또한, 사회속에서 나타내는 그 정치적 성격이란 사실 유언이라는 ‘에피그램epigram’의 기능적 특성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에서 우리가 발견해내야 하는 것은, 결국 단순히 ‘죽음’에의 공포가 만들어내는 타자와의 회한적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종생’의 무게에 대한 ‘해소’ 즉, 삶의 무게에 관한 분출로써의 사회적 ‘의미’에 관한 생각이다. 이상의 종생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노사老死했다. 그리고 그런 종생에의 반복은 기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종생기를 읽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이상 언어의 ‘다의성’과 ‘난해성’에 관한 것이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무지한, 그저 종생하는 나 자신에의 회의가 아니었던가 싶다. 누군가의 노래가사처럼, 우리는 종생 ‘살아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창시절 그 유명한 ‘날개’를 읽으면서 느꼈던 일종의 주체적 ‘해방감’이 종생기를 읽으며 일종의 ‘즐거움’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르트가 말했던 ‘저자의 죽음을 통한 오픈텍스트 속에서 시니피에를 찾아가는 모험과 교류, 그리고 그 안의 희열과 낭만적 에로스를 찾아가는 과정‘* 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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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생悰生 : 생을 즐기다. 본인이 만들어낸 무식한 한자어.
* 메타언어 ~ 상호텍스트적 글쓰기 : 이상 단편집 <작품해설> 일부 참조.
* 저자의 죽음을 ~ 찾아가는 과정 : 황민우(예) 「저자란 무엇인가, 롤랑바르트」에서 발췌.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9-16 09:04)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10-01-27
11:19:51 



상병 김유현 
  읽었습니다. 

이상이 좀 더 즐거워지는군요. 2009-08-22
09:08:14
  



상병 진수유 
  잘 읽었습니다. 2009-08-24
15: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