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와 대중 진화의 상관관계 
 
 
 
 
역사적인 7월 11일. 세계인구의 날.
1987년 유엔이 정한, 올해 열아홉번째를 맞는. 세계 인구의 날.
그리고 시의성 획득을 위해 억지로 책가지로 옮겨놓은 글.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005년 출산 통계’에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08명으로 전년의 1.16명에 견줘 0.08명 줄어든 수치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봤을때 1.29의 일본, 1.37의 독일(2004년 결과)등을 제치고 세계 2위를 기록한 실정이다. 0.95명으로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중인 홍콩을 조만간 따라잡을지도 모르는 무서운 속도다. 

혹자는 이대로 간다면 2020년의 4990만명을 최정점으로 우리나라의 인구가 점점 감소할거라는 예측도 내놓는다. 인구 감소로 큰 타격을 받게되는 대표적 유아대상산업인 산부인과나 교육계의 종사자들은 점점 다른 분야의 일거리를 찾아나서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남들처럼 아이를 덜 낳는다. 유행을 벗어나며 살아갈수 없는 인간인지라 그들 또한 저출산에 맞춰 아이를 덜 낳으며 살아가고, 양육비보다는 자신에게 투자하는 돈을 늘리고, 자식을 황제처럼 키우려 애를 쓴다. 인구적 악순환의 증가다. 

강남의 모 산부인과 등지에서는 요즘 출산을 주 진료분야로 삼는 병원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산부인과 간판을 달고는 있지만 정작 피부클리닉을 동시에 운영하거나 비만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도 산부인과의 폐업은 줄을 잇고, 대학 산부인과 계열은 모집인원의 57%만이 지원하여 학생부족현상을 호소하고 있다. 

출산율에 직접영향을 받는 교육분야도 마찬가지다. 대학의 정원은 오히려 늘리려고만하지, 줄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동안 벌여둔 대학사업을 메울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여년 후면 대학입학예정자 수가 대학입학정원수를 훨씬 밑돌게 된다. 대학의 빈자리는 넘쳐날테고, 각 대학들은 어쩔수없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여야만한다. 벌써부터 대학교수들은 부업거리를 찾아 공무원 학원 같은 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대표적 유아교육산업인 유치원분야 또한, 서울시 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유치원의 수가 2001년에서 2005년 사이 133곳이나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전세계 어린들의 희망 방문지 1순위, ‘디즈니랜드’ 또한 최근 놀이동산이나 놀이기구의 추가 건립을 지양하는 전략을 확정했다. 대신 스파나 골프처럼 성인을 타깃으로 한 위락시설에 주력하기로 했다. 

유아인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있는 종이기저귀 생산기업들은 성인용 기저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분유업체들은 제품의 고급화와 다각화를 통하여 활로를 찾고 있다. 완구업체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이고, 교복, 아기사진전문점, 산후조리원 직접적 유아대상산업은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다.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지 오래된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면 고령화에 따른 매출 감소가 뚜렷한 분야로 편의점, 악기, 대학, 제과, 혼수 분야를 꼽는다. 모두 젊은 고객층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들이다. 기업의 신규인재 고용에 있어서도 일본은 어려움을 토로한다. 고령화 사회에 적응하기위해 변화하여야하는 일본 기업의 아픔들이다. 곧 우리의 현실이 될.

유아관련 산업을 주 시장으로 하는 기업이 아닌 일반기업들도 타격을 받는건 마찬가지다.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한다. 어제 봤던 것이 이미 지루한 것으로 되어버리는 바쁘게 변해가는 사회속에서 기업들은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린다. 

과거 인구증가시기의 기업들은 다양한 제품을 제공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다. 소비자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기존 고객들에게는 지루한 제품일지라도 끊임없이 유입되는 새로운 고객에게 그 제품은 새로운 것이었다. 새로운 고객이 제품을 접하면서 제품자체의 신선함은 떨어질지 몰라도 대중적 신선함은 항상 유지되었었다. 그러나 요새 기업들은 너무 바빠졌다. 지금처럼 인구가 늘지 않는 인구감소시대에서 오랫동안 같은 제품을 유지하는건 무리수를 두는 일이 되었다. 한정된 소비자들로 인하여 기존고객은 새로운 제품을 원하여 타 업체를 선택하고, 기존의 제품을 새롭게 접하는 새 고객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해 기존 고객을 놓치고서는 도저히 장사가 되지 않는다. 기업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기존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대한민국 재테크의 1위 후보인 부동산 업체들도 서서히 집값 하락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주택의 공급이 수요를 이미 초과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고, 곧 초과할거라는 예상도 내놓는 경제전문가들도 있다. 공급이 수요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화 되었다. 공급-수요 법칙에 따라 부동산 가격은 하락할테고, 남아도는 집은 다른 자산으로 환원되려면 입주민 보상금, 건물 파괴비용 등으로 오히려 더 많은 돈이 들게 된다. 또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층이 노후자금의 확보를 위해 부동산을 매각한다는 사실이 집값하락을 부채질한다. 대세는 하락이다.

경제계는 물론, 금융계, 교육계, 부동산계 등.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키며 수익을 창출하는 조직들은 이제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 한 그럴수 없게 되었다. 저출산 시대에 맞춘 새롭고 다양한 상품을 내놓아야하고, 급격히 변해가는 시장에 대한 조사를 게을리할 수가 없게되었다. 

이에 반해 실버산업이라 불리우는 고령친화산업은 오히려 호황을 맞고있다. 과거 80년대 고령인구(65세이상)는 146만명이었으나 요즘엔 466만명으로 3배이상 늘어났다. 실버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통용될 엄청난 잠재시장이다. 노인들이 노후생활을 위해 그동안 벌어둔 재산의 관리를 대신 맡아주는 ‘종합자산관리서비스’ 시장이 각광을 받고, ‘항노화 산업’이 주목을 끌고, ‘실버타운’이 성행중인 것 또한 이런 추세를 반영한다. ‘노인보험’ 광고나 요실금팬티 광고들이 요즘들어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러한 시대의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기업의 공격적 마케팅의 한 수단이다. 인구로 먹고사는 시장경제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시대변화다.

사회가 늙어간다.

노인 인구 비율이 증가하는 고령화 사회도 문제다. 우리는 교과과정 평준화로 인하여 모두 사회시간에 인구분포곡선을 배웠다. 노인의 비율이 낮고, 어린아이 비율이 터무니없이 높은 피라미드형은 못 사는 나라의 분포도이고, 생산가능인구 즉, 중간이 많은 항아리형 곡선이야말로 시장경제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인구분포 곡선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에 덧붙여 우리나라의 인구분포 통계를 보여주며 그것을 그리라는 숙제 또한 잊지 않았다. 통계에 의해 모눈종이 위에 정확하게 그려진 인구분포곡선은 항아리형 곡선과 매우 흡사했다. 대한민국 인구분포는 가장 이상적‘이었었다.’

그 인구분포곡선을 공부하며 난 거기에 시간의 흐름까지도 대입했었다. 피라미드형의 나라도 아이들이 자라나면 위로 올라갈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들도 항아리형 곡선의 모양을 갖추게 될것이다. 라고. 그리고 항아리형 곡선도 시간이 지나면 모든 세대가 위로 상승할테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역삼각형의 인구분포를 가지는게 아니냐고. 

나의 이런 이론을 책에 그려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친구는 면박을 줬다. 0~10대 인구가 아예 없는건 아니잖냐며. 누가 애를 이렇게 조금 낳겠냐며. 선생님께 물어봤다. 선생님도 같은 대답이었다. 아이는 새롭게 태어나고, 노인은 나이먹으면 죽으니까 항아리형 곡선은 언제나 유지될거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아이는 안 태어나고, 노인은 나이먹어도 안 죽는다면 선생님의 말은 이상론일뿐이다. 대한민국의 인구분포는 내가 예상했던 역삼각형 인구분포곡선의 형태를 점점 띄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인구는 더 이상 이상적인 시장경제의 인구분포가 아니다.

저출산으로 인하여 전체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로 인하여 왕성한 경제활동을 할수있는 생산가능인구의 비율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속에서 조금 예외적으로 바라보아야할 분야가 있다면 그건 바로 문화계다.

문화사회 또한 저출산과 고령화를 피할수 없다.

문화계 또한 인구 감소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는다. 경제인구의 감소는 문화를 향유하는 대중들의 숫자 또한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를 향유하는 대중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새로운 문화수용층의 숫자가 과거와 비교해서 줄어들고 있을 때, 문화계는 경제계의 그것과 같은 논리로 재단된다. 

문화창조자들은 고전적인 레퍼토리를 주구장창 밀어붙여보지만 모든 사람들이 새롭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새 세대는 강박적으로 새로운 것을 원하고, 구 세대는 습관적으로 새로운 것을 원한다. 오히려 경제계보다 더 심하다고 할 정도로 새로운 처녀(virgin)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낡은 것은 도태되고, 버림받는 세상에서 문화창조자 또한 끊임없는 창작의 고통으로 힘들어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던데. 더 이상 뭘 더 새로운 것을 바란단 말인가. 

문화창조자들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더라도 문화를 향유할 대중의 층이 얇다는 것 또한 문제다. 누군가가는 대한민국의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문화적 다양성은 보장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중들의 무수하고 다양한 관점과 향유와 관심과 비판과 지지를 얻어가며 문화는 자라난다. 대중이 없다면 문화는 자라나지 않는다. 대중없는 문화는 문화 창조자에게 태어난 모양 그대로 화석이 되어 남아버려지고 잊혀지며 사라진다. 문화를 자라나게 하는 것은 오직 문화를 즐겨줄 대중뿐이다. 

이러한 시대적 추세에 발맞춰 대한민국의 문화창조자들은 -세계적 무대에서 통용되는 ‘한류’로 대변되는- 세계권에도 통용될 문화를 창조한다. 인구의 감소로 대한민국 내에서만 통용될 문화를 생산한다면 그 문화는 소수를 위한 문화. 거기서만 그치게 된다. 자국을 넘어선 일반적이고 세계적인 담론들을 생산해내어야 그 문화는 세계라는 무대와 더불어 어마어마한 대중들에게 향유되고 재창조되며 자라나고 그 문화는 문화적 다양성을 담보한다.

교양부자

그런데 단지 이러한 대중의 양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야할까 경제사회에선 누구나 반영구적 소비가 가능한 부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문화사회에선 누구나 반영구적 향유가 가능한 교양부자.주1)가 될 수 있다. 바로 대중의 질적인 부분에서의 진화는 여전히 가능성으로 남아있다는 이야기이다. 대중의 숫자가 줄어든다 할찌라도 교양부자가 늘어난다면 그 문화사회는 아직도 미래를 바라볼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중은 지금, 분명히 진화하고 있는게 틀림없다.

출산율의 감소와 더불어 한 아이에 대한 교육비 지출이 비례적으로 증가하였다. 대표적 예로 둘을 낳았을 때 들던 교육비가 절반으로 줄어들자 오히려 한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교육비를 늘리고 있는 것을 들수있다. 교육비가 늘어나면 한 인간이 받는 교육도 늘어난다. 태권도학원, 속셈학원,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웅변학원 등등. 다양한 문화를 접할수 있는 기회도 늘어나는 것이다. 한 아이에 대한 교육비 지출이 늘면 늘수록 그 아이는 자라서 교양부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출산율이 감소하면서 대학들의 입학정원미달이 늘어나고 있다. 대학에 들어갈 예비입시생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대학 캠퍼스는 현상유지를 위한 무분별한 확장만을 하고있으니 그렇다. 대학의 입학정원미달 사태가 늘어나면서 누구나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 갈수있는 기회가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 과거 공부 잘하는 사람들만이 간다던 대학은 소위 말하는 꼴통들도 돈만 내면 갈수 있는 그런 곳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동물인지라 대학생활동안 아무리 수업시간에 졸고 술자리에만 열심으로 임했다 할찌라도, 대학에서 주워들은 것만 갖고도 충분한 고등교육이 이루어진다. 수능만보면 누구나 대학을 가는 시대는 교양부자로의 진화를 가져온다. 

더불어 중등교육 의무화로 인하여 돈이 없어도 중학교까지는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중등, 고등교육은 외국과 비교했을 때 전혀 낮지 않는 수준이다. 세계 수학경시 대회에서 수상을 하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봐도 알수있는 사실이다. 캐나다로 고1때 유학간 친구녀석이 말하길, 고등학교에서 중2때 수학을 하고 있다는 사실로 유추해 본다면 우리네의 중등, 고등교육은 세계적 기준으로 봤을 때 꽤 높은 수준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의무교육 또한 인간의 교양부자 가능성을 높여주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교육적인 현상뿐만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문화를 공짜로 즐길수 있는 인터넷과 P2P 서비스의 증가로 문화계의 전체적 침체현상이 도래했지만 대중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돈이 없는 학생들과 빈민층도 인터넷을 이용할 방법만 있다면 돈있는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문화를 향유할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게 된다. 문화를 접하면 접할수록 대중들은 점점 진화하게 된다. 기술복제시대에서 원본과 복사본의 구별이 무의미해진 지금, 대중은 원본과 똑같은 문화를 접하며 비판적 능력을 키워간다. 더 좋은 문화를 분별해낼수 있는 기준을 습득해가며 진화해간다.

폐인, 오타쿠, 매니아라고 불리우는 교양부자 -물론 이들의 실제 사회생활은 그동안 단어에 구축되어있는 담배연기와, 자본주의적 잉여의 산물인 비만과,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수많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일단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게 된다. 이들에게 부자라는 단어가 가당키나 한가! 그러나 이들은 문화적 적극성만 놓고 봤을 때는 충분히 교양부자이다.- 들의 재인식 역시 교양부자들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불러와 이들을 사회적 트렌드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들은 수면화 작업-오타쿠들의 사회참여를 통한 긍정적 자기인식의 모든 활동을 총칭-을 통하여 서서히 누그러지고 있고, TV나 신문같은 매체들은 즐기는 데에 원동력을 두며 일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그들을 집중조명하며 그들에 대한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수용되어진다. 그들은 그간의 오명을 씻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쓴다. 그리고 교양부자의 유행을 선동한다.

나이가 들어도 가족이나 자식보다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조의 유행 또한 교양부자의 감소를 막아주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준다. 문화를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교양부자의 연령층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인간은 늙을수록 보수적이 되어간다. 따라서 과거의 보수적이고 자식만 바라보며 살던 노인 세대들이 여전하다라면 고령화는 문화사회에 있어서 적극적 문화향유층인 교양부자의 감소를 야기시키겠지만은, 시대는 변했다. 늙어도 늙지 않게 보이려는 동안 신드롬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대통령도 주름을 없애기위해 보톡스를 맞고, 자식을 갖고 있어도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을 줄이지 않는 그럽족이 등장하고 있다. 5,60대 아줌마, 아저씨들은 인터넷으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마음껏 드러내고, 일본의 7,80대 노인들은 욘사마와 이병헌 등. 한류스타를 보기위해 비행기값을 아낌없이 쓴다. 우리나라 노인들이라고 그러지 말란법은 없다. 곧, 우리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의 아이돌을 보기위해 비행기값을 아끼지 않는 7,80대 노인들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다할찌라도 이들이 죽지 않는 이상, 교양부자는 감소되지 않는다.

저출산이 지속되어 십대층의 증가폭이 낮아지더라도 문화사회는 크게 타격받지 않는다. 실제로 더 나은 문화생활을 위해 돈을 쓰고, 적극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기는 연령층은 그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어린 십대들은 그저 문화를 숭배의 대상으로 보고 무비판적으로 소비하기에 급급할뿐이다. 그들은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기만 할뿐, 아이돌 그룹을 통한 자기반성이라던지, 아이돌 그룹을 통한 재생산은 그저 수박 겉핥기로만 그친다. 아이돌 그룹 자체가 문화적 소비를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아이돌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충분히 와닿지 않는가) 아직 교양부자로 진화할 가능성만 품고있는 어린 대중들은 재생산도, 문화의 비판적 수용도 모른채 그저 받아들이기에만 바쁠뿐이다. 그러나 그 문화의 향유 경험이 축척될수록 교양부자로의 진화는 빨라진다. 문화를 얼마나 더 많이 접하느냐 -이것에서 무비판적, 비판적 자세는 크게 상관치 않는다.-, 문화를 얼마나 더 다양하게 접하느냐. 이런 문화의 향유경험을 통해 대중은 교양부자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 대중들은 교양부자로의 진화를 기다리고 있는 예비교양부자인 셈이다. 

대중은 진화하고 있다. 

대중은 교양부자로 진화하고 있다. 작품성있는 영화가 흥행하는 것도, 행간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야하는 드라마가 증가하는 추세도, 패러디로 점철된 애니메이션이 새로운 문화코드로 떠오르는 것도, 모두 대중의 진화에 따른 결과물들이다. 거의 대부분의 대중은 문화를 향유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몇몇의 분야들만이 대중의 적극적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문화생산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작품에 아우라를 씌우기 위해 대중을 오히려 바보로 만들고 끊임없이 같은 이야기만 하고있다. 그러나 대중은 계속적으로 진화한다. 진화된 대중은 아우라로 점철된 과거이야기를 맹렬하게 비판하고 비난하고 외면한다. 아무런 담론없이 상업적인 목적, 계몽적인 목적으로만 제작된 모든 문화를 반대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문화계 전체의 발전을 꾀한다. 드디어 벤야민이 원하던 대중문화의 유토피아가 실현되기 시작하였다. 

교양부자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교양거지로 남을 것인가 대중은 속속들이 진화하고 있다.  


주1) 교양부자  나의 본문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단어로 문화를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즐기는 계층을 일컫는다. 소비를 아무리 하여도 계속적으로 공급이 가능하여 반영구적인 소비 생활을 즐기는 계층인 초갑부를 문화적으로 적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초갑부는 경제사회에서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계층들이지만 ‘유희적 동물’인 인간은 누구나 반영구적 향유를 하는 계층인 교양부자가 될수있다. 

교양부자와 교양거지의 차이점은 대중의 적극성에 달려있다. 

적극적으로 문화를 비판하고 수용할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문화를 받아들이고 나의 것으로 만들어 새롭게 재창조시킬 능력이 있는가 를 기준으로 한다. 단순히 귀얇은 사람이 으레 그렇듯, 문화에서 제시된 타인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은 곧, 교양거지를 뜻한다. 그러나 그 문화에서 제시된 논리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내며, 자기식대로 만들어버린다던가 하는 행위를 하는 대중들을 교양부자라고 일컫는다. 

벤야민은 자신의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과거의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현 기술복제시대에 접어들며 몰락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몰락을 이야기하며 과거 아우라로 점철된 숭배의 대상이었던 예술작품이 향유의 대상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이어한다. 기술이 복제되고 예술 고유의 아우라가 사라지면서 대중들은 이제 예술을 비판적으로 바라볼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문화를 중세적인 거룩한 숭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수용하는 층은 바로 교양거지이다. 그러나 문화를 즐기고 마음껏 가지고 노는 대상으로 바라보며, 비판적으로 재생산하고, 소비하는 층은 바로 교양부자인 것이다.  

  
 
 
 
병장 송희석 (20060709 203357)

이사람. 혹시 문화평론가 따위를 해볼생각 없나요 이정도 글 하나 어느 잡지 한곳에만 보내도 직함 하나정도는 얻을수 있을것 같은데 말이죠. 흐흐. 잘 읽고 갑니다.    
 
 
상병 김현동 (20060709 203703)

대~단하세요~!    
 
 
병장 양영후 (20060709 205033)

가을 하늘~ 와... 그런데 수치 같은 최근의 통계자료는 어디서 얻는거죠 서...설마 외우고있나    
 
 
 병장 김동환 (20060709 210903)

너무 잘봤습니다. 
어느 잡지 편집장이라도 뽀뽀를 해줄만큼 보기드문 성의있는 글이네요. 
가지로    
 
 
 병장 노지훈 (20060712 045917)

이건 이미 프로의 글쓰기!    
 
 
병장 주영준 (20060712 085813)

일단 재미있게 봤습니다만, 언제나처럼 진우씨의 글은 논쟁적인 암시를 포함하고 있군요. 몇 번 다시 읽고 안 풀리는 게 있으면 답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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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진우씨는 이미 프로의 액면가!    
 
 
상병 조주현 (20060712 105312)

잘 읽었습니다. 
정말 깔끔하군요. 
이거, 다방면 멀티플레이어 진우씹니다. 이런 교양부자같으니라구    
 
 
상병 김청하 (20060712 183617)

후아, 시간이 없어서 미뤄두다가 이제서야 읽었네요. 
하하. 이런 교양부자 같으니라구. 프로의 글쓰기에 한 표 추가합니다.   
 
 
병장 김태경 (20060719 083839)

잘 읽었어요. 교양부자라니, 요즘 문화현상을 정확하게 잡아낸것 같아요. 역시 프로의 얼굴!! 
그리고, 벤야민에 대한 글이 나오는걸 보니 왠지 뿌듯한걸요 쿡쿡. 
그런데 글의 내용을 떠나서 길이가 조금 길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물론 하려는 말을 다 하려면 이정도의 지면이 필요했을수도 있지만,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몰입해서 읽기에는 좀 긴것 같달까요.    
 
 
 병장 박진우 (20060719 162158)

할말이 너무 많다보니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