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병장 이승일 (2006-12-18 06:45:40, 조회수 :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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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과율
인과율이 경험을 일반화한 것일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경험을 일반화한 법칙의 경우, 그 법칙의 부정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반례가 필요합니다. "모든 물체는 땅으로 떨어진다." 라는 법칙이 부정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 물체가 발견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귀납 법칙이 부정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경험되지 않았던 사건이 경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과율의 부정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험이 필요할까요? 놀랍게도 아무 경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과율을 부정한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의 세계가 필요하지만, 인과율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다른 모습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그대로의 세계에서도 인과율은 착각에 지나지 않다는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모든 사건은 독립적이며,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 있습니다.
"야구공을 맞아서 머리가 아프다" 라는 두 사건간의 인과적 연결은, "야구공을 맞았고, 머리가 아프다" 라는 두 사건간의 시간적 연합으로 독립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우리가 경험한 내용은 달라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부연하지는 않겠지만, 연합과 인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인과율을 부정하기 위해 아무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만약 우리가 인과율을 받아드리기로 결정했다면, 어떤 경험도 인과율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양자역학 조차도 인과율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과율이 지켜지는 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그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모든 사건이 단지 확률적으로 일어난다고 해도 인과율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건의 원인을 신의 탓으로 돌려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대 시대에 이것은 사실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과의 개념은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어떤 경험적 사실도 필요하지 않으며, 반대로 어떠한 경험적 사실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인과율이 경험적인 것이 아님을 뜻합니다.
인과율은 마치 논리의 형식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구체적인 명제들을 가지고서 논리의 형식들을 이끌어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형식을 전제해야지만 구체적인 명제들을 이러 저러한 방식으로 연결시킬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든 것을 경험으로부터 추론해 낼 수는 없습니다.왜냐하면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추론할 때 필요한 추론 형식 자체는 경험 이전에 이미 있어야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재주꾼도, 자신의 손까지 스스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과율이란 바로 이러한 손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의 사건들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연결시켜주는 우리의 판단작용이며, 인과율이 존재하지 않아도 세계는 같은 모습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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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인과율을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저의 생각이 인과율을 위배하는 것이라는 청하씨의 마지막 지적은 전적으로 부당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인과율과 논리적 상관관계를 혼동하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표현하는 명제에는 인과율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f(x) = x + 1 이라는 함수가 있다고 합시다. 이 때 x = 1 이라면, f(x) 는 2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x = 1 인 것이 f(x) 가 2인 것의 원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x =1 인 것과 f(x) = 2 인 것은 주어진 함수 내에서 동어 반복에 불과한 것이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논리의 영역은 탈-시간적이기 때문에, 인과라는 개념자체가 적용될 수가 없습니다. 인과란 시간의 흐름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 '나는 사람이다.' : '나는 죽는다'
와 같은 삼단 논법에서도, 앞의 전제들이 결론의 '원인' 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있습니다. 이처럼 생각을 표현하는 명제에 인과율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어불 성설입니다. 인과율에 경험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은 인과율의 위배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착각은 놀랍게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저지른 것이며, 이 사실 자체가 무언가를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과관계와 논리적 상관관계를 혼동하기 쉽다는 사실은 우리의 일상언어에서 직접적으로 발견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고,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죽는다."
"사라예보의 총성 때문에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앞의 주장의 '때문에' 는 논리적 추론을 표현하기 위해, 뒤 문장의 '때문에' 는 인과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이 둘이 전혀 다른 개념을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어법에 의해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물리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질서짓기 위하여 논리적 상관관계를 은유적으로 차용하는 것이 아닐까요? 논리적 함축의 개념을 물리세계에 적용시키는 것이죠. 물론 이런 주장을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며 지금 굳이 제가 이런 어려움을 감당해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인과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신다면, 그것이 다른 경험적 법칙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쉽게 아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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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황민우님께서 열심히 리플을 다셨고, 저 역시 그것에 리플을 달았는데요, 정말 무례하고도 죄송하지만 민우님의 리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주제에 대한 무지로 가득차있어서 도저히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동시성에 관한 말씀은 타당한 주장이지만, 그 주장과 인과관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잘못된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 글은 일단 청하씨의 글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에 민우님의 길고도 말이 안되는 리플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정말이에요 엉엉) 모든 주제에 정통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아예 지워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예의에 어긋난 것 같아서 (비록 민우님께서는 그래도 상관 없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txt 파일로 첨부합니다. 기분나쁘않을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병장 조주현 정말 재미있다!
민우씨의 인과율과 동시성 이론에 대해 간단하게 나마 푹 빠져서 들었고, 승일씨의 인과율도 잘 들었습니다.
승일씨는 시간적이고 순차적인(그리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인과율에 '인과율'이란 단어를 쓰고있고, 민우씨는 동시적이고 인간의 인지에 의해 동일한 사건을 분할하는(쉬운 양자역학이 생각나기도 하는데요?)방식에 '인과율'이란 말을 쓰고 계신듯 하네요. (맞나요?)
: 민우씨_"이것은 시간과는 관계없는, 테제와 안티테제를 이용한 인과적 변증법입니다."
: 승일씨_"「하여튼, 인과율이란 시간의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두개의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동시성'안에서 쪼개지는 두가지 일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말하는 용어입니다.」이 말의 부정은 전적으로 참입니다."
그나저나, 승일씨의 'must'에 대한 이야기나 '때문에'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새롭습니다. Bra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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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씨의 때문에는 승일씨가 말하는 두가지 때문에중 한쪽에만 치우져있는 개념이 아닌가 합니다. 나머지 한쪽은 어쨋든 피하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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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해설자가 된 이 기분은............ 2006/12/18
병장 황민우 네, 알겠습니다아~ 2006/12/18
병장 이승일 민우님이 지적하신 개념은 흥미로울 뿐 아니라 많은 곳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얘기입니다. 다만 그 경우 민우님이 주장하셔야하는 것은 '인과율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아니다' 라는 주장이 아니라, '인과율이란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 되었어야 할 뿐입니다. 정말 죄송해요. 2006/12/18
병장 김청하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해서 답글 달겠습니다. 2006/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