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써왔던 글들에 비추어 (병장 이준영/051116)
가끔 나의 글쓰기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너무 치사한 방법으로 이제껏 글을 써오지 않았나, 라는 자책을 하며.
내가 이제껏 써온 글들을 찬찬히 뜯어보며 생각해보면 난 참 치사하게도 글을 써왔던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울릉도 오징어를 서울에 갖다 파는 것의 무용함을 주장한다면,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다수의 반론들에 대해서 미리 생각하여 상당수 인정해두는 것이다. 네임밸류나 생산지에 따른 오징어의 특성과 생산량 등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 고 인정한 다음에 반론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라는 한 마디는 반전이다.
비위생적 생산과정이 그러하며 물동량의 비효율적 이동이 그러하고 특산,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창한 이름 아래 발전하지 못하는 수많은 타 지역 오징어 판매업자들을 동정함과 동시에 짝퉁 울릉도 오징어의 출몰까지 염려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아진 물동량을 통해서 발생하는 운송업의 이익은 배제되며 울릉도라는 관광자원을 제외하면 척박한 땅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고려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도 참 딱할 정도의 네거티브한 글쓰기다. 가끔은 자기 연민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가끔 곰곰이 나의 글쓰기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치닫게 된 것일까, 생각해보곤 하는데 아마 그건 내게 있어서 글이란 세상이라는 체제에 반해 싸워 승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항상 내게 있어서 모든 글은 수단이었다. 그 자체로 목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글을 사랑하고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다. 나는 확실히 글을 쓰는 것을 사랑한다. 다만 그 글이 가지는 <힘에 대한 확신>을 통해서 공감의 저변을 넓히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왔던 것이다. 세상과 싸우기 위해서는 동료가 필요한 법이니까. 어떻게 보면 나의 글쓰기는 언론권력에 대한 지향점이 될 수도 있었다. 다만 나는 스스로가 권력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하나의 권력이 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란, 기득권의 반대편에 서는 것이었다(물론 내 글쓰기가 하나의 권력이 될만큼이나 강력한 무기 - 전가의 보도寶刀 - 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건 절대 아니다).
항상 나의 글쓰기는 마이너를 지향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메이저들은 동감해주면 좋지만 굳이 동감할 필요는 없다.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다수지만, 시대를 바꾸어나가는 것은 소수라는 나의 강렬한 확신 속에서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글을 써왔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세계정복이니 신당창당이니 하는 거창한 꿈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고, 주류 정서에 반하는 비주류, 나아가 비주류에 편승하기보다는 새로운 비주류를 표방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 뿐이다. 불만이 없는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불만 많은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아무래도 그 편이 모쪼록 더욱 즐겁지 아니한가. 이제까지의 내 생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덜 몰리는 곳으로만 흘러왔다.
아마 현재의 마이너가 기득권이 될 무렵 나는 또 새로운 마이너리티를 찾아 떠날거라고 생각한다. 안주는 너무도 가혹하며 지루한 과정이다. <치사함>을 무기로 나는 또다른 사냥감을 찾아 어디론가 분명히도 떠날 것이다. 세상에 대하여 이기길 원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낼 수 있는 작은 흠집들, 그것을 즐길 뿐이다. 누군가는 아마도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국론이 분열되고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야할 때에도 딴 목소리가 나는거라구요.”라고 책할지 모르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라는 마광수 교수의 글에 전적으로 동감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등 여러 가지의 이익을 누리지만 동시에 많은 또다른 제약을 받게 되며, 그래서 모두들 일탈을 꿈꾼다. 당신이 만약에 사회 밖에 있었다면 일탈을 꿈꾸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 밖에서는 일탈이라는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난 단순히 그게 싫었을 뿐이다. 처음에 조직을 구성하는 것은 인간이며, 조직이 소수의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을 때는 구성원들이 조직을 결정한다. 하지만 조직이 비대해지고 나면 조직은 <구성원들의 집합>이 아니라, 구성원이 <조직의 파편>이 되는 형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 극복할 수 없는 난제가 조직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조직을 결정하지 않고 조직이 인간상을 결정한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조직들은 지나치게 비대해져 있으며 체계화되어있다. 결국 인간이 구축한 시스템이 인간을 매몰시켜버리는, 이 현실이 싫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지향점은 한 가지이다. 조직 안에서 밖을 동경하는 글쓰기, 안에서 살면서도 항상 밖을 동경하는 삶, 언제고 이 테두리를 벗어나 보이겠다는 의지가 나의 글 안에서 여러분들에게 최대한도로 온전히 전해지길 바란다. 그러면, 아마 동감하는 사람이건 동감하지 않는 사람이건 나름대로 최소한 눈요깃감으로 즐겁게는 볼 수 있을테니까.
병장 최세훈 (2005-11-16 11:45:15)
잘 읽었습니다. 일탈을 꿈꾸는 조직의 일원으로써, 좋은 글 많이많이 기대할게요
병장 오규현 (2005-11-16 11:45:29)
잘 읽었습니다.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상병 주영준 (2005-11-16 12:07:35)
난 다담주쯤에 귀영하고 써야지롱.
상병 오철수 (2005-11-22 08:46:27)
무진 기대가 되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추신> ''greenday - minority'' 이글의 bmg로 넣으면 딱 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