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유능하고 교활한 기만자가 있어 나를 철저하게 속인다고 해보자. … 
그가 마음껏 나를 속이게 해 보자. 그러나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데카르트, <성찰> 중에서 

논리는 우리 시대 최고의 재판관이다. 정답을 놓고 논쟁이 벌어질때면 가장 논리적인 쪽이 승리를 거둔다. 갈등이 생겼을 때도 그렇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치에 맞고 합리적인 주장에 손을 들어주게 마련이다. 과학기술 분야로 가면 논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앞뒤가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이론은 '비과학적인' 주장으로 평가되어 버리고 만다. 이처럼 이치에 맞음, 곧 합리성은 현대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합리성은 지금같이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었다. 우리 조상들은 옛 관습과 성현들의 가르침을 논리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가 공자의 가르침을 읊고 있는 훈장에게 "그건 아닙니다. 논리로 따져 보자면..."하고 반박한다면, '예의도 모르는 무례한 놈'이라며 바로 주먹이 날아왔을 것이다. 

서양이라고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가 지배하던 서양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기준은 항상 '교회'에 있었다. 아무리 이치에 맞는다 해도 성경과 다르면 곧 틀린 주장이었다. 코페르니쿠스 이후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도는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증거가 수도 없이 나왔지만, 그것이 인정되기까지는 수백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진리의 기준이 성경에서 '이성'으로 넘어오고 나서야, 과학 기술은 비로소 '지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서양 문명에서 신앙 대신 이성을 진리의 잣대로 세운 철학자 데카르트는 근대철학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데카르트는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영웅은 항상 혼란 속에서 태어난다. 사상의 영웅도 그렇다. 옛 질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가치관은 아직 세워지지 않은 상황 가운데, 새 시대를 이끌어 나갈 이념을 제시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데카르트 당시, 서양 1000년을 지배해 왔던 기독교의 권위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썩을 대로 썩은 교회는 더 이상 존경을 받지 못했다. 종교 개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진영으로 나누어진 기독교는 급기야 30년 전쟁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일으켜 사람들을 혼란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탐험과 지리상의 발견은 성경의 권위를 더욱 의심하게 만들었다. 발전하는 과학 기술은 세계의 모습이 성경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계속 확인시켜 주었던 것이다. 

신앙은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이 무조건 신을 믿기에는 의심스러운 증거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더구나 삶의 가치관도 크게 바뀌고 있었다. 지난 시대 가톨릭이 보편적일 수 있는 이론을 만든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지식을 정리해서 '진리의 나무‘를 그렸다. 나무의 맨 밑동은 자연학, 줄기는 수학과 철학 그리고 맨 위는 신학으로 되어 있었다. 모든 학문의 목적은 결국 신을 향해 있음을 보여 주는 그림이었다. 반면 데카르트가 그린 그림은 정반대였다. 뿌리는 형이상학, 줄기는 자연학, 그리고 의학,기계학,도덕학이 맨 위에 있는 커다란 세 개의 가지를 이루었다. 

데카르트는 <방법 서설>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학문의 궁극적 목표는 구원을 받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되는 것’에 있다고. 기독교 믿음은 신앙 고백에서 시작한다. 일단 신을 절대적으로 믿고 나서야 진정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정반대 방향에서 출발하여, 확실한 게 나올 때까지 무조건 의심하는 방법을 썼다. 이른바 ‘방법적 회의’가 그것이다. 사실 데카르트의 방식은 현대인에게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동물을 수입할 경우, 수천 마리 가운데 단 한 마리에서라도 병원균이 검출된다면 모두 검역소를 통과할 수 없는 것이 현대 과학 문명의 논리다. 과학 이론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지금 과학자들이 늘 쓰고 있는 방법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데카르트는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해 가장 확실한 것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세상에 대한 지식을 재구성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그렇다면 데카르트가 찾은 세상에서 제일 확실한 지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사실이다. ‘1+1=2’처럼 당연한 듯한 계산식에도 의문을 품어볼 수 있다. ‘원래는 1+1=10인데 사탄이 답을 착각하게 만들어 2라고 생각한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 자체는 절대로 의심할 수 없다. 지금 내가 의심하고 있다면 생각하고 있는 것일 테고, 그러면 적어도 ’생각하는 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단순한 문장은 서양 철학사상 가장 커다란 혁명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전까지 신은 의심해서는 안되는 절대 지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의 이성이 확실성의 근거가 되었다. 이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리는 기준이 더 이상 신에게 있지 않고 인간에게 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데카르트는 곧 위험한 사상가로 지목받게 되고 그의 책들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데카르트는 세상을 뒤집는 발상을 내놓았지만, 여기에 목숨을 걸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소수자에게 관대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에서 21년간이나 은둔하듯 살았다. (후에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맞는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그 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로 이어지는 대륙 합리론이라는 커다란 학파를 낳았다. 합리론이란 모든 중심에 인간의 이성을 두고 논리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학파를 말한다. 한편 영국에서는 베이컨 등을 중심으로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학풍이 일고 있었다. 이들의 사상을 영국 경험론이라 부른다. 대륙 합리론과 영국 경험론은 17세기 이후 서양 근대를 지배한 양대 철학이었다. 경험과 이성을 지지하는 두 학파는 과학 기술이 <성서>의 굴레를 벗고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데카르트 이후 서양 300년의 역사는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합리주의와 논리는 그 어떤 것보다 앞서는 제일의 가치가 되었다. 그렇지만 현대에 와서 이성과 논리는 또다시 비판 받고 있다. 세상일은 이성만 갖고 냉철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추구한 이성에는 뼈와 살이 없다. 수학처럼 엄밀하고 정확하나 일말의 동정도 감정도 없는 차디찬 이성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데카르트적 합리성이 지닌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현대 과학이 띠고 있는 무미건조한 색채는 데카르트가 생각했던 건조한 이성에서 비롯된 면도 없지 않은 듯 보인다. 

21세기 문명은 이제 이성을 넘어 감성이 대접받는 시대로 다시금 가고 있다. 데카르트가 맹목적인 광신적 믿음에서 냉철한 이성을 구해 냈다면, 그 이성에 따뜻한 가슴까지 줄 수 있는 철학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 시대에는 그런 철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