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 
 병장 임정우 03-08 15:10 | HIT : 162 



1. 원죄  (우선 기독교이신 분들은 첫 문장을 읽는 즉시 뒤로가기를 클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아, 대체 원죄란 무엇이길래 저희를 이리도 괴롭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계산기를 만들어 내신 파스칼이란 분은 우리의 정념, 호기심 따위를 원죄라고 불렀습니다. 원죄라기 보다는 처벌 비슷한 개념인것 같은데 하여간 굉장히 성가신 것만은 명확한것 갔습니다. 하여간 이런 정념따위들 때문에 이성에 성실히 종사하기란 무리일 것이니 대체 진리란 어디있느냐 하며 신을 믿으면 만사형통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말구요. 하여간 많은 사람들이 위와 비스므레하게 생각하는 건 사실인것 같아요. 

 잠깐 자유의지에 대해 말하도록 하죠. 제가 궁금한건 자유의지에 대체 자유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자유의지에는 분명 선한것과 악한것이 공존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선한것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다시 물어볼게요. 최초의 자유의지에 정말 선과 악의 구별이 있었을까요. 아마 아니였을 겁니다. 그 구별은 태초의 인류가 어떤 과실을 집어먹으로 구별되어진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속박당합니다. 이것이 원죄이지요. 우리는 어떤 강한 권력에 의해 속박되어짐으로 결국 신을 향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유의지가 아닙니다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선택하는 자유의지라면 저는 차라리 텔레스크린이 놓여진 집에서 사는편이 "뼉層?모릅니다.


2. 언어
 우리는 생각합니다. 고로 존재한다고 데카르트씨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기때문에 우리는 마치 언어로 존재하는것 같습니다. 어떤 철학가들도 우리가 언어의 틀안에서 사상적인 부분이 결정된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이건 약간 불확실한 기억이긴 하지만 대충 비슷할겁니다. 하여간 저는 이 말을 반박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냐구요? 사람과 개는 다른 종입니다. 다른 언어를 구사하구요. 사람과 사람의 대화보다 사람과 개의 대화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개랑 대화한다는 것이 훨씬 일방적일것이란 말입니다. 허나 어떤이들은 개와의 소통을 소중히 여기고 많은것을 깨닫습니다. 마치 친구처럼 가족처럼 생각하고 아끼지요. 참고로 저도 예전에 키우던 -지금은 죽었지만- 개로 인해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름은 뽀송인데, 뽀송이랑 저는 많은 대화는 하지 못했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개가 무슨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뽀송이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아냐며 따지신다면 약간 움츠려 드는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느껴지는게 언어로 대화하는것보다 강력하다는걸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매일밤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잠들었고, 어쩌다 저 혼자 자려고 하면 제 방문을 밤새 긁는 통에 그러지도 못했답니다. 만약 편한 자리를 구하느라 그랬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저희집에 방이 3개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할것입니다. 
 약간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하고 싶은 말은 그겁니다. 지금 제가 한 말은 흘려 버리시고 좀더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특히 이런 단어를 쌩까세요- 소통을 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완전한 의미의 언어는 없습니다. 언어에는 목소리의 톤, 리듬, 억양 이나 표정 어깨의 들썩거림 같은 몸짓같은 언어 이상의 것을 함께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것을 저는 언어 이상의 언어 라고 부릅니다.


3. 음악
 저는 음악 듣는게 취미입니다. 위에 언어에 대해 두서없는 말을 쏟아냈을때 사실 음악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소리는 꼭 언어가 아니잖아요. 같은 가사의 노래를 불러도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것처럼요. 이처럼 비슷한 부류의 악기와 조건하에 완벽히 다른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을 들을때마다 저는 어떤 전율의 휩쌓입니다. 반대로 완전히 다른 장르, 다른 악기로 만든 음악들이 서로 같은 궁극점을 지향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때도 마찬가지로 강력한 전율에 삼킴을 당하고 마는거지요. 마치 필연적인 직관처럼 황금빛 고리로 공유되어있는 틀을 발견한다는건 삶의 새로운 인식을 발견하는것과 마찬가지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사실 이런 이유때문에 듣는것보다 좋아서 듣는겁니다.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자연스러움이야 말로 진실보다 우위에서 퍼덕이는 요정이랍니다. 샤방샤방.  


 병장 이승현 
 한 가지 "죄가 없었다면 구원도 없었다."는 칼 융의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저는 
 나이롱 신자입니다만, 그래서인지 때때로 신앙은 믿음이 아니라 의혹 또는 침묵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되곤 합니다. 03-08   

 병장 임정우 
 어짜피 이글을 쓰는 순간에 종교적 토론 -이 토론으로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은 안하기로 결심했기때문에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약간 의심되는 점을 말씀드리자면 신앙이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건 제가 아는 범위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아니라는 겁니다. 03-08   

 병장 홍연택 
 원죄와 자유의지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선'이란 창조주인 야훼와 함께 화평을 누리는 것이고 
' 악'이란 창조주 야훼를 온전히 자기 의지로써 버리고 대신 다른 피조물인 '하와'와 함께 
'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었을 때 '함께 먹은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 원죄'라는 것은 아담을 머리로 하는 인류 전체가 야훼의 진노 아래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죽음'을 택했기 때문에 그의 자손들도 모두 함께 죽는 것이지요. 
 고로 

 정우님 말씀처럼 우리에겐 온전한 의미에서의 자유의지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자유의지란 
 악의 大小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 뿐이겠지요. 왜냐하면 
 야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선'이란 창조주인 자신을 기억하고 
 화평을 누리는 것인데 
 아담의 후예들인 우리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여전히 우리는 다른 피조물들-사람, 개, 고양이(!)나 혹은 피조물들의 창작품들에 
 훨씬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취향의 자유라면 
 물론 
 정우님이나 저나 자유의지를 '남용'하며 잘 살고 있는 것이지요. 

 저 역시 좋은 게 좋은 거거든요. (웃음) 03-08   

 상병 김병완 
 몇년 전 한 친척 어른에게 세배드리러 갔다가 덕담으로 들었던 말씀 중 한자락이 떠오르네요. 

" 우리한테 죄가 있다구? 그런게 어딨어? 우리는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이야." 03-08   

 병장 임정우 
 우와! 왠지 모르겠지만 멋진 말이군요!! 누군가 저에게 그런 말을 언어 이상의 언어를 통해 말해준다면 저는 감동받고 말거에요. 03-08   

 병장 이승현 
 종교에 관해서는 논쟁을 해야할 만큼 아는 것도 지켜야 할 만한 것도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좀더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종교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정론이나 교리라는 것이 합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왜곡되거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고, 더 본질적으로 
 는 정우님이 글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신앙의 세계는 우리가 가진 언어와 인식체계 
 로서는 온전히 포착할 수 없다고 믿음(의혹)하고 있습니다. 뭐 결국은 저도 제가 
 의심이 되는 겁니다. 03-08   

 병장 이영준 
 언어 안에서 사고한다.. 
 제 경험을 하나 알려드릴께요. 
 저는 예전에 제가 분명 '한글'로 경험한 사건을 
' 영어'로 재구성해서 기억하고 있는 사례가 종종 있어요. 
 이런 사례를 본다면, 언어가 우리의 사고에 일정 부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언어의 틀 안에 사고가 갇혀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03-08   

 병장 임정우 
 승현님 말씀대로 정해진것이 없음에도 정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 종교가 아닐까 합니다. 자잘한 가지같은건 맘껏 자르고 꾸민다 해도 나무 밑둥을 잘라버릴수는 없는 노릇이니깐요. 같은 의미로 종교에서의 믿음 역시 비슷할거라고 생각합니다. 03-08   

 병장 임정우 
 언어가 우리의 사고에 일정 부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 그렇군요. 영준님 말씀이 좀 더 가까운것 같아요. 제가 좀 극단적으로 표현한게 분명해요. 제 의견을 우기려다 보니 그런것 같기도 하고요. 아, 제가 갑자기 바뻐서 나중에 또 이야기 해요. 꼭이요~ 승현님도요~ 03-08   

 병장 배진호 
 으음? 종교의 논쟁은.. 101정보통신단에서.. 쿨럭.. 
 전 기독교이지만 이미 봐버려서 뒤로가기를 하기에는.. 
 윽.. 글이 절 사로잡아 버렸군요.. 
 저도 원죄에 대해서는.. 조금은 부정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내가 부모세대에 의한 죄를 
 유전을 이어받는것 처럼 이어 받아야할까?! 
 내가 부모님이랑 유전자 반을 나눠가지고 있지만 
 내가 부모님이랑 완전 같은 의지는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의문이 들구요.. 

 자유의지란 사실상 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규격안에서의 자유는 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어떠한 것도 할 수있고.. 그것에 의해서 구속받지 않는다는건.. 
 말로만 듣던 신이라는 존재만이 가능하지 않을까한다는 것이죠.. 03-08   

 병장 오기환 
 자유의지 라는 것에서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 인가? 
 모든 것에 의심하고 회의하는 태도를 견지하자면 피곤할 수 밖에 없지요. 


 의심과 회의는 정 할일이 없어 무료할 때에만 하는게 낫지 않을지요. 수학에서도 '공리' 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그런 비스므레한 무엇인가 있지 않나 합니다. 종교인들에게는 그것이 종교일 것이고, 비종교인들에게는 각자 다른 무엇인가가 있겠죠. 

 제 '공리'는 '좋은 것만 누리기도 짧은 인생' 입니다. 03-08   

 병장 임정우 
 승현님 댓글 다시 읽어보니 -아까는 여유가 없어- 깨닫게 되는 바가 많군요. 역시 배울점이 많은 승현님이에요. 오오. (사실 제대로 이해도 못한것 같지만 또 이해한것 같기도 한것이 역시 언어 이상의 언어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에 각기 다른 사랑이 모두 다른 모습이지만 결국 모두가 공감하는 하나의 사랑으로 불리움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듯이. 종교적 믿음도 그러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에요. 밸런스&하모니! 

 진호 / 완전한 자유의지는 저도 없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주어진 자유의지가 선과 악으로 분류되는 기준에 있다고 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좀더 생각해 봐야할것 같아요. 

 기환 / 저로서도 의심과 회의를 무료할때 골라서 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제 몸뚱아리의 70%가 수분이듯, 제 정신의 70% 가 의심인 탓에 어쩔수가 없는겁니다. 우리가 물을 먹지 않으면 못살듯이 저는 의심하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거지요. 사실 안해도 살겠지만, 굳이 억지로 안하려고 한다면 그건 못살것 같아요. 물론 마지막 말씀은 지독히도 공감입니다. 히히. 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