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유산과 정부정책 : 리카도불변정리를 둘러싼 논쟁 

당신은 자신의 자손에게 유산을 남길 겁니까? 혹은 자식이 홀로 독립해 살아가도록 할 것입니까. 지극히 개인적이어 보이는 이 주제는 실제로는 정부의 경제부양정책*1의 효력이 있는지 혹은 없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입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의 자손에게 유산을 남길 것이며 최대한 자식이 부유하게 살 수 있기를 기원한다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정부의 재정정책은 효력이 없다고 어떤 경제학자들은 말합니다.  

유산은 흔히 안도-모딜리아니가 제기한 평생소득가설의 주요한 논점으로서 그 존재에 대해 일부 논의가 오간 주제입니다. 합리적 소비자가 한 개인의 일생을 놓고 독신으로 살아간다는 전제 하에서 평생 소득과 소비를 일치시키는 최적 소비량을 산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딜리아니 평생 소득가설이라 할 수 있는데 경제학의 실증연구에서는 보통 소비자들이 임종시까지 모든 소득을 소비하지 않고 항상 일정 정도의 재산을 남겨 두는 경향을 보인 것에 대해 논의된 것이었지요. 이는 각 개인이 늙어죽을 때까지 자식들에게 어느 정도의 '존경'을 받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주로 가정되지요. 재산이 있는 노인은 아무래도 자손들에게 덜 소외당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재산을 원하는 자식들은 노인을 잘 부양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개인은 유산용의 소득을 보전한다는 이같은 논리는, 심지어 가족 내의 행동조차도 이기적 개인의 모형으로 설명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유산이 존재하고, 만일 그것이 자손에 대한 부모의 제한된 이타적 심리의 발현이라면 각 개인의 계획은 무한기간으로 증가합니다. 자세히 살펴봅시다. 

일반적으로 전통적 소비자모형은 무한히 생존하고 무한히 현명하며 무한한 정보를 습득하는, 무한히 자유로운 소비자를 은연 중에 상정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모형이 설명가능한 거시경제학적 현상들은 많지 않았고, 보다 현실에 부합하는 모형들이 필요로 했지요. 유한기간 생존하는 소비자의 모형은 바로 이같은 사실 하에서 탄생했습니다. *2 이 모형 내에서 소비자는 유한한 기간 동안 생존하며, 따라서 자신의 소득과 소비간의 최적 관계를 합리적으로 도출하려 노력한다고 가정됩니다. 이들은 이기적이며 타인에게 헌신적이지 않습니다. *3 이들의 경제학적 행위의 합리적 도출을 가리켜 '유한계획'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유산이 적극적인 의미로 여기에 개입하면 의미는 변화합니다. 개인은 자신의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으로서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되고, 후손에 한해 이타적이라는 가정은 이들의 효용함수가 후손과 연계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한 혈통에 의한 '무한계획'이 성립할 수 있게 됩니다. t+1세대의 효용함수는 이번에는 t세대 효용함수의 t+1기 형태를 띄게 되며, 이는 t+2세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효용함수와 소득소비관계 자체가 적확히 무한히 이어지지는 않지만, 기간별 연계로서 계획은 연계되고 자산은 이전됩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사회와 같은 혈통사회는 이같은 연계가 보다 클 것이며, 부모자식간의 정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어느 정도 연계가 모두 있을 것이 확실하지요.

여기서 유산의 존재 유무와 정부정책의 성사가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리카도 불변정리라는 이론을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리카도는 18, 9세기를 살았던 초기경제학자입니다. 흔히 무역의 필수 이론으로 불리는 상대우위의 이론을 제시한 사람이고, 지주계층의 이익을 대변한 사람이며,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일원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리카도의 이름이 붙은 이론들을 모두 리카도가 창안한 것은 아닙니다. 하이에크의 급여와 노동수요 관계에 대한 이론에도 리카도의 이름이 붙어 있고, 통화주의자*4 들이 주창한 재정정책의 무효성 이론에도 역시 리카도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후자의 이론입니다. 흔히 리카도불변정리 Ricardian Equivalence Theorem으로 불리는 이 이론은 정부재정에 대한 수학적 고찰을 통해 무효성을 주장한 이론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부가 이번 기간에 채권을 발행하여 세금을 인하하든, 세금을 올려 채권을 환수하든 민간은 전혀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정부가 경기 부양 내지는 민간 선택의 효율성 제고를 위하여 세금을 인하하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합시다. 정부는 일정량의 통화량을 유지해야 하고, 또한 정부지출량은 이같은 시도와 무관하게 성립하는 (즉, 외생변수) 것으로 가정합니다. *5 이때 정부가 세금을 인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데 이는 재정정책적인 추가적인 효과를 보이는 것이라고 케인지언들은 주장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정부채권은 일종의 시장에 대한 정부의 추가적인 화폐공급이며, 경기활성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가정되었지요. 또한 인하된 세금은 보다 직접적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 있으며 경제 주체들은 보다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할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채권은 다음 기간의 이자비용을 초래하며, 이는 다음 기간 정부재정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따라서 해당 기간의 조세는 정확히 그 이자비용만큼 증가하며, 현재의 주체들은 그 이자비용과 인하된 세금의 현재가치간의 관계, 즉 세금인하의 순효과를 0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다 엄밀히 살펴봅시다. t 시점에서 각 경제 주체의 정부채권보유량을 bg라고 써봅시다. 이 경우 모든 개인이 보유한 채권 총합은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습니다. (수식 내 각 단어의 두번째 글자는 아래첨자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bg + bi)=Bg 

이 시점의 각 개인 채권 보유는 민간이 발행한 채권인 bi와 정부가 발행한 채권인 bg로 구성되어 있지요. 민간이 발행한 채권의 총합은 채무와 채권간의 상관관계를 통해 항상 0의 값을 가지며, 따라서 개인 보유 채권의 총합은 정부채권 총량으로 표기할 수 있습니다. 만일 Bg>0이면 정부가 민간에 대해 채무자이고, Bg<0이면 정부가 민간에 대해 채권자인 것으로 쓸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 전체 채권량은 곧 정부채권량으로 쓸 수 있으며, 따라서 Bg는 이후 B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분석의 편의를 위해 정부채권 이자율이 R로 일정하다고 가정합니다. 정부재원의 조달방식이 채권발행과 조세에 국한된다고 한다면 *6 정부예산제약식은 이 t기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습니다. 

Tt + (Mt - Mt?₁) + (Bt - Bt?₁) = PtGt + Vt + RBt?₁

P는 물가, G는 정부지출, M은 통화량, T는 세금, V는 이전지출을*7 뜻합니다. 외생변수인 통화량과 정부지출이 일정하다고 가정했고, 정부의 이전지출은 없다고 가정합니다. 세금은 분석의 편의상 중립세*8라고 가정한다면 아래의 식은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습니다. 

Tt/P + (Bt - Bt?₁)/P = Gt + RBt?₁/P 

t시점에서 정부가 세금을 한 단위 낮추고, 줄어든 조세수입을 정부 채권발행으로 메꾼다면 위의 예산제약식에 따라 정부는 반드시 t시점에서 정부채권을 한 단위 발행해야 할 겁니다. 이를 '정부채권발행으로 조달된 세금감소' deficit-financed tax cut로 칭합니다. 

만일 정부가 t+n기에 채권을 상환한다고 합시다. 분석의 편의를 위해 정부가 채권을 상환하는 시기를 t+1기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경우 정부는 원금과 이자지불을 위해 채권액에 이자를 덧붙여야 하며, 이를 1 + R 단위로 표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t+1기의 세금 역시 1 + R 단위 인상되어야 합니다. 이 경우 세금변화의 순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 (1 + R)/(1 + R) = 0 

-1은 t시점 세금 한단위 감소를 뜻하며, (1 + R)/(1 + R)은 세금 증가의 현재가치를 뜻합니다. *9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세금 감소로 인한 민간 부문 실질 소득 증감은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합리적인 경제 주체들은 보유한 정부채권을 자산이 아닌 미래의 세금에 대한 안내장(Future tax liability)으로 인식할 것이며, 현재의 세금감소를 미래의 세금증액으로 인지할 것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현재 소비를 늘리기보다는 세금감소로 인한 소득증가분을 정부채권구입이나 저축등에 충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화시장 균형조건식인 Ct(r) + It(r) + Gt = Yt(r)에 하등의 영향을 주지 못하므로 실질이자율 r에도 변화를 주지 않으며, 실질이자율 r이 변화하지 않았으므로 화폐시장균형식 M/P = L(Rt, Yt)에도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10 다만 미래의 세금증가가 예상되므로 합리적 경제주체들은 이자율 변동이 없이도 저축을 증대시키며,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은 단지 저축의 증대만을 (그것도 한시적인) 초래합니다. *11 

그런데, 이 리카도불변정리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논의에서 충분히 이해되셨으리라 믿습니다만, 민간은 이같은 세금 감액을 항상 합리적으로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민간 주체들이 이 t기간에 생존하며 자신의 재정부담을 후손들에게 전이할 때는 리카도 불변정리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에는 현 시점의 세금변화의 순효과는 -1 그 자체로 이해될 수 있으며, 실질이자율을 변화시킵니다. 케인지언들이 반박하고 지목한 부분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만일 개개인이 자신의 자손에 대해서도 많은 동물들처럼 독립 이후에 무심해진다면, 혹은 자손을 버린다면 (....?) 리카도 불변정리는 성립하지 않지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아마 정부의 재량권이 훨씬 넓을 것이며, 그 사회의 정부가 개개인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일 수 있는 근간에는 무너진 리카도불변정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부의 정책이 곧 민간의 경기 동향이 되어 버리니까요. 뭐 농담이었습니다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는 이와 유사한 분석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자손 생식을 제한하고 농장이 관리함으로써, 부모와 자식간의 유대를 끊고, 농장 내 경제를 독점하는 돼지들의 정책이 말이죠. 





*1. 일반적으로 경기부양책이라 하면 금리정책도 포함됩니다. 재정정책을 대상으로 전개하는 이 논리는 당연히 금리정책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이 정부의 경기부양책이라면 뉴딜정책과 같은 재정정책으로 흔히 생각하며, 제목도 그리 달았기에 편의상 경기부양책이라 일반화하여 지칭했습니다. 

*2. 경제학 전공자가 강의시간에 배우는 2기간 소비모형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모형에서 t와 t+1의 2기간 만을 생존하는 가상 소비자는 실제 현실 속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노동기간과 은퇴기간으로 나뉘어진 삶을 생존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짜여진 것입니다. 

*3. 그러나 이 이기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효용이 우선이라는 의미이지 자신의 효용을 증대할 수 있음에도 구태여 타인을 돕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는 경제학 전반에서 마찬가지입니다. 경제학의 이기는 자신의 효용을 우선시한다는 것이지 자신의 재산을 우선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차이가 크지 않아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큰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이같은 가정 하에서는 이타적 개인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실제로는 경제학 이론들에 부합하는 행동을 얼마든지 보일 수 있고, 경제학 이론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4. 피셔, 프리드만 등 시카고 대학의 1950~1960년대 학자들을 주축으로 한 일단의 학파입니다. 영어로 Monetarist. 시카고 대학 참 대단합니다. (....) 케인즈가 주창하여 사실상 거시경제학 그 자체로 인식되어 오던 재정정책 (정부 주도의 사업과 고용 창출)등의 효력은 실제로는 극히 미미하거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정부의 정책은 금융정책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프리드먼의 1967년 미국 경제학자협회 회장직 수락연설은 기존 케인지언 거시경제학의 주요한 잣대였던 필립스 곡선(고용과 물가는 서로 역의 관계에 있어 동시에 안정시킬 수 없다)은 장기에 있어서는 수직의 형태를 띄며 무의미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죠. 따라서 유효한 정부의 정책은 "K%의 법칙" 즉 화폐헌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재정주의자 모딜리아니는 1975년 미국 경제학자협회 회장직 수락연설을 통해 반박했고 정부가 적극적 조정자로 나설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내용을 설파했습니다. 조하현 교수의 거시경제이론에 나오는 두 경제학자의 논의를 차후에 타이핑해서 올려보겠습니다만 관심이 있을 사람은 있을까 싶네요. 일단 위첨자 아래첨자 복잡한 그리스어 소문자 등을 타이핑하기 귀찮아서. (먼산) 

*5. 실제로도 통화량은 시장에 의해 결정되고, 정부지출은 국회와 관료간의 대화로 결정되므로 정책적 목적으로 변화하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6.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7. 정부가 다른 대가를 수령하지 않고 민간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재화나 소득을 의미합니다. 재난구호금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8. lump-sum tax. 일반적으로 세금은 민간 부문을 교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모든 세금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중립세, 혹은 정액세라고 불리는 가상의 세금은 민간부문의 효율이나 선택을 전혀 교란하지 않고, 줄어드는 민간잉여만큼 정부예산을 증대시킵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액수를 납부하는 세금 등이 이와 유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이같은 세금은 존재하지 않으며, 만일 존재한다면 세금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인 소득의 재분배효과를 전혀 지니지 못하고 도리어 가중시키는 역진성을 띄게 됩니다. 

*9. 미래자산의 현재가치는 미래자산의 미래가치를 현재에서 미래까지의 평균 이자율로 할인하여 도출합니다. 평균이자율이 10%라고 할 때 1년뒤 11,000원인 물건의 현재가치는 10,000인 셈입니다. 이는 '미래가치' / (1 + R)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10. ......방금 뭔가 이상한 것들이 지나갔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라기 보다는 저 식들은 거시경제의 기본식들입니다. 흔히 IS-LM분석이라고 하는 거시경제의 기본 분석에서 근간이 되는 식이며, 저 식의 지표들을 실질변수라고 합니다. 반면에 저 식의 변수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변수는 명목변수라 일컫게 됩니다. 실질변수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물가상승, 등의 뉴스 캐스터의 설명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거시경제분석에는 재화시장균형인 IS와 금융시장균형인 LM을 동시에 분석하게 되며, 여기에 국제균형인 BP가 맞물려 IS-LM-BP 분석을 행하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다룰 기회가 있을 겁니다만 그 전에 제가 축 전역을 맞이할 듯 하니 무시하시길. 사실 이 내용들은 직관을 강조하는 케인지언이라 해도 꽤나 수학적 내용이 가미되어 있어서 말이죠. 재미가 없어요. 

*11. 정부는 이에 세금 증액이 아닌 화폐량 증액으로 대응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역시 같은 효과를 마주할 뿐입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이 다음에 '물가상승과 세금상승'에서 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