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너와 내가 살아가는 모습
나의 어머니께서는 고등학교때 미술대회에 나가셨던 얘기를 심심치 않게 하신다. 몇 번에 걸친 그 얘기를 듣고서 어머니께서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흥미도 있으셨고 꽤나 소질도 있으셨던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학교 대표로 뽑혀서 미술 대회에 나가는 추천까지 받았다고 하시니 자화자찬으로 하는 말로만 들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어느날 어머니께서 그린 그림을 보신 선생님께서는 학교 대표가 되어 대회에 나가 보라고 권하셨다. 생각지도 못한 추천을 받은 어머니께서는 너무 기뻤던 나머지 두 번 생각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덥썩 그러겠다고 말을 하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회를 참석하게 되셨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나도 미술 대회를 생각해보면 풍경 좋은 곳에서 이름도 잘 모르는 각양각색의 도구들을 구비해 놓고 한손에는 물감 한통을 다 짜놓은 것처럼 보이는 판때기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족제비라고 하던가 머라고 하는 동물 털로 만든 붓을 들고 여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술학원도 다니시지 않았고 제대로 된 그림도 한번 그려보지 못하셨던 어머니께서 미술대회를 나간다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였다. 캔버스는 꿈도 못 꿨고 그저 스케치북과 수채물감을 찍찍 짜놓은 파레트와 그 외 털이 쭉쭉 빠져서 제대로 그림을 그리기도 힘든 붓을 가지고 부푼 꿈을 안고 대회에 나가신 어머니께서는 많은 실망과 충격만을 가지고 돌아오셨다. 정말 그림을 잘 그려볼 수 있었고 또 그리고 싶었는데 그 대회 이후로 마음을 접었다고 하시면서 그때의 일들을 푸념처럼 늘어놓는 어머니를 보면서 왜 우리 어머니께서 그랬어야 하냐는 원망도 들었고 원망으로 인한 답답함을 못 이겨 분노도 가져 봤었다.
나는 글을 읽는 것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나의 행동들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책을 읽는 고상한 취미는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만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나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문제집을 사면 항상 앞쪽, 뒤쪽,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연재되는 글들을 우선 확인하였고 글들을 다 읽어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것들을 다 읽기전에는 절대 문제를 풀지 않았었다.(이런 버릇은 고등학교를 가서도 고치지 못하고 아침 수업시간에 새로 사온 교재 진도를 따라가지 않아서 혼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읽을 것들에 의해 길들여진 습관은 문제집 전체에 대한 습관으로 바뀌어서 수학이나 과학처럼 난해한 문제가 나오는 과목들도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쉬어가는 페이지나 문제집 하단에 나오는 퀴즈등을 다 풀어야 직성이 풀렸다. 이러다 보니 진도를 늦게 따라가는 것이 기본이고 아주 멋대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결과는 처절한 응징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지만!)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대구에서도 중심가에 있었기에 주변에 손에 꼽히는 큰 서점들이 많았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뒤편에 있던 서점에 들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입구를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일간지, 월간지가 놓여있는 코너에서 만화책이나 잡지를 보고 돌아설 경우에는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더 구석진 곳으로 들어서서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 놓여있는 코너로 가서 맘에 드는 책을 한권 잡고 통로에 쪼그려 앉을때는 제시간에 집에 돌아가기는 틀린 경우였다. 사람들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어린이책이 있던 곳이고 조그마한 녀석이 쪼그려 앉는 바람에 책더미들 사이로 폭 묻혀 버리니 몇 시간이고 눈치보지 않고 책을 읽을수 있었다. 서점에 들려서 나의 키보다 몇배나 더 크고 얼마되지 않는 보폭이여서 수십걸음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서점속에 있던 수많은 책을 즐거운 마음으로 훔쳐보던 것을 즐겼기면서도 나는 독서란 나와는 먼 일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게 다였다. 나의 어린시절은 부모님께서는 식당을 운영하신다고 바빴기에 할머니 그리고 내년에 입대하게 될 3살 아래 동생 이렇게 세명이서 보냈다. 책을 읽기를 좋아하는 나는 좋은 책들을 사서 읽으면 된다는 것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런 나를 진작에 알아보고 여건을 조성해줄 부모님의 상황이 안되었다. 금전적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거기까지가 다였다. 그 이상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을 했었고 바라볼 시도도 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보기도 힘들었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는 내가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갔었다.
꿈을 펼치기 위해서 미술대회에 나갔던 어머니께서 그림 하나 그리기 위해서 한 개에 몇만원씩이나 하는 물감 한통을 다 짜서 쓰는 여유까지는 아니라도 그것을 사서 쓸수만 있었어도 상처를 받고 꿈을 포기해야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을 텐데.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서 마음껏 뜻을 펼쳤다면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에 와서 많은 생각들이 든다. 서가에서 두꺼운 책을 읽고 부모님과 오붓하게 공부를 하지 못했고 그 흔한 세계문학전집이나 어린이들이 읽어야할 필독서같은 것들은 미쳐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문제집 사이사이의 글을 읽고, 서점 한쪽 구석에서 동화책을 읽고, 식당 테이블에서 어머니와 함께 공부를 하던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이루지 못했고 소유하지 못했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나의 삶에 충실했던 기억들이 나에게 큰 귀감을 주는 것 같다..
대학 1학년. 싸구려 생고기집에 몇몇 모여서 부족한 안주에 소주를 들이 부을 때,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와서 외식을 하시던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1인분에 2천 500원짜리 고기를 먹지만 외식 나왔다고 기뻐하며 아버지께 고기 한점 먹어 보라고 서툰 젓가락질로 고기를 집어 주던 자식들. 고기를 굽느라고 바쁜 손놀림에 땀을 뻘뻘 흘리시며 자식 녀석들이 집어주던 고기를 슬그머니 녀석들 양념장 안으로 다시 밀어넣던 아버지. 꼬마들이 좀더 커서 시간에 속하지 않고 자신의 관심과 꿈을 미래에 투영하며 자신을 앞설 수 있고, 또 조금 뒤에 서서 과거를 회상할 수 있을 때가 오면 분명 알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때 집에서 굴러 다니는, 당시 우리집에 맞지 않았던 클래식 CD를 호기심에 듣고 팝송 100선과 같은 CD 몇장을 우쭐해 하며 듣던 나에게는 그 음악들이 어떤 것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에게는 1인분에 몇만원씩 하는 꽃등심이 아닌 싸구려 생고기를 씹어먹는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누릴수 있음에 만족하고, 비교하며 견주어 보는 것보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나를 살았던 순간들을 뒤에 서서 바라보는 지금. 나는 행복하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그것을 소유했는지와 상관없다. 나의 손을 뻗어서 닿을 수 있는 한계 내에서 그것을 향유하는데 행복함을 느끼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어차피 같은 곳이고 함께 숨을 쉬고 있기에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나 너가 살아가는 모습. 즉, 대다수를 이루는 너와 나는 비슷한 모습들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뻗은 손을 통해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살아가면 된다. 이것이 우리네 삶이다. 지질이 궁상에 찌질이라고 비관하는 우울한 삶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라고 담담하게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한발 한발 내딛는. 바로 그것이다.
병장 노지훈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7-09 1652)
병장 김희곤 (20060708 205836)
원홍씨 사랑해요! 완전 원츄예요(퍼퍼벅!)
병장 박원홍 (20060708 210000)
이거이거 완전 실시간인데요.
병장 김희곤 (20060708 214257)
현재의 삶의 만족도 중요하지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전이 없는 것은 결국 고여 썩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뒤돌아보고 바꾸고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그러면 그만큼 나의 행복이 커져갈테니까요. 저는 대체 언제쯤 원홍씨마냥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현재 완전 좌절모드이기 때문에. 흑)
병장 송희석 (20060708 215434)
이건 너무나 뛰어난 글입니다. 아! 잘 읽고 갑니다.
하사 윤석호 (20060709 005439)
웬지 아픈 글이네요. 잘 읽었어요.
아~ 나 슬퍼졌어. 원홍씨 책임져요!!(흑)
그리고 가지로.
병장 이석현 (20060709 085249)
많은 영감을 주는 글인것 같아요.
계속 좋은글 써주세요.
병장 주영준 (20060709 144447)
가지로
박원홍씨 진급누락강등같은거 걸려서 내가 당당하게 필진으로 추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부터 기도해야지. 박원홍 사고쳐라. 박원홍 사고쳐라.
병장 박진우 (20060709 154106)
마지막 가지로
병장 김동환 (20060709 185235)
오우. 원홍님 정말 사랑해요. 한박자 늦었지만 가지로
병장 박원홍 (20060710 191832)
석호 아플것도 슬플것도 머 있나요 우리들은 이렇게 같이 살아가고 있잖아요.
영준 저는 광복절날 만세를 부르며 여기를 떠나겠지만! 그 떠남이 없으면 정모 참석이 불가능하瑁. 저는 정모를 가고싶다구요오~
병장 주영준 (20060710 192054)
하지만 박원홍 사고쳐라.
병장 엄보운 (20060711 142835)
우워우워- 정말 멋진 글이네요. 뒤 늦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