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_미국의 세기는 끝났다!
병장 강세희 01-24 17:27 | HIT : 217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_미국의 세기는 끝났다!
이 분야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월러스틴은 세계체제분석이 정립된 이론이라기보다는 사회과학적 현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분석틀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법론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전지구적 사회 현상들 즉,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금융세계화와 사회적 양극화, 미국의 헤게모니 쇠퇴와 같은 문제를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체제분석의 전사(前史)와 주요 이론 등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체제 분석의 전사(前史)_
세계체제 분석의 주요한 특징은 한 국가가 아닌 세계경제 전체를 분석대상으로 하는 것, 세계를 중심, 반주변, 주변부로 구분하는 것, 장기지속과 헤게모니 순환의 시간이 중첩되어 있다고 보는 것 등이다. 왜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세계체제분석에 영향을 미친 몇 가지 사건들을 살펴봄으로써 파악할 수 있는데 월러스틴은 그것을 종속이론, 아시아적 생산양식 개념 사용에 관한 논쟁,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논쟁, 마지막으로 아날학파라고 설명한다. 이를 차례로 살펴보자.
종속이론_국제연합 산하 라틴아메리카경제위원회(ECLA)에서는 훗날 종속이론으로 발전한 핵심부-주변부 개념을 내놓았다. 이들은 리카도의 비교우위에 관한 설명과 달리 국제무역이 결코 평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공산당에 대한 비판까지 수행했는데 미국이건 라틴아메리카 공산당이건 그들은 모두 국가가 발전단계에 따라 진보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즉 종속론자들이 보기에 라틴아메리카는 자본주의로 이행하지 못한 봉건사회가 아니라 이미 자본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부분이므로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사회주의 혁명이지 부르주아 혁명이 아니었다.
아시아적 생산양식 논쟁_맑스는 자신의 직선적 사회진보개념에 포함되기 힘든 하나의 범주를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 불렀다. 스탈린 시절 제거되어 있던 이 개념이 그의 사후 논란으로 이어졌고 정통 맑스주의에 타격을 주었다.
자본주의 이행 논쟁_돕과 스위지의 자본주의 이행 논쟁은 돕의 '자본주의 발전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그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 원인을 산업혁명과 같은 영국의 내재적인 요인에서 찾았다. 반면 스위지는 영국은 사실상 더 넓은 유럽-지중해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연구는 더 넓은 분석단위에서 수행되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당시 이 논쟁은 돕의 승리로 끝났지만 세계체제분석에서는 스위지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날학파_아날학파는 개별기술적이고 경험주의적인 역사기술에 대한 저항으로 총체성을 강조하며 등장하였다. 특히 페르낭 브로델에 의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는데 그의 역사서술은 중첩된 복수의 시간대 속에서 전개된다. 그는 기존의 역사학자들이 의미 배열이 불가능한 사건사의 시간과 시간의 의미를 잃는 초장기지속만들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하나의 세계적 구조가 지속되는 장기지속과 장기지속 속에서의 순환을 나타내는 중기적 시간대인 콩종크튀르를 토대로 역사를 분석했다.
이렇게 세계체제 분석은 종속이론과 아시아적 생산양식 논쟁을 통해 맑스주의에 역사성을 부여하며 차별화 했으며 종속이론에서 핵심부-주변부 개념을, 스위지와 아날학파에게서 관계론적 분석법과 중첩된 시간개념을 길어올리며 그 체계를 다져나갔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_
월러스틴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세계체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이며 미국의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시기이다. 자본주의 세계경제 내에서는 세 번의 헤게모니 순환이 있었으며 17세기의 네덜란드, 19세기의 영국, 20세기의 미국이 그 주인공이다. 헤게모니를 장악한 국가는 이들의 뜻에 따라 국가간 체제의 게임의 룰을 확립할 수 있고 세계경제를 지배하며 최소한의 군사력 사용으로도 자신의 뜻을 정치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정도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들이 세계제국으로 전화(轉化)하는데는 실패한 것일까? 월러스틴에 의하면 세계경제는 기축적 분업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중심과 주변으로 나뉜 국가들 사이에 분업구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 의해 중심부는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며 부를 축적한다. 따라서 자본은 겉으로는 시장의 자유화를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완벽한 시장의 자유를 원하지 않으며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작동 공간에서 보호의 울타리를 쳐주는 국가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 결국 하나의 제국 하에서는 이러한 체제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헤게모니 국가는 세계제국으로의 전화되지 못하고 헤게모니의 순환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리기의 세계체제 분석_
우리나라에서는 월러스틴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세계체제 분석에서 지오반니 아리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아리기는 장기20세기에서 월러스틴이 사용하는 장기추세와 같은 분석방법은 과학적이지 못하다며 체계적 축적순환이라는 모델을 내놓는다. 그는 월러스틴이 세계를 중심과 주변으로 환원하여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하며 세계헤게모니의 정점에서의 자본의 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한다. 그는 또한 헤게모니의 상승과 하강국면, 즉 실물적 팽창 기간과 금융적 팽창 기간을 나눈다. 초기 실물적 팽창기간에는 생산과 고용, 이윤율이 상승하지만 차츰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실물부문에 대한 투자가 줄고 금융적 팽창이 시작되고 결국 헤게모니 자체의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미국의 경제위기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아리기는 2003년 이라크전쟁을 전후로 미국이 최종적 위기에 접어들었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물론 미국이 절대적 군사력과 세계화폐로 통용되는 달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을 반전시키려 여러 가지로 노력하겠지만 그것이 미국의 헤게모니 쇠퇴라는 큰 흐름을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미국의 헤게모니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라면 이는 곧 아리기가 말하는 헤게모니의 교체 시기가 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경제성장에 주목하던 그는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다음 헤게모니를 장악할 잠재력을 가진 지역으로 동아시아를 꼽은 것이다. 탈냉전에 따른 지정학적 변화, 생산의 집중에 따른 체계적 축적순환의 조짐 등 동아시아 헤게모니 시대의 도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실제로 실현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세계체제분석의 의미_
지금까지 세계체제 분석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대표적 논자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석에서 신자유시대의 지금 우리는 무엇을 건져올려야 하는가? 우선 20세기 말 일어났던 동아시아와 남미의 금융위기가 단지 개별 국가의 내부적 문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의 금융자본주의로의 개편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IMF 이후 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본과 노동의 유연화와 같은 내재적 대응이 아닌 전지구적이고 구조적인 대응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국제주의적 시각의 복원이 절실하다. 즉 너와 나를 가르는 근대적 관점에서 벗어나 민족을 넘어선 연대, 수평적 조직, 사회운동의 연합적 사고를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세계체제분석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함의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포르투 알레그레를 주목한다.
더 읽어볼 책_
월러스틴, 근대 세계체제, 까치글방
아리기, 장기20세기, 그린비 (근간)
비버리 J. 실버, 노동의 힘, 그린비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까치글방
칼 폴라니, 거대한 변환, 민음사
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그린비
병장 김효진
꺅 폴라니 책은 한 1년 열어보지도 않고 묵혔다는 슬픈 전설이... 01-24
상병 김재영
백승욱 선생의 <자본주의 역사 강의>에 대한 충실한 요약본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질문 하나.
구태여 세계'체계'가 아닌 '체제'라는 단어를 쓰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백승욱 선생의 말에 의하면 '체제-레짐'이라는 단어는 과거에 존재했던 하나의 시대 - 그 시대의 구조를 지칭할 때도 함께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16세기 이후에 꾸준히 존재해오는 하나의 시스템으로써의 '세계체계 분석'을 대변하기에는 애매하다는 설명이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앙시엥 레짐 - 프랑스 혁명 전의 구체제를 일컫는 이러한 단어와 함께 쓰일 경우 세계체제분석 이라는 단어는 혼동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해서 말이죠.
그나저나, 저 엄청난 저작들을 다 독파하셨다니 여간 부러운 게 아닙니다. (웃음)
부지런히 저도 따라 읽어보겠습니다! 01-24
상병 임채승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자신이 부끄럽네요., (난 뭐했지?) 01-24
일병 구본성
말로만 들어본 세계체제론, 성실히 읽었습니다. 01-24
병장 강세희
재영님 / 역시 책마을입니다. 웃음. 장기20세기가 아직 번역되지 않아 특히 아리기 부분에서는 '자본주의 역사 강의'를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안그래도 잘못된 번역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어서 주석으로 삽입하려다 말았는데 역시나 바로 지적을 받았군요. 글쓰기가 무섭습니다. 어쨌든 저도 많이 고민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어짜피 system이라는 한 단어가 아닌 'World-system alaysis'가 마치 고유명사처럼 특정한 이론체계를 가리키는 '세계체제 분석'으로 번역되는 것이기 때문에 regime과의 혼란이 발생할 여지는 크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대부분의 번역이 '세계체제'로 되어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에 세계체제(또는 체계) 분석에 대한 소개가 목적인 이 글에서는 굳이 세계체계로 번역하여 혼란을 주는 것 보다는 그냥 세계체제라는 단어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깊이있는 분석을 위해서는 분명 백승욱 교수의 주장대로 '세계체계 분석'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봅니다. 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