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매니악을 꿈꾸다. 
 
 
 
 
m.net이던가 KMTV였던가. 기상 직후 잠이 덜깬 정신으로 TV를 틀었을때, 음악전문채널에서 내 귀를 자극하는 노래가 들려왔다. 싸이의 We are the one. 사실 노래 자체도 엄청나게 내 귀를 자극했고, 최근 국내음악계 주류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바로 자기만의 색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하나. 더 멋진 표현으로 쓰고 싶은데, 내 글 실력은 이거밖에 안되는거 같다.(웃음)

아무래도 TV라는 매체를 통해서 음악을 접하다 보니, 뮤직비디오를 돗沮라 보게 된다. 우리의 싸이군. 멋지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공연하고, (비록 설정이지만(웃음))덤으로 평양에서도 공연하더라. 막상 눈길이 가게 되는건, 평양에서 공연할 때, 중간에 공안들에게 끌려나가는 평양의 참한 아가씨 한명. 뭐랄까. 화려하게 타올랐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싸이의 열정적인 공연과 직설적인 가사처럼 말이다.

사실 나는 가요를 거의 듣지 않는다. 속된말로 이야기해서, 국내 가요는 너무 돈벌이에 치중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주류에 맞춰서 판박이식 노래가 줄줄이 나오고, 이젠 그걸로 모자라서 창법까지 줄줄이 같은게 나온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가요계가 한심하긴 했어도, 저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숨이 픽픽 쏟아진다. 그런 상황에서, 싸이의 노래는 이른 아침에 날 제대로 태우려는듯 엄청 가깝게 다가왔다. 아니, 나를 화려하게 태워버렸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타오르는건 한두번이 아니다. 대학교 1학년때, 한해 농사가 쫄딱 망해버리는 바람에, 한참 집안 사정이 안좋아서 어쩔수 없이 K대 화학과 진학을 포기했던 나는 우리집 바로 옆의 국립대로 진학하게 되었다. 집에서는 4년제에 국립대니 니 하기 나름이라고 다독였지만, 일단 생물학과라는 길을 택한것이 한스러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 자신이 '수학을 못해서' 화학과에 지망 못했다는 사실을 덮으려는 한 수단이었던것 같다.

그때 충분히 삐뚤어질수 있었는데도, 안삐뚤어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졌던 취미덕이다. 사실 무선이라는 취미를 대학교때 제대로 해보려고 했건만, 대학교에 동아리도 없고, 몇백이나 하는 장비를 당장 사들일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잠시 접어두어야 했지만, 당시 보편화된 디지털 카메라는 나를 푹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술 마실거 안마시고, 담배는 애시당초 안배우고, 2500원짜리 밥대신 1800원짜리 밥을 먹으면서 모은 돈으로 나는 20만원짜리 디카를 샀다. 그걸 사고 보니 왠지 SLR에 눈이 가더라. 마침 중고시장에 EOS-300(디지털도 아닌 필름바디), 그리고 기본세트라 할 수 있는 28-105렌즈, 50.8렌즈가 보이길래, 내 생애 유일하게 신용카드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사버렸다. 물론 그 뒤로 석달간은 그 구멍을 메꾸기 위해 밥도 못먹을 정도였다. 어찌보면 학교 걸어서 안간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를 불태웠던 두 명기(名技)들은 너무나도 내 생활을 바꿔버렸다. 학교 리포트를 쓸 때, 온갖 정성을 다해서 셔터를 눌렀고, 카메라를 들고선 후배들을 괴롭히는 버릇 역시 이때 생긴 내 나쁜 습관이다. 하지만 그뿐이랴. 슬슬 구도, 조리개, 셔터속도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특히 필름을 쓰다보니 점점 필름에 대한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어느새 집안 냉장고에는 센추리아 필름이 몇개 쌓이더니, 그 필름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벨비아와 리얼라가 냉장고에 쌓여버렸다. 대신 내 용돈은 더더욱 궁핍해졌고, 나중에는 집에서 밥을 안주면 아예 바깥에서 굶고 다닐 정도였다.

결국은 이런 폐인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EOS-300과 28-105렌즈를 매각해버릴수밖에 없었다. 일단 필름값에 인화비만 빼면 생계 유지가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타오르는 열정은 남았고, EOS-300에 담았던 열정은 컴팩트 디카인 A60에게 고스란히 넘길수 있었다. 사실 어떻게 찍느냐가 중요했지, 무엇으로 찍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대신 그때의 열정을 간직하고자 싸구려(?) 50.8렌즈는 고이 간직을 했고, 지금은 아마 장농 한구석에 박혀있을듯한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하지만 이걸로만 타올랐다면 내 인생은 진짜 허무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고등학교때에는 메탈과 락에 심취를 해버렸다. 맨 처음 접한 레드제펠린의 Stairway to heaven, 그리고 아는 형이 MSN으로 보내준 나이트위시의 End of All Hope. 이걸로 내 음악감상 인생은 결정이 나버렸다. 신물나는 가요들은 한구석으로 사라지고, 자기만의 색들이 뚜렷한 노래들로 내 귓구멍을 채워나갔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좋은 노래들을 만든 사람을 위해서, 음반을 구매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바로 이때이다. 그때 당시 나는 돈이 부족해서 하고싶은 일을 맘대로 못하였고, 그들도 분명 돈을 벌어야 좋은 노래를 선보일수 있을테니까.

뭐 결과적으로 보자면 내 방은 이로써 난장판이 되버렸다. 특히 군입대후, CD정리를 안하다보니 완전 개판이 되버렸다. 가끔씩 집에 가면 정리를 해야할텐데. 하는 생각을 가지지만, 맥주 친구들의 유혹에 넘어가 버리고 정리를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어느새 복귀할 시간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당연히 다음으로 미뤄지게 되는것이다. 그러고보니 다음에는 꼭 정리 해야할텐데.

이런 음악적 편견(?)은 후에 이상하게 발전을 하게 되는데, 이른바 OST 수집병이라는 중증 정신병(...)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개똥도 약에 쓸수 있는건지는 몰라도, 이 덕에 고등학교 여고 방송부와 잦은 컨텍을 하게 되었다(물론 결과는 꽝이다.).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아무리 인터넷으로 죽어라 검색해도 안나오는데, 나한테 이야기 하고 나서 짧으면 반나절, 길게는 2~3일뒤에는 떡하니 CD에 담겨져서 도착하는게 흔한 일이었으니까. 아마 그 덕에 여고 축제 당시, 남고학생으로써는 유일무이하게 개인자격으로 (명목상)축제 진행 스태프로 참여하게 되는 일도 생겼다. 뭐, 이미 2학년때부터 축제나 행사 있으면 통신 지원 스태프로 참여했으니, 그건 논외로 해야겠다.(웃음)

그러고보니 저 무선이라는 취미. 내 고교생활 3년간을 제대로 불사른 취미이다. 태풍이 몰아치는 날, 학교 안테나가 고장났다는 전화를 받고, 방학때 학교 옥상에 올라가 비바람과 싸우면서 무려 세시간동안 안테나를 사수하고, 한겨울에는 눈오는날 안테나가 이상해서 옥상 올라갔다가 미끄러져서 죽을뻔한 적도 몇번 있었다. 뭐 감전되고 그런거야 부지기수한 일 아닌가. 그래도 나는 끈질겼다. 혼자서 제대로 된 안테나를 만들었고, 있는돈 없는돈 모아서 데이터 무선통신의 기반까지 마련했다. 그리고 회비를 모으기 위한 내 결실은 지금도 유효하게 먹히고 있다. 매년 수백만원의 돈이 고등학교 동아리 지원비로 나오고 있으니까. 사실 돈만 있다면 당장 타오르게 될 취미는 무선이 아닐까.

이렇게 정열속에 활활 타오르는 내 인생이지만, 아직도 타지 않은채 많은 부분이 남아있다. 몇년 뒤, 학교를 졸업한 다음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얻게 되면, 그들때문이라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정열의 불길속으로 내 몸을 맏기는 일 역시 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그 전에 내 인생의 정열을 부담없이 다 태울수 있음에도 내 인생을 허무하게 남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짜 나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일이 되는것이 아닐까.

지금도 나는 울트라 매니악을 꿈꾼다. 내 인생의 모든 정열을 다 태우고 진정한 소시민으로 평범히 살아가는 그날을 위해서. 진정한 의미있고 후회없는 인생을 위해서. 그리고 내가 남긴 흔적을 보고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지금 이세상에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나의 2세들을 위해서. 

  
 
 
 
상병 황민우 (2006/05/13 14:13:00)

왠지 용준님의 방이 제 방과 오버랩되는 기분. 
제 방에는 나이트위시Nightwish는 물론이거니와 랩소디Rhapsody, 라떼엘 미레Latte El Mille, 머큐리레브Mercury Rev, 투팍2Pac, 쿠퍼템플클로즈The Cooper Temple Clause, 문샤인Moonshine, 오비쳐리Obituary, 딤무보거Dimmu Borgir, 써모닝Summoning, 버줌Burzum, 메이헴Mayhem, 헬로윈Helloween, 카테드랄Cathedral같은 밴드의 음반들이 마구 널브러진 위에다가 마르케스나 나쓰네 소세키, 엘리아데, T.S엘리엇, 톨킨류의 책들이 얹혀지고, 그 위에 다시 미술그림 엽서와 타로카드들이 어지럽게 흩어진, 그 위에 이불이 깔려있는.. 희안한 구조랍니다. 어떤 음악 칼럼니스트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매니아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볼때 아주 쓰잘데 없고 하찮은 무엇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한번이라도 그곳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다면, 삶은 바로 그곳에 있다는것을 깨닫게 될것이다."    
 
 
병장 오해성 (2006/05/13 17:43:32)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서나 멋지게 보입니다. 
아직까지 그렇게 타 올라볼 어떤 것을 찾지 못한 제가 
부끄러워질정도 활활 타오르시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거 같습니다. 

군입 후 정리를 안해 방이 개판이 되었다는 말에 
가슴이 찔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나가서 만화책이라고 한권 찾으려면 암담해지는 게 
제 방인지라. 

민우//음악씨디를 게임 씨디로, 소설책을 만화책으로 바꾸면 그건 제 방이 됩니다.    
 
 
 병장 노지훈 (2006/05/14 09:48:15)

이미... 제 방은 창고가 되버렸습니다. (웃음) 
글 잘 읽었습니다~    
 
 
병장 주영준 (2006/05/15 09:22:10)

진지하지 못한데다가 집중력도 없는지라, 어딘가에 매니악한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병장 조용준 (2006/05/15 09:31:13)

영준// 후우. 제가 볼때는 영준님도 충분히 매니악해요. 우흐흐.    
 
 
상병 조주현 (2006/05/15 11:07:33)

메탈과 락이라, 그것들은 저의 힘이거늘! 여기 또 계셨군요!    
 
 
상병 박종민 (2006/05/15 13:13:40)

여기도! 흣흣.    
 
 
상병 김민성 (2006/05/18 12:17:26)

태클은 아니지만 싸이에 대한 불편함이 있기에 댓글을 답니다. 
그 기골장대한 PD수첩인지 뭐였는지 다큐프로그램이었는데 
기억은 잘 안납니다만 싸이가 출연한(?) 다큐가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상당한 부자이고 그 돈과 인맥을 통해 
싸이를 방위산업체 요원으로 집어넣었습니다. 
교묘하게 법망을 피했기때문에 
이후 그 문제는 법적으로 거론되지 못했구요. 

그가 다큐에 남긴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아..그건 저희 매니저오면 같이 말씀드릴게요." 
표정은 뭐씹은 표정, 역시 인상적이었구요. 

그가 이래저래 사회적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이나 
꾸밈없는 솔직함 등이 맘에 들긴하지만, 
그가 그런 사람임을 알았을때의 불편함은 잊을 수가 없군요. 

아니나 다르까 조PD같은 애들도 
병역을 비켜가더군요. 
대한민국에서 받을 혜택 다 받고 
비난할 비난 다 하면서 
자기네들은 깨끗하고 떳떳한 이미지를 보이더니 
이내 뒤에선 그런 식이었습니다. 

참...뭐합니다. 정말.    
 
 
병장 조용준 (2006/05/18 12:47:45)

민성// 워우. 여기서는 그런걸 논할려는게 아니잖아요. 
일단 논점에 맞는 댓글 부탁드려요.    
 
 
상병 김민성 (2006/05/19 11:39:27)

용준//주의하겠습니다.(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