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사랑. 삶 - 건설업. 항공운수업. 우편업 
 
 
 
 
  2001년 초, 대학 입학에 필요한 봉사 활동 시간을 채우지 못한 어떤 소년은 친구들과 충북 음성의 꽃동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장장 나흘간의, 40여시간의 봉사활동을. 밤마다 할 일이 없었던 소년은 생활관을 연상시키는 종류의 '봉사자 숙소' 서재 꽂혀 있는 책을 몇 권 y어보았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두 권 뿐. 칼릴 지브란의 어떤 책. 그리고 스티븐 킹의 어떤 책. 그렇게 그는 칼릴 지브란이란 시인을 알게 되고, 봉사 활동에서 돌아왔고, 다시 지난한 삶에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2001년 2월 8일, 어떤 소녀는 자신의 책상에 흐뜨러진 책의 제목들에 자신만의 모종의 함수를 대입함으로써 an, purply 라는 문자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두 개의 문자 덩어리를 조합해서 만든 메일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랜덤한 메일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것, 그것은 사춘기 시절 헤세 전집을 독파한 그 소녀의 취미였다. '반갑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칼릴 지브란을 좋아하십니까'라는 내용의 메일이 그렇게 발송되었고, 자주색을 좋아하던 소년은 Italy-Italian에서 영감을 받아 Purple-Purplyan이라는 메일 주소를 만든 소년은(i대신 들어간 y는 일종의 애교였다) 그런 메일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2001년의 여름 소녀와 소년은 서로 동갑이라는 것과, 한 명은 소년이고 한 명은 소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서로에 대한 사랑에 빠진 그들은 상대가 동성이었건, 스무 살이 차이가 났건 상관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란히 수능을 보고, 소년과 소녀는 채팅을 시작한다. 세이클럽의 문학방에서. 한참 웹진을 만들어보려는 꿈에 젖어 있던 소년은, purple과 전혀 상관 없는 닉네임을 쓰던 소년은 기획중인 웹진 제목-소녀에겐 말하지 않은 찌질한 꿈이었다-으로 방을 만들고 오는 사람들과 한담을 나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들어 오게 되고, 소년은 그 누군가와 마음이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곧 웹진 따위는 포기한 채로, 소년은 매일같이 그 '누군가'와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일대일 대화를 했다. 그렇게 만난 지 일주일 소년은 물어보았다. 메일 주소라도 좀 가르쳐줄 수 없냐고. '누군가'는 별 생각 없이 자신의 메일 주소를 밝혔다. 그리고 한참 동안 소년과 소녀는 별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일대일 대화방에는 그렇게 몇 분의 정적이 흘렀다.

  소년은 그렇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운명을 믿었고, 고 3 종업식 전날 밤 기차에 몸을 싣고 태백으로 향했다. PC방에서 밤을 샌다는 핑계를 집에 남기고. 서울에서 태백까지의 짧지 않은 거리. 한 겨울. 그렇게 소년은 새벽 네시에 태백에 도착했다. 소녀에게 '나는 태백에 갑니다.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라는 메일을 남긴 채. 볼 수 있을 지 없을 지 확신은 없었다. 소녀에겐 핸드폰이 없었다. 그래도 소년은 운명을 믿었다. 그래서 동짓날 새벽 태백의 극도로 추운 길을 서성거렸다. 서울에서 입고 온 얇은 코트 한 벌을 걸친 채. 너무 추워서 파출소라도 가서 재워달라고 할까 했지만 '태백은 원래 추워요'라는 경찰의 매몰찬 말에 결국 소년은 태백 역에서 하루를 지냈다. 역 근처 PC방에서 수시로 메일을 보내고 확인했다. 그 곳 역시 추웠지만 그 곳에서 밤을 지새기에 소년은 돈이 없었다. 그렇게 소년은 수줍어하던 소녀에게 약속을 받아냈다. 한시에 뵈요. 태백역에서. 진짜로 올 줄 몰랐는데. 소년의 주머니에는 한시 반 서울행 열차표가 들어있었다. 그렇게 소년은 소녀를 만났다. 30분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소년은 서울로 올라갔다.

  그렇게 나는 사랑을 시작했다. 수많은 우연과 운명이라고 불리울 만한 것의 축복 속에서.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녀가 메일을 보낼 만한 주소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01년 말, 한참 잘 돌아가던 세이클럽 문학방의 초년생이 마음에 맞는 사람을 쉽게 찾는 것도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핵심적인 두 개의 우연을 구성하는 소소한 우연들 역시 가히 운명적일 만한 무엇이다. 두 개의 우연이 그렇게 연결되는 것, 두 사람의 인생이 맺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 무엇을 삶의 중심에 놓는 것을 의미한다.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쉬운 일이라 할지라도 나는 운명을 믿을 생각이 없다. '믿는다'는 것은 입장이자, 이에 기인한혹은 독자적인 하나의 실천이다. 운명을 삶의 중심에 놓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운명을 기다리는 일 밖에는. 그렇기에 나는 운명을, 우연을 믿을 생각이 없다. 모르겠다. 내가 혹여 니체가 이야기한 초인이라거나 베버가 이야기한 프로테스탄트 정도가 된다면, 아니면 하다못해 김형진이라도 된다면 나는 운명과 허무주의로부터 어떤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한 나약한 인간. 적당히 유쾌한 세계에서도 손쉽게 절망해버리는 타입의 인간이다. 그런 나 운명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가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가 내게 오기 전까지 추운 삶 속에서 18년동안 그녀를 기다려왔지만, 추운 겨울의 태백에서 아홉 시간동안 그녀를 기다렸지만, 적어도 나는 '운명'에 기대어 그녀를 기다리지는 않았다. 다섯 보쯤 내 입장을 뒤로 물려, 그녀와 나의 만남이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 할 지라도.

  무엇을 믿지 않는 것과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으며 운명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사는 것은 때로 그다지 쉽지 않다. 겹쳐지는 몇 겹의 우연들이 때로 운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운명이 아닌, 다만 겹쳐진 우연일 뿐이다. 몇 개의 허상이 겹쳐서 어떠한 입체적인 상을 만든다고 해도 그것이 실재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다지 강하지 못한 내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런 입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나를 자각하면서부터,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나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렇다고 내가 최악의 삶을 산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나는 연애 소설과 전쟁 소설을 편한 마음으로 읽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 소설 속에서 사랑을 얻는 자는, 그리고 살아남는 자는 그야말로 운명이 선택하는 것 같았으니까. 도대체 나는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꼭 미친 듯이 발버둥치다 사랑을 잃는 쪽이라거나 침착하게 적진을 헤치다가 어이없게 죽어버리는 쪽이 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아니, 보다 솔직해지자면 자기 감정에 취해 사랑을 잃거나 전쟁의 공포로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다가 살해당하는 쪽이겠지만. 운명론의 관점에서 어느 쪽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내가 운명을 믿게 되면, 나는 삶을 저주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어쨌거나 운명에 적대적이었으며, 그렇기에 그것을 부정했다. 아마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면 그쪽도 내게 그런 입장을 취했을 것임에, 불공평한 거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어쩌면 편한 삶을 산 것이다. '나는 아직 충분히 절망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기도는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흔히 '저 녀석, 강하구나'하는 식으로 곡해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아니다. 단 한 번 무엇에 삶은 커녕 생활을 걸어본 적도 없다. 그렇기에 절망할 것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내게는 다만 아직까지 운명을 느낄 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정말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우연이 겹치며 일어나는 그러한 사건을. 아니, 몇 번 일어났는 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마지막에서 나는 운명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고 버텨 왔다고 생각한다.

  ~해 왔다고 생각한다, 는 것만큼 무의미한 수사는 없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김훈이 그랬다. 닥쳐온 끼니 앞에서 이전의 모든 끼니는 무효라고. 그래. 해 온 것은 해 온 거다. 그러나 지금은. 쉽지 않다. 달력을 보고 한참을 헤아리지 않으면 오늘이 몇 월 몇 일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나날들. 그런 헤아림으로부터, 약 2주 전으로 추정되는 시기부터 며칠 전까지 그녀에게 보냈던 일곱 편의 편지가 전혀 그녀에게 도착하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이 곳의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곳의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한 글보다 훨씬 더 큰 고민과 노력으로 쓴 편지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도착하지 않았다. 도착하지 않기 이전에 대거 반송되었다. 나는 도대체 편지가 약간 무겁다는 이유로 규격 봉투에 담긴 편지에 20원 미납 딱지가 붙은 채 반송된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져야 되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c발, 내뱉을 기력마저 없다. 그리고 그렇게 편지는 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상황에 의해 자본주의에 동의하는 사람으로써, 체제 안에 살아가는 근로자의 존재 역시 긍정하고, 그들이 합리적인 이익 집단인 노조를 꾸리는 것 까지도 인정하고, 그 이익 추구적인 활동인 파업에도 '나름' 인정한다. 딱 고등학교 일반사회 책에 나오는 만큼만, 국가가 인정하는 만큼만. 그러나 나는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결코 절대로 어쩌면 되도록 왠만하면 민항기 조종 근로자나 시설건축 근로자들과 연대하기 힘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우체국 근로자들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들은 뭐 하는 작자들인가. 박봉이고, 열악한 근로 조건이고, 다 안다. 안다고 하면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만 할 수 없다. 그건 운명일까. 아니, 그건 시스템이다. 그런데, '고작' 연애 편지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편 관리 시스템에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내가 개입할 수 없는 어떤 것. 운명. 시스템은 그렇게 운명인걸까.

  몇 번 그녀에게 1541을 했다. 이건 분명히 미친 짓이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세 번 집에 이야기하지 않고 출타를 나가서 밖에서 잔 덕택에 돈이 없다. 때마침 마지막엔 현금 카드마저 잃어버렸다. 나도 돈이 없다. 대대 사람들에게 빚이 3만원이다. 그래. 나 집 안 어렵다. 3,4일 외박 나가면 십만원 십오만원 지르고 온다. 변통할 수 있으면 빚이야 아무래도 상관 없다. 그녀는 어려운데. 물론 다만 경제적인 이유뿐 아니라 여러 다른 이유들도 기인하지만 아무튼 구체적으로 어렵다. 쉽게 이야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내게 화를 내는 이유 중 어느 정도는 그러한 상황에 기인한다. 비록 내가 지금 당장 울타리 안에 있고 위아래로 부딪히고 업무가 있고 사역이 있어봐야 나는 소부르주아 집안의 병장이다. 그런데 생각없이 1541을 했고. 또 싸웠다. 이런 상황에서 싸울 수 있다니. 대단한걸. 이라는 다른 친구의 감탄 및 빈정거림. I'm worse at what I do best. 편지라도 도착했으면, 그녀는 나의 말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나는 말보다 글 쪽에 훨씬 익숙하며, 감정을 통제하는 것에 비교적 익숙하다고는 해도 그녀 앞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편지는 도착하지 않았고.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배려부족이다. 반성해도 안 된다. 구제 불능. 인간 실격이다-그렇게 1541. 젠장. 그녀가 처한 경제적 상황 역시 운명적인 무엇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아아. 나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당장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나의 태도가, 제멋대로이고 배려 따위는 찾아볼 수 없으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녀에게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서 결정을 요구하는 내가 문제다. 그래. 그녀는 분명히 나를 선택할 텐데. 믿는다면서, 나는 무엇에 그리 조바심이 나는 것일까. 하지만 내 감정도 소중한데. 잠들 수 없는 밤들은 무서운데.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들. 운명일까.

  그 많은 일들. 나의 잘못들. 소소한 불행들. 하다못해, 8강 진출 팀 중 네 팀을 밀었는데 모두 탈락해버렸을 때의 우울함. 정확하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축구에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었는데. 매번 있는 업무상의 실수. 그리고 휘청거림. 감정들. 운명. 운명. 운명일까. 사랑, 의 시작도 그 끝도.

  아니다.

  내 사랑의 시작은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우연의 선율에 기반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우연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의 사랑의 시작에 '운명'이란 속성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관계를 만든 것은 그녀와 나다. 운명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또한 비록 나는 도덕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그렇다고 감정에 솔직하지도 정치적으로 치열하지도 않지마는 나는 스스로에 정합적이고 싶다. 사랑의 시작을 운명이라고 치부해버리면 나의 끝도, 지금의 상황들도 운명이다. 지난 몇 년 간 나의 잘못들도. 또다시 전술적인 입장에서 나는 운명을 거부한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내가 대항할 수 없는 무엇이라면 나는 포기해버림이 옳다.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가 없다. 내가 그녀를 행복하게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 가끔 자주 든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것은 운명이 아니다. 편지가 도착하지 못한 것 처럼. 그녀가 갑자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 것 처럼. 아니. 운명이든 아니든 상관 없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2001년 2월 8일 추운 겨울의 오후, 어떤 편지가 내게 온 것 자체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그로부터 시작한, 운명과 상관 없는 그녀와 나의 관계다. 이렇게 쓰고 있는 나는 물론 아프다. 운명이 내게 웃어준 얼마 되지 않는 일을 나는 부정해야 하는 것이니까. 그래.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나도 똑같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약하다고. 운명을 부정하고 싶다고, 저항하고 싶다고 쓰고 있어도 실은 그것이 내게 호의적이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사실 이것은 내게 쓰는 글이다. 칼럼이라니, 당치않다. 자기 최면. 자기 암시. 이런 짓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나는 견딜 수 없다. 이런 짓을 해도 삶이 버거운 것은 마찬가지다. 당연히 나는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내가 내 두 팔로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다. 더구나 관계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닌, 주체인 타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은 오만이며, 타인에 대한 폭력이다. 하지만 하지만......아아. 나는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가만히 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기에 조금씩 나의 무덤을 파고 있는 중인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것이 나의 삶이라면 나는 나의 삶을 긍정하겠다. 아니, 아니다. 나는 나의 모든 삶에 '예'라고 대답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내가 긍정하는 것에만 예, 라고 대답하는 것. 평범한 인간으로서 가능한 生에 대한 최대한의 긍정. 모른다. 

  일단, 운명은 없다. 하지만 혹시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할 수 있는 만큼을. 호의적인 운명에는, 순응을. 적대적인 운명에는, 전투를. 그것이 다다. 나는 삶을 통째로 긍정할 수도, 계속 밀리면서도 살풋 웃고 다시 살아가는 시지프가 될 수도 없다. 凡人이 위대해지는 길은, 스스로를 돌이킬 수 없는 곳에 던지는 것 밖에 없다고, 삶에서 두 번째로 나를 주눅들게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좋아. 내가 凡人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내기를 해 볼 때다. 섣불리 스스로를 던지지 않는다. 평범하게 승리하리라.

  그래도 어제는 이탈리아가 이겼다. 아니, 오늘이던가. 내가 밀던 팀의 유일한 승리. Forza Italy. 연장 후반 14분의 쾌거. 하지만 이탈리아가 우승하건 말건, 나는 승리하리라. 어쨌거나 이번 주말, 그녀가 온다. 도착하지 않은 편지따위, 신경쓰지 않는다. 다시 쓴다. 다시 쓰면 그만이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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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꾸 사랑타령 늘어놓아, 미안할 뿐이다. 게다가 칼럼이라니. 이런 녀석을 필진이라고 지지한 책마을 주민들은 스스로에 대하여 반성을 해 볼 때다. 

  
 
 
 
병장 송희석 (20060705 102236)

빙빙 돌아 다시 원점으로!    
 
 
 병장 김동환 (20060705 102606)

운명적인 사랑이라니. 정말 좋겠다. 
그간 영준씨의 글에 나타난 모습만 조립해도 무척 좋은분 같은데. 건투를 빕니다.    
 
 
병장 김형진 (20060705 102828)

예전에 육이은씨도 비슷한 이야길 했었고, 저도 재차 강조했었지만 그야말로 천사같은 분이지요. 
주영준이라니. 주영준이라니.    
 
 
병장 고계영 (20060705 121237)

사랑타령이라면 술이라도 한 잔하며 2박3일 날밤새며 같이 해 드릴 수 있을텐데.. 
승리하십쇼!, 연장후반 남은 1분까지도. 포기하지마시고.    
 
 
병장 엄보운 (20060705 130036)

난 이것이 원점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부분적으로 그러하겠지만, 특히 영준씨에게는 거의 전적으로 - 내 입장에선 - 그 과정의 헐떡거림이 시작점과 끝점을 모두 합친 위대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당신으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되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병장 박민수 (20060705 134932)

제 입장에서는 이런 칼럼이라면 얼마든지 읽고 싶은걸요. 굉장히 감정적이면서도, 거칠지 않게 다가오는 글. 아아. 정말 잘 읽었습니다.    
 
 
상병 조주현 (20060705 152927)

제가 좋아하는 영준님의 글 1순위가 오늘로 약 25주간의 무변동을 뒤로하고 바뀌었습니다. 

멋진 영준님. Forza!    
 
 
하사 윤석호 (20060705 214146)

하여간.. 

그렇다면 내가 이번 주말에 면회를 선수쳐 주도록 하지!(탕-)    
 
 
상병 이영준 (20060706 084822)

역시, 야구는 9회말 투아웃 부터 시작이고, 축구는 injury time까지 유효한거겠죠    
 
 
일병 이건룡 (20060706 142047)

잘읽었습니다. 사랑타령이라 치부하기 어렵군요, 사실 전 사랑타령도 좋습니다.     
 
 
병장 이상훈 (20060707 073832)

글 잘 읽었습니다. 필진다운 글솜씨인걸요 (웃음)    
 
 
병장 박원홍 (20060707 090536)

아. 아름답습니다!    
 
 
병장 유승현 (20060707 105356)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모든것은 단순한 통과점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준님이라면 그중에서도 더 나은 곳들을 향해서 가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언젠가 한번 뵙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인것 같네요..    
 
 
병장 양영후 (20060708 095451)

이탈리아는 안 되요.. 경기를 더럽게 한다니까... 결국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헛소리 늘어 놔서 죄송합니다... (땀)    
 
 
 병장 김동환 (20060708 180154)

동네 슈퍼 아저씨도 다들 잘생긴 이탈리아가 축구마저 깔끔하게 했더라면 
저는 아마 세상의 불평등에 일찌감치 무릎꿇었을꺼에요. (먼산..)    
 
 
 병장 박진우 (20060710 235148)

드디어 읽었다! 
이건 거의 완벽한 주영준스러움의 압축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