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책이 아직도 베스트셀러에 속하고 우리의 나영씨가 주인공이 되어 영화로도 나오고 나름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만, 읽은지 반년이 넘은 책에 대해 뭐라고 끄적거리려고 하는 건 순전히 내 소심함 탓이라는 걸 미리 밝혀둔다. 그래서 이젠 주인공 이름도 잘 기억이 안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찝찝한 만큼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기에, 공지영씨에게 한마디 하고 넘어가야겠다. 물론 공지영씨는 이 글에 관심 1g도 없다는 걸 나도 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단 두가지다. 사형폐지론자와 소설가 사이에서 끝내 제대로 된 자리를 잡지 못한 방황하게 된 작가와 사형제도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비겁하게 승부를 피해버린 것에 대한 비판이다.

먼저 첫번째 얘기부터 시작해보겠다. 공지영은 작품내내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사형제도의 비정함을 알리고, 읽는 이들로 하여금 그러한 변화를 유도시켜야 하긴해야하는데, 그녀의 소설에선 자신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채, 마치 이등병이 뽈록이 오버로크를 친것처럼 어색하게 드러나고 있다. 느닷없이 자신이 어느TV에서 봤던 수용자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은, 구어체만 바꾼다면 이게 소설인지 사설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런 장면이 꽤나 여러번 등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뭐 이게 새로운 소설의 장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아직까진 소설은 매끄럽고, 세련되게 구성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가령 백년의 고독에선 '내가 아니라 혁명이 자네를 죽이는걸세'라고 했던 부엔디아 대령의 말에 그의 친구는 '똥 같은 소린 집어 치우게'라고 받아친다. 구구절절, 이것저것 다 끌어다 부치는게 리얼리즘이 아니란 말이다. 마르케스 처럼 간결하지만, 명료하게, 그러면서도 치명적이게 현실을 내지르는 것이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공지영은 참으로 서툴렀다.


이건 뭐 그렇다 치고 이제 정말 하고 싶은 얘기인 공지영의 비겁함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이들의 가장 주된 논리는, 바로 복수이다. 이건 책에서도 인용한 까뮈의 단두대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나온다. 그렇다면 진정 사형폐지를 원하는 공지영은 이 복수와 당당하게 정면승부를 해야하는게 자명하다. 복수는 등가교환이 될 수 없고, 그것에 근접하지조차 못한다고 호소해야한다. 결코 누명가능성을 빌미로 싸움을 피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누명가능성은 단지 사형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30년동안 복역했는데 이제서야 그것이 누명이라는 걸 알게된다면, 그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은 누가 보상해주는가? 

물론, 공지영은 용서라는 화두를 계속 꺼내고 있긴 하다. 자신의 딸을 죽인 살해범을 용서하고, 여주인공 역시 자신을 성폭행했던 삼촌을 용서하고, 자신을 냉대했던 어머니는 용서했다. 그게 과연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무턱대고 덮어두는 용서가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 용서의 미덕은 궁극적으로 남자주인공에게 향해야 한다. 하지만 소설의 중간정도만 읽어보아도, 남자가 누명을 썼다는걸 누구나 알 수 있게 된다. 누명을 쓴 사람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건 '프리즌 브레이크'의 음모론자들이 아니라면 그 누구라도 동의하지 못한다. 남자는 온갖 범죄를 다 저지른 사람이 됬어야 했다. 10대 소녀를 강간하고, 3명을 살인한 그런 정말 못된 놈이 됬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그를 용서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게 해야 했다. 하지만 공지영은 비겁하게 그 남자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죄를 다른 친구에게 전가해버렸다. 우리는 그 나쁜 친구를 잠깐 욕하게 되지만, 그는 이 소설에서 별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악역만 떠맡은 채 사라져 버린다. 이게 뭐냐. 이럴거면 앞에서 용서고 뭐고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왜 우리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느냐 하는 말이다. 공지영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비겁함을 자처했다.

물론 '문학의 위기' 라는 말이 아직도 메아리치는 시점에서 사람들의 발길을 서점으로 향하게 했다는 점과, 사형제도에 대해 한 번은 더 생각하게 해보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녀는 세련되지 못했고, 비겁했다. 문학의 위기에서 어느정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갖춘 소설을 공격하는건 옳지 못하다고 말할 수 도 있겠다만, '비판적 지지'의 전제는 당연히 날카로운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날카롭지 못했다면 거기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내 할 말은 끝났다. 약간은 그 찝찝함이 가신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