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88만원 세대인가? , 양제열>
0. 눈치보며 쓴 글이라 두서가 없을 것 같아요. 미안합니다.
이 글을 쓰는데 많은 분들이 도움이 되었어요. 예찬씨, 현상씨, 승인씨, 원익씨, 명교씨, 태완씨, 그 밖에 당장은 기억 안 나지만 세대론 담론에 참여해 준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1. '88만원 세대'와의 조우
이천칠년 여름이었다. 나는 당시 다른 학교 애들이랑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말이 세미나이지 책을 읽고 잡담을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진 못했는데, 세미나 멤버 중 한 명이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생각에 이 책이 백만부가 팔리면 세상이 바뀔거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며칠 후 난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88만원 세대'를 보았다. 연두색 표지에 어깨를 축 늘어뜨린 남자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 상당히 촌스러운 디자인이었다 - 나중에 우석훈씨 블로그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출판 막바지까지 표지 일러스트할 돈을 못 구했다고 한다. - 새끈하게 잘 빠진 다른 책들과 달리 '88만원 세대'는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책은 사회과학 책으로서는 대박을 쳤고, 그 해 말 있었던 대선에서 메이져급 주자들은 한 번씩 언급할 정도로 사람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딱 한 분, 우리 모두 알지만 차마 이름을 말 하지 못하는 그 사람만 빼고 말이다. 여튼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별다른 각주나 설명없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정도로 대중화 되었다. 그런데... 세상은 왜 안 바뀌었던걸까? 혹시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입에 한 번도 안 올리셨던 그 분이 당선되어서?
2. 메시지의 변질과 타락
'88만원 세대'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대략 세가지 정도인 것 같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했고 직접적인 피드백을 몇 번 받을 기회가 있었다.)
하나는 우석훈씨와 박권일씨('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의 분석에 동의하며, 20대가 힘들다는 것을 잘 이해한 후,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다짐했다.
다른 한 부류는, '설마 내가 88만원밖에 못 벌겠어?' 라고 반문하는 유형이었다. 이 경우 내가 아는 사촌 형이 어디에 취업했는데 월 몇 백을 번다, 알바를 해도 한달에 88만원보다는 많이 벌 수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곤 했다. '88만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 자체가 오독인 것은 맞지만, 이런 반응에는 어떤 믿음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그 만큼 어려워지지 않으리라는 믿음.
마지막으로는, '20대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기획하려는 축이었다. 하지만 명색이 당사자 운동임에도 주변 또래들의 반응은 썰렁하다 못해 처참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했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략 이 세가지 범주에 속해있지 않을까 싶다. 나 같은 경우에는 20대 운동이니 세대간 격차니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내심 '설마 내가 그렇게 어려워질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쁘띠 부르주아인 내 계급 정체성에 너무나 잘 어울리듯이.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상황은 이천칠년보다 지금이 더 나빠진 것 같다. 청년실업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정부의 구체적인 해결책은 전무하다. '20대의 목소리'같은 것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엠넷의 20's choice 같은 건 빼고. 물론 '대안'이라 이름 붙일 만한 것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희망청'이 설립되고 몇 번의 영화제가 기획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천칠년구년, 대부분의 당사자 운동은 답보상태라고 한다.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를 쓴 한윤형의 말을 옮겨 보겠다.
[ '88만원 세대'담론은 많은 20대들과 출판기획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윗세대 선에서 문제를 지적했으니 이제 20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착상이 여기저기서 생겼다. 그래서 2008년부터 여기저기서 20대들을 묶어 무언가를 해보려는 시도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나 자신도 그 시도의 다발 중 어느 한 곳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시도들은, 지금 이 순간까지는 전혀 성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한편 '88만원 세대'라는 메시지 자체도 극적으로 변질을 겪게 된다. 분명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과 박권일은 '너희들은 한 달에 88만원 받기도 힘들만큼 어려운 세대이고, 이 문제는 혼자 해결하기 힘드니까 서로 연대하고(바리케이트를 치고) 저항하라(짱돌을 들어라!)'고 선동했다. 그러나 지금의 '88만원 세대'의 메세지는 '너희들은 한 달에 88만원 받기도 힘드니까 죽어라고 공부하고 위에 개기지 마!'로 바뀌었다. 이건 현상님께서 지적하신대로 프레임의 문제인 것 같다. 애초에 연대와 투쟁의 코드가 없는 상태에서 우석훈과 박권일의 메시지는 오독되기 쉬었던게 아닐까. 이 점은 이 둘의 전략 판단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두 사람이 '88만원 세, 공부에 미쳐라' 이런 류의 광고 선전에 가장 시껍하고 처참했을 것 같다.
3. 무엇이 진짜 문제였을까?
그럼 왜 '20대 운동'은 답보상태인 것일까? 여러 지적이 책마을에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경험이 부족했을지도, 우리에게 텍스트는 더이상 유효한 매체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궁극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고 본다.
[그건 바로 20대 대부분이 부모님 집에서 살며, 등록금을 지원받기 때문이다.]
나만해도, 대학을 다니는 3년 내내 6학기 등록금을 부모님이 다 대주셨고(시쳇말로 부모님 장학금), 부모님과 같이 살기 때문에 집값을 걱정할 필요 없었다. 생활비 정도야 내가 벌어 썼지만 가끔 지갑이 텅 빌 때마다 용돈도 가끔 받았다. 게다가 내가 한 달에 쓰는 생활비 정도야 과외 한 두개를 뛰면 금방 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내가 누렸던 '복지 혜택'은 북유럽 대학생들과 필적할 정도가 아닐까? 복지를 대주는 주체가 국가가 아니라 각 개인의 가정이라는 점만 빼면.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불편한 점도 분명 있다. 하지만 보증금 300~400만원을 마련하고 매달 집값으로 40~50만원 지출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나쁜 선택도 아니다. 부모님 집에서 섹스하는 것이 좀 눈치보이는 짓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호텔 버금가는 모텔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마음껏 우리의 성적 환타지를 실현시킬 수 있다. 5만원이 넘는 모텔값이 아깝다면 야동을 다운받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아들이 집에서 야동보는 것쯤은 부모님께서도 눈감아 주신다 .(관련된 논의가 있었습니다. 책가지에 있는 원익씨의 글 ‘모텔과 숙박업소의 성정치학’을 참고하세요)
내가 이런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 내가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였을까? 정확한 통계가 없어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내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부모가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 같이 데리고 사는 것' 어찌보면 특별히 나쁘지 않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합의이다. 그러나 이 기본적인 합의가 20대 문제를 심화시켰다. 20대 문제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이, 독립해 살 공간이 없고(주거문제), 학비가 너무 비싸며,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나이 스물이 되면 무조건 독립시키는 것이 사회적 약속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랬다면 지금처럼 등록금과 학교 주변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었을까? 분명 우리는 엄청나게 반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반대에 다른 사회 계층들도 호응해주었을 것이다.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생긴 연대 의식이나 반발의 경험이 세대 분배 문제에도 분명 유리하게 작동했을 것이며 다른 세대의 노동자/이주 노동자/환경운동가/성소주들과 쉽게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것이 유럽의 천유로 세대와 한국의 88만원 세대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이유가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드는 생각은, 문제가 정말 터질려면 아직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 부모 세대는 독립이 점차 늦어지는 자녀 세대들 때문에 자신들의 노후를 잘 준비 못 하고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의하면 60세의 노부부가 평균수명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기본적인 생활비만 따져도 4억에서 7억이 든다고 한다. 여기에 병원비에 여가 생활비를 따지면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추정치보다 3억에서 5억은 더 있어야 한단다. 그런데 당장 내 부모님의 경우만 해도, 그런 큰 돈은 없다. 더 미안하고 속상한 것은 나를 기르고 교육시키는데 돈을 안 썼다면 그만한 돈을 모을 수 도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20대 문제가 터지는 시점은, 우리의 부모세대가 피부양자가 되었을 때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제대로 노후준비를 못 했고 우리는 비정규직화와 소득 양극화로 부모를 제대로 봉양할 수 없을 때. 그 때 벌어질 사회적 갈등과 각종 사고는... 조금만 상상력을 동원해도 참 갑갑하고 끔찍하다.
이런 상황은 '출산율 저하'라는 문제에도 드리워져 있다. 밑도 모르고 떨어지는 출산율의 이면에도 주거/교육/직업 문제라는 20대 문제와 똑같은 문제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당장 내가 살 수 있는 돈이 모자라고 저축할 돈이 없는데, 게다가 자신이 받았던 투자를 생각하면 엄청난 돈이 든다는 것을 빤히 아는데 아이를 낳을 엄두가 날까? 그래서 내가 아는 수많은 누님들이 결혼을 포기하신다. 그녀들의 선택에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생존'과 '자기실현'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망을 무시하고 여성들에게 '국가발전'을 운운한다고 될 일은 아님은 자명하다.
결국 20대 문제는 세대분배를 넘어 한 사회가 재생산 능력을 점차 상실해가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4.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소설을 쓸 수 있으려면 일년의 5백 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적었다. 이를 20대에게 적용하면 어떨까. 20대가 소설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혹은 독립된 연구를 하려면 일년에 천만원 이상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그러므로 나는 20대가 연대하고 주체하려면 '가출'해야 한다고 믿는다. 만약 나 같은 애들이 부모의 집에서 뛰쳐나오는 선택을 한다면(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금지된 영역'인 것처럼 느껴진다.) 일시에 주거 문제, 등록금 문제를 성토하는 사회적 연대가 결성될 것 같다. 그리고 궁상맞은 혼자살이가 주는 경험들, 느낌들, 감정들이 20대를 다른 세대들과 구별짓는 하나의 정서가 되고 기호가 되고, 우리의 상징이 되지 않을까....
솔직히 이런 생각이 얼마나 실현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합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마치 68혁명 때의 프랑스 고등학생처럼 한국 고등학생들이 수능을 한꺼번에 거부한다면 대학 서열화가 일시에 해결될 거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허황되다.... 하지만... 이 길을 선택하는 '경제적으로 불합리한' 사람들이 많아질 때 변화가 생길거라고 믿는다.
5. 88만원 세대를 넘어서
'88만원 세대'를 보면 '단카이 세대'라는 말이 나온다. 단카이는 일본어로 덩어리라는 뜻인데 도무지 어떤 특징도 잡히지 않는 일본 젊은이들을 지칭하기 위해 나온 말이라는 거다. 마케팅을 하는 입장에서도 이들을 특징잡을 것이 없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성욕으로 이들 을 공략한다고 한다. 나는 단카이 세대라는 말을 듣고 굉장히 모욕적인 명칭라고 생각했고, 내가 속한 세대가 그런 말을 들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88만원 세대'라는 것도 모욕적이긴 마찬가지다. 한 세대를 규정짓는 말이 고작 그들의 한 달 소득이라니 비참하지 않은가? 우리를 설명할 명칭이 겨우 이것밖에 없단 말인가?
진정 의미있는 세대 구별은 어떤 역사적 사명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마케팅의 일환으로 수많은 세대 구정이 있어왔다. t 세대라느니, N 세대라느니,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수많은 호칭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아직도 의미있게 쓰이는 세대 호칭은 어떤가? 4.19 세대, 386 세대, X세대 정도? 내 생각에 이들 세대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고(혹은 발명하고) 그것을 일정부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하나의 '세대'의 위치를 획득했다고 생각한다. 4.19세대와 386들은 맞서싸워야 할 독재 정권이 있었고 X세대들은 일상에 스며있던 권위주의와 처음으로 대결한 세대였다. 그리고 공과 과를 떠나서 이들은 나름의 성과를 남겼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가 발견하고 성취해야 할 목표는 무엇일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 게 쉽게 나올리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훗날 역사가 우리 세대를 '88만원 세대'로 기록한다면 우리는 실패한 것이다. 우리 세대가 특별히 해낸 것이 없으며 그저 우리의 빈궁함 외에는 기록할 것이 없기에 88만원 세대로 기억되었을테니까. 그래서 책마을에서 계속 반복되는 선언에 나도 동참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88만원세대여, 88만원 세대로부터 벗어나라!
더불어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점은... 사회적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정책이 효과를 보는데도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20대 문제'의 해결책은 우리가 20대일때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우리 대부분은 '88만원 세대'가 묘사한 지옥을 경험할 거라는 점이다. 이게 우리가 일단 긍정하고 들어가야 할 물적 토대가 아닌지...
6. 마지막으로. 그럼 넌 어떻게 살건데?
내가 지금까지 쓴 글에 맞춰 산다면, 저녁후 과외 이외의 알바를 하면서 집에서 독립하는 것이 맞을테지만 당장 그럴 용기는 안 난다... 졸업까지 두 학기가 남았고, 납입해야 할 등록금은 한 학기가 남았다. 여기까지만, 부모님께 지원받고 그 이후로는 자립하고 싶다. 공무원 시험 보라는 부모님의 말을 뿌리치려면, 이 정도는 하는게 도리일 것 같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같이 스포츠를 할 생각도 있지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과외는 안 하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과외를 생각하면 내 학벌을 이용한 일종의 사기, 혹은 갈취였다. 양식있는 시민, 요리 잘하는 남자, 멋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내 성격 상 같이 하자는 말을 잘 못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여러 기획에 나도 참여하고 싶다. 그때까지 일곱달이나 남은 주제에 이런 글을 쓰다니 나도 참 이상하긴 하지만.
상병 박원익
말씀하신 것처럼, '버지니아 울프'가 제안한 '자기만의 방'이라는 대안이, 현실적으로 그렇게 타당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유일한 대안은 '가출'일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일시적인 '반항'으로서의 가출이 아니라, 집에 의존하지 않은 채로 궁핍하더라도,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는 그런 삶의 형태가 존중받는, 그런 '가출'이 전면화된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상병 김소망
"가출"과 "연대", 그렇게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닐거에요.
병장 김예찬
정확한 부분을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경제적인 문제로 '자각'하고 '계급 의식'을 가지기엔, '돈 문제'는 단순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지 현실적으로 우리를 짓누르는 '문제'가 아니죠. 경제적으로 독립이 안되있으니까요.
제열님이 이야기한 '가출'에 대해서 제가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은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부터였는데, (김예찬 - [독서후기] 가난뱅이의 역습 - 마쓰모토 하지메) 이 '가난뱅이 전략'을 따라간다 하더라도 학생 입장에서 '가출'을 한다면 필요한 금액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등록금 - 최소생활비 - 방값'인 것 같습니다. 사실 후자의 두 개는 계산을 잘 하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있을 것 같습니다만.. 등록금 같은 경우는 사실 개인 차원에서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장학금을 받는다면 모를까) 등록금이 현재 거의 한달 100만원 가량이나 된다는게 생각보다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결국 대학생이라는 신분 자체가 경제적 독립을 옥죈다는 느낌..
병장 우한솔
역시나 자립은 우리들의 꿈이기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게 문제인듯합니다.
현재 세대가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들과 추구하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그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가겠죠.
아무튼 경제적인 문제가 자꾸 우리들은 옭아매는 현실이 어서 바뀌었으면 합니다.
병장 김예찬
그렇다면 여기서 '공동 생활 전선'이라는걸 생각해 볼수는 없을까요? 아니, 생각을 뛰어넘어 실행에 옮겨볼 수는 없을까요?
<가난뱅이의 역습>에서 쓰고 있는 지침 중 하나는, '공동으로 생활할 수록 돈이 덜 들어간다'는 것이 있습니다. 등록금의 문제를 잠시 뒤로 미뤄놓더라도, 적어도 같은 생활권에 있는 사람들끼리 '공동 (가출) 생활'을 시도해볼 수 있지는 않을까요?
이를테면, 저는 책마을 안에서만 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분들을 십여명 이상 만났는데, 이들이 어떤 목적만 공유할 수 있다면 궁 생활을 마치고 (공동생활이 야기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함께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우리는 모두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동 생활의 경험이 있는 프로페셔널 공동 생활자들입니다(!) 적어도 다른 공동 생활 모임 보다는 감수해야할 어려움이 적지 않을까요?
만약에 이러한 '책마을 공동 생활 전선'이 하나 둘 늘어간다면, 이 것이 어떤 조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현재 책마을 회원은 1,700명입니다. 물론 이 1,700명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1/10만 하더라도 현재 단일 대학 스포츠권 숫자는 어렵지 않게 육박하는 것이지요. 이들이 공동으로 무언가를 - 이를테면 등록금 문제에 대하여 - 움직일 수 있다면!
물론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저는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 모르는 이런 계획들을 하나 하나 상상해 보는 것 자체가 일단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현실을 한탄하는 것 가지고는 어떤 것도 바뀌지 않겠죠.
병장 김태완
저도 나가서 어떤 생활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활 중 자립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범주에 속해있었습니다.
저는 일단 현재 재학중인 대학의 등록금이 500에 가깝습니다. 재수생활을 하며 근 몇천만원대의 돈을 들였으며 대학에 입학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만두고 다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반년동안 휴학내고 공부하여 제가 원하던 대학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한 곳을 들어갔습니다. 이 대학은 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입니다. '이러다 30살까지 지원을 받아야 하나. 난 왜이리도 무능한가'와 같은 자폐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방학때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건만 내손에 들어오는 것은 고작 200만원 정도. 등록금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며 이는 기숙사나 자취방 구하고 아껴쓴다는 용돈으로 쓰이는 데에도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사실 전 사회로의 자립심을 가지고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20대의 모습을 지니고 싶은 마음만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 동기생과 방을 같이 쓰면서 자취비를 반씩 부담하자는 제의를 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난 이러한 조금의 노력들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역량과 정신력의 차이로 지적해도 할 말은 없지만 아르바이트와 공부의 병행은 제 체력이나 정신이 도저히 버티지 못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또한 동기생과의 동거는 밤거리의 유흥으로 이어져 실패한 한학기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전 부모님의 한숨석인 원망과 함께 그저 부모님께서 짜주신 틀 안에서 공부에 전념할 수 밖에 없는 위치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우리 20대가 자체적으로 노력해서 조금씩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은 다분합니다. 저도 여러 고배를 마셨지만 젊음이 있기에 자립에 대한 재시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위에 예찬님처럼 '공동생활 전선'을 제시하는 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동참할 의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옭매여 오는 이 사회 속에서 불확실한 현실타계 가능성과 동반하여 불투명한 본인의 미래에 대한 걱정때문에 주도적으로 선뜻 뭔가를 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못하겠는 것은 사실입니다.
상병 박원익
공동생활 전선을 제안한 것에 대해 저도 적극적으로 동감을 표명합니다! 다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태완 님이 말씀하신 '유흥'으로 빠지는 걸 막기 위한 어떤 '규율'이 요청된다 하겠습니다.
병장 김예찬
제가 제안한 '공동 생활 전선'에는 아무래도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겠지요. 특히 앞서 언급한대로, '어떤 목적'을 공유해야한다는 것이 선행되어야 겠습니다.
이를테면 학교 측에서 따로 '연구소'를 제공해주지 않는 인문계열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이 돈을 모아서 방을 빌려 세미나와 생활을 병행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 경우 이들에게는 '학업'이라는 명쾌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고 공동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겠죠.
보다 현실적인 '돈 문제'의 경우에도, 어떻게 생활을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가이드 라인을 짜놓지 않으면 안되겠죠. 그리고 합의 된 만큼 불편을 감수해야한다는 약속도 필요하겠구요.
상병 양제열
제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은 생협과 자취생들을 연결시키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자취생들에게 야채와 과일을! 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말이죠.(웃음) 실제로 자취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 식습관이나 영양 상태가 지극히 불량한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들도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기숙사에 사는 사람들이나 자취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조금씩 돈을 모와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과일을 먹는 날을 만들곤 했거든요. '자치'를 지향하는 생협과 '자취'생들을 연결한다면, 자취생들에게 싼 값에 좋은 식재료를 공급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생협의 규모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더불어 제일 잘 하는 음식이 라면인 불쌍한(...) 학생들에게 요리 강좌를 곁들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고요.(주대상자는 남학생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후후)
그런데 예찬씨의 제안은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보다 한 걸음 더 나갔네요. 아예 '같이' 사는 것까지 생각해보자고 하시니..(땀) 그런데 말이죠. 가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학생들이 한 주거 공간을 쪼개 동거하는 게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유럽의 대학생들도 집 하나를 렌트해서 거기서 같이 살 룸메이트를 모집합니다. 유럽 사회가 우리보다 20대 프렌들리 하다 쳐도 집값은 비싸기 마련이고, 이걸 타개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인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못 할 이유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유흥'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고, 서로에 대한 배려와 예의는 필수일 겁니다. 분명 '규율'이 필요하겠지만 강업적인 궁의 룰과는 다른 '자치'라는 점에서 되레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빨리 학교 주변 부동산을 찾아가야 할 기분이 드네요.(웃음)
덧 : 위에 중복으로 달린 댓글은 지워주세요. 죄송합니다...
병장 정근영
감탄했습니다.
사실 지금의 20대가 처한 현실에 대해 소리치는 글들을 많이 봐오긴 했지만, '20대 중반이 넘어서까지 부모님으로부터 자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주는 글은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저도 미처 거기까지 생각해보지는 않았기도 하고요.
'가출'과 '연대'
확실히, 여기서부터 시작했을 때, 좀 더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장 김태완
'공동 생활 전선'을 형성할 시, 자치적 규율이 필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군요. 서로가 처음에는 토의와 합의를 거쳐서 유흥 및 씀씀이 자제를 전면에 부각시킨 규율들을 자체적으로 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율적으로 형성된 규율은 강제성의 부족으로 인해 점차 흐지부지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고질병으로 불리는 냄비근성이란 것이 만연합니다. 더더구나 놀기좋아하고 유혹에 약하디 약한 20대들에게 자율적 규율로써 제재가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규율 자체가 은연중에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한번씩 참지 못하고 어길 것입니다. 한번씩 어기기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어길 것은 뻔합니다. 그렇다고 규율을 어기지 말자는 차원에서 동기중 한명이 관리자 역할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규율을 어긴 이들 중 하나가 '개인 사생활 프라이버시 존중(니가 뭐길래)'을 외치는 순간 게임오버 됩니다.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처음 동거를 시작할 때부터 규율을 어긴데에 대한 '처벌'이 함께 정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규율 및 처벌은 자칫 공동생활전선을 형성하는 데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자의식이나 목표가 확고하지 않거나 소극적인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제재가 많은데에 비해 얻는 소득도 없다 싶으면 차라리 난 원래 살던대로 살겠다며 떠날 인원도 많을 것입니다. 결국 동거자취의 연대로의 꿈은 결속력의 부족으로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생겨난(그렇게 되도록 유도를 시켜 생긴 것을 포함하여)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여러 기획에 나도 참여하고 싶다" 라는 일치된 목적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선 억압적이 아닌 어떠한 장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병장 김성환
'가출'은 부모님의 집과 자신과의 단절을 통한
현실에 대한 자각입니까?
얼핏 보면 상당히 극단적으로 보이는 자립성글인데..
제가 생각하기에도 '자립'밖에 떠올르는 구상이 없네요..
벌써 88세대에 대한 생각을 이정도까지 하시다니..
대단하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2009-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