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역사 얘기를 해야 하는가 (병장 김동환/050909)
거참. 역사얘기를 할려는데 첫단추가 다시 쓰기엔 너무 막막하고
흐름상 비슷한 도입용 글은 꼭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예전에 올렸던 칼럼을 재활용(땀)했어요.
에고. 쓸꺼리는 많은데 시간이 잘 안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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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과 일본이 서로 삐졌습니다. 지난 3월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에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일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이자 '역사왜곡하는 일본은 상임이사국이라니
왠 갈치로 목졸리는 소리냐'는 중국 네티즌들의 서명운동이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이어
우익교과서에 협찬을 한 아사히맥주의 불매를 시초로 보편적인 일본상품의 불매운동도
스멀스멀 사방으로 퍼져갈 즈음. 4월 5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역사왜곡으로 도배된 일본
우익 역사교과서에 대한 출판을 허가하자 급기야 탄력 받은 중국인민여러분 화려한 덤블링을 선보이며
벌떡 일어나게 됩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시위가 사라졌던 베이징에는 2만명 이상이 모여
일본을 규탄하는 시위를 가졌으며 1960년대 문화혁명 이후 돈벌기에 여념없던 상하이에서 조차
10만명이 들고 일어났다는 것은 중국 내 반일감정이 위험수위를 찰랑찰랑 적시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줍니다. 지금은 한풀꺾인 추세지만 5.4운동 기념일을 기점으로 다시 전국적인 시위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고 이런 일련의 반일 시위에 대해 일본은 과격시위로 인한 손해배상과 중국 정부의
공식사과를 요청하고 나섰으니 양국이 으르렁대는 소리가 당분간 수그러들기는 힘들 전망입니다.
어쨌든 수교이후 33년동안 이보다 더 최악인 적은 없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분쟁의 시발점이 일본의 역사교과서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역사교과서는 그 나라가 어떻게 역사를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며 자라나는 세대들의
세계 인식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역사를 받아들이는 개인은 그 단어가 가지는 엄청난
시간적 중압감에 눌려 무비판적으로 역사를 수용하기 쉬우니까요.
일본의 한 교과서가 청일전쟁을 다루고 있는 구절을 봅시다.
"청은 최후의 유력한 조공국인 조선만은 잃지 않으려 하여 일본을 가상적국으로
삼게 되었다. 이에 일본은 왕궁을 점령하고 조선 정부에 청군의 철수를 요구하게 했다.
이어 청의 해군을 공격한 후 전쟁을 선포하여 일·청 전쟁이 시작되었다."
위 구절에서는 조선을 청의 조공국으로 기술해 마치 중국의 속국이던 조선을 일본이 해방시킨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청일전쟁이라면 일본이 뒤늦게 조선에 뛰어들어 열강들과 이권다툼을 하던 때이고
국가 이미지에 득보다는 해가되는 제국주의의 때가 살짝 묻어있는 시기입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침략과 학살로 점철돼있는 청일전쟁 이후부터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기까지의 역사를 최대한
표백하고 싶을테지요. 역사적 사실의 해설에 있어 나치, 유태인대학살같은 부끄러운 과거를
모두 인정하고있는 독일과는 달리 일본은 최대한 돌려말하고, 얼버무리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중국 난징에서 일어난 대학살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중국이 당한 피해를 구체적으로 적지않고
'여성이나 어린이를 포함한 중국인을 대량으로 학살했다'며 무척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 4월 5일에 출판이 허가된 문제의 후소샤 교과서는 '국민당과
손을 잡은 중국 공산당은 정권을 빼앗는 전략으로 중일전쟁을 장기화 시켰다'며
'일본은 전쟁목적을 잃고 전쟁에 끌려들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일본인들이 중국인들의 극렬한 반일 시위에 어리둥절 하다는 표정을 짓곤 하는데
이는 그간 일본인들이 보고 자라난 역사교과서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한편 중국의 교과서는 피해자의 역사를 다루는 만큼 아주 신랄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중국 교과서(인민교육출판사 편·연변교육출판사 역)는 근대에 일어난
일본군의 중국인 학살을 중점적으로 일본을 규명하고 있는데, 특히 난징대학살을 다룬 대목에서는
일본군이 난징점령 6주도 안되어 중국인 30만명을 학살했다는 내용과 함께 일본군이
중국인을 생매장하고 있는 사진을 예쁘게 첨부할만큼 주도면밀한 센스를 보여줍니다. 내친김에
중국 교과서에 실린 그당시 일본의 어느 신문 기사를 보실까요.
"일본군 소위 무카이와 노다는 중국인 100명을 찍어죽이는 내기를 했다. 노다는
105명을 죽이고 무카이는 106명을 죽였다. 그러나 누가 먼저 100명을 죽였는지
알지 못했기때문에 승부를 가를 수 없었고 결국 다시 누가 먼저 150명을 죽이는지
겨루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만주에 위치했다던 731부대는 일본군의 잔혹함과 비인간성을 강조하기에 적절한 소재입니다.
731부대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세균실험을 한 사실이나 그 스펙타클한 실험명들이
여과없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쯤되면 하드코어 교과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지요. 이 교과서로
배우고 자라난 아이들은 일본군이 그대로 투영된 일본이라는 나라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까요.
일본인은 중국인이 많은곳에 나다니질 못한다는 요즘 현지 분위기는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살펴보면 어느 한 쪽의 역사왜곡 유무를 떠나 역사속에 국가적 의도가
가지런히 놓여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얼마전 화제가 됐던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주요 이유중 하나가 우리나라와 북한의 통일에 대비해 자국의
사회체제 변화로 인해 분열되고 있는 자치구(특히 조선족들이 사는)들을 정신적으로 고정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사람이 예견한 바 있습니다. 아마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무난하게
20년쯤 넘긴다면 중국의 젊은이들은 고구려가 자기들 역사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일본또한
이른바 '강한 일본'을 만들기위해 과거 침략의 역사로 인해 아시아에 갖고있는 정신적 부채감도 덜고
젊은층에 팽배한 개인주의를 없애보기 위해 꾸준히 역사왜곡을 하는 것이구요.
그러나 우익들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4년전 만들었던
역사왜곡 교과서의 일본내 채택률은 0.039%에 불과했다고 하니
아마도 정신 재무장을 위한 일본의 갈길은 아직도 먼듯합니다.
길게 돌아왔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역사는 어떨까요.
신기하게도 우리 학생들이 쓰는 국사책에는 중국이나 일본이 밥먹듯이 구사하는 이른바
아전인수식 역사해석이 희귀한 편입니다.(현대사는 논외로 하고요)
아홉시 뉴스의 아나운서들도 '반만년 역사'라는 관용구를 애용합니다만 사실 그 반만년 중 절반가량은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배울 수 없습니다. 교과서에서는 고조선에 대한 간략한 서술후에 한사군과
위만조선부터 진짜 역사로 쳐주기 때문입니다. 그럴꺼면 반만년이라는 말을 쓰질 말던지. 참 넌센스입니다.
물론 유물로써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비워둘 수 밖에 없었겠지만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모습이란
괜시리 안타깝기도 합니다. 우리 상고사에 대한 서술은 저어기 어디 환타지 소설같은 일본서기나
갓지어낸 동북공정 보다는 훨씬 역사책 같거든요.
굳이 객관적인 자료는 전무하다시피한 상고사에 대한 얘기를 빈약한 사료 몇권에 의지해
풀어나가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식이어도 좋지만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는 이천년쯤의 역사를 함께 얘기해보고 싶은게지요.
민족주의를 최대한 배제한 날것에 가까운 상고사.
다음번에는 그 알맹이를 가지고 찾아뵙죠.(땀)
post script
올해 2월 15일 주간지인 뉴스메이커에서 압록강에서 토문강을 잇는, 조선과 청나라간의 옛 국경경계를
나타내는 인공울타리 흔적이 발견되었음을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위성사진으로 판독된 이 흔적이
추후 진행될 현장답사를 통해 사실로 판명될 경우 이는 중국이 그간 주장했던 압록강-두만강 경계설을
일축할 수 있는 좋은 증거입니다. 그간 소재가 불분명했던 토문강이 두만강의 상류가 아니라
압록강의 상류라면 현재 연변조선족 자치주에 속하는 간도지역이 한국땅이었음이 입증되게 됩니다.
물론 옛날 국경이 정확히 밝혀진다고 해서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역사적, 영토적 정당성을 확인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가 챙겨먹을것은 스스로 챙겨먹어야지요.
상병 한상천 (2005-09-09 16:45:51)
의병들의 활동무대였던 그곳, 토지속의 배경이 된 그곳이 우리기억에서 없어진지는 한세기도
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토문강의 위치는 어디인지요?? 장춘부근이였던걸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상병 최근석 (2005-09-09 17:40:46)
상당히 기대되는 내용입니다.
그 알맹이를 빨리 듣고싶어요~
상병 김형진 (2005-09-09 18:41:0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체계에 뭐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 현대사만큼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가까운 현대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도 많아서,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객관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현대사를 다루는 비중 자체가 매우 불만스럽다는거죠.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병 이천용 (2005-09-10 11:32:5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역사 교과서가 일제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역사를 기반으로 한다는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사 또한 '박헌0과 6.25' '4.19' '5.18과 광주' '서울의 봄' '3당합당' 등의 이름정도는 알려주지만, 실제로 그게 어떤 의민지는 가르쳐 주지 않지요.
수능 끝나고 대학교에 와서 '4.19가 뭐였는지' '박정희 정권이 얼마만한 독재를 했는지' '광주에선 어느정도의 학살이 있었는지' '서울의 봄은 무슨 의민지' '왜 그들은 데모를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대충이나마 알게되고 제법 심각한 자괴감에 빠졌던 적도 있었습니다.
댓글을 달면서도 가슴 쓰리네요.
병장 김현수 (2005-09-10 11:33:25)
간도는 이제 남의 땅의 될 처지에 처해 있습니다.
정당성이 있어도 결국 중국땅 입니다.
과거의 임나일본부부터 지금의 역사왜곡까지의 일본
자신들은 동북공정을 하면서 일본의 역사왜곡에 흥분하는 중국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 하나 없고 젊은층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점점 적어지는 한국
안타깝습니다.
병장 문형섭 (2005-09-10 21:54:15)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대해서는 참으로 유감이지요.
대부분의 교과서가 현대사를 외면하고
중,고등교육에서도 현대사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고등학생들이 현대사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사실은
우리사회가 의도적으로
학생들의 비판의식과 역사의식을 일부러 거세시키려고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할 정도입니다.
성인이라면,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꼭 알아야 할 내용임에도
교육에 있어서 외면하고 축소하려고 하는건 도대체 왜일까요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교양'이라는 건 어떤걸 의미하는지 새삼 의문이 들게됩니다.
상병 김동환 (2005-09-12 07:03:44)
/상천님.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사진에는 백두산 천지 주변에 토문강이 있어요.
천지 북쪽으로 송화강 지류가 있고 천지 남쪽부터 압록강이 시작되는데요.
토문강은 송화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병장 전영훈 (2005-09-12 14:59:17)
일본도 중국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공부하고 해석하고 있는데.. 우리만 너무 <역사에 소홀한 게 아닐까요? 간도도 영토분쟁지역으로 만들어서 되찾으려는 노력이 없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상병 김상희 (2005-09-13 08:11:19)
한국은 자신의 이익 혹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역사를 해석했다고 봐야죠...
병장 강성주 (2005-09-14 09:57:51)
왜 중국인민들이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간도를 되찾아야 합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과거 자신의 영토였다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총칼로 위협해서 내쫓은 것과 무슨 차이입니까? 당신들은 다른 사회문제에 있어서는 진보주의인냥 행동하지만 역사나 영토문제에 있어서는 조갑제와 별반 다를 바가 없군요. 중국인민들이 중국인민나름의 역사와 전통과 자부심을 가지고 잘 살고 있는 간도를 분쟁지역화해서 되찾으면 도대체 누구한테 좋은 겁니까? 이미 너덜너덜해진 쇼비니즘에 취한 당신들에게? 조갑제에게?
또 "청은 최후의 유력한 조공국인 조선만은" 이라는 일본의 기술을 문제 삼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죠?
조선이 청의 최후의 유력한 조공국이 아닙니까? 맞잖아요.
아니 조선의 임금(인조)이 청나라 황제 앞에서 머리를 바닥에 쿵쿵 박아대면서 충성을 맹세하고 조공바치고 사신보내서 섬겼던 게 사실 아닙니까? 솔직히 저는 조선이 청에 조공을 바쳤는지 안 바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속국처럼 살아온 게 엄연한 사실인데 도대체 왜 있지도 않은 조상들의 명예를 '만들어 냅니까?'
현대사회와 근대사는 진보주의자의 눈으로보고
영토문제만 나오면 쇼비니스트가 되는 당신들의 위선이 역겹군요.
병장 강성주 (2005-09-14 10:02:37)
조어도, 독도, 간도 문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간도를 회복하려고 자갈치시장 아줌마 둘째아들, 양촌리 이장님 셋째 아들들한테 총 들고 보내서 중국 가난한 인민들의 불쌍한 자식들과 서로 싸우게 시키면 좋나요? 피 흘려가면서 멀쩡히 잘 사는 중국인민들 쫓아내고 간도 되찾으면 도대체 누구한테 좋겠습니까? 영토분쟁 뒤의 음모가 보이지 않습니까? 왜 고이즈미 정권은 계속해서 주변국을 자극시킬까요? 우매한 민중들(당신들을 포함하는)은 평소에는 지배계층에 대해서 나름대로 날카로운 비판을 계속하다가도 영토문제만 나오면 조갑제와 손 잡고 정부를 옹호하면서 전쟁이라도 선포하라는 분위기로 나가는데..
정말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중일 삼국 민중들이 이 더러운 음모와 술수로부터 진실을 볼 수 있도록 연대하자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일병 안대섭 (2005-09-14 10:09:50)
아직 '도입'이라는걸 알고 계시다면 본문이 나온 이후에 비판 하셔도 늦지 않으실텐데요.
혹은 서로 듣기 좋은 말로 질문 답변하는것도 위선이라고 생각하시는건지.
상희님한테 태클 걸려고 너무 서두르신것 같은데, 덕분에 모양새가 많이 안좋습니다.
병장 강성주 (2005-09-14 10:13:32)
당신이야말로 글을 잘 읽어보지 않은 것 같은데, 김상희 상병에 대한 게 아니고 간도를 분쟁지역화하자는 정말 믿기지 않는 저열한 발언에 대한 준엄한 질책이었습니다. 아무리 합리적 사고와 비판, 논쟁의 경험이 일천한 사람이라고 해도 깊은 사고를 못하고 모든 것을 누구와 누구의 싸움으로만 단순화 시키는 당신의 모양새가 애처롭군요.
상병 김동환 (2005-09-14 10:38:54)
/성주님
별다른 호칭 없이 제 글에 달린 답글이니 제 글에 대한 의견을 적으신거라고 생각되어 답변드립니다.
저는 간도를 분쟁지역화 하자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요. 게다가 저열한 발언이라니요. 저열한건 뭐고
준엄한건 또 뭡니까? 스스로 준엄하세요?
그리고 '청의 유력한 조공국인 조선만은'이라는 구절을 문제삼으셨는데 전문을 보죠.
"청은 최후의 유력한 조공국인 조선만은 잃지 않으려 하여 일본을 가상적국으로
삼게 되었다. 이에 일본은 왕궁을 점령하고 조선 정부에 청군의 철수를 요구하게 했다.
이어 청의 해군을 공격한 후 전쟁을 선포하여 일·청 전쟁이 시작되었다."
저는 일본 교과서에 수록된 이 부분이 일본이 스스로 조선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시킨
부분이라는 점에서 예로들어 글을 전개시킨 것이었습니다. 본문에도 나와 있지만 위 글만
본다면 중국의 속국이던 조선을 일본이 해방시킨 것처럼 보이니까요. 잘 모르실수도 있겠지만
고종은 조선이 분명한 주권국가임을 명백히 했답니다.
병자호란때 항복했으니 속국이 아니냐구요? 그럼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프랑스, 영국의 속국이었답니까?
제 글에 관심 가져 주시는것은 고맙지만 덕분에 다른 분들이 오독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궁금한 부분이 있을때 언제든지 댓글달아 주시면 친절하게 해설해 드리겠습니다.
병장 강성주 (2005-09-14 10:39:44)
간도 분쟁지역화하자는 말은 저 위에 모 병장이 한 말이고,
일본교과서 내용으로 돌아가서,
"청은 최후의 유력한 조공국인 조선만은 잃지 않으려 하여 일본을 가상적국으로
삼게 되었다. 이에 일본은 왕궁을 점령하고 조선 정부에 청군의 철수를 요구하게 했다.
이어 청의 해군을 공격한 후 전쟁을 선포하여 일·청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말 중에 사실이 아닌 게 도대체 뭐죠?
병장 강성주 (2005-09-14 10:46:52)
준엄.은 유머로 한 말인데 뭐 재미없으시면 죄송하고요
조선은 중국의 속국 맞죠. 효종이 이를 타개하고자 북벌을 준비했으나 죽어버렸고, 결국 속국인채로 저 시점까지 왔다가 청일전쟁으로 다시 일본을 모신거죠. 부끄러운 역사지만 사실아닙니까. 부끄럽다고 색칠하면 그게 바로 역사왜곡이지요.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영프는 독일에게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요구하고 물러갔지요. 그게 그들의 의도였고요. 즉, 별로 속국을 삼고 싶어하지 않았죠. 대신 배상금 갖고 협박하고 괴롭히고 모욕주려고 했죠.
우리의 경우에 청은 조선을 속국으로 삼을 의도를 명확히 했고, 그 이후로 사신이 오면 속국의 예로 청나라 사신을 맞아들였죠.
승자의 의도가 달랐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2차대전 후 독일은 둘로 갈라져서 서독은 미국의 속국, 동독은 소련의 속국이 되었죠. 이 때에는 미소가 이들을 속국으로 만들어서 대리전을 치르기를 의도했으니까요.
상병 김동환 (2005-09-14 10:54:21)
/성주님
성주님이 말씀하신건 2차 세계대전 이후에요. 시키는대로 하는게 속국이라면 현 국제정세에서 포트투갈이나
미국의 지원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는 나라들은 모두 속국이군요. 맞나요? 일본또한 타의에 의해 강요됐던
'자위차원 이상의 군대를 가지지 않겠다'는 헌법을 개정한지 얼마 안 되었으니 10년 전쯤엔 분명히
어느나라인가의 속국이었군요. 그래요?
그 본문중 잘못된 내용은 우선 '유력한 조공국'이라고 기술했는데 맥락상 여기서 쓰인 조공국은 단순
공물을 주고 답례품을 받는 그런 관계라고 볼 수 없기때문에 결국 '청의 속국이었던 조선'을 일본이 대신
'해방'시켜줬다고 받아들여진다는 거죠. 요건 이후 이어지는 일본의 조선 지배에 당위성을 실어주고요.
병장 강성주 (2005-09-14 11:00:26)
10년 전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었죠. 상식 아닙니까? 농담이 아닙니다. 일본은 제도적으로 식민지였을 뿐 아니라 국민들도 자신들이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자각을 하고 있었죠. 마치 우리가 스스로를 소중화라고 부르면서 자위했듯이 그들도 아시아의 미국이라는 이상야릇한 자긍심과 수치심으로 살아왔죠.
청의 속국이냐 아니냐 문제에 대한 것인데,
제가 반대 질문을 하나 던져보죠.
만약에 청이 정말 우리를 관여하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두었다면,
그래서 우리가 청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문화창달을 하면서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었다면
효종은 왜 북벌을 하려 했던 것일까요?
전쟁광이라서?
아빠의 복수를 하려고?
상병 김동환 (2005-09-14 11:07:09)
음냐. 역사관이 좀 극명히 저와는 다르신듯 해요.
청일전쟁으로 다시 일본을 모신거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사이 국가 통수권자는 고종이었고
고종은 조선이 명백한 주권국가임을 밝힌바 있고 헤이그에는 외교사절을 파견한 바도 있죠.
물론 일본의 방해공작으로 회의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요.
이게 어떻게 일본을 모신거라고 할수있죠?
또하나. 조선이 청의 속국이었다고 한다면
개화 초기 서구열강들이 조선에 몰려와 대사관을 설치하고 금강채굴권, 철도부설권등을 놓고
조선 조정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인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제가 어렸을적 봤던 역사만화에서는 금강채굴권 도장을 생각없이 찍어주는 고종의 모습을
희화화 하기도 했었거든요. 속국이라면 당연히 청국 조정에서 도장 찍어줘야 하는거 아닌가요?
상병 김동환 (2005-09-14 11:17:03)
/성주님
성주님과 저의 문제는'도대체 어디까지 속국의 개념을 적용하는가'가 문제일 듯 하군요.
효종은 청에서 볼모 생활을 한 만큼 청의 사정에 비교적 밝아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을수도 있고
성주님이 말씀하신것처럼 아빠의 복수를 하려고 그랬을수도 있죠. 삼전도의 항복은
분명 치욕적인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만약 병자호란과 효종의 북벌로 이어지는 그때. 조선이 진정 청의 속국이었다 하더라도
그 관계를 청일전쟁까지 정당화시킬 수 있는 다른 근거가 있으신가요?
그때도 청이 조선에 대해 그렇게 확고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째서 다른 열강들의 접근을
허용했을까요?
그리고. 일본에 대해 그리 생각하신다면.
우리나라도 미국의 속국이라고 생각하실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병장 강성주 (2005-09-14 11:22:12)
아니 일본사람들 몰래 밀사들 불러서 헤이그 좀 가달라고 부탁해놓고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밀사들이 발각되어서 일본이 윽박지르니까 자신은 그런 적 없다고 한 나약한 허수아비를 보면서 주권국가를 당당하게 밝힌 군주를 발견한다면 정말 저도 할 말이 없군요.
또 하나,
하멜을 비롯한 외국 표류객들이 조선에 왔을 때 이들은 외국인들의 입국사실을 청나라에 비밀로 숨겼죠. 청나라가 알았다가는 난리가 날 테니까요. 그러다가 하멜인지 누군지가 몰래 포위망을 뚫고 청나라 사신에게 달려들어서 살려달라고 했죠. 이 때 우리 조선관료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청나라 사신들에게 돈을 찔러넣어줘서 사건을 무마했고요. 외국인이 자기 나라 입국했다는 사실조차 사신한테 숨겨야 되는 비참한 나라가 속국 아닙니까?
이렇게 간섭하고 감시하고 괴롭히던 청나라가 근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랑 별반 다를 바 없는 꼴 났죠.
그리고 서구열강들이 침입했을 당시에는 청나라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죠. 나라가 완전히 거덜나고 주권조차 위태로웠죠. 자기 처지가 그런데 우리나라 철도부설권 참견할 여력이 없었던거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그래도 조선이라도 좀 어떻게 계속 통제해볼까 하면서 마지막 발버둥을 치다가 일본한테 어퍼컷 맞고 나가 떨어진거죠.
병장 강성주 (2005-09-14 11:28:52)
아, 그리고 저는 청일전쟁을 정당화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가당치도 않죠. 일단 전쟁을 '정당화'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 같군요. 정당한 전쟁이라는 게 있을까요? 다만 저는 청일전쟁 전후의 정세에 대한 일본교과서의 진술이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힘도 못 쓰고 깨갱거리다가 쫓겨난 (혹은 독살당한?) 고종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권'이나 '자주'의 목걸이를 강제로 씌여놓고 허울좋게 색칠해 놓은 우리의 국사 교과서나 먼저 돌아보는 게 옳지않나 생각할 뿐입니다.
병장 강성주 (2005-09-14 11:33:56)
우리나라도 미국의 속국이라고 생각하느냐? 글쎄요. 더 이상 나가면 몸 성히 전역 못 할 것 같아서 일단 비겁하게 몸을 사립니다. 하지만 제 답은 이미 아실 것 같네요.
상병 김동환 (2005-09-14 11:42:58)
/성주님
하멜 얘기는 금시초문이네요. 기회가 되는대로 자세히 알아봐야겠어요.
식사시간이라 일단 밥을 먹으러 가야하는데. 정리를 해보죠.
부탁드릴테니 부디 할 말이 없더라도 다음질문에 잘 대답해주세요.
첫번째로 어떻게 헤이그 밀사와 고종이 나약한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정세,
그 와중에도 주권국가임을 밝힌 일등을 잘 아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일본을 모셨다'라고 말씀할수 있는 논리의 순서도는 무엇인지.
두번째로 마지막 댓글 마지막 단락 '그리고~ '에서 청이 조선을 속국으로 거느릴 수 없는
상태였음을 결국 인정하신건지.
셋째로 일본에 대한 예를 비추어보아 우리나라도 미국의 속국이라고 말씀하실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신지.
답변해주세요.
병장 강성주 (2005-09-14 13:17:18)
글쎄요. 제가 생각하건데 이 정도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으면 어차피 누가 누구를 '논리'로 이기고 말고 하는 수준은 넘어간 것 같네요. 더 나아가봤자 어구 하나갖고 치졸한 말싸움이나 하게 될 것 같은데 그만두죠. 더 이상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판단'이나 '감정'의 문제인 것 같네요. 예를 들어 세번째 질문 같은 건 제가 벌써 밝혔다시피 여기서 답변할 성격의 것은 아니네요. 유익한 논점 잘 배웠으니까 만족하고 그만 들어갑니다.
상병 김동환 (2005-09-14 14:10:25)
/성주님
동감입니다. 세번째 질문은 답하신줄 모르고 중복되었네요.
오늘 필담 나눌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꾸준한 모니터 부탁드릴께요.
상병 한상천 (2005-09-14 14:30:48)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전히 계속되는 논의되는 이런 이유인거 같습니다.
어떤 사고와 관점으로 보는가에 한 사건에 대한 시각이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될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즐겁기도 합니다.
아참 어제 역사스페셜 재방송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군함에 대해 소개해주더군요.
이름은 가물한데 일본 미스이상사에서 3200톤급 화물선을 개조해서 만든 최초의 군함의 구입에
관한 이야기를 말이죠 고종에 대해서는 여러 나라에 조선의 명줄을 기대려 하는 나약한 국왕이라는
소리를 하지만 시대적 환경과 조선의 나라상황을 다각도로 보고 평가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종과 자주라는 말은 아주 멀리떨어진 그런 소리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어서 동환님의 다음글이 기다려집니다. 그때는 댓글을 달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니터 하는것만으로 즐겁습니다.
병장 이승원 (2005-09-28 15:29:12)
나중에서야 봤지만 두분이서 글을 쓰신것을 보니 역사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이듭니다.
부디 이런글들이 하루동안 잠깐 쓴글이 아니라 꾸준히 나오고 많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