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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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도쿄 타워/에쿠니 가오리/2/연애소설
58.어둠의 저편/무라카미 하루키/6/소설
59.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8/에세이
60.농담/밀란 쿤데라/10 or 11/소설
61.죽은 자의 사치.일상 생활의 모험(합본)/오에 겐자부로/8/소설
62.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쿠니 가오리/5/소설
63.그림으로 보는 현대사상/VALIS DEUX(일본 철학연구그룹)/5/철학
6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4/소설
65.로코코 거리/시마다 마사히코/5/소설
66. 아주 오래된 농담/박완서/7/소설
67. 생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8/소설
68.윤리21/가라타니 고진/10/칼럼집
69.고도를 기다리며I연극(합본)/사뮤엘 바게트/6/희곡
70.현대와 탈현대의 사회사상/전경갑/7/철학
71. 슬픔이여, 안녕I브람스를 좋아하세요(합본)/사강/13/소설
72.대부/마리오 푸조/꽤 높은 점수/마피아소설
73.GO/가네시로 카즈키/꽤 높은 점수/소설
74.플라이대디플라이/가네시로 카즈키/매우 낮은 점수/대중소설
75.레볼루션NO3/가네시로 카즈키/약간 낮은 점수/소설
76.만년원년의 풋볼/오에 겐자부로/굉장히 높은 점수/소설.노벨상수상
77.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높은 점수/정치소설
78.돼지들에게/최영미/낮은 점수/시집
79.소설 임제1,2/보통/역사소설
80.말도로르의 노래/로트레아몽/높은 점수/시집
81.사랑 후에 오는 것들/공지영/7인가 6인가/연애소설
82.사랑 후에 오는 것들/츠지 히토나리/8인가 7인가/연애소설
83.공중그네/오쿠다 히데오/5/개그소설
84.오페라의 유령/가스통 루르/13/소설
85.젊은 바르테즈의 슬픔/괴테/3/소설.고전
86.사람의 아들/이문열/7/소설
87.검은 꽃/김영하/11/소설
88.떠오르는 남자 가라앉는 남자/시마다 마사히코/6/소설
89.성석제 최근 단편집(제목 기억안남)/성석제/9
90.나는 별아저씨/정현종/10/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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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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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쿄 타워/에쿠니 가오리/2
'반짝반짝 빛나는'을 긍정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지는 위대한 작품. '나는 일본 문학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음에 대한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책이다. 맙소사. 해서 그보다 1점 낮은 2점을 준다(1점을 주고 싶었지만, 언제나 '최악'아래는 그보다 더 심각한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독해 중 하나 재미있는 사실. 가오리의 문체 중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나는 '인물이 등장하는 scene의 묘사'를 꼽고 싶다.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인물은 첫 등장 신에서 보통 '입고 있는 패션'에 의해 규정된다. '녹색 터틀넥과 플레어 스커트를 입고 있다' 라거나 '아이보리 셔츠와 노말한 진'이라는 식이랄까. 여기서 내가 근대 한국 문학의 리얼리즘을 떠올린 이유는 필시 수능 공부하던 고참의 문학 참고서를 하릴없이 몇 페이지 넘겨보았기 때문이다.
근대 한국 문학의 리얼리즘이 가지는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서, 이런 것이 있단다. '물건이나 지명이 등장하면 그 상표나 지명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표기하고, 물건 값도 '대충 얼마'가 아니라 실제로 '몇천 오백 몇십원'하는 식으로, 작품의 현실성을 극도로 구체화하는 것' 이와 관련하여,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저러한 표현 기법은 결국 '현대 소비 자본주의'에서의 리얼리즘이 아닐까 하는 헛생각을 해보았다. 이는 이번 달에 본 또 하나의 가오리의 작품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서도 마찬가지.
쿨함에 대한 짜증은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현대 소비 자본주의'를 우리가 우습게 볼 수 없는 까닭 중 꽤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가오리의 인물들처럼 딜레탕트하고 데까당스한 생활 방식으로 전문직을 가진다거나 호텔에 내집 드나들듯이 드나들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경영인과 프티부르주아라도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소외된 작업'에 투입되는 사회에서, 일반 자본에 문화 자본이 덧대어지는 것도 아닌 것이다(이러한 경우는, 부르디외가 지적한 대로 '지식을 통해 전진한 신진 pt부르주아 세력'정도에게나 해당하는 일이지, 의사라거나 전문 사무직 인간에게 해당되기는 힘들 것이다).
2.어둠의 저편/무라카미 하루키/6
태어나서 두 번째로 읽은 하루키의 장편(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를 장편으로 분류한다면 세번째). 읽는 내내 '과연 하루키다'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경쾌한 대화법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심지어 하루키라면 쿨해도 좋다. 라는 생각이었다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바 없어 함부로 말하기 조금 그렇지만, 하루키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굉장히 억눌린 듯한 작품이다. 물론 읽어온 단편들의 감성으로 그의 장편을 비난하는 건 분명 좀 그렇지만, 하루키스럽지 않다. 차라리 류가 장난스레-아무리 봐도 장난스레-끄적인 일련의 쓰레기 장편에서 잘 보이는 도식성/작위성이 지나치게 돋보이며, 하루키 특유의 유연한 스토리 전개는 어디로 갔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앞뒤로 실린 평론이네 뭐네 읽어보면, 스스로 변화를 꾀하고 있는 중이라던데 글쎄. 다음번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해변의 카프카를 읽어보고 이야기할 일이다. '총합 소설'이라는 거, 도식성과 작위성으로 가득 찬 상징주의 문학을 이야기하지는 않는 것일텐데.
3.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8
솔직히 처음엔, 진중 문고로나 나올법한 그저 그런 문학 에세이겠거니 하고 대충 읽었다. 몇 페이지 쯤 읽다가, 어, 이게 아니잖아. 하고 각잡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한국어로 소설을 쓴다면 김훈처럼 써야 된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로 수필을 쓴다면 장영희처럼 써야 하나. 뭐 이런 헛소리를 뇌까리며 읽었다. 왜 하필 이런 에세이가 딱히 선호하지 않는 신문에 실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잠깐 고민하는 건, 역시 나의 문학관은 일상성 과잉이다(보부아르적 의미에서). 쳇. 일상에는 날카롭지도 못한 주제에. 뭐. 아무튼.
책 읽으면서 위시리스트를 만드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과연 읽게 될 지는 모르겠다. 책을 매우 안 읽은 편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는데, 읽은 책이 거의 없다는 점이 타격이었달까. 영미문학의 세계는 역시 깊고 오묘한 것이었다. 세익스피어와 찰스 부코스키가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장영희'라는 인물에 대해서 나는 전혀 모른다. 책을 읽고 나서야 이런저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음. 그런저런 상황 쯤은 되어야 이런저런 글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다. 모르겠다. 휴머니즘이라도 이 정도 되면 울어줄 수 있다. 분명 굉장한 글이지만 나로서는 쓸 수도 없고 (아직은) 쓰고 싶은 글도 아니기에 10점을 줄 수는 없겠고 8점을 준다. 하지만 주위엔 굉장히 추천해주고 싶다. '칼의 노래'와 함께, 베스트셀러 중에도 간혹 괜찮은 책이 나온다고 지껄이면서 그렇게...
4.농담/밀란 쿤데라/10 or 11
묵념. 긴 독서후기를 쓰고 싶었는데 요즘 바빠서 그만. 쿤데樂주의자인 안준원이라는 이상한 꽃미남 녀석에게 추천받은 바 읽었다. 추천자의 말대로, '버릴 문장이 없으며' '읽을 때마다 좌절하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다. 물론 문제는 단지 이런 피상적인 수사로 표현할 수 없는 작품의 위대성에 있다. 노벨 문학상 급의 작가라는 건 역시,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보다.
특히나 마지막 7장에서 숨가쁘게 진행되는 사건의 '농담적 파국'은,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이나 히데의 rocket dive의 인트로 부분에 상응할 만한 마무리다. 라고 해도 6장 독백의 마지막 일갈이나, 그 이전에 진행되는 모든 사건들의 치밀한 구성은 가히 입신에 경지에 오른 작가의 모습이라고 해도 전혀 과찬이 아니다. 사건의 흐름은 자연스럽고 적법한 사건의 흐름이며 동시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사건화해서 구성하는 것이 이 정도 까지도 가능하구나, 라는 '문학적 표현이라는 것의 한계는 제법 유연하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작년에 읽은 '칼의 노래'가 문학을 영상처럼 곧게 지르는 작가의 무엇이라면, 쿤데라의 '농담'은 문학을 음악처럼, 눈을 감아도 귀를 쥐뜯어내지 않으면 의식에 틈입하고야 마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그런 작가의 무엇이다(어휘력과 논리력이 부족한고로 요정도밖에 표현을 못하겠네요. 미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낫다는 생각도 했는데 역시 문제는 '참을 수 없는'을 너무 옛날에 읽었다는 것. 꽤 힘들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게 다시 읽고 싶어 질 정도였다. 조만간 다시 읽을 계획이다.
시간이 되면 안되는 재주로 독서후기를 써 보고 싶은 책이다. 체크.
5.죽은 자의 사치.일상 생활의 모험(합본)/오에 겐자부로/8
'죽은 자의 사치'는 예전에 읽었지만, 헌책방에서 산 책이기에 결국 충동 구매랄까 대충 그런 것이다. 90년대 중반 번역인데, 분명히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을 그런 출판사와 분명히 지금은 번역일을 하고 있지 않을 것으로 확신되는 번역가의 공동 작업으로 출판된 책이라는 생각이다. 오타 정도는 웃으면서 넘길 수 있다. 자간과 장평이 제멋대로인 것도 이해해줄 수 있다. 똑같은 문단이 두 번쯤 반복되는 것도 뭐 나름대로 재밌다. 글자 크기가 때로 보통의 두 배 이상 커졌다가 때로 반으로 작아졌다가 하는 것도 그런대로 참아줄 수 있다.만.
그런데 왜,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 글자 크기는 다 쫄아붙고, 자간 장평은 딱 달라붙어 한계 파열에 수렴하려는 것이더냐. 마지막 몇 페이지가 한 페이지가 대략 두세 페이지 분량인지라 읽다 힘이 풀리고 풀려서 짜증이 확 나버렸다. 감상이고 뭐고 다 날아갈 정도로.
'죽은 자의 사치'는 음. 뭐라고 해야 될까. 어디선가 예전에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원류라고 평해놓은 것 같은데. 잘못된 기억일수도 있고. 하지만 옳은 기억일 것 같다. '실존'의 문제를 보다 극단적이고 괴기스러운, 그러나 리얼한 상황을 제시해놓고 그러한 상황의 서술에서 리얼리즘 추구하는 식의 스타일은 굉장한 흡입력이라는 생각이다. 다만 옛날에 읽은 판본-아마도 '현대일본문학단편선집' 따위의 제목이 붙은-이 번역 면에서 훨씬 나았기에, 그저 기억을 더듬어보는 차원에서의 독해여서 별로 남은 게 없다. 분량도 짧은데 다시 읽어볼까. 아무튼 요건 9점. 10점도 줄 수 있을 듯 한데 내가 원래 10점에 좀 짜다.
'일상 생활의 모험'은. 굳이 우기자면 일본의 비트닉 문학이다! 라고 우겨볼 수도 있겠...(이쯤에서 김형진씨의 째릿. 함이 느껴지기에 농담은 그만). 음. 뭐라고 해야 되나. 굉장히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많은데. 아무튼 기본적으로 버디무비고-일테면 데미안이나, 뭐 아무튼 헤세 작품들같은-나는 노멀한 관찰자고 나의 버디는 막나가는 펑크인데, 뭐랄까 하는 짓이 일상을 거짓말과 기만으로 메꾸며 스스로를 굉장한 사람인 것 마냥 꾸미며 살아가고, 주인공은 그 사이키 사이끼치라는 데미안을 따라 '일상 생활'을 '모험'으로 살아가는 여정에 동참하고. 그의 실체는 드러나는데 실체래봐야 그게 실체인지도 모르겠고. 사실은 진짜 굉장한 녀석이었을지도 모르는 거고. 어쨌거나 사이끼치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자살해버리고. 근데 그게 단순하게 그런 게 아닌데. 아아악. 번역과 활자의 압박 때문에 제대로 된 감상이 떠오르지가 않아! 번역만 괜찮다면 추천해보고 싶은데. 분량이 만만하진 않기에 조만간 다시 읽을 생각은 없다. 다만, '초인적 버디무비'에 질린 사람에게라면 과연 확실히 추천할 만 하다.
6.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쿠니 가오리/5
누구나가 스스로의 5점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일테면 원영씨 기준은 '굳이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읽어도 나쁘진 않다'정도였나? 음. 내 기준은, 5점은 5점이다. 오만한 예술가는 5! 라고 일갈했으니까. 아무튼.
세 번째로 읽은 가오리의 작품인데, 유일하게 부분 부분 재미있게 읽었다. 장편 보다는 단편에서,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듯한 슬픈 묘사에서 가오리의 소위 '감성'이라는 게 확실히 뛰어나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것이 장편의 '구성적 미학'과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스토리도 형편 없고. 뭐랄까. 이를테면 가오리는 짧은 글을 쓰는 편이 좋고, 아무 스토리도 이야기도 없으면 더욱 좋고. 아, 이거, 결코 그녀에 대한 경멸의 표현이라거나 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오독의 소지가 있는데, 분명 나는 적어도 이 작품만큼은 작품으로 인정해 줄 용의가 있으며, 이 것에 있어서는 가오리도 제법 유능한 작가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클라이막스도 없고, 특별한 이야기도 없고, 또 뭐가 없어야 '야오이'가 성립되더라. 야오이의 어원이 대충 그런 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 지점에서 가오리의 지향점은 (내용적 차원이 아닌 어원적 차원에서) 야오이가 되면 좋지 않을까 한다. 뭐 이건 그저 류 매니아의 헛소리이고. 실제로 가오리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좋은 것 같으니 별로 할 말은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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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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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림으로 보는 현대사상/VALIS DEUX(일본 철학연구그룹)/5
그림으로 보는 거라고 만만하게 보면 대략 낭패다. 공부 부족으로 그야말로 이름도 못 들어본 사상가들과 개념들-프레게라든가, 오토포이에시스, 제노텍스트 따위의-이 한 두 페이지(참고로 이 책 크기가 시집 사이즈다)로 '그림과 함께' 요약되어 있다. 모르는 내용은 읽어봐도 어차피 무슨 말인지 모르고, 조금이라도 아는 내용일 경우엔 '아 책 정말 내용 없네'라고 생각될 정도로 성의 없는 요약문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특징(무려 들뢰즈-가타리의 리좀이 반페이지에 끝난다). 게다가 옐름슬라'브' 라던지, 필립 솔레'기'스라든지 하는 자잘한 고유명사 오역이 이상하게 눈에 자 들어온다.
그리하여 결국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책. 장점이라면 책 자체보다 다른 책 공부할 때 잠시 헷갈리는 개념 나오면 찾아보기 쉽게끔 되어 있다는 정도인데, 그 장점이 의외로 꽤 장점이다(책의 기획 의도도 이런 '사전'개념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별 내용은 없지만 네이버 지식인스런 넓은 커버 범위가 은근한 매력으로 다가오고, 게다가 삽입된 그림들이 상당히 귀엽다(롤랑 바르트가 특히 귀엽다는 느낌이다. 아, 베이트슨의 '이중구속' 개념 소개하는 그림도 굉장히 귀엽다). 참.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점수를 주기가 애매해서 5점 준다.
쉬워 보이는 외양과 제목 때문에, 여러 사람 '낚았을' 책이라는 생각이다. 사실을 말하면 나도 1학년땐가 사고 시껍해서 방구석에 재워두다가 우연히 찾아서 읽었달까.
2.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4
장문의 글을 썼으므로 무효.
3.로코코 거리/시마다 마사히코/5
김형진씨의 필살기에 낚인거다. 이준영양과의 데이트를 끝내고 우연히 들린 헌책방에서 찾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바흐찐이 '도시소설'이라고 평했다던(참고로 바흐친은 이름만 안다. 물어보지 말자) 소설들에 적대적이다. 현상/가상의 도시가 주인공이 되는 소설이라니. 흐윽. 무라카미 류의 '엑소더스'에 너무 심하게 낚인 이후로 역시 이런 건 좋게 봐 주지 못하겠다(1984와는 별개의 문제다). 아무튼.
소설 자체를 너무 장난스럽게 썼다는 생각이다. 로코코의 관문에 있는 '미끄럼틀'의 상징성이나, 로코코의 지리적 위치, 그리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공지영씨쯤은 싸대기 수십대 날릴 정도로 식상하다. 게다가 '강간 게임'이나 '렌탈 차일드' 따위의 개념은 확실히 전에 인터넷에서 본 마사히코에 대한 평 마따나 '사회 의식'이 아니라 '사회 인식'자체를 아스트랄계 저편으로 던져버린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서사의 중심 구조 자체도 그저 그런 폼 잡는 SF이상은 아니라는 느낌이고. 철학이나 개념을 제대로 소설화하려면, 엘프리데 엘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인'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다.
이쯤 되는 악평임에도 5점인 이유는, 그런대로 재미는 있으니까...[먼산]라고 하면 역시 공지영씨한테 너무 편파적인건가.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어차피 내 점수란 게 편파적이니까, 절대 척도로 삼지는 않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중간에 나오는 '잭 델리다'스런 번역에는 그만 웃어버렸다...
4. 아주 오래된 농담/박완서/7
소설의 중간 까지는 참 재미없게 읽을 수 있다. 몇번이고 '내가 왜 이걸 읽고 있을까'라는 자괴감에 문득문득 빠져들며 반쯤 읽은 후로는 제법 재미있고, 클라이막스는 근사한 편이며, 이후의 하강기는 상당하다. 이유없이 가지고 있던 '한국 여성 작가들'에 대한 반감을 많이 줄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김훈 이후로, 추천해주고 싶은 한국 소설이다(물론 김훈에는 못 미치지만).
그리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도 밝혔듯이, 여기서도 여성의 주체성은 결국 남성/권력에 의한 서포트 없이는 불가능한 것 처럼 그려진다. 여주인공이라고 불릴 수 있는 '유현금'의 삶과 정신이 자유스러울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돈의 힘(과 대략적인 문화자본) 덕분이고, 주인공 '심영빈'의 동생이 재벌 집에 시집가서도 어느 정도의 위세를 누리는 건 박사에 의사인 오빠 덕분이다. 다행히 이렇게 주어진 '나쁘지 않은' 상황들로부터 여성 캐릭터들이 '주체성'을 획득해가는 것도 거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투쟁을 통해서 힘들여 획득하는 것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제법 현실적이며 하고 싶은 말도 잘 해낸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결론 역시 진부한 무엇으로 처리되지 않고(아니, 작품 자체가 그다지 진부하지 않다. 전반부 반 정도를 제외하면 상당히 훌륭하다). 앞부분 반이 좀 더 괜찮았더라면 9점까지도 노려볼 만한 작품인데, 역시 앞부분이 좀 너무 엉망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7점.
5. 생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8
질질 짜지 않는 전혜린. 이라고 하면 좀 우습나? 그럼 이런 건 어떨까. 여성 마루야마 겐지. 역시 좀 우습나? 하지만 확실히 그런 느낌이다. 최근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라는 제목을 책마을에서 몇 번 보았는데, 그거 보느니 조금 힘은 들어도 이 '생의 한가운데'를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혹은 마루야마 겐지나 김훈의 '강력한 필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추천이다.
나치스 점령 치하를 힘차게 살아간 여성 예술가 '안나'의 이야기(라고 쓰면 실화 소설이냐? 라고 물어볼것 같아 겁난다. 실화 소설 아니다. 반쯤 자전적 소설이라는데). 그리고 극도의 칸트주의자인 '슈타인'의 그녀에 대한 사랑의 기록. 연애 소설로 읽든, 힘찬 소설로 읽든, 뭘로 읽든 좋다. 범우사 판본으로 읽었는데, 꽤 두꺼운데다가 페이지도 크고 한데 페이지 잘 넘어간다. 다 읽고 나서 머릿속에 오래 남는 표현도 많다. 시종일관 마음을 해머로 두드리는 듯한 작품. 다만 년도별로 정리된 일기식의 소설 구성에, 숫자에 약한 나 같은 사람은 조금 좌절할지도 모른다. 확실히 '장편 소설'다운 장편 소설이기에 내용의 요약이라거나 중심 주제를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또 하나의 단점이라면 뭐랄까, 좀 지나치게 의지주의적이라 독서가 거의 끝날 때 즈음 해서는 좀 지겨워 지는 것 같기도 하고.
6.윤리21/가라타니 고진/10
허원영씨의 칼럼을 좋아한다면, 고진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쉽고 빠르게 읽히는데, 페이지 열어놓고 멍하니 하늘 보며 고민하는 시간이 많다. 호오. 굉장한 책이긴 한데 칸트주의-특히나 칸트의 윤리학-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는 읽기 참 애매한 책. 칸트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뭐 내가 칸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뭐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분명 한 권의 책인데, 한 권의 책이 여러 개의 칼럼으로 유기적으로 엉켜 있다. 챕터별로 발췌독해서 읽기에도 좋다(실제로 한 권 통독하고, 칸트주의 다룬 3,4장과 일본공산당 비판을 다룬 10장인가는 몇 번 더 읽었다).
책이 다루는 기본적인 주제는 '칸트 윤리학'인데, 굉장히 창조적인 독해를 한 덕에 그렇게 단순한 책이 되지는 않는다. 음. 나 역시 제대로 고민하지 못하고 읽은 책인 터라, 논쟁적인 무엇을 쓸 수는 없다는 생각이고. 분량 적고 재미있으며 생각할 거리마저도 많다. 모두에게 추천.
7.고도를 기다리며I연극(합본)/사뮤엘 바게트/6
애인이 얼마 전 극찬한 책인데, '로코코 거리'를 구한 그 헌책방에서 구했다. 난해하다. 더구나 '희곡'이라는 장르에 아직은 친숙함을 느끼지 못해서인지, 희곡을 읽는 것으로는 감동을 받기가 참 힘들다. 언젠가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책이다. 그 전까지는 6점. 그저 기본적인 '재미'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6점이다(사실 점수는 ? 로 남기고 싶었는데, 그건 너무 비겁한 것 같아서 느낀 것 만큼만 점수를 준다). 역시 '희곡'을 읽지 못하는 자에게 연극 없이 희곡만 읽는 행위는, 그림 없는 만화 대사집을 읽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8.현대와 탈현대의 사회사상/전경갑/7
최고의 장점은 정말로 쉽다는 것. 데카르트, 스피노자, 베버, 등의 '설핏 이름은 아는' 근대 사상가들의 사상에 대해서 아는 대로 쓰시오, 라는 질문에 대충 두세 문장 정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전혀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 정리도 잘 되어 있는 편이고, 각각 분량도 그리 많지 않다. 특히나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를 위시한 구조주의 파트와 훗설-하이데거-사르트르로 이어지는 현상학/실존주의의 흐름에 대해 이렇게 쉽고 자세하게 별 오류 없이 잘 정리한 책은 찾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단점들. 일단 네오마르 파트에 들어가면서, 스물스물 헤겔과 칸트의 망령이 떠돈다. 자기 논문을 쉽게 풀어 써서 이 부분을 만들었다는데, 몇 몇 부분에선 너무 쉽게 써버리고-루카치, 그람시-몇 몇 부분에선-프랑크푸르트, 하버마스. 특히 하버마스 압박-헤겔과 칸트를 제법 잘 알지 못한다면 난전을 면치 못할 듯 하다(하버마스 부분에서 내 공부의 부족을 여실히 느꼈달까). 또한 이 사람, 네오마르 전체를-특히 그람시와 하버마스에 대한 소개에서 절정을 이룬다-굉장히 우편향적으로 해석한다. 이 사람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대한민국을 그람시와 하버마스의 손에 맞겨도 아무도 불만을 가지지 않을 듯 한 정도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라는 제호로 니체-료타르-제임슨-보드리야르를 묶은 것도 그다지. 특히나 이 과정에서 제임슨을 '포스트모더니티를 여전히 정치경제학적으로 해석해내려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굉장히 특이한 사상가'라고 치부해 버리는 데에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굳이 개론서에서 료타르와 보드리야르를 따로 다룰 필요가 있었나(이건 루카치/그람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선 그 둘 간의 차이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데 굳이 따로 다룬다)
게다가 또 하나의 단점은, 미국에서 학위 받은 것을 티내고 싶은지 한글 개념어 뒤에 정성스레 단 원문이 몽조리 영어다.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 능기(significant), 피투성(throwness) 따위의 정성스런 영어를 보고 있자면, 이왕 쓰려면 그 나라 말을 찾아 쓰던가 하지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번역어도 딱히 마음에 차지는 않는다. 현대(modern)과 탈현대(postmodern)도 근대/탈근대가 더 자주 쓰이지 않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분명히 잘 안 쓰이는 식의 한국어 번역을 선택했다. 그것도 굳이 꼭 한국어 번역을 한다. 그냥 에피스테메라고 쓰지 꼭 인식소라고 옮길 필요는 없을텐데.
단점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또 하나의 특징 : 논점을 쉽게 풀어 쓰려고 하는 예시들이 '코믹'의 극치이며, 약간은 민망할 정도다. (일테면 니체의 영원회귀를 시간이 무한대인 MT와 한정된 프로그램의 반복으로 소개한다거나, 라깡의 '자기 안의 타자'를 공부는 하고 싶은데 나이트클럽에서 노는 학생의 심리로 소개한다거나 하는. 보다보면 참 재미있다)
구성 자체는 그럭저럭 봐 줄만 하다. 그야말로 현대와 탈현대의 '사회'사상이기에, 문예이론이나 이런 건 절대 안 나온다. '현대 사회과학' 입문서로 보기엔 꽤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총평이다. 개론서로서 훌륭하고, 그냥 책으로서는 그럭저럭. 점수 7점.
9. 슬픔이여, 안녕I브람스를 좋아하세요(합본)/사강/13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와 동점. 10점 만점에 1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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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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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누군가가 생활관 컴(4대. IPX가능)에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깔아놓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북괴의 공작 내지는 프리메이슨 결사대의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러한 암약 덕분에 3월에 읽은 책은 불과 두권인지 세권인지. AK74는 죽어라 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PC가 모종의 이유로 싹 사라진 덕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4월. 중순에 3중고에 시달렸습니다. 회계하라. 보급품엔 이름을. 군장품은 관리를.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꼭 같은 기간 중에 해야 하는 건가요 하느님. 삼위일체는 무서운 진리이고 말았습니다.
그런 압박 덕에 그리 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소설 9권에 시집 2권은 뭐랍니까. 아무래도 2월 말, 02학번의 졸업식과 함께 저도 '퍼져버린' 것 같습니다. 다시 인문학/사회학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거 원. 하지만 그래도 13점짜리를 하나 건졌다는 것이 소득입니다. 10점짜리도 두 권이나.
1.대부/마리오 푸조/10
오랫만에 읽은 영미소설. 문체도 인물도 배경도 하드보일드하며 문체도 인물도 배경도 매력적이다. 살다가 살다가 때로 전술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필요할 때 참조할 거리가 많은 그런 소설이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삼국지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이야기다. 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빠르게 읽힌다. 소설은 나름대로 음미하며 읽는 타입인데도 하루만에 다 읽었다(물론 주말 하루 내내 읽었다만). 이 작가의 것, 다른 것도 더 읽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일본적인 것'만큼이나 '이탈리아적인 것'과 '중남미적인 것'에 대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편인지라.
이탈리아 이민자 마피아 패밀리 콜레오네家의 일대기. 스토리에 대해서는 더 뭐라고 덧붙일 말이 없다. 그저 '일대기'라는 이야기 외에는. 아, 개인적으로 영화 '대부'와 그 패러디 '못말리는 마피아'를 굉장히 재미있게 본 경험이 있는데, 이 자리에서 추천하고 싶다. 지금은 잘 없는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못말리는 마피아'를 빌려 볼 것. 대부 1,2,3편과 소설까지 다 읽었다면 정말 미친듯이 웃으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2.GO/가네시로 카즈키/9
처음 읽어보는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 대표작부터 읽어보자는 심산으로 GO를 골랐는데 과연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심지어 앞의 반 정도를 읽고 나서는 '이 정도면 아쿠타가와 문학상 수상도 무리는 아니었을텐데'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하지만 주인공의 조선인 친구가 죽는 scene부터 대충 희망적인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중, 후반부는 '역시, 나오키 문학상 감이로군'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고 해도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는 재일 한국계 소설가다. '재일'이라는 정체성을 탐구하는 방법론으로 유쾌한-그렇다고 즐겁지는 않은-그려내기를 선택했다고 번역자가 밝혔는데, 나는 재일 작가라곤 유미리 정도밖에 읽어 본 일이 없으므로 그런 소리는 일단 무효다(현월의 '그늘의 집'을 아직 못 읽어봤다). 소설 전반이 유쾌하긴 한데 '재일 조선인/한국인'을 초기 흑인해방운동가들이 했던 실수와 마찬가지로 '신비화'하고 '강한 것'으로 그려내는 것-물론 작가가 재일 한국인의 민족성에 대해 '완전히'으로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은 결국 일본인들에게 또다시 '재일 한국인'에 대한 타자화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기제가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라고 하면 또 송희석 등등에게 사회학주의자니 하는 한 소리 들을 것 같아서 두렵다). 아름다운 소녀에게 구원받는 식의 대책 없는 청춘물의 결론은 무라카미 류의 69가 아닌 한은 그다지 용서받을 수 있는 취향도 아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유머러스함과 재미있는 설정, 그리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기에, 9점 준다.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허삼관 매혈기'와 함께 읽어보면 재미있을 듯도 싶다. 정치적이지 않으면서 정치적인. 슬프면서도 유쾌한.
3.플라이 대디 플라이/가네시로 카즈키/1
영화화 된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두 달간 읽은 책 중 절대로 비추천. 재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걸 읽느니 차라리 가즈나이트를 읽고 말겠다. 투명드래곤도 괜찮다. 위의 GO 서평에서 중간중간 지적한 가네시로 카즈키의 모든 단점들이 극대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장점이라곤 머리를 비우고 웃을 수 있다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읽다 보면 그 허무함에 이상하게 슬퍼진다. 왜. 그런 기분 있지 않은가. 너무도 쉽고 유쾌하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저런 건 절대 불가능 하잖아'하고 우울해지는 경우. 그런 경우를 대충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나는 이런 땀냄새나는 '판타지 소년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교생 딸이 어떤 돈 많은 집 자식이자 고교 권투 챔피언인 어떤 놈한테 두드려 맞고, 그에 복수를 준비하는 평범한 회사원 아버지는 재일 조선인 '초능력자(사실 초능력자는 아니고. 싸움 잘 하고 어려운 책 읽고 카리스마 폭발에 신비스러운 멋진 놈인데, 그게 초능력자랑 뭐가 다르냐 젠장 하는 생각이다)'와 그 친구들 그룹-가네시로 카즈키의 많은 작품에서 등장하는 그룹이다. The zombies-을 만나 그들 아래서 하드 트레이닝 끝에 그 놈을 격투로 쳐부순다는 스토리. 관두자. 시간이 아깝다. 그러나 영화엔 이준기가 나온다는데......
4.레볼루션 NO. 3/가네시로 카즈키/3
가네시로 카즈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듯한-이것. 플라이 대디. 그리고 보다가 던져버린 SPEED 세 편-재일조선인 초능력자 고등학생과 그들의 찌질한 학생 친구들 그룹 The zombies의 탄생과 여러 가지 사건을 다루는 그렇고 그런 '판타지 소년물'. 한참 동안 낙오자와 승리자를 경직된 기준으로 갈라버리는 일본 사회에 대한 치기어린 분노를 쏟아내고는(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그로부터 나쁜 놈과 착한 놈을 자기 기준으로 이분화하고 타자화하며(별다른 소설적 개연성 없이, 대기업 인사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쁜놈이 된다) 참 편하게도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단순진무식구한 시각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만세. 만화적인 캐릭터 생성과 구성은 물론 나쁘지 않은 문학적 방법론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나쁘지 않음'이상으로 좋으려면 그러한 캐릭터와 구성이 어떤 소설적인 의미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저 소설 전체를 만화적으로 재미있게 만드는 장치로만 사용된다면 작가는 차라리 만화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편이 좋다.
그나마 '유쾌함'의 측면에서 플라이 대디 플라이보다는 좀 뛰어났기에 4점정도 준다. 가네시로 카즈키는 첫 번째로 읽은 GO에서 끊었어야 했다. 어쨋거나 읽은 김에 SPEED까지는 다시 읽어볼 예정. 후임이 카즈키 풀셋을 가져온 덕택에.
5.만연원년의 풋볼/오에 겐자부로/13
카프카와 도스토예프스키와 노벨 문학상 수상작, 이 세 단어가 뿜어내는 포스를 잘 배합하면 이런 작품이 탄생하지 않을까. 몇 몇 찌질 한국문학주의자들은 '한국 문학은 사실 굉장히 뛰어난 데 번역이 잘 되지 않아 노벨 상을 받지 못한다'는 속편한 소리를 하기 전에 이 작품을 먼저 읽어보는 정도의 성의를 보여주셨으면 좋겠다(안타깝게도 현재 모든 출판사 판이 절판된 걸로 알고 있지만). 올해 들어 13점 너무 남발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거 충분히 13점 감이다. 여지껏 읽은 노벨상 수상작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강력히 추천. 오에 겐자부로 전집 내놓고 그 덕에 망한 출판사라는 '고려원'의 겐자부로 전집을 구하고 싶다. 허원영이 허투로 '오예 겐자부로'따위의 어울리지 않는 농담-그의 외모와는 굉장히 어울리는 농담이지만-을 한 것이 아니다. 강력하게 추천.
6.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제임스 핀 가드너/10
PC운동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바로 내용을 눈치챘을 듯한 제목이다(PC운동은 Political Correctness운동의 약어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언어를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로 변경하자는 그러한 운동이다. 이를테면 '검둥이' '흑인'같은 인종차별적 언어 대신에 'african american'을 사용하고 스튜어디스stewardess 같은 성차별적 직업언어 대신에 항공승조원flight attendant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하는 그러한 운동이다. 한국 식으로 보면 '여류 작가'따위의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이 그러한 맥락에 속한다). 그리고 이 책은 제목에 굉장히 충실한 책이다.
헌책방 랜덤 셀렉트로 얻게 이 책은 기존의 동화들에 대한 PC운동적 재구성을 시도한 단편집이다. 굉장히 짧은데, 미친 듯이 재미있고 발랄하다. '세 아기 돼지와 늑대'에서 늑대의 압제에 신음하려던 세 아기 돼지는 결국 기관총과 바주카포로 무장한 돼지 산디니스타를 결성하여 전지구적인 늑대의 압제를 대상으로 전면전을 감행한다거나, 라푼첼의 노래를 들은 왕자는 실은 매니저가 되어 라푼첼의 노래로 한 몫 잡아보려고 하는데 이에 반항하는 라푼첼은 민중가수가 되어 각지를 떠돈다거나 하는 식이다. 강력 추천. 동화를 재구성해 내놓은 무수한 책 중에 가장 뛰어나다(흑설공주 같은건 저리 좀 치워두자).
그런데 이 책이 또 재미있는 것이, PC운동에 완전히 동조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비판적이지도 않은 차원에서 쓰여졌다는 것(아니, 그렇게 쓰여진 것 같다는 것). 책의 몇 몇 측면은 PC운동의 '과도한 민감성'에 대해서 일정 정도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여주지만, 또다른 측면은 또 PC운동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쓰여진 것 같기도 하고. PC운동을 주제가 아닌 하나의 소재로 다룬 유쾌한 단편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내가 잘못 읽었을 확률이 높게 존재하는데, 내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아무튼 서너 페이지짜리 단편이 들어 있는 책 치고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추천할 만한 책. 출판사는 실천문학사.
7.돼지들에게/최영미/3
아아. 최영미는 삐딱한 여고생으로 퇴행해버렸다.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에서 보여준 치열함과 날카로움, 재기발랄함은 어디로 사라지고 치기어림과 삐딱함, 쿨함만 남았다. 김대현 군 말대로 서른 넘으니까 나이브해져서 그런 걸까. 일전에 김강록 군이 추천해 준'대학 시절 사진을 달라는 기자들에게'한 편 빼고는 건질 것이 없는 시집. 그런고로 내게 이 시집을 추천한 김강록은 내게 시집 값 8천원을 물어내야 한다. 노지훈 씨에게도(무슨 시집이 양장본에 8천원이냐)
8.소설 임제 1,2/임한일/5
조선의 풍류시인 '임제'를 다룬 역사무협판타지물[묵념]. 개인적으로 임제를 좋아한지로, 헌책방에서 '소설 임제'라는 제목을 보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덜컥 사버렸는데 대략 낭패다. 소설로써 가치는 0점에 수렴한다. 작가가 현대 상황과 조선 상황의 유사성을 드러내기 위한 시도로 일부러 그런 지 모르겠지만, 조선 시대 인물들의 입에서 '민본주의적 역성혁명'이라든지 '부대전술훈련'이라든지 '정치세력화' '여성해방' '자본주의' 따위의 단어가 나오는 것은 이것 참. 마술적 리얼리즘인건가, 미시사적 역사 뒤틀기인가. 아니면 단지 작가가 개념없는 분인 건가(작가의 전반적인 필력으로 미루어보아 이게 가장 확실하다). 게다가 임제의 행보도 다른 역사적 인물의 에피소드와 섞어 버린 덕에 '어떤 에피소드가 임제의 에피소드인지'를 식별해 내가는 과정의 재미는 쏠쏠하다. 가토 요시아키를 쓰러뜨리고, 서림과 만나고, 허준의 진맥을 받고 하는 장면은 그저 조용히 웃어넘기자. 중요한 등장 인물이 나타날 때마다 무협 소설식으로 '이순신! 그는 무과에서 몇 번이나 낙제하고 뭐 어쩌고 한 그런 인물이다' 식으로 서술하는 것에도 대략 묵념.
그럼에도 5점이나 주는 이유는, 임제의 시가 꽤 많이 실려 있다는 이유 딱 하나.
그런데 그것마저도, 한시의 경우에, 내 한문 실력에서 봐도 '오역이다!'라고 일갈할 수 있는 부분이 몇 군데 눈에 들어온다(나름대로 한시가 난무하는 인문한문 A+받았다). 작가는 나름 임제 전집을 참고로 작업했다는데, 한시가 아닌 경우에도 현대어로 옮김이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이라서 시의 맛이 제대로 사는 것 같지 않아 안타깝다. 혹여나 내가 역사물/인물전을 쓰게 된다면 가장 먼저 도전해보고 싶은 인물 '임제'.
이렇게 한참 쓰고 보니 간암 말기에 혼신의 힘으로 집필했다는 작가에게 미안해지니, 입바른 소리 하나만 하자. '풍류시인 임제'의 과도한 이미지를 거둬버리고 일정 정도 '현실 참여적 지식인' 임제의 상을 그려내려 한 것은 역사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분명 의미는 있겠지.
9.말도로르의 노래/로트레아몽/9
서사적 줄거리를 갖추지 아니하여 소설로는 탈락, 운문적 미학을 가지지 아니하여 시로써 탈락, 다만 서사 산문시라고 평해질 수 있는 그런 장르의 시라는데 뭐 이런 건 상관 없는 이야기이고. 형식적인 차원에서는 시적 에세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표현의 관점에서 그 강렬한 이미지가 다가오는 방식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시대에 반항하고, 사회에 반항하고, 인간에 반항하고, 신에게 반항한 '반항의 시인' 로트레아몽의 대표작. 다만, 6부 짜리인데 2부만 번역해놓고 아무 설명 없이 제목을 그대로 붙여놓는 건 출판사의 비매너다.
그런데 그럼에도 9점. 읽을 때나 읽은 직후에는 기억나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둘씩 엄습해오는 묘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보들레르나 랭보, 말라르메 따위를 좋아한다면 추천.
10. 사랑 후에 오는 것들/공지영/7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번역을 하신지라,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편과 츠지 편을 무료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책. 그런데 그랬으면 후회할 뻔했다. 좋은 책이다. 공지영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느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느니 하는 것보다는 연애 소설에 어울리는 스타일과 구성을 가진 작가인 것 같다. 공지영이 쓴 다른 연애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아무래도 츠지와의 공동 작업인데다가 나름대로 '프로젝트'적인 성격이 강해서인지, 스토리 전반은 그저 그런 연애 소설의 틀과 구성을 깨지 못했다는 점에서 조금 감점 요소가 있고, 가끔 등장하는 정치적인 소재-어쨌거나 일본 남자와 한국 여자의 연애스토리니까-를 끄적거리는 지점에서는 약간 굉장히 꽤나 어색하다는 점에서 또 조금 감점이다. 왜 공지영은 정치적인 이야기만 나오면 갑자기 도덕책 읽듯 이야기를 시작할까. 해서 7점이다. 다른 부분은 대체로 츠지의 동명 작품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역시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부분에서 공지영의 실수가 많았다. 아무튼, 지금까지 읽은 공지영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아. 아마 읽는 순서는 츠지편-> 공지영편이 맞는 것 같은데, 혹여 안 읽은 분 있으면 공지영편->츠지편의 순서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그 편이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아무튼 공지영의 스타일이 살아 있을 수 있는 그런 소설이었다. 엉뚱하게도 '칼의 노래'작가 김훈이 연애 소설을 쓰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 같은 거 말고.
11. 사랑 후에 오는 것들/츠지 히토나리/8
무료습득. 츠지 히토나리 이 남자 주목해 볼 만 하다. 에쿠니 가오리 때문에 그저 그런 소설이겠거니 하고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지 않고 넘어간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빨리 구해서 읽어봐야지. 연애의 언어를 아름답게 구사하는 재능이 있다.
공지영편이나 츠지편이나 한일간의 정치에 대해서 소재로 중간중간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소재'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에 포커스가 실린다면 그 실리는 만큼 결국 소설 자체의 '정치성'이 소설 전체를 받쳐주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연애 소설이 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츠지가 공지영보다 조금 나았기에 1점 높은 8점을 준다.
사실 두 작품이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모습의 차이를 보면서, 처음에는 한일 양국의 문제를 떠올려보았다. 아무래도 역사적 가해자 일본이 역사적 피해자 한국보다 역사에 보다 쿨하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니까, 그래서 츠지가 더 쉽게 역사를 '소재'의 위치로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츠지편과 공지영 편에 같은 점수를 주는 것이 옳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뭐 츠지 뒤에 일장기가 펄럭이는 것도 아니고 공지영 뒤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도 아니고. 개별 작가의 역량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결론내었다. 내가 공지영의 다른 글을 안 읽어봤으면 모를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 미루어 볼 때, 역량의 문제다. 소재는 소재 선에서 다루어야 한다. 아무튼.
잘 생긴 소설가는 경쟁자 차원에서 제거해야 하는데. 시마다 마사히코라든가 츠지 히토나리같은 녀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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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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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공중그네/오쿠다 히데오/5
재미있는 책이지만 재미만 가지고 늘어놓기에는 조금 과한 분량이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 에피소드 몇 개 정리하고 좀 더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쪽이 좋지 않았을까. 아라부와 간호사에 대한 디테일 역시,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몇 번 반복해서 늘어놓으면 독자 쪽에서는 슬슬 짜증을 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확실히, 반 정도 까지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나머지 반은 반 정도의 의무감과 재미로 읽었달까. 책마을에서 이야기가 많이 되는데,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책.
2.오페라의 유령/가스통 루르/13
독서후기로 대체. 난잡하게 끄적거린 몇줄평이 있었는데 날아가버렸다. 참고로 그 몇줄평은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다.
3.젊은 바르테즈의 슬픔/괴테/3
시이나 링고는 괴테를 좋아했다. 그래서 읽었다. 아마 허원영도 같은 이유에서 한때 홈페이지 대문에 이 책을 걸어놓은 것이라고 나는 마음대로 생각한다.
'파우스트의 악몽'이라고 내가 이름붙인 증상 때문에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앞부분을 읽다가 '이건 내 취향이 아닌데. 못 읽겠어. 어려워. 무슨 말이야. 어쩌라고'라는 느낌이 들고, 그것은 곧 '역시 나는 대문호와 통할 수 없는 건가' 하는 묘한 자괴감과 자만으로 진행하고, 그런 생각과 싸우다보면 어느새 책을 다 읽어버린다. 그렇다고 다시 읽기는 귀찮고. 파우스트에서도 그것때문에 헤맸는데. 역시 나는 링고랑 인연이 아닌가보다. 그래도 파우스트에 비해 분량이 적으니 다시 한번 읽고 싶기는 하다. 솔직히 재미없었고, 그다지 느낀 것도 없는데, 질풍 노도가 뭐고 대문호가 뭐냐에 기분나빠서 3점이다.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적당히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사랑 이야기이긴 하다.
4.사람의 아들/이문열/7
상당히, 재미있었다. 종교에 대해 그야말로 거의 전혀 관심을 가지고 살지 않음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글 자체의 뛰어남도 뛰어남이지만-이눔얄씨가 가진 정치나 사상과는 상관없이 그는 확실히 글을 제법 쓴다-책이 담고 있는 생각들이 재미있다. 문제는 그러한 생각들이 그다지 작가의 독자적인 사상체계에 기반한 것 같지 않다는 것. 무언가 '소피의 세계'모양으로 소설 자체의 흐름과 사상의 흐름이 그렇게 잘 융합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인물의 행동이나 인간의 아들 야하스페르츠의 행동이 구조적으로 일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못내 걸린다. 기독교의 근본에 대해 집요하게 캐물어가며, 종교의 구원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광기에 찬 인간의 이야기.
5.검은 꽃/김영하/11
그녀에게 빌린 지 1년이 넘어가는 책. 충동적으로 읽게 되었다. '칼의 노래'래 필적하는 작품(그보다 더 뛰어날 지도,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이며 그보다 내 취향이기에 11점을 준다. 언젠가 이야기했듯 저 뒤에 붙은 점수는 결코 객관적인 점수가 아니라 본인의 취향이 상당 부분 들어갔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리얼리즘을 초월하는 수법으로 남미를 다룬다. 그것도 근대 이행기의 토속적인 자국 세계를. 이라는 시도에서만 바라보아도 이것 충분히 보르헤스를 위시한 중남미 포스트모던에 비할 만 하다. 독서후기를 쓰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아깝게 넘어갔던 책.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정말 많고, 논쟁하고 싶은 것도 많다. 시간이 되면 언젠가 다시 읽고 싶은 책. 작중 인물의 네이밍 센스마저도 기막히다. 김이정. 얼마나 무표정한 이름인가. 강력히 추천하고 싶음. 왜 이제야 읽었을까.
6.떠오르는 남자 가라앉는 남자/시마다 마사히코/6
김형진이란 사람이 추천했는데, 이 인간이 문제다. 나는 자존심을 좀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독서에서부터 글쓰기까지 남에게 너무 휘둘린다. 내게 최영미 시집을 추천했던 김강록은 최영미 시집 값을 어서 물어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김형진에게도 마사히코를 구실로 무언가 뜯어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로코코 거리보다 낫다고 하기도, 못하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작품이지만, 굉장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던 시절임에도 그 두꺼운 책을 읽었다는 기억에서 그보다 1점 높은 점수를 준다. 각 잡고 다시 읽어보면 무엇인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것 같기도 하지만. 역시 나는 개인적으로 '문학 자체'보다는 '사상'에 포커싱하는 문학에 좋게 점수를 줄 수 없다. 그런 건 짜라투스트라정도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엉터리로 적당히 배운 척 하는 것을 티나게 늘어놓는 것(이것은 로코코 거리가 더 심했지만)은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7.성석제 최근 단편집(제목 기억안남)/성석제/9
역시 성석제. 지만 9점은 조금 무리겠지만. 마지막에 꽤 긴 소설(나의 스승들. 이었나)에 기형도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9점. 아니 10점도 줄 수 있겠지만 나의 취향이 편파적이지 않다는 기만을 하기 위하여 9점. '정신집중교육'이라는 이벤트에 동원된 중 짬 날때마다 읽은 책이라서 아주 잘 기억나지는 않고, 특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 단편도 없었기에. 하지만 아시다시피 내가 웰메이드에 대한 호평이 좀 심하다. 이쯤 웰메이드라면 9점 아깝지 않다.
아. 이거 성석제가 처음 낸 단편집 조금 손봐서 다시 낸 책이라고 한다. 그리고 단편 중 베스트를 고르라면 역시 기형도를 다룬 작품과, 음울한 분위기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소년간의 사랑을 다룬 단편 하나, 그리고 시계방 아주머니와 야구가 나오는 단편 하나. 쳇. 단편집에 몇 편이나 들어있다고 베스트를 세 권이나 고를까. 이래서 나는 안 된다.
8.나는 별아저씨/정현종/10
일찌기 허원영, 김대현 등과 책마을의 암흑기이자 냉동기이자 빙하기였던 '정파시대'를 이끌었고, 최성운, 육이은과 함께 공군 병 603기를 빛내던 강우람 씨로부터 선물받았다. 내게는 이 것을, 그리고 대현이에게는 나희덕 시인의 작품을 선물했는데, 둘이 서로 '와. 정말 묘하게 어울리는 작품을 선물했는데'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 전 날의 기억때문에 그다지 행복한 기억은 되지 못하지만.
기억나는 시구들 : '가벼워지기 위하여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짐을 짊어져야 하는가' '술보다 강한 마약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좋은, 그러나 기억하기 아프고 힘든 강력한 詩들이 가득하다. 기형도의 시집 이후로 한방의 타격이 이렇게 큰 시집은 내게 처음이다. 요즘도 틈날 때 마다 생활관에 누워 읽는다. 묘하게 졸작으로 느껴지는 시들도 많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것은 아마 내 감수성에 기인하는 문제일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나는 정현종을 알아보고 좀 더 읽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