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독서법에 대하여 - 느리게 읽는다는 것의 의미 
 
 
 
 
독서에 관한 네 가지 질문.





독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독서’의 단점은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마당에, 책 하나를 위해 ‘시간을 많이 소비’하면 ‘많은 글을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생긴다는 것이죠. 여기서 질문해봅니다. 과연 그 ‘수많은 책’들이 모두 우리가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기초지식을 담은 지식의 보고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1년에 평균 읽는 책의 수는 밝히기 부끄러울 정도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이 책 많이 읽는 일본이나 유럽 사람보다 더 멍청한가요? 이미 책이란 해체된 채로 하이퍼텍스트화되어 인터넷을 통해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기본적인 이해를 위한 지식들을 습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죠. 사실 아무리 속독을 하여도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으며, 폭넓은 지식을 위해서는 오히려 요약된 글을 읽는 것이 ‘시간의 소비’ 라는 측면에서는 더 나을 것입니다.(전공서적을 요약된 글로 이해할 수야 없겠지만 ‘해리 포터’는 가능하겠죠) 
그렇다면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독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과 인터넷 등을 통해 해체된 텍스트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겠지요. ‘토지’를 읽는 것과 ‘청소년용 토지’를 읽는 것과 ‘토지 줄거리 요약본’을 읽는 것은, 읽으면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양만 따지더라도 현격하게 다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해체된 텍스트’가 아닌 ‘책’을 읽어야 한다는 필연적 결론이 성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독서’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의 선택, 즉 ‘독서법’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차이는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라기보다는 '무엇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시선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느리게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원전을 정독한다고 하여도, 책을 전부 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텍스트로서 공개되어 존재하는 책은 모든 사람에게 다르게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자신의 독법을 찾아나가고 그 독법을 확장 ?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과제로 등장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느리게 읽는 것’이란, 읽는 과정 자체의 의미와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가능성을 생략한 채 속독만을 추구하는 독서에 반대하여, 다독과 속독이라는 결과만이 아닌 독서행위 자체를 긍정하고 즐길 수 있다는 보다 넓은 의미의 적극적 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자신의 인식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라고 할까요?

‘독서’라는 행위를 바라볼 때, 저는 이 ‘자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목적론적 독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비해 저는 ‘독서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느리게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텍스트를 위해 필요 이상의 시간을 소비하는 비효율적인 행위입니다. 보통은 속독을 하여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 시간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 여유로움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지식의 양적 측면에서의 상대적 우월’이며, 본질인 책보다는 책의 양을 비교하는 것이라는 점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 참된 독서의 정착을 위해, 저는 ‘느리게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느리게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에게 ‘느리게 읽는다는 것’은, 지식의 습득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바로 독서 자체를 목적으로 한 상태에서 ‘깊이 읽기’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독서를 단지 ‘지식의 충전’에서 그치지 않고 ‘재해석’과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까지 포함하여 독서를 완성하기 위한 기본자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속도’의 문제라기보다는 ‘태도’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느리게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말 그대로 느릿느릿하게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는 것, 또 천천히 음미하면서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진정으로 책을 즐겁게 읽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즐겁다’는 것은 단순한 유희에서 그치지는 않습니다.

책 속에 빠져들어 글쓴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며, 그 책 속에 침잠하여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 여유가 사라진 독서란, 지식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지식 과포화상태로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미친 악영향은 우리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토익은 만점인데 외국인과 대화 한 마디 못 하고, 수학올림피아드는 1,2등을 다투면서 번듯한 수학자 하나 배출해내지 못하며, 서울대학교 필수교양도서목록의 책은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놓고서 정작 글은 초등학교 독후감이나 다를 바 없는,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헛똑똑이’ 들을 꾸준히 봐오고 있지 않습니까? 써먹지 못하는 지식을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는 이들이 우리 교육을 망쳐놓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상황에까지 이르렀고요.

폭넓은 교양과 균형 잡힌 시선, 다 좋은 말이지만 ‘내 생각’이 들어있지 않다면 모든 게 다 헛것입니다. 검색 한 번이면 다 나오는 세상에 ‘헛똑똑이’ 들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저는 단순히 ‘정독’과 ‘속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에 대한 치열함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점검하자는 것이죠. 얼마나 많은 지식을 쌓았는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어떻게 ‘재해석’하고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거쳤는지에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바로 그런 작업이 선행되어야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나갈 수 있고, 정보의 홍수 속에 휩쓸려가지 않은 채 그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나갈 수 있겠지요. 비록 읽는 양이 적다고 해도, 책의 뜻을 더 많이 찾아내지 못했다 해도, 자신이 찾아낸 부분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다면, ‘진정한 주관’이란 것이 사라진 이 시대에서 그 작은 걸음마가 더욱 의미 있는 독서일 것입니다.

물론 ‘속독’도 독서의 한 방법입니다. 속독을 해서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면 더없이 바람직한 독서방법일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책이 단순한 지식 덩어리라는 인식, 책을 많이 읽어야 뒤쳐지지 않는다는 그릇된 인식이지요. 저는 그런 ‘지적 허영이나 지식 과포화를 불러일으킬 속독’의 폐해를 비판하는 의미에서, '느리게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새겨보아야 할 때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독서법은 무엇일까요?

신문을 보니 김득신과 정약용의 독서법에 대한 글이 있더군요. 김득신은 ‘사기’ 백이전을 11만 1000번 읽었고, 1만 번 이상 읽지 않은 책은 독수기에서 제외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부인의 상중에서도 호곡 소리에 맞춰 백이전을 읊조렸다는 일화가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정약용은 ‘사기’ 자객열전에 나오는 기조취도(먼 길을 떠나기 전에 노신(路神)에게 제사를 지내다)에 대해서 ‘조’자를 쓰는 이유를 사전에서 찾으면 ‘옛날 황제의 아들 누조가 여행을 좋아하다가 길에서 죽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통전’이나 ‘통지’, ‘문헌통고’ 등의 책에서 예를 모으면 그에 관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며 한 가지 책을 읽더라도 수백 가지의 책을 아울러 엿볼 수 있는 독서의 큰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이렇듯 독서법에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고 즐기는 법 또한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빠르게 읽으면서도 얼마든지 즐거운 독서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고 느리게 읽으면서도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련도서들을 빠르게 읽어나가면서 분야의 지식들을 하나하나 자신의 주관에 따라 조합해나가는 독서법도 긍정적인 것이고 하나의 책에서 시작하여 그 책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자신의 힘으로 찾아내는 힘을 기르는 독서법도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각을 만들어나가는 촉매제로서의 독서’가 긍정되지 않는다면 결국 속독과 다독은 모래와 같이 뭉쳐지지 않는 사고의 파편으로만 남을 것이며, 저는 그런 모래성을 쌓는 사람들을 향해 ‘느리게 읽으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독서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 방대한 서적의 양에 짓눌려 지식강박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저는 ‘느리게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책을 고르고, 책을 쌓아놓고, 책을 펼쳐들기에 앞서, 독서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며 무엇이 올바른 독서법인지를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면서도, 그 마음의 양식마저도 남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삼켜야 하는 현실 속에서, 한 번쯤 독서의 의미에 대해 되새겨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일전에 말했듯이, 우리는 ‘책의 노예’가 아니라 ‘책을 노예부리는 주인’이니까요.





덧. 희석님과의 대담을 엮어서 만든 칼럼입니다. 이런 경우 fix-up이라는 업계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병장 박민수 (2006/05/10 15:24:23)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읽어 내는 책들을 보며, 종종 책마을을 들리며 매번 큰 자극을 받습니다. '아. 나도 빨리 읽어야 되는데. 읽을 건 많고, 진도는 안나가고. 으.' 그 자극은 내 안에서 조바심으로 변해 독서를 하는데 있어 굉장한 방해요소가 되곤 합니다. 좀 더 곱씹어 보고 싶은 문장이 나오면, 일단 갈등을 하기 시작하니까요. '이 문장을 붙들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 책은 언제 다 읽지? 빨리 읽어야 되는데.'와 같은. 기분에 따라 다르지만, 결국에는 그런 조바심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꽤나 많아졌습니다. 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말이죠. 저도 모르는 사이, '책의 노예'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식강박, 아는척의 강박에 빠져, 책을 쌓아놓고, 그저 눈으로 훑어 내리기만 한 건 아닌지. 흐. 고요해지는군요. 당장 오늘부터라도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책을 대해봐야겠습니다. '책의 주인'으로. 

덧) 요즘엔 아무생각 없이 환경에 끌려다니며 지냈던 거 같아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했던가요. 제 자신에게 너무 소홀했던 건 아니었는지. 긍정할 수 있는 가치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 흘러가는 시간을 버텨녀는 데에만 급급했던 거 같아요. 아래 주현님이 쓰신 글과 동석님의 글을 읽고,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저를 바라볼 수 있을 거 같군요.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 주저리 남겼지만. 아무튼. 호호.    
 
 
 병장 노지훈 (2006/05/10 21:37:18)

좀 과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땀) 그래도 아직 돌도 씹어 삼키는 성장기라서, 지금은 일단 왕성하게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도 궁금했지만 11만번을 어떻게 읽죠? 하루 10번씩 읽어도 30년 인데    
 
 
병장 김석윤 (2006/05/11 06:53:02)

요즘엔 어쩔 수 없이 느리게 볼 수 밖에 없는 말 그대로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보면 볼수록 느리게 읽는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는 중입니다. 오랜 기간 하나의 책을 읽기 때문에 책에 대한 사색의 시간이 그에 따른 책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많은 책을 읽어야한다는 조바심과 초조심에 다독과 속독을 즐기고 있지만 이제는 정독도 즐겨야 할까봐요.    
 
 
일병 이건룡 (2006/05/11 08:56:28)

"느리게 읽다는 것의 의미"라는 경향을 강조하기에는 책이 말하는바와, 혹은 요청하는 우리의 입장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요?    
 
 
상병 이용재 (2006/05/11 10:50:20)

동감하는 바입니다. 호호 궁금한게 있는데.. 
사색하고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실순 없나요? 헤헤 
어떤책을 읽고 이래이래서 이렇게 됐다는 식의 다른 분들의 좀더 자세한 벙법론을 
알고 싶네요.    
 
 
상병 이용재 (2006/05/11 10:51:44)

동감하는 바입니다. 호호 궁금한게 있는데.. 
사색하고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실순 없나요? 헤헤 
어떤책을 읽고 이래이래서 이렇게 됐다는 식의 다른 분들의 좀더 자세한 벙법론을 
알고 싶네요. 
사색을 하고 자기를 돌아본다는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또한 책을 읽고 그런 행위를 한다는게 
쉽운것만은 아닌거 같습니다.    
 
 
상병 황민우 (2006/05/11 18:05:04)

오랜만에 읽네요. (웃음) 
저는 원체 책을 '통째로 씹어먹는'녀석이라는 말을 들어온지라.. (세상에, 어린왕자 한권읽는데 8시간 걸린 인간은 저밖에 못봤다는군요.) 느리게 읽고 음미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독서의 즐거움 그자체라고 생각되서.. 저는 책을 집었을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느리게 읽기를 즐깁니다. 그에 대해 '책의 홍수',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하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만, 그러면 쉬는 시간 쪼개고 잠잘시간 줄이면 될 일입니다. (요컨데, 독서시간을 늘리자는 말) 

느리게 읽기와 빠르게 읽기의 차이는 천근만근입니다. 속독도 가끔 하는편이지만, 느리게 읽으면서 얻게되는 많은것들은 빠르게 두세번 읽어서 메워지는게 절대 아니거든요. (특히 문학의경우) 
빠르게 읽을때와 느리게 읽을때 (특히 환상문학이나 장르문학의경우) 이야기의 묘사나 상황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수 있는 여유가 빠르게 읽기와 느리게 읽기의 경우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저는 이것을 상상력의 거리라고 부릅니다만) 이점에서도 느리게 읽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병 공건태 (2006/05/12 10:32:55)

크게 공감되는 글입니다. 되뇌이며 생각해 보면 저역시 책의 이해와 재해석 보다는 책에 대한 단순한 양으로 헛된 만족감을 채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곤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생각해보면 기억나는것이 많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겉핥기식 보다는 속을 채우는 독서방법이 필요한듯 합니다 
좋은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병장 장훈 (2006/05/12 21:18:58)

평소에 책을 읽는 분들이라면 많이들 공감할 내용인것 같습니다. 남보다 앞서려 더 많은 책을 욕심내며 읽다보니 정작 머리에 남은것이라고는 몇 글자의 파편들뿐인 경험이 다들 있으시지 않은가요? 
책을 통해 내 생각이, 그로 인해 행동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무심한채 많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서 만족함을 느꼈던적이, 다들 있으시지 않은가요? 실상은 밑빠진독에 물붇듯이 읽었음에도. 

적절한 문제의식에 좋은 의견이었습니다.    
 
 
상병 정성진 (2006/06/06 17:05:36)

동석님께서 "느리게 읽는 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역설하시는 동안 
저는 같은 이유 같은 맥락에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자기 주관이 결여된 채 
‘지적 허영(물질적 허영)이나 지식 과포화(물질적 과포화)를 불러일으킬 속독(빠른 성공..정도?)' 
은 의미 없는 삶이 될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논지를 연관시켜보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