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사랑하나요? 
 
 
 
 
훈련 때 읽은 책이다.

훈련 기간이 길어 훈련장에서 읽을 만한 책이 없나 살피다가 후임병이 도서관에서 빌린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을 포함하여 두 권을 더 가져갔다. 500페이지가 넘어서 훈련 기간 내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여유로웠다. 나는 이 책을 전투적으로 읽었다. 정훈보도 활동을 하면서 이동 중에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리듬을 타며 읽었고 덜 익은 전투식량을 먹고 난후 알싸한 디저트로 읽었다. 춥고 피곤한 텐트 안에서 차가운 냉기와 더불어 한줄기 빛에 의지하여 읽었다. 읽고 난후 책 표지는 이전보다 더 더러워졌고 상처가 나있었다. 전우였다. 이 책은 내용 이상의 의미를 담은 책이다.

근래에 영화로 상영된 <오만과 편견>의 원제는 <첫인상>이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는 느낌은 순간적이지만 오래 기억된다. 그리고 그때의 느낌과 판단이 만남의 대상을 개념화시킨다. 그러나 여기서 몇 가지 오류가 발생한다. 첫인상은 이성보다 감정에 더 치중되어 대상에 대해 잘못된 판단과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첫인상이 전부는 아니고 진실한 마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개된다.      


“오만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흔한 결함이야.” 메리가 자신의 깊은 사고력을 뽐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31p>


오만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만이라는 것은 나 자신의 프라이드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자랑할 것들이 있다.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든 안 되든 누군가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그러길 바란다. 그로 인해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기 원하고 남들과 다른 우월함에 만족감을 느낀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허영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과 남에 대한 개념으로 구분을 하는데 이 글에 비추어 보면 이 세상에서 사람이 가지는 참된 겸손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오만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사람이 가지는 자존심이자 당연한 감정이다. 오만은 소유한 사람의 조절에 따라 빛나기도 하고 불쾌하고 혐오스럽게 느껴지게 한다.      


“글쎄.” 샬럿이 말했다. “난 진심으로 제인이 성공하기를 바라거든. 그리고 제인이 내일 그분과 결혼해서 행복해질 확률이나 열두 달 동안 그분 성격을 연구한 뒤에 결혼해서 행복해질 확률이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결혼에서 행복이란 순전히 운에 달려 있어. 서로의 취향을 아주 잘 알거나, 혹은 서로 아주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둘의 행복이 더 커지는 건 결코 아니야. 취향이란 건 계속 변하게 마련이라 나중엔 누구든 짜증이 날 만큼 달라지게 마련이야.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의 결점은 될수록 적게 아는 것이 더 나아.”   <35p>


이 책을 읽었다면 샬럿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그의 결혼은 그녀의 의사보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전통적인 결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샬럿의 결혼에 대한 견해는 성향과 성격의 비슷함을 추구하는 사랑법에 물음표를 던진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누군가든 내가 그 대상에 대해 많이 알고 비슷한 점을 찾았더라도 그것이 친밀함의 보증수표가 될 수는 없다. 인간관계에는 눈에 보이는 수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잣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샬럿의 말대로 사람의 취향은 계속 변하고 나중엔 권태의 짜증이 나서 대상에 대해 더 잘 몰랐던 때가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결혼은 운에 맡기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답이 없다.
    

“만일 제가,” 콜린스 씨가 말했다. “노래에 소질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노래를 한 곡 선사하는 일을 정말 기꺼이 할 겁니다. 음악은 매우 순결한 오락이며, 목사라는 직업과 완벽하게 양립 가능하다는 게 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저희 성직자들이 음악에 너무 많은 시간을 바쳐도 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다른 돌볼 일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교구 목사에게는 할 일이 많습니다. 첫째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면서도 후견인이 불쾌하시지 않을 정도의 십일조를 거둬야 합니다. 그러고는 설교용 원고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남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은 교구민을 위한 의무를 수행하거나 자기 자신의 처소를 가꾸고 개선하는 데 써야 합니다. 당연히 가능한 한 안락한 곳으로 만들어야 하지요.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자신을 선택해 주신 분들께 주의를 기울이고 협조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결코 가벼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구 목사에겐 빼놓을 수 없는 의무이며, 후견인의 가족과 친척이 되시는 분께 존경을 표할 기회를 놓치는 사람을 좋게 생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146p ~ 147p>


이 책에서 콜린스는 성직자로서 그 시대의 표본이자 대변인처럼 등장한다.
그의 말을 보고 있자니 풍자적이지만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이 일부는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흔히 종교와 성직자의 이미지는 종교의 교리나 신도들에 대한 성직자의 헌신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성직자의 판단에 있어 신보다 신도가 먼저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결국 종교집단은 신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업체로 변모한다.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성직자에 있어 종교는 결코 신을 떠나서는 어떠한 말도 될 수 없다. 신을 멀리하는 것은 스스로 종교이기를 거부하는 것이고 성직자로서의 사명을 저버리는 것이다. 콜린스의 말을 비추어 볼 때 그 당시의 종교에 대한 의식과 형식에 대한 부조리를 알 수 있지만 그리 먼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   


“내 행동이 그렇게 한심했다니!” 그녀는 외쳤다. “변별력에 대해서만큼은 자부하고 있던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똑똑하긴 하다고 자랑스러워하던 내가! 때때로 언니가 너무 너그럽고 솔직하다고 비웃으면서 쓸데없이 남을 의심함으로써 허영심을 만족시켰던 내가! 이제야 깨닫다니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하지만 창피해하는 게 당연하지! 사랑에 빠져 있었다 해도 이보다 더 기막히게 눈이 멀 수는 없었을 거야. 그렇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 허영심이었어. 처음 만났을 때 한 사람은 나를 무시해서 기분이 나빴고, 다른 한 사람은 특별한 호감을 표시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난 두 사람에 관해서는 선입관과 무지를 따르고 이성을 쫓아낸 거야. 지금 이 순간까지 난 나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거야.”   <293p ~ 294p>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부분이다. (다른 말로 하면 엘리자베스의 오만이 깨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토록 혐오하고 미워했던 다아시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변하는 순간,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이성적이 못함에 괴로워한다. 인간관계에 대해 세상에 나온 처세의 책들은 첫인상의 중요성을 도입부부터 강조한다. 틀린 말은 아니나, 그 후속대책에 대해서는 미약한 면이 있다. 처음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주었다고 계속 유지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의 미학이다. 첫인상은 그 이상과 이하도 없는 순간적 감정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사기 치는 사람의 첫인상은 천사와 같았다고. 나는 인간관계가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내가 첫인상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조금씩 나를 변화시키고 상대방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또한 한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고 몇 번의 시행착오와 마음의 눈물을 흘린다. 인고의 시간 끝에 나는 대상과 진정한 인간관계를 시작하고 친밀함이 깊어진다. 처음에 모든 것을 얻는 다는 생각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상을 지켜보는 시간과 대화하는 여유이다. 인간관계는 기다림과 이해를 넘나드는 모험이다.

         
엘리자베스는 지난밤보다 오늘 밤에 펨벌리 생각이 더 났다. 밤을 지내는 동안은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으나, 그 저택에 있는 한 사람을 향한 감정을 결정하기에는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녀는 꼬박 두 시간 동안 잠들지 않고 자기의 감정을 정리해 보려 애썼다. 그를 미워하지 않는 것은 확실했다. 아니, 미움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와 거의 동시에 혐오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느낀 적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하게 되었던 터였다. 그의 장점들을 확인하면서 생겨난 존경심을, 처음에는 마지 못해하며 인정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는 그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고, 어제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를 아주 좋게 평하고 그의 성격이 아주 상냥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제는 얼마간 기꺼이 받아들이게까지 되었다. 그러나 존경과 존중보다도 더욱더 그녀 마음속에 간과할 수 없는 호감의 동기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감사였다. 한때 자기를 사랑했다는 데 대한 것뿐 아니라, 그를 거절할 때 토라져서 톡톡 쏘아대던 무례함이라든가 그러면서 퍼부은 모든 부당한 비난들을 용서해 줄 정도로 자기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데 대한 감사였다. 자기를 가장 큰 적으로 보고 피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 우연한 해후에서 친분을 유지하기를 바라 마지않는 듯했고, 둘 사이에만 해당되는 일을 가지고 대놓고 호감을 표현한다거나 눈에 띄는 태도를 보이는 일 없이 자기 친지들에게 호감을 사려 하고 누이를 소개하려고 마음을 썼던 것이다.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이 이렇게 변했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 아니라 감사한 마음까지 생겼다. 사랑, 그것도 열렬한 사랑 때문임이 분명했다. <365p ~ 366p>


사랑을 위한 다아시의 노력과 엘리자베스의 감탄.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의 흐름은 엘리자베스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마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에서 시니컬하고 신경질적인 잭 니콜슨이 홀리 헌트를 만나면서 변화되는 모습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름대로 배운 것이 있다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솔직함보다는 은근하면서도 대상에게 도움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조력자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열 번의 사랑한다는 말보다 깜짝 놀랄만한 이벤트와 도움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이에 대한 근거가 된다. 우리가 원하는 사랑은 들음이 아닌 체험에서 비롯된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를 사모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빙리양으로서는, 이것이 자신을 내세우는 최상의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노한 사람이 늘 슬기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가 마침내 좀 자극을 받은 듯한 표정을 보이니, 그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입은 꾹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입을 열게 하려고 이렇게 계속했다. 
“제 기억으로는, 우리가 하트퍼드셔에서 처음 그 여자를 알게 되었을 땐데, 미인이라고 소문난 여자라는 것을 알고서 모두 얼마나 놀랐던지요. 어느 날 밤에 한 말씀이 특히 기억나네요. 네더필드에서 그 사람들이 식사를 한 후였는데, ‘저 여자가 미인이라고! 차라리 저 여자 어머니를 재사(才士)라고 부르지.’ 그런데 그 이후로 그 여자를 점점 잘 보시게 된 것 같더군요. 한때는 제법 예쁘다고 생각하신 것 같으니까요.”
“그랬소.”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다아시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처음 그 사람을 알게 된 때만이었소. 그 이후로 여러 개월 동안 그 사람을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 왔으니 말이요.”   <373p ~ 374p>   


엘리자베스에 대한 다아시의 심경변화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엄청난 재력가인 다아시에게 별 볼일 없던 시골처녀 엘리자베스는 수많은 순간과 시간 속에서 사랑의 의미가 되었다. 꼭 예전에 SBS에서 방영한 인기 드라마 <파리의 연인>과 같은 구성이다. 다아시가 느낀 사랑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 경험에 의지해서 해석하면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아는 정도였다. 같은 기관에 속한 동료이자 선배였고 장(長)이었을 뿐, 아무 감정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려운 시기에 서로 뜻을 두어 일을 추진하면서 자주 만나게 되었고 많은 경험을 통해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별 감정이 없던 나도, 여자친구의 성실하고 따뜻한 마음에 호감을 느껴 먼저 고백을 하였다. 처음 보았을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아시의 말처럼 내 여자친구는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금방 기가 살아 다시 발랄해졌다. 그녀는 다아시 씨가 어떻게 자기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길 원했다.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죠?” 하고 그녀는 말했다. “일단 시작을 하고 나서는, 멋지게 계속하신 것 알아요. 그렇지만 처음에 어떻게 시동이 걸렸죠?”
“시동을 건 시각이라든가, 장소라든가, 표정이든가, 말이라든가 하는 것을 꼭 집을 수는 없어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내가 시작했구나 알았을 때는 벌써 한참 지났더군요.”   <520p ~ 521p>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의 시작은 없다.
사랑하는 대상이 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은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다아시의 말이 맞다. 꼭 집을 수는 없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 이미 너무 많이 지나와 있다. 아마도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재미있지 않는가? 언제 시동이 걸렸냐는 엘리자베스의 말이..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약 200년이 지났지만 나는 이 책만큼 인간관계의 정석을 담은 책도 없다고 본다. 문체와 구성면에서도 탁월하고 모든 애정드라마와 영화가 이 책에 영감을 받고 나온 것 같다. 이제는 뻔한 이야기 되어버렸지만 신데렐라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와 영화는 <오만과 편견>의 표절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우리가 접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정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다.
애써 정의하여서 나름대로 개념화했더라도 오해와 잘못됨에 실망하거나 자괴할 수 있는 것이다.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을 꿈꾸었던 나지만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았고 내 주위에서는 없었다. 그냥 시간이 흐르고 만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와 관계가 축적되어 친밀해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랑의 대상이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결혼할 사람은 자기 곁에서 2km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다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사랑을 하자. 
  

완독일자 : 2006 . 4 . 12 . 수  봄날
* 병장 김동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5-08 15:59) 

  
 
 
 
일병 김의수 (2006/04/18 15:18:54)

영국의 박완서라 할 수 있는 제인 오스틴 누님.    
 
 
일병 김현동 (2006/04/18 15:22:51)

그야말로 행복한 소설이죠. 영화도 꼭 보고싶은듸!    
 
 
상병 송희석 (2006/04/18 16:09:09)

멋진글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상병 이영준 (2006/04/18 16:19:35)

멋진 소설에 대한 멋진 후기입니다. 
사랑의 시작을 생각해 낼 순 없다는 말. 
가슴에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