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314씨의 D-1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0-15 18:07:20, 조회: 252, 추천:0 

어제 올렸던 그 우수영업사원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냥 써보고 싶어서요(웃음)



"으흠, 이정도면 충분하지?"
생명청 잔여수명회수과 소속 저승사자 314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파란색 튤립을 찾는 신비로운 여자. 음, 충분히 호감을 끌 수 있겠어."
사실 자동차인지 꽃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그림이었지만 314에게는 나름대로 오후업무시간을 내내 사용해서 그린 일생의 역작이었다.
그녀가 접근하려고 하는 이번의 목표는 지루해서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있는 남자로 314의 계획대로라면 1시간 내에 계약을 따 올 자신이 있는 상대였다. 만일 계약을 성사시킨다면 52년의 잔여수명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이번 달 실적 1위를 지키고 있는 저승사자 81을 9년 차이로 따돌리고 8연속 우수영업사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다. 이 극적인 역전승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314는 저번주 금요일부터 야근을 해가며 저쪽 세계로의 출장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저쪽 세계로 넘어가려면 상당히 복잡한 절차와 여러장의 결재서류가 필요하기 때문에 승인은 오늘 오전에서야 간신히 떨어졌고 이 기회를 확실히 잡기 위해서 오후일과를 모두 쏟아부어가며 목표에게 접근할 전략을 짜고있었던 것이다. 물론 1분만에 미친여자라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일이었다.


"314, 그게 뭐야?"
휴식터에 앉아 자신의 그림에 만족하고 있는 314에게 따끈한 녹차를 내밀며 친한 척을 하는 사람은 인구조정과의 815였다. 그는 조만간에 필요해질 대규모의 인원을 위해 질병과를 개입시킬 지 재난과를 개입시킬 지를 결정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의견을 묻고 다니던 중이었다.
"815, 이게 뭘로보여?"
"우선 이 녹차 받아. 음, 어려운데? 돌고래?"
대답하면서도 정확히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꽤 어려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어차피 이쪽에서의 모습은 자신이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시절의 모습이니 이쪽으로 넘어오기 직전에는 허리도 제대로 못 펴는 노인네였을 지도 모른다.
"튤립이라구, 파란튤립. 내일을 위한 비장의 무기야."
"튤립의 동음이의어가 뭐가 있었지? 난 튤립이라고 하면 꽃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그래, 그 꽃이야. 지금 나를 놀리는거야?"
"아니, 정말로 진심이야. 난 지금 너를 놀릴만한 정신적 여유도 없다구."
"하긴, 조만간에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생명'으로 통합될테니, 새로운 사람들이 필요해지겠지. 그래서 재난이야 질병이야?"
"재난으로 정해질 것 같아. 요즘은 괜히 전염병같은 거 써봤자 엉뚱한 곳에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져서말이야. 넌 요즘 어때?"
"아아, 이쪽도 최악. 옛날에는 그래도 자기 혼자서 여한없이 살다가 이리로 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잖아. 요즘은 그런 사람 한명도 없어. 뭐 그리 욕심이 많은지. 게다가 요즘은 우리 제안을 거절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어. 요번달 1위인 81이 지금 몇 년 모은지 알아? 고작 2181년이야. 사람으로 30명도 못 채울 정도라구. 뭐, 어쨌건 이번에도 1위는 내가 할테지만 말야."
"그래, 동물들이 그나마 우리 통제에 잘 따라줘서 다행이야. 동물들까지 사후생활을 모두 누리겠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아마 2년도 안돼서 저쪽 세상은 멸망할거야. 사람들도 좀 균형을 위해서 욕심을 버려주면 안될런지."
"정말 옛날부터 궁금했던 건데 말야, 도대체 왜 수명분배과에서는 청구하는 수명의 양을 늘리지 않는거야?"
"청구를 늘리다니? 아, 윗쪽으로 보내는 청구말야?"
"그래. 애초에 윗쪽에서 내려오는 수명이 너무 적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수명을 모아야 하는거잖아."
"그거 800년쯤 전부터 청구넣고있는데 매번 결재가 안나고 있다던데? 분배과 내에서는 파업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는 모양이야."
"헤에, 815는 분배과 쪽이랑도 친분이 있나보네? 난 그쪽은 가본 적이 없어서말야."
"워낙 여기저기 불려다니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 음? 아, 젠장 호출이야. 가봐야겠어. 내일, 성공하면 한 턱 내기야! 네! 815입니다!"
815는 입으로는 통화를 하며 한 손을 314를 향해 흔들며 멀어져갔다.


저녁식사는 이 계획을 함께 세워준 동료 313번과 함께하기로 했다. 계획을 세워준 데 대한 보답으로 한 턱 쏘기로 했기에 장소는 사내식당이었다. 사내식당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정도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맛도 보장되어 있는데다가 값도 저렴해서 사내식당이라고 해서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짜잔! 이게 그 그림이야, 어때?"
"음? 너 이번 목표 꽃집한다고 하지 않았어?"
313이 샐러드를 입에 가져가며 대답했다.
"응, 맞아. 꽃집 주인이야."
"그런데 왠 비둘기야? 그사람 비둘기 좋아해?"
".....튤립이야, 파란색 튤립."
"방금 그거, 재미없다."
"..."
314는 묵묵히 자기 앞에 놓인 우동을 씹어삼켰다. 무언의 시위였지만 만족스러운 맛에 기분이 살짝 풀려버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머, 얘 진짜로 튤립인가보네?"
"......그래."
결국 대답해버렸다.
"뭐, 그럼 결국엔 연기력 승부겠네. 정신 못차리게 몰아치는 게 중요하지만, 너야 다 알고있을테니 내 입만 아프지 뭐."
"그래, 내일이 진짜야. 내일만 해내면 8연속 1위라구! 대기록이야 대기록!"
"너 성공하면 조사과에 있는 그사람이랑 데이트 한번 해줘."
"음? 아, 1612씨말이구나."
"그래, 꼭 너한테 맡겨야겠다고 그 멀리에 있는 조사과에서부터 달려온 사람이잖냐, 너한테 관심있는 거 같던데 한번 만나줘."
"연애질이야 좋지만, 어차피 나 앞으로 2년밖에 안남았는걸? 바짝 일해야지."
"그렇게 허리가 휘도록 일해서 어디다 쓰려고 그러니. 여기서 아무리 재밌게 살아도 통합되면 어차피 인격은 소멸인데. 쉴 틈 없이 놀아도 부족하다구."
"세상의 균형에 어느정도 이상 공헌하면 다음 생에 원하는 걸로 태어날 수 있잖아. 난 꼭 하늘을 날아보고싶다고."
"너도 참 낭만적인 면이 있다니까."


낭만적이라는 말과 맛있는 식사에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결국 313과 술까지 한 잔 하고 말았다. 내일 있을 중요한 일을 생각하면 참았어야 했지만 313의 사탕발림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도 어느 바로 들어가도 완성도 높은 칵테일을 마실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었다.
"여, 왔나?"
"응, 나왔어 귀염둥이 16."
이 의무교육이나 간신히 시작했을까 말까 해 보이는 꼬맹이가 실제로는 84까지 살다가 넘어왔다는 걸 처음 들었을 때 314는 거의 패닉이었다. 하지만 곧 귀여운 겉모습에 홀려서 동생으로 삼아버리고 말았다.
"술이라도 했는가보군 그래. 계획했던 일은 잘 됐는가?"
"짜잔!"
"....해파리?"
"튤립이야! 튤립이라고! 튤립! 튤립! 단체로 날 놀리려는 거야?!"
"뭐가 이리 시끄러워?"
314의 가족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있을 수 없는 이곳에선 부서가 같거나 국적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서 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런 시스템이 생겼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이런 가족만들기 행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걸 봐! 내가 이걸 몇 시간동안 그렸는지 알아? 5시간이야, 5시간! 근데 이걸 가지고 놀려?"
"포도?"
"쓰레기통."
"의자같은걸."
"으으으으으!"
쾅!
제 분을 못이긴 314는 결국 소리내어 방문을 닫으며 자기방에 들어가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두고보라고! 내일로써 난 알바트로스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가게 될 테니까!"
방에 들어가자마자 의자위에 놓여있던 해바라기쿠션을 침대위로 집어던지며 성을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침대에 몸을 던지고 한동안 아둥바둥 거리며 짜증을 내자 기분이 좀 나아진 듯 했다.
열을 낸 데다가 술까지 한 잔 걸친터라 목이 칼칼해졌지만 방금 전에 문을 그렇게 닫고 들어온 터라 나가기가 민망했다. 그녀는 결국 내일을 위한 혼자만의 리허설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신있게,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혹시, 이렇게 생긴 꽃 파시나요? 파란건데."
그렇게 부정했건만 막상 당당하게 튤립이라고 말할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덧. 연재로 바꾸면서 글머리 수정했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14:05 

 

병장 정병훈 
  연재로 들어가도 될만큼 잘 쓴거 같습니다! 히히 
전편도 봤는데... 괜찮은 느낌입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생각나는대로 쓰신건지 아니면 초안을 꾸며서 거기에 덧붙혀 쓰신건지?? 
뭐 등장인물을 정한다거나 이야기가 어떻게 이동할찌 정하고, 혹은 큰 갈등들을 몇개 준비하고 어디에 넣을지를 생각하는등 기본적인걸 적고 작성하시느냐 뭐 그런겁니다. 

재밌네요. 다음 스토리가 어떻게 이어질지 대충 예감해봅니다 하하 
제가 생각하기에는... #$%#$%^$%^ 
다음편을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2008-10-15
19:29:23
  

 

병장 이동석 
  허허, 세계관까지 엿보이다니, 대단합니다. 
나름의 상징성도 재밌어요. 

사후세계의 비정규직 문제같은 모티브로 영화를 찍어도 재밌겠군요. 흐흐. 기화님 덕에 좋은 실마리 얻어갑니다. 2008-10-15
20:15:40
 

 

일병 송기화 
  병훈님/ 다..다음편 이라니요(땀땀땀) 
또 쓰고싶은 얘기가 생기면 쓸 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없는걸요(웃음) 
쓰고싶은 얘기가 한 줄정도 떠오르면 그걸 쓰고 싶어서 얘기를 덕지덕지 붙이는 편입니다. 
저번건 남은 수명을 가져간다는 얘기가 쓰고싶었구 
이번건 그림을 못그려서 놀림받는 얘기가 쓰고싶었어요(웃음) 

동석님/ 대단하다니요(당황) 
잠깐만 생각해보면 헛점투성이의 너덜너덜 세계랍니다(웃음) 
사실 동석님 댓글읽고 돌이켜봤다가 엄청 창피해졌어요. 2008-10-15
20:36:18
  

 

병장 정병훈 
  엇? 
혹시 제 질문에 답변이 달렸나 해서 다시 와봤더니 기화님의 친절한 답변이 달려있네요 
근데 
'그렇게 부정했건만 막상 당당하게 튤립이라고 말할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 
이 부분은 처음에 봤을땐 없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전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전편의 314라는 저승사자가 생명을 뺏기위해서 꽃집주인에게 거짓 약속을 한것을 생각해서 이번엔 말도 안되는 그림을 갖고 뭔가 일을 꾸밀주 알았는데... 
뭐 예를 들자면 말도 안되는 그림을 자꾸 말이 되는 그림이라고 우겨서 한명을 또 죽이는? 하하핫 혼자 오바했나봅니다. 

어째뜬 저도 이런 글 쓸수 있게 노력이나 해야겠습니다. (울음) 2008-10-15
21:58:39
  

 

병장 이동석 
  음, 그냥 이대로 맺는다면, 그냥 
["혹시, 이렇게 생긴 꽃 파시나요? 파란건데."]로 끝내는게 깔끔할듯하고, 

[그렇게 부정했건만 막상 당당하게 튤립이라고 말할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는 다음 편을 예고하는데에 적당할듯 하군요. 

기화님// 기화님 하고 부르니 화천회의 장로라도 된것 같지만, 어쨌거나 그건 기하님이니까, 

이제 만들어가는 세계라고 하지만, 충분히 매혹적입니다, 314의 튤립그림처럼, 헛점이 귀여워보일정도라면, 이미 성공적인 세계창조가 아닐까하는. 2008-10-16
06:40:00
 

 

일병 송기화 
  역시 마지막줄이 좀 그런 뉘앙스가 풍기나요? 
사실 여기엔 올릴 지 말지 자신이 없지만 쓰기는 계속 써서 밖에있는 친구가 쓴거랑 바꿔가며 보기 약속된 거라서요(웃음) 
제가 보유한 파일에서 수정하면서 여기서도 고쳤는데, 괜히한건가 싶군요. 2008-10-16
07:20:23
  

 

병장 황인준 
  마지막 줄 좋은데요? 
그리고 오히려 이후의 내용을 알고 난 다음에 보니까 더 좋은 것 같네요. 
이후에 벌어질 내용을 떠올리면서 살포시 웃음을 짓게 만들어주네요. 

잘 읽었어요. 
글에 자신감을 가지셔도 되세요! 2008-10-16
09:1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