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314씨의 바쁜 하루 Part.2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0-21 13:51:29, 조회: 153, 추천:0 

슬슬 제 능력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느낌입니다(땀)
아쉽네요.


"당신의 성격도, 습관도, 겉모습도 전부 나와 같도록 내가 고른거죠."
314는 영상 속에 여자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 모습은 또 이전에 내가 고른거고요."
사실 생명청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녀가, 유공자의 특혜를 이용해서 자신의 다음 생애를 선택하려던 그녀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다만 이해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래, '나'는 영원히 사는 존재인거야."
어느새 반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런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영상 속 여자의 말투는 이제 거의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변해있었다. 그 후에도 한참이나 계속된 영상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그렇다면, 이제 무슨 일을 해야할 지 알거라고 생각해."

나는 누구지?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했을까? 알바트로스가 되고 싶어서? 정말? 유공자로 만들어서 '나'를 이어나가게 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을까? 나는 영생을 위한 중간단계일 뿐인가? 이 하늘을 날아보고 싶어 하는 것이 정말 '나'의 소망일까? '나'는 무엇이지?

314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생명청에 돌아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지 궁금함과 기대감과 부러움으로 물어오는 동료들에게 모두 짜증으로 대답했으며 그 짜증은 이 와중에 출장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극에 달했다. 314의 이상을 걱정스레 여긴 313이 출계문을 넘는 그 순간까지 따라와서 그녀를 위로하려 애썼으나-도대체 무슨일인데? 들어보고 별 일이면 진심으로 걱정해줄 테니 말 좀 해봐.- 결국 짜증이 폭발한 314는 313에게 있는 말 없는 말을 섞어가며 한바탕 쏘아붙여 버렸다. 하지만 출계문을 넘어 매캐한 공기와 시끄러운 소음이 맞아주는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순간 후회가 머릿속을 지배했고 곧이어 자신의 이런 모습조차도 이미 정해져있었던 거라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자신의 모든것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의지에 의해 정해져 있었다는 생각에 끔찍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의지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라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정말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이 까마득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이번 목표를 찾았으나 이 행동 또한 자신의 의지가 맞는지 하는 의심은 없앨 수 없었다.
의외로 목표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조사보고서에는 '강가에 혼자 앉아 실실 웃고있는 남자'라는 상당히 불친절한 설명만이 써있었지만 실제로 강가에 혼자 앉아서 웃고있는 남자라는 것은 흔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314의 정체를 전해들은 후에 남자의 반응은 이번 목표가 정말 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해주었다. 남자는 저승사자라는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며 그만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저승사자와 목숨을 건 거래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뇨, 그건 자살 아닌가요?"
"자신이 동의해서 자신의 손으로 서명을 한다는 건 결국 목숨을 포기하는 것 아닌가요?"
"같은 집에 사는 가족이라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아예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군요."
"막상 제가 서명을 하더라고 계약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군요. 난 이미 죽은 후가 되니까요. 알 수가 없잖아요."
평소의 314라면 이럴 경우 깔끔하게 포기하고 돌아왔을 것이다. 안 될 사람은 안 되는 것이다. 다만 그녀는 오늘 상당히 혼란스러웠고, 평소보다 조금 감정적인 상태였다. 결국 그녀의 영업은 남자와의 상당히 감정적인 언쟁으로 번졌으며, 완전히 남자의 페이스에 휘말려버린 314는 결국 손에 따뜻한 캔커피를 든 채 '고민상담' 비슷한 것을 하고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문제가 뭐라고요?"
"나의 꿈을 포기해야 해요."
"당신의 꿈은?"
"알바트로스가 되어 하늘을 날아보는 것."
"그런데 의견의 충돌이 일어났다?"
"나는 새가 되고 싶은데, 과거의 나는 나에게 또다시 내가 되라 하네요."
"그래서 결론은?"
"내가 정말 순수한 나인지 모르겠어요."
"당신의 '본질'이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본질'뿐만 아니라 외모와 성격과 취향까지도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영상을 통해 들은 설명에 따르면 '최초의 그녀'는 까마득한 옛날 영생을 찾아 현자의 돌을 만들려 애쓰던 연금술사였다고 한다. 어느날 실험도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그 연금술사는 죽음 뒤에 존재하는 세상에 관심을 가졌고, 일정 이상 질서유지에 기여한 자에게 부여되는 특혜에 관심을 가졌다. 연금술사는 이 특혜를 이용하면 자신이 꿈에 그리던 영생을 이룰 수 있을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최후의 선택에서 자신의 외모와 성격, 취향등을 결정하고 자신에게 남기는 장문의 편지를 작성했다. 그 편지의 전달 조건은 한가지였다. '자신이 다시 유공자가 되어 돌아오거든 전해줄 것.' 간단해 보이지만 유공자가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볼때 단 한번의 실패가 당장 끝장으로 이어지는 이런 상황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저 우연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편지가 영상으로 변했을 뿐 그녀의 외모도, 성격도, 취향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구성하고있는 기초적인 '본질'또한 수많은 통합과 분리를 거쳤을 뿐 변하지 않았다.
"당신은 수천년을 살아온 건가요?"
"내게 그런 기억은 없어요. '거대한 생명'에 통합될 때 그런 건 다 지워지니까요."
"그렇다면 그 영상속에 나온 여자는 지금의 당신이 아닌 거잖아요."
"예, 지난 날의 나인거죠."
그건 아직 저쪽 세계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완벽히 새로운 시작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 충격적인 순간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지난 삶과 지금의 삶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이다.
"아, 이제 알겠어요. 당신은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군요?"
"억지라고요?"
날카로운 소리가 나왔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녀석이 아는 체 하고있는 것이다. 314로써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지난 삶, 지금 삶, 다음 삶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그게 어째서 하나의 삶인거죠? 그건 이어지는  삶이 아니에요."
"무슨-?"
"내 '본질'은 지금까지 수많은 일을 겪었겠죠, 고양이였다가 나무였다가 물고기였다가 벌레였다가 어쩌면 내 지난 삶은 일국의 왕이었을 수도 있겠군요. 희대의 폭군이었을 수도 있구요. 하지만 나에겐 지금의 삶이 전부인걸요."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당신은 하늘을 날고싶다는 욕심 때문에 오히려 과거에 얽매여 있는거에요. 어차피 당신이 새가 되더라도 그 새는 지금의 당신을 기억하지 못해요."
"하지만 나의 '본질'이 새가 된 거잖아요!"
"당신은 오늘 그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순수한 당신이지 않았나요?"
"그건..."
"'본질'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차피 지난 삶은 기억나지 않아요. 미래의 삶은 알 수가 없죠.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그 때 자신은 이미 죽은 후니까요. 지금이 중요한 거에요."
314는 역시 아직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의 논리라며 냉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득 마음에 걸리는 사실을 찾아냈다. 이 남자의 '본질'또한 수없이 많은 죽음을 거쳤다는 사실.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과거 어떠한 생명의 미래의 삶인 것이다. 또한 미래에 있을 어떤 생명의 과거의 삶이 될 것이다. 그런 존재가 지금, 과거와 미래를 부정하고 있었다. 지금 현재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해했군요?"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말했다. 하지만 314는 남자의 의견에 동의한 것이 아니었다. 어쨌건 저 남자는 지금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존재니까. 저 남자도 이 세계에서의 삶을 마치고 넘어가고 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그녀는 다만, 이런 말도 안되는 말싸움을 시키려고 전날부터 열심히 목표를 찾고 하루만에 결재를 내리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을 한 사람이 떠올랐을 뿐이다.
"그만, 이제 됐어요."
314는 눈 앞의 남자를 향해 웃었다. 하지만 314가 웃음을 보여주고 싶은 상대는 남자가 아니었다.
"당신이 아니었군요. 내가 대화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었어요."
"예?"
"고마워요, 당신의 의견도 상당히 재밌었어요. 이만 가볼게요."
남자는 갑자기 변한 314의 태도에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의 정체를 들었을 때도 태연했던 남자였기에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럼 이만. 행복한 지금을 살아요."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긴 하루였지만 아직 끝은 아니었다.
314는 자신을 위해서 이런 투박하지만 따뜻한 계획을 세워준 1612를 찾아가 그와 대화하고 싶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15:12 

 

상병 양순호 
  어라. 남자는요..? 그리고 그는요? 다음 전개는 어떻게 되는걸까요? 음? 어라? 
거짓된 진실에 눈을 뜬걸까요. 아니면 다른 의미의 눈뜨다인걸까요. 음.. 2008-10-21
14:49:27
  

 

병장 황인준 
  흐음. 1612가 하루종일 일을 해서 세운 계획이 저 남자였군요. 
재밌어요. 스토리가 이렇게 흘러갈줄이야... 허허. 
그동안 기다리고 있었는 데, 이렇게 툭 하고 올라와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흐 2008-10-21
15:2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