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314씨의 바쁜 하루 Part.1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0-18 09:46:55, 조회: 202, 추천:0 

원래는 바쁜하루편이랑 다음편으로 끝낼 계획이었는데, 너무 길어져서 반토막 내야겠네요.
생각대로 지어낸다는 건 힘들군요.(웃음)
아 맞다, 시리즈(?) 4번째 글입니다. 제목은 각 편마다 다 달라요.


"그럼 나 갔다올게!"
"길 건널때는 차 조심하게"
애늙은이같은 16의 배웅을 받으며 314는 즐겁게 집을 나섰다. 8연속으로 우수영업사원으로 선정된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인데 어제는 본청에서 연락을 받았다.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전달받은 것은 없지만 314본인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정도로 공헌했으면 적어도 표창 하나 정도는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생명청에서 본청까지는 마차로 2시간 정도. 본청에서 자신을 부른 시간이 오전 10시니까 아침에 잠깐 사무실에 들러 출근도장을 찍고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본청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분명 314 자신의 두번째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 될 터였다.


"어제 어땠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313이 슬며시 옆에 와서 붙었다.
"어제? 본청에서 무슨 상을 받을까 고민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잤다, 얼굴이 좀 안돼보이지 않니?"
"아니 그거말고, 뭐 좀 색다른 일 없었어?"
"본청에서 날 불렀다니까? 그것보다 더 특별한 일이 어디있니?"
"흐응, 진짜야? 진짜? 그거 이상하네."
313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멀어져갔다.
"쟤 왜저러지?"
314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찾아가 앉는다.
"응?"
자신의 컴퓨터에 출장명령서가 도착해있었다. 


"저, 혹시 이게 어떻게 된건지 알 수 있을까요?"
쭈뼛쭈뼛 과장실로 들어와 질문한다. 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일을 했고 최근 8달 동안은 과장의 극진한 애정세례를 받고 있지만 그녀는 사실 이유없이 과장을 대하기가 어려웠다.
"오늘 새벽에 급하게 명령이 내려왔더라구. 정확히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명령이 내려온 이상 다녀와야지? 9개월 연속에 도전해보라구!"
한손으로는 턱을 고이고 반대쪽 손목을 휘휘 돌리며 말한다. 눈은 반쯤 감겨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끝이 그리는 곡선은 우아하기 보다는 난잡했다.
"예, 예에. 저 그리고 본청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응, 그래 다녀오구. 무슨 일인지 내가 다 궁금하네."
그녀는 과장의 말투가 싫었다. 허겁지겁 과장실을 빠져나와 313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으에, 죽을 것 같아."
"넌 과장님을 너무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그 말투에 그 손동작이라니. 정말 싫어."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넌 나랑 말할때만 말투가 딱딱해지는 경향이 있어."
"네가 아닌 사람과 말할때는 막말을 내뱉는 경향도 있지."
"아아, 나 다녀올게."
"잠깐만!"
"응?"
"혹시 어제... 아니다. 잘 다녀와."
"답지않게 싱거운 짓을 다 하네? 다녀올 테니까 사무실 잘 지키렴."
314는 건물을 빠져나오며 로비에서 전기자동차를 한대 예약했다. 출장 건 때문에 의외로 시간이 늦어버려서 전기자동차가 아닌 마차를 탔다가는 본청에 도착하는 게 늦을 것 같아서였다.
정류장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왔다. 두어 번 정도 얼굴을 본 일이 있는 사람이었다. 조사과의 1612. 요즘들어 자신을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저, 출장 명령 받으셨습니까?"
얼굴도 몇 번 보고 말을 해본 적도 몇 번 있었지만 313을 통해서 1612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정보를 들은 터라 지금처럼 안부인사 하나 없이 다짜고짜 용건을 말하는 것이 조금 의외였다.
"예, 오늘 아침에 출근해보니 명령이 내려왔더라구요. 혹시 어떻게 된 건지 아세요?"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오늘의 목표들은 전부 제가 고른 사람들입니다. 한 번 만나보시고 저를 찾아주십시오."
"예? 그게 무슨.."
"차가 들어오는군요,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이따가 뵙죠."
1612의 말대로 그녀가 예약했던 자동차가 들어오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용건만 말하고 가버리는 남자를 용서해 줄 만한 핑계는 아니었다. 314는 조금 불쾌했지만 어쨌건 차에 올랐다. 어쨌건 본청에 가는 일이 우선인 것이다.


이쪽 세계의 주요 교통수단은 마차이다. 마차라고 해도 과거와 같은 모습은 아니고 다양한 소재와 매끈한 디자인을 적용한 스포츠카 같은 느낌이다. 생명체의 잔해가 남지 않는 이곳에선 석탄이나 석유같은 화석연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저쪽과 같은 자동차를 만들 수는 없다. 물이나 바람같은 기본적인 자연을 이용한 발전으로 만드는 전기를 주 에너지로 쓰기 때문에 전기자동차도 있지만 장거리를 이동하거나 급하게 이동해야하는 소수의 사람들만 이용할 뿐 주된 이동수단은 마차였다.
"본청에는 무슨일로 가세요?"
운전사의 외형은 어린 남자아이였다. 하지만 능숙하게 차를 다루는 모습을 보니 16정도는 아니더라도 외형과 실제 정신수준의 차이가 큰 경우일 것 같았다.
"본청에서 저를 찾았거든요. 저도 무슨 일인지는 잘 몰라요."
"무슨 일인지 모르는 것 치고는 기분이 좋아보이시네요?"
"요즘 일을 좀 잘해서 상을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거든요."
운전사와 담소를 주고받으며 본청을 향한다. 가끔 보이는 마차들을 휙휙 앞질러간다. 이곳으로 넘어온 수많은 동물들은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여 자신의 수명을 포기하는 편을 택하지만 인간쪽에서 동물들에게 자신들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쪽 세계의 인간들은 동물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사람과 소통하는 재능을 가진 동물들을 매개로 동물들과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함께 살고있다. 인간에게는 없는 동물들만의 특별한 능력으로 하늘 위나 바닷 속을 볼 수도 있고 사람보다 뛰어난 동물들의 힘을 이용해서 노동력으로 쓰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곳 사람들이 동물들을 가축이나 애완동물의 개념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네발-혹은 두발-달린 가족으로써 이쪽의 세계를 묵묵히 유지시켜주고 있는 또다른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기자동차는 마차보다 훨씬 빨랐고 314는 처음 생각했던 것 만큼 여유롭게 본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본청 로비에 있는 안내데스크를 찾아가 자신의 신분과 용건을 밝힌다. 데스크를 지키고 서있던 건장한 남자직원은 314의 신원을 조회하더니 상당히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한다.
"14층에 있는 대면실로 가시면 됩니다."
도대체 당신이 뭔데 대면실에 용무가 있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314는 대면실이라는 말을 오늘 처음 들었기 때문에 대면실이 어떤 곳인지 몰랐고, 자연히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저, 14층이요?"
"예 저쪽에서 승강기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이 세계에도 건축가는 많았다. 사실 어떠한 직업이든지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로 능력을 인정받는 이쪽 세계는 저쪽세계를 평균적인 수준면에서 압도한다. 다만 포크레인이나 크레인따위의 중장비 없이 인간의 힘이나 동물들의 힘에 의존해야 하기에 건물들의 높이는 높아야 3층에서 4층 정도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본청건물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사람과 동물들이 힘을 합쳐 세웠다고 한다. 워낙 오래된 건물인데다가 이쪽세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저쪽세계의 평균 수명과 반비례할 수밖에 없기에 본청 건축공사 당시의 모습을 본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가끔 까마득히 오래 산 거북이 정도가 단편적으로 그때의 이야기를 해 줄 뿐인데 그들의 기억력은 그리 쓸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자기 머릿속 환상으로만 그때의 장관을 그릴 뿐이었다.
"승강기라. 얼마만이지?"
314가 승강기를 기다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이쪽으로 오기 전에야 하루에도 몇 번씩 지겹게 타던 기계였지만 이쪽으로 온 이후로는 처음이다. 하지만 그녀는 화살표가 적혀있는 버튼의 의미와 엘리베이터 내부에 있는 숫자버튼들이 어떤 용도인 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승강기에 탑승한 후 14가 적혀있는 버튼을 누르고 문을 닫았다.
띵-
문이 열리자 복도가 아니라 꽤나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복도 없이 14층 전체를 대면실로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승강기에서 내리며 방을 둘러보니 사방이 흰 벽에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보이는 카펫이 이 넓은 바닥 전체에 깔려있었고 방의 중간에 놓인 이상한 기계가 올려진 탁자와 상석에 앉아있는 남자 한명, 그리고 그 맞은편에 놓여있는 빈 의자가 이 넓은 공간에 놓인 것의 전부였다. 천장 전체에서 은은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특별한 광원없이 적당한 밝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314씨죠, 반갑습니다. 이리 앉으세요."
탁자앞에 앉은 남자는 얼굴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돋보기 안경을 쓰고있었고 흰 셔츠에 검정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다. 얼굴표정이 없어 인형같은 인상이었다.
"저, 이곳이 어떤 곳이죠?"
"이곳은 말 그대로 대면하는 곳이에요. 하지만 그 분과의 대면은 잠시 후로 미루고 우선은 제 설명을 들으셔야해요."
"그 분이라뇨?"
"잠시 후면 알게 될 겁니다."
남자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말했다.
"우선, 제 설명을 들어주시죠."
"314씨, 당신은 이 세계에 오기 전에 무엇이었습니까?"
이 세계에 오기 전, 이라고 하면 지금의 삶을 살기 전, 이쪽 세계의 존재에 대해 무지할 때를 묻는 것이겠지.
"보험 판매원이었죠. 취미수준이었지만 심리학을 공부한 적도 있기에 실적은 상당한 수준이었고 덕분에 지금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었죠."
"그렇다면 그 전에는 무엇이었죠?"
"그건.. 저라는 인격이 탄생되기 전 아닌가요?"
"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전의 당신을 알고있어요. 그리고 이전의 당신은 지금의 당신을 만나고 싶어했구요. 자, 그렇다면 이제 대면시켜드리죠."
테이블 위에 놓인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방이 어두워졌다. 이상한 기계에서 빛이 뿜어져나와 흰 벽을 비췄다. 이 기계는 일종의 영사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계였던 것이다.


벽에 비친 영상에 한 여자가 등장했다. 314 본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녀와 닮은 사람이었다.
"안녕, 미래의 나? 당신은 아마 나와 똑같이 생겼겠지요? 이게 다 당신이 내 말을 믿기 쉽게 하기위해서 내가 부탁한 거에요. 다음 번에 태어날 때 내 모습 그대로 유지시켜 달라고. 당신도 그랬겠지만 나도 질서유지에 상당한 공헌을 했거든요. 나를 보고 당신이라고 말하려니 괜히 이상하네."
영상 속의 314가 장난끼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에게, 아니 미래의 나에게 제안할 게 있어서요.”
영상을 바라보는 314의 얼굴에는 경악만이 가득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15:00 

 

병장 김태형 
  아.. 즐거운 재촉 1g 드립니다. (씨익) 2008-10-19
12:25:02
  

 

상병 양순호 
  미래의 나? 음? 나? 뭘까요, 다음은? 2008-10-19
13:18:58
  

 

병장 정병훈 
  이건 킵해놨다가 보겠습니다.히히 
재밌다는걸 아니까요~ 다음편 나오면 같이 볼까...도 생각중입니다! 반토막이니까요(웃음) 

그러나저러나 저도 책 읽는거만 하지말고 또 한편 써야되는데 마땅한게 없네요. 키키 
읽는 사람을 아주 우롱하고 처참하게 만드는걸 쓰고싶은데. 2008-10-19
13: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