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314씨와 1612씨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0-23 10:46:27, 조회: 193, 추천:0 

에효, 간신히 끝냈습니다. 묘하게 뿌듯하면서도 아쉽고 막 그렇네요.(웃음)



"그 사람은 참 흥미로웠어요."
314가 말했다.
"그런 사람 찾느라 정말 고생했어요."
1612가 말했다.
"그 사람은 제 직업을 듣고도 놀라지 않던데요?"
"사실 당신을 완벽하게 세뇌시켜버릴 정도로 설득을 잘하는 목표가 몇 명 정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저승사자를 앞에 두고 설득을 할 만큼의 정신력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전 설득력은 좀 떨어지더라도 냉정한 사람을 선택했죠."
"덕분에 재밌는 시간 보냈어요."
314가 복귀수속을 마치고 1612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1612는 이미 출계국 건물 앞에서 314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을 나오는 314를 이끌고 1612가 안내한 곳은 평소 1612가 상담을 위해 애용하던 그 공터였다.
"당신은 전부 알고있죠?"
"예, 조사과니까요."
조사과라고 해서 흥미도 없는 일까지 모두 알고있는 것은 아니지만 1612는 그렇게 대답했다. 
314는 자신이 숨기거나 돌려서 말하더라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했다. 314는 솔직하게 대화하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고 상대방이 어설프게 알고있기에 자신에 말을 왜곡해서 이해하는 상황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 사람을 만나게 한 이유는 뭐죠? 당신이 내 다음 삶에 간섭할 이유가 있나요?"
"다음 삶에 간섭하다니요?"
"그 남자를 만나게 해서 제 미래에 대한 결정을 바꾸고 싶었던 것 아닌가요? 제가 또다시 제가 되는것을 막으려는 것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제가 간섭하고 싶었던 것은 당신의 지금이에요."
"예?"
314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출장중에 만난 목표는 물론 지금의 삶을 강조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1612 또한 지금의 삶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다. 어쨌건 그는 죽음을 겪은 상태였고 다음 생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1612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도 지금을 말하나요? 나의 지금은 2년, 정확히 1년 10개월 21일 후면 끝나요. 나에게 중요한 건 미래라구요. 당신도 당신 자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잖아요. 지금이 중요해요? 아, 당신은 아직 많이 남았나 보군요?"
"아뇨, 전 64일 남았습니다."
314는 또다시 당황했다. 고작 이곳에서의 삶이 64일 남은 남자가 지금을 이야기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당신은 미래가 불안하지 않아요?"
314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미래가 불안한가요?"
1612가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불안해요, 불안하다구요. 지난 제 삶은 치열했지만 즐거웠어요. 힘들었지만 만족스러웠죠. 솔직히 죽는 게 두렵기는 했지만 크게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완전히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게 살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었어요. 눈을 뜬 이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니었어요. 또 다른 삶의 터전이었죠. 전 이곳에서 다음 생에 대한 것을 배웠어요. 그때 제 기분이 어땠는지 아세요?"
"글쎄요."
314는 1612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1612는 자신이 아무리 조사한다고 해도, 자신뿐만 아니라 조사과 전체가 조사한다고 해도 알 수 없을 314의 속마음을 들으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 여자를 내가 설득할 수 있을까? 1612는 단어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불안했어요! 다음 번에는 어떻게 태어날 지 모른다는 게! 어떤 모습일지, 어디에서 태어날지, 무엇을 할 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너무나도 불안했어요. 내가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된다는 게 불안했어요. 저는 지금의 나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유공자가 되려고 한 건가요?"
"그래요, 처음 유공자에 대해 알았을 때, 저는 세상이 밝아진 것처럼 느껴졌어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니! 유공자가 된다면 제 미래의 모습과 성격을 비롯해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었어요.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일을 시작했어요. 상대방을 설득해서 계약을 따는 것은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인간이 아닌 알바트로스가 되려고 한거죠?"
"당신, 정말로 뭐든지 알고있군요. 유공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열심히 일을 하던 어느 날, 자기 전에 생각을 해봤어요. 저의 미래의 모습을 꿈꿔본거죠. 부끄럽지만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나 고생 모르고 자라서 떵떵거리고 사는 모습을 그려봤죠. 그런데, 그러다가 죽으면? 하고 생각이 든 거에요."
"또 다시 반복이라고 생각한건가요?"
"비슷해요. 그렇게 살다가 또 이 일을 해야한다면, 과연 유공자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또다시 풍요로운 나의 삶을 보장할 수 있을까? 아마 무리겠죠. 그러면 저의 다음번은 발만 동동 구르다가 끝나겠죠."
"새가 된다면 뭐가 다른가요? 물론 동물이 유공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데요."
"네. 솔직하게 말해서 전 제 욕심이 무서웠어요. 다음 생으로도 모자라서 이렇게 필사적으로 저의 미래를 계속 보장하려고 하는 제 자신이 무서웠죠. 그래서 전 제 욕심을 포기할 수 있는 미래를 찾아봤어요. 종교인이 되면 포기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존경받는 현자가 되면 욕심을 버릴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였어요. 인간으로 태어나서 욕심을 버리는 건 무리였죠."
"그래서 동물을 택한 건가요?"
"네, 그래요."
"그런데 왜 하필 새였죠?"
"당신도 모르는 게 있군요. 음, 말하기 부끄럽네요. 제 어릴 적 장래희망은, 사실 천사였거든요.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어릴 적에 어찌나 놀림을 받았던지. 지금 생각하니 우습네요."
"그래서 알바트로스였군요."
"네, 그래요. 자신에 몸에 비해도 너무 큰 날개를 가진 그 새는 절 매혹시켰죠."
"그런 결심을 했을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그런 당신이, 어째서 그렇게 흔들린거죠?"
"처음엔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제가 그렇게 피하려고 했던 반복된 삶을 과거의 저는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으니까요. 그것도 한두번도 아니고 이미 수십번이 넘게 반복되고 있었던 거죠. 제 자신이 혐오스러웠어요."
"그런데 과거의 당신이 한 부탁을 들어주려고 한 거에요?"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당신이 만나게 해 준 그 남자와 이야기하다 보니 머리가 좀 차가워진 거에요. 아무리 저와 생각이 다르다지만, 그녀 또한 제 자신이었던 거죠. 그녀가 너무나도 불쌍했어요. 욕심에 꽁꽁 묶여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제 자신이 애처로왔죠. 이미 수백, 수쳔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제 자신의 기대를 져버린다는 건 제겐 너무 잔인한 일이었어요."
"그렇다면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군요."
"반대하지 않나요?"
"말했잖아요, 제가 간섭하고 싶은 건 당신의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라고. 다만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궁금하네요."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요. 당신은 정말로 미래가 불안하지 않은 건가요?"
"예. 전 미래가 두렵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 수가 있는거죠?"
"제 '본질'을 믿거든요."
"...모르겠어요."
"전 지금까지 많은 과거를 거쳤겠죠. 벌레나 나무나 풀이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많은 경험을 했을거에요. 그 모든 과거가 행복했을 수는 없겠지요. 그렇잖아요."
314는 이야기를 시작한 1612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말투는 차분했고 이야기를 듣고있는 314의 반응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른 청자의 자세로 그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듣기위해 노력했다.
"저에 과거에는 행복했던 만큼 불행도 있겠죠. 어쩌면 불행뿐이었을 수도 있어요. 어쨌건 과거나 지금이나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자신에게 만족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전 지금 행복하거든요."
"예?"
"제 생각은 이래요. '본질'이 '거대한 생명'에 통합되었다가 분리되며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은 과거와의 이별을 위한 것이라고. 과거를 무조건 버린다는 뜻이 아니에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완전히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 삭아버린 감정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살아가는거죠. 비슷한 이유로 과거가 아무리 힘들고 불행했더라도 전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거에요. 기억나지는 않지만 제 '본질'에는 그렇게 많은 불행과, 그렇게 많은 행복이 새겨져있기에 지금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이겠죠. 제 다음 삶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또한 제 '본질'에는 좋은 경험으로 남을거에요."
314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자의 말투는 정말로 행복에 가득 차 있었기에 그녀 또한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 같았다.
"제 '본질'은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점점 경험이 쌓이고 풍족해 지겠죠.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본질'은 몇백년 째 변화가 없으니 상당히 빈곤할 거에요."
"당신은 과거를 품고 현재를 사는거군요. 미래를 위해서. 재밌네요, 그런 식의 생각."
"그리고 제가 이런 행복을 느끼게 된 건 당신 덕분이에요."
"...?"
314는 갑작스레 튀어나온 1612의 말에 당황했다. 난데없는 고백이라니. 하지만 1612는 314의 반응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조사과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에 비밀요원이었죠. 네, 스파이에요. 그리고 스파이라는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행복하지 못해요. 그들의 삶이란 대체로 속고 속이다가 거짓말이 들통나면 죽고, 들통나지 않으면 결국 자기 자신도 뭐가 진실인지 모르게 되니까요."
조사과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조사과 본인의 입에서 스파이였다는 고백을 들은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우리 동료들이 이 곳으로 온 다음에 가장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사실이 뭔지 아세요? 그건 더이상 적이 없다는, 더 이상 속일 상대가 없다는 거에요. 우리는 속고 속이는 삶을 살았기에 속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혼란스러웠죠. 그러다가 당신을 만났어요. 사내식당에서였죠. 당신의 모습을 본 후로는 이상하게도 세상에 솔직해지기가 쉬웠어요."
"아, 죄송하지만 사실 저를 언제 보신건지 모르겠어요."
"아뇨, 괜찮아요. 저희는 사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법이 몸에 배어있어서 인상이 잘 남지 않거든요. 그 때 당신은 스파게티를 먹고 있었어요."
"음, 더더욱 기억이 나지 않네요. 스파게티라면 종류별로 서른번 씩은 먹었을 테니까요. 설마 제 스파게티 먹는 모습에 반하신 건 아니죠?"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으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바라보면서 제 마음은 행복해졌죠, 오해는 하지 마세요. 조사가 아니고 바라본 거니까요."
"지금 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에요. 그래서 전 당신이 있는 지금이 가장 중요합니다. 당신의 미래 또한 저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알바트로스가 된 당신이나 또다시 당신으로 태어난 당신은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테니까요."
"휴우, 정신이 없네요. 오늘 하루만에 복잡한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잠시 대화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달변으로 나오던 1612가 갑자기 머뭇거렸다. 314는 직감적으로 1612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챘다. 1612는 어제부터 지금까지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왔을 것이 틀림없다. 314는 그를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배고프지 않아요? 아직 저녁도 못먹었네."
"제가 괜찮은 가게를 알고있습니다."
1612는 생각보다 순진한 사람이었다. 기회가 생기자마자 냉큼 달려들었다.
"제 취향쯤은 알고 계시겠죠?"
"조사과니까요."
"오늘 음식의 맛을 보고, 앞으로 64일간의 일정을 생각해 보겠어요."
"그렇다면 자신있습니다."




"그래, 이 긴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야. 넌 나와 겉모습도 성격도 거의 닮지 않았어. 사실 난 네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혹은 식물인지도 몰라. 유공자의 특혜같은 건 포기했거든. 우리는 '본질'이 같을 뿐이야. 넌 네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되는거야. 우리의, 너와 나의 '본질'을 풍족하게 키워나가줘. 사실, 이 영상이 너에게 전달될 지도 잘 모르겠네.  혹여 이 영상을 보게된다면, 넌 유공자가 된 거겠지. 네가 유공자가 되어 이루고자 했던 모습을 꼭 이루라고 응원해줄게. 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의 행복이야. 행복한 미래를 위해 불행한 지금을 산다는 건 옳지않잖아? 아, 혼잣말 하는 기분이네. 그래, 이제 안녕이야."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15:23 

 

상병 양순호 
  그렇죠, 이제 안녕인거죠. 눈에 확 들어오는건 알바트로스밖엔 없네요. 
왜 그런걸까요, 이해가 안되서? 아니면 너무 이해가 잘 되버려서? 
문집에 넣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냥 수정안하고 이대로. 어때요? 
그리고. 이게 마지막인걸까요? (곰곰) 2008-10-23
12:03:23
  

 

일병 전민규 
  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하 재미있군요 2008-10-23
12:26:23
  

 

일병 김동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웃음) 
의미심장한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2008-10-23
12:30:14
  

 

병장 황인준 
  잘 읽었어요. 
흐름이 좋네요. 
강물이 흐르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바다까지 온 듯한 기분이들어요. 흐. 
그래요. 중요한 건 현재죠. 
그런데 이곳에 있는 우리에게 현재란... 2008-10-23
13: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