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612씨의 짝사랑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0-16 19:15:50, 조회: 383, 추천:0 

아, 결국 연재로 왔어요, 그래봐야 앞으로 두 편이면 끝날테지만요(웃음)
급계획에 따라서 연재물로 넘어가려니, 얘기가 딱 끝나지가 않는군요.
옴니버스식으로 딱딱 끝나면서도 이어지는 스토리가 좋은데, 그러기엔 아직 까마득하군요.
아 맞다. 이거 사실 3편이에요. 


조사과 소속 1612는 오늘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늘이 바로 35일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결전의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특히 상사에게는 그런 모습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1612씨! 도대체 이게 뭔가?"
"아.. 저.."
"이번 대상이 이 사람이라고?"
"아, 예."
"심사숙고해서 고른 사람이고?"
"예, 예."
"이 사람은 벌써 저번 화요일에 결재가 났어! 이미 어제 죽었다고요! 정신을 어디다가 두고 다니는겐가?"
"앗."
지난밤 긴장에 잠을 뒤척이던 1612는 결국 밤새 한숨도 이루지 못한 채로 출근을 했고 결과적으로 비몽사몽하며 업무를 시작한 그는 출근하자마자 당연히 해야하는 예비목표리스트 최신화를 깜빡한 것이었다.
"1612 자네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아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아, 그게, 저..."
"314씨의 일인가? 오늘이 바로 그 날이로군!"
사실 1612는 좀처럼 실수하는 일이 없이 맡은 일은 착실히 끝내는 사람이었고 가끔은 생각지도 못했던 큰일을 혼자서 뚝딱 해낼 정도로 능력이 있는 직원이기도 했다. 게다가 성격까지 만족스러워 과장을 비롯해서 윗사람 아랫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 그를 좋아하기도 했기에 조사과장은 그의 모처럼의 실수-2년 5개월만의-정도는 너그러이 눈감아줄 수 있었다. 게다가 그의 관심사는 애초에 그의 실수가 아니었다.
"그.. 그걸 어떻게?!"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건가? 이미 조사과 전원이 알고있을테지. 너무 방심한 거 아닌가?."
사실 조사과는 전직 비밀요원출신이 대다수로 조사과의 정보수집능력이 어느정도인지는 조사과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밑도 끝도 없는 능력을 자랑했다.
"그래서, 데이트 코스는 어떻게 되는건가?"
"무...무슨?!"
1612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과장실을 뛰쳐나왔다. 그 과정에서 과장실 문에 귀를 대고 엿듣고있던 직원들이 우르르 무너졌고 뛰쳐나오면서 그 중에 3명 정도는 1612의 발에 밟힌 것 같고 6명 정도는 서로 뒤엉키며 비명을 내지른 것도 같았지만 지금의 1612에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얌전히 의자에 앉아있던 직원들이 서로 돈을 주고받으며 왜 하필 오늘인거야 따위를 투덜거리고 있었으니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게 오히려 정신건강에 다행일 수도 있다.


한참을 내달린 1612는 인간외생명과 건물과 수명분배과 건물 사이에 있는 작은 공터에 도착했다. 인간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생명청직원이 따라 늘어났고, 계획없이 이런저런 건물들을 증축하면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생긴 이런 작은 공터 또한 생명청 내부 여기저기에 계속 늘어났다. 이 공터 또한 그런 곳 중 하나인데 조사과 사람들이라면 한명도 빠짐없이 알고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을 제외한 보통 직원들-조사과의 사람들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보통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으니 아예 제외하는것이 옳다는 것이 1612의 평소 생각이었다.-은 잘 모를거라 생각되는 후미진 곳에 위치한 공터였다.
사실 오늘은 그가 35일 전부터 비밀리에 계획했던 314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역사적인 날인 것이다. 조사과에서 들통 난 이상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동안 1612가 해온 고생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그녀의 친한 친구인 313에게 접근해서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 도우미로 삼았고 며칠이고 연속으로 철야를 해가며 특A급 목표들만 뽑아내어 314의 8연속 우수영업사원달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을 조사과 사람들 모르게 한다고 온갖 정보조작은 기본이고 표정관리에 손짓 하나하나까지 계획된 연기 수준의 일상을 보내며 신경써온 지난 35일 이었다.
"야-! 여기서 뭐해요?"
흠칫, 하며 뒤를 돌아보니 313이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꽤나 친해진 313은 상당히 먼 거리임에도 큰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굳이 이런 장소를 택한 것을 무색하게 만드는 행동이었지만 313의 친근한 표현을 보며 1612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 치면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313이 자기 부서의 근처도 아닌 이곳을 찾아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612는 그간 남의 눈을 피해 주로 이곳에서 313을 만나 상담과 부탁을 하고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다니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이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1612는 서로 서로가 철천지 원수였던 비밀요원들이 이곳에서는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 더 이상 적은 없으니 긴장따위 하지 말고 살자고 다짐해왔던 터라 잠시 당황했을 뿐, 곧 313을 반갑게 맞이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요?"
그는 이런 질문에는 어떤 소식부터 듣더라도 결국엔 뒷맛이 쓰다는 걸 알고있는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그는 장기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쁜소식부터 들을게요."
"314, 2년 남았데요. 그래서 열심히 일해야 한데요."
이미 알고있던 사실이다. 그녀의 이곳에서의 남은 시간은 2년, 정확히는 1년 10개월 22일. 궁극적인 목표는 균형유지 유공자의 특혜로 다음번엔 알바트로스로 태어나서 하늘을 날아보는 것. 그런 꿈을 위해 노력하는 면 또한 그가 좋아하는 그녀의 매력이었다.
"좋은 소식은요?"
"8연속이 크긴 큰가봐요, 본청으로 찾아오라고 연락이 왔다던걸요? 어찌나 기분이 좋아보이던지, 당장이라도 날아가버릴 것 같던데요."
"본청이라, 무슨 용건인지도 알고있어요?"
"아뇨, 그냥 내일 2시까지 본청으로 오라는 내용이라던데요, 오면 알려준다고."
"안좋은데."
"예?"
"아뇨, 혼잣말이에요. 그래서 오늘 데이트신청을 하면 매우 높은 확률로 승낙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죠? 저야말로 날아갈 것 같은데요? 다 313씨 덕분이에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걱정 말아요, 때가 되면 죽도록 부려먹어줄테니까. 조사과라는 걸 후회하게 만들어줄게요."
313이 생글생글 웃으며 무서운 소리를 내뱉는다. 그간 알아낸 성격에 비춰볼 때 진심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럼 전 가볼게요. 친구가 8연속 1위라고 제가 놀 수는 없죠. 오늘 좋은소식 있길 바래요."
"예 고마워요, 그럼."


조사과로 터벅터벅 돌아오며 1612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기분이 좋다니 데이트 승낙을 받을 생각에 붕붕 뜨는 기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본청 일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8연속이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본청에서 직접 직원을 부르는 경우는 그가 알기로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본청으로 뛰어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내고 싶지만 오전일과를 날려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오후에도 늦게 돌아온다면 아무리 인자한 과장님이라도 심기가 불편하실 가능성이 크고-게다가 그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부장실을 뛰쳐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앞으로 두고두고 조사과의 놀림 타겟이 될 가능성이 크다. 조사과 동료들의 관심대상이 되면 생명청 내에서 그가 눈을 몇 번 깜빡였는지까지 소문이 날 것이다.
"본청이라. 무슨 일일까? 설마 능력있는 그녀를 파견보내려는 건 아니겠지?"
조사과 직원으로써 혼잣말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잘 알고있다. 이곳에선 밤말이건 낮말이건 무조건 조사과 직원이 듣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나쁜 뜻이 있는 게 아니라 갑자기 너무 평화로운 세상으로 와버렸기에 좀이 쑤셔서 하는 행동들이지만 이렇게 시작된 소문이 어디까지 퍼지는 지 알고있는 그는 다른 동료들을 조금 이용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심심해서 하는 일이니 조사할 일을 조금 떠넘긴다고 해도 서로 윈-윈인 것이다.
일부러 커피를 여유있게 한 잔 마시고 한 잔을 더 뽑아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무실은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아직 미숙한 직원 몇 명이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게 티가 났다. 성공이었다. '314는 지금 기분이 좋고 1612는 오늘 314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려고 한다. 하지만 내일 314가 본청의 용무에 따라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 전출일 수도 있다.'이런 정보가 조사과 내에서 돌고 있을테고 오늘 1612의 데이트 성사여부가 과장을 비롯한 전원의 관심사가 된 이상 아예 대놓고 윗쪽에서 조사명령을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 아마 지금 자리에 없는 4명 중 3명은 본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인지를 조사하러 뛰쳐나갔으리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아 오후업무를 시작한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오전에 저질러버린 실수를 만회하고자 예비목표리스트를 열심히 조회한다. 쉽게 넘어올 듯한 인물이 있으면 틈틈히 메모해둔다. 
뜨거웠던 커피가 싸늘하게 식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자리를 비웠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온 몸의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지만 간신히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만은 참았다. 과연 어떤 결과일지 궁금해 안달이 난 상태지만 먼저 물어보는 것은 안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사하러 나갔던 사람 중에 103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실력만은 톱클래스였으나 입이 가벼워서 정말 중요한 일은 맡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알고있는 1612는 그가 자기를 찾아와 깜짝 선물을 준다는 듯이 슬쩍 정보를 흘려줄 것을 의심치 않았다.
"차 한잔 하겠나?"
103이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아뇨, 전 여기에 커피가 있는데도 다 식어버릴때까지 마시지 않았는걸요? 괜찮습니다-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103번이 자신을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 것을 느끼는 순간 1612는 이미 103을 따라 나가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오늘이 그날이라며?"
"아아, 예. 그런데 도대체 내 어디에서 들통난겁니까?"
"자네의 얼굴 표정에서 시작됐지. 우리는 자네가 공터에 가서 만나는 사람을 봤고, 그 사람을 관찰하다보니 자네가 조사한 자료들이 요즘 들어서 주로 그 사람 근처에 있는 한 사람을 향하더라는 걸 발견했지."
"저는 아직 멀었군요."
1612는 솔직하게 낙담했다. 그가 그동안 자신의 모든 열정을 불살라가며 실행했던 모든 은폐작전이 실패였던 것이다.
"아니, 사실 14가 아니었다면 몰랐을거야. 그 녀석 남의 표정 읽는걸로는 조사과 최고라는 평이 자자하지 않은가. 한 건 건지더니 마침 요즘 한가하던 차에 잘 걸렸다는 생각으로 조사과 인원들 표정을 전부 살펴보고 있는 모양이던걸."
"아 이거 조심해야겠군요. 그런데 저를 부르신 용건이?"
"허, 이거 본론이 늦었구만, 자네가 사모하는 아가씨 말일세."
"예, 314씨요."
"더 늦기전에 빨리 잡는 게 좋을걸세."
"예?"
"본청에서 특별한 제안을 그녀에게 할 계획이더군. 유례가 없던 일이라서 그런지 꽁꽁 숨겨뒀던걸. 알아내는 데 퍽 힘들었어."
본청에서 숨겨둔 내용을 찾아낼 정도의 능력이라면 1612의 일거수일투족을 잡아내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 면을 생각한다면 그의 관심을 끌지 않도록 충분히 냉정하게 행동해야겠지만 314는 이미 그의 이성을 마비시킨 지 오래였다.
"도대체 무슨 제안이죠?"
103의 얼굴에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제 1612는 두고두고 그의 관심사에 놓이게 될테지만 지금 1612에게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제안이기에 '빨리'그녀를 잡아야 한다는 것인지가 중요할 뿐이었다.
"그건 말일세."


"어이, 1612, 설마 아직도 퇴근 안한건가?"
"예, 과장님. 할 일이 조금 남아서요."
타닥 타닥 타닥 타닥
조사과 사무실에 앉은 1612는 예비목표리스트를 미친사람처럼 훑어넘기고 있었다. 
“지금이 몇 시인지 아나?”
“8시 48분입니다.”
잠시 시계를 쳐다보고는 다시 모니터를 응시한다.
“자네가 잠시 망각한 것 같은데, 오늘은 자네가 314씨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기로 한 날이라구?”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시도도 하기 전에 포기한겐가?”
“아뇨, 하지만 너무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데이트신청은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뭐,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만.”
무심하게 대답하지만 사실 과장은 머릿속으로 103의 연락처를 기억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 사랑의 노예였던 직원이 이리 뜨뜻미지근하게 식은 것일까?
“그럼 고생하게.”
“예, 고생하셨습니다.”
타닥 타닥 타닥
휘리릭 넘어가는 리스트들 사이에서 중간 중간 멈춰서며 그가 체크하는 인물들은 평소같은 특A급 인물들이 아니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14:22 

 

병장 정병훈 
  헉헉헉 숨가쁘게 읽었습니다 히히 

역시 세계관이 참 재밌네요. 등장인물도 재밌구요 
314를 언제 다시 볼까 했는데 이렇게 가까운 시간내에 볼수 있다니 

어째꺼나 저째꺼나 다음편이 기대된다는 말이 가장 듣고 싶겠죠? 
무슨 일이 일어날꺼 같긴한데... 몇가지 떠오르는게 있긴 한데... 일단 다음편을 기다리겠습니다! 히히 2008-10-16
19:27:46
  

 

병장 정병훈 
  참.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달려와서 씁니다. 

이세계관이 저승이 맞지 않나요? 근데 간혹간혹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시더라구요. 
뭐... 제가 지적할 만한 실력은 못되나 엄밀히 따지면 저승사자에게 사람이라고 붙이면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더라구요 히히 
그냥 이말이 하고싶었어요. 2008-10-16
21:55:47
  

 

병장 김태형 
  으아 주루룩 일어내려왔어요~ 
다음이 기대되는데.. 기다릴 시간이... 




(...있군요, 씨익) 2008-10-17
07:42:13
  

 

병장 황인준 
  제가 하려했던 말을 병훈씨가 잘 써주셨네요. 고마워요 병훈씨 크크. 

이거이거 이런식으로 하나하나 써가시면 
방대한 세계관과 다양한 에피소드가 생기겠는 데요? 

재미있게 잘 읽고 있어요. 2008-10-17
08:57:44
  

 

일병 송기화 
  엄마야, 많이들 읽어주고 계시는군요(급화색) 
근데 이거 사람이 아니고 저승사자라고 쓰면 저승말 저승새 저승물고기 저승나무 이런 거 다 해야하는걸요(난감) 
산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리 멀쩡히 돌아다니는 사람보고 죽었다고 표현하기 싫어서 그냥 애매하게 넘어왔다고 둘러쓰고있답니다. 2008-10-17
09:36:28
  

 

병장 정병훈 
  천만에요 인준씨 낄낄. 2008-10-17
10:2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