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Side and Side - 일본과 러시아  
일병 이석재   2008-12-22 20:21:02, 조회: 181, 추천:2 

이웃나라랑 치고박고 싸우기 3번째 시리즈물은…. 사실 밝히기전에.

시리즈물이 너무 파격적으로 달리고 있는듯 해요, 하루만에 한편씩 올리고 있으니..허허, 이러다가 소재 떨어지면 어떤걸로 밀고 나가죠? 여러분들이 역사의 어떤 부분이 무지 궁금했다. 하시는 부분이 있으시면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작성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여튼, 이번 세번째 시리즈로는 러시아와 일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왜 중국이나 일본이라던가 일본과 한국 뭐 이런나라가 아니냐구요? 그건 너무 식상하잖아요. 유럽에서 놀았으니 슬슬 아시아로 한번쯤은 넘어올 때가 되었지요.

사실 근대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과 러시아는 이웃한 나라가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계몽군주(주1)중 한명인 예카테리나 대제가 시베리아로 점차 진출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일본과 러시아는 접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러시아와 일본은 서로 격돌할만한 국가는 아니였습니다. 일본은 국가 확장보다는 근대화에 치중해야 하는 상황이였고, 러시아는 계속적인 남하정책(주2)을 통해 중국, 특히 연해주와 몽골지역을 노리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하지만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고, 그 근대화에 필요한 식민지를 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정은 달라집니다. 중국과 다른 나라와의 중매(?!)를 서준 대가로 연해주를 빼앗아간 러시아는, 이제 점차 한반도를 노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오직 확장할 곳이 한반도밖에 없던 일본으로서는 한반도 확보가 절실했던 순간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청과, 나중에는 러시아와 싸우게 될 정도로요. 물론 일본은 목숨을 걸고 두 나라와 싸우게 되었지만, 역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라는 심정으로 싸웠더니 두 나라를 다 이겨버리게 된것입니다.

물론, 청나라와의 전쟁은 이번 시리즈에서 하등 필요가 없으므로 러시아와 일본만의 대결을 기술하겠습니다. 러시아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통해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고, 나아가 만주 남쪽에 있는 한반도마저 자신의 세력권으로 확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강대국 저 강대국을 넘나들었던 명성황후를 친 러시아파로 확보(주3), 일본을 견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손가락 안의 가시. 결국 을미사변(주4)을 통해 친러시아파를 제거하고 그에 환멸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되는(주5) 사건마저 일어납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먼저 일본에게 제의를 하게 됩니다. 북위 38도선(주5-1)이상으로는 러시아의 세력권을 인정하고, 이남으로는 일본의 세력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제안을 일본에게 보내게 되지요. 이는 러시아가 이미 써먹었던 수법인데, 이란에서 북쪽은 러시아 세력, 남쪽은 영국세력, 중간을 비무장지대로 해서 나눠먹었던 수법을 한반도에서 다시 써먹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게되면 북위 38도선 이북, 특히 만주지역마저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은 이 제안을 거절합니다.

더불어, 러시아를 세계 각곳에서 견제하고 있던 영국마저도 일본의 동맹국으로 편입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은 그때까지만해도 고립주의를 천명, 동맹국이 없었지만 러시아의 견제를 위해 첫 동맹국으로서 일본을 선택한 것이지요. 결국 영국의 지원을 받은 일본은 차차 러시아와의 전쟁준비를 진행하게 되고, 기습적으로 한창 만주에서 세력권을 다지고 있던 요동의 러시아군을 급습하게 됩니다.

이에 발트해에 있던 러시아의 함대가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오면서 일본을 공략하려고 준비하게 되고, 육군도 요동반도에서 지구전을 실행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둘 다 문제가 있었던게, 모스크바와 한반도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함대가 한반도까지 돌아오려면, 석탄 등 기본적인 보급 품목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세력이 이미 전 세계에 있었기 때문에, 영국은 러시아 함대에게 석탄을 공급하지 않았고, 결국 세계에 조금씩 있던 독일산 석탄을 써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석탄이 영국산 석탄에 비해 질이 낮았다고도 하더군요, 겨우 올라왔는데. 쓰시마 섬 해협에서 박살나버리고, 러시아 함대의 명예만 실추시키게 됩니다.

육군은 나름대로 오래 버티긴 했지만 위에서 말했던 대로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일본쪽에서도 잘 방어하고 있는 러시아군을 계속 공격하다가 많은 피해를 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은 요동과 가까웠고 러시아는 멀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러시아는 요동반도와 만주에서 후퇴하게 되었고, 포츠머스 조약에서 일본과의 협정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게 됩니다. 사실 러시아는 극동에 관심을 쏟기가 힘들었던게, 독일-오스트리아 편에서 보셨듯이 러시아는 발칸반도에 더욱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덕분에 이제 한반도는 일본의 손아귀로 안녕~

이제 일본과 러시아는 한동안 싸울일이 없게 됩니다. 러시아는 1차대전과 러시아혁명을 겪으면서 대외문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고, 일본은 러시아쪽보다는 중국을 잡아먹으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제 문제는 러시아혁명으로 인해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으로 나라가 바뀌게 되서부터입니다.

독일과 소련과의 관계에서 보듯이, ‘전체주의’ 와 ‘사회주의’ 관계는 진짜로, 사이가 나쁘다 못해 한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는 솬계였습니다. 전체를 하나의 정부에서 통합, 관리하는 전체주의와, ‘이론적으로는’ 전체 노동자들의 권력에 의지하는 사회주의는 그 권력이 나오는 곳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전체주의의 아버지 히틀러가 워낙 사회주의 사람들을 싫어했던지라..(왜 싫어했는지는, 개인의 선호도니 알 수 없군요. 게다가 자살했으니…쩝쩝). 그 덕분에 일본은 러시아가 소련으로 바뀌자 자신들의 정권에 위협이 되리라고 판단, 반 소련군대에 자신의 군대를 파견하기 시작합니다. 친 황제파를 백군, 소련군을 적군이라고 하는데, 이 러시아 내전에서 영국, 프랑스들도 백군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군대를 보낸건 다름아닌 일본이였습니다.

일본은 연해주를 차지하고 소련을 계속 괴롭혔지만 계속 전쟁을 진행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고, 게다가 소련과의 전투(죄송하지만, 어느 전투였는지는 기억이 안나는군요OTL 아마 노몬한전투로 기억합니다.) 에서 패배, 결국 지금까지 소련영토를 점령했던 지역을 반환하고 다시 만주로 복귀하였습니다. 스탈린은 이때 일본에게 당한 것들을 끝까지 기억하게 됩니다.(주6)

일본은 그렇게 소련과 휴전협정을 맺습니다. 그러나 독일 입장에서는 배신이였던게, 2차대전중 자신은 소련과 싸워데고 있는데, 동쪽에서 자신의 동맹군이라는 작자들이 적하고 협상해서 휴전하게 된것이였죠.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소련보다 중국이 더 맛나는 먹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과 일본은 같은 동맹군임에도 같은 적과 싸우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싸우다가 1945년 말이 되면서 일본의 패전이 뚜렷해지자, 독일을 패망시킨 소련은 이제 일본을 노리기 시작합니다. 스탈린은 옛날 일본이 자신을 무너트리려 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 것이지요. 물론 연합군으로써 마지막 추축국인 일본을 무너트려야 했기도 했으니까요. 결국 그들은 만주로 남하하기 시작했고, 1945년 8월 15일까지 그들은 원산까지 진출합니다. 더 빨리 올 수 있었지만, 미국과의 협정으로 그쯤에서 멈추기로 한 것이지요.

그렇게 일본과 소련은 승전국과 패전국으로서 갈라지게 되었고, 냉전시대를 거치며 소련은 공산주의 세력의 대모로, 일본은 민주주의 세력의 보루로서 냉전기를 지나가게 됩니다. 사실 냉전기 시대의 일본은 소련과 충돌하기 보다는, 북한이나 내부의 문제와 더 싸우게 되기 때문에 소련과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대에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로 변화하고 나서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옛 소련이 2차대전중 일본을 침략하면서 일본령이였던 북방 4개섬을 무력으로 강점한 것이였지요. 물론 대전 종료후 일본은 그 4개섬을 반환하기를 요청했지만, 러시아는 지금까지 반환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러시아와의 여러 협상으로 4개섬중 2개씩 나눠먹자고 하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진척된 내용은 아직 없습니다. 일본은 그 북방 4개섬을 제외하고도 중국, 한국과도 섬가지고 계속 싸우고 있는 입장이니까요. 하여튼, 끝이 없는 욕심은 언젠가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1-계몽군주: 근대에 들어서부터, 정부 자체의 권력이 귀족들이 왕에게서가 아닌, 국민들에게서 나온 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던 군주들을 통칭합니다. 좋은 예로서 러시아의 표트르대제, 예카테리나 대제라던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 등을 일컸습니다. 사실 이들은 국민들을 존중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국민들을 존중한 쪽도 있었으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국가’하고는 거리가 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2-러시아의 남하정책: 러시아가 남하정책을 계획했던 것은 단 한가지, ‘부동항’, 즉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기 위함이였습니다. 그래야 러시아가 자랑하는 강력한 함대들을 1년 내내 쓸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들이 주로 남하정책을 취한곳은 이스탄불지역등 흑해에서 지중해로 나갈 수 있는 쪽,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서쪽으로 나갈수 있는 쪽, 극동에서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 쪽, 이란에서 페르시아만으로 나갈 수 있는 쪽 등 다양했습니다.

주3-명성황후: 명성황후의 외교정책은 간단했습니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나만갖다 장난하나, 나 한순간에 새됐어?? 뭐 하여튼, 중국, 일본, 러시아를 파트너로 삼는 정책을 취했지만, 이 세나라중 어느 누구도 대한제국을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나라는 없었다는 점에서 슬플수밖에 없군요.

주4-을미사변: 누구나 다 알다시피,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당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의병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런건 근현대사 시간에 배우시는게 나을지도..허허

주5-아관파천: 고종이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던 사건을 아관(아라사 공관) 파천(하늘이 이동하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년후에 다시 돌아온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게 됩니다.


주5-1-38도선: 이때부터 후에 북한과 남한을 가르는 선으로 다시 쓰여지게 됩니다.


주6-스탈린: 스탈린의 복수는 너무 쎘습니다. 자신의 혁명 동지라고 할 수 있는 트로츠키서부터 시작해서 그에게 위해를 가한 모든 사람들에게 다 복수를 했으니까요. 1930년대 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행한 대숙청 때문에, 2차대전 초기동안 독일에게 ‘싸울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깨지게 됩니다. 그러나 2차대전 승리 이후, 스탈린그라드에서 승리를 거둔 주코프 같은 장군을 유배보네는등, 그가 죽을때까지 계속됬던 의심증은 소련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32:24 

 

병장 이동석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되는(주5) 
북위 38도선(주5)이상으로는 러시아의 세력권을 인정하고] 

각주가 겹치는듯하군요(?) 

그리고 오타- 

[영국은 그때까지만해도 고립주의를 천명, 동맹국이 없었지만 러시아의 견제를 위해 첫 동맹국으로서 영국을 선택한 것이지요] 
영국이 영국을 동맹국으로 선택-한게 되는군요. 허허. 2008-12-22
21:23:47
 

 

일병 이석재 
  허허, 이런 오타를 지적해주시다니 수정해야겠군요-쩝쩝 2008-12-22
21:43:53
  

 

상병 이지훈 
  결국 그들은 만주로 남하하기 시작했고, 1945년 8월 15일까지 그들은 원산까지 진출합니다. 더 빨리 올 수 있었지만, 미국과의 협정으로 그쯤에서 멈추기로 한 것이지요. 

조금만 애드온을 달아볼게요 재밌는 기억이 떠올라서요...그렇다면, 무례를 무릅쓰고(?) 

일본은 7월말~8월초부터 이미 항복을 결정해놓은 상태였죠. 전쟁에 있어서 항복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기때문에 당연한 이치일수도 있겠지만요. 어쨌든 항복을 결정한 일본에게 항복이냐, 결전이냐는 더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고 항복을 하면 '언제'할 것인가가 중요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랐죠. 그리고 이것은 정말 '무조건'적인 항복을 해야하는가 라는 문제와 맞물려있었죠. 
헌데 마침 미국과 소련이 모두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었으니 일본은 표면상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면서도, 이 점을 이용해 최대한의 실리를 얻으려고 하죠. 미국은 카미가제 등 일본의 결전의지를 보면서 이 전쟁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소련에게 참전을 요구하죠. 미국은 오키나와에 있었지만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던 셈이죠. 한반도에는 먼저 상륙할 것이라고요 적어도 소련이 한반도에 진주하려면 한참이나 걸릴 것이라 예상했죠. 왜냐면 만주에 주둔 중인 일본 관동군(확실한지는 모르겠네요)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이었죠. 
미국의 예상과 달리 일본 관동군은 정말 쉽게 깨져버리고 소련은 미국이 참전요청을 한 날(8월 8일)로부터 불과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에 한반도에 들어와버리죠. 미국은 아직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데 말이죠. 
미국은 급해집니다. 한반도가 이러다 완전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가버리겠고 한반도는 커녕 일본조차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이 때를 기다려 일본은 항복을 합니다. 물론 패전국의 입장에서 '무조건'적인 항복이었지만 결코 무조건이 아닌 항복 협상에 있어 유리한 지점을 최소한이라도 선점한 것이죠. 미국은 급했으니까요. 38선이남으로는 내려오지 마세요 하는 약속까지 만들어낼 정도였으니까요 
8월15일이라는 날짜가 그저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처럼, 무조건적인 날짜 혹은 운명처럼 다가온 날짜가 아니라 치밀한 정치적 계산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약간 느낌이 묘하더라구요. 어쨌든 그 덕분에 우리는 광복이라는 것을 맞이했으니까요. 그 묘한 느낌때문에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 같네요 허허 

근데 동석님. 아니 책마을님. OTL 정도는 애교로 봐주시는건가요? 흐흐 글이랑 너무 잘 녹아들어있는 듯 2008-12-23
06:24:12
  

 

병장 이동석 
  어? 지훈님 말씀 듣고 보니 그렇네요? 광복절도 그렇고, 오티엘도 그렇고. 

그런데 OTL 약자 아니었나요? (흐흐) 2008-12-23
07:44:52
 

 

병장 정영목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추천할만한 역사책도 소개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2008-12-23
10:10:08
  

 

일병 이석재 
  상병 이지훈/ 그런 애드온, 대 환영입니다 . WOW도 애드온 없으면 아무것도 안되죠 

병장 이동석/ 자제하려고 해도 자제가 안되네요 (흐흐) 2008-12-23
14:26:37
  

 

일병 이석재 
  병장 정영목/ 다음 시리즈물부터 같이 첨부하겠습니다. 1년이 다되가니 이 시대를 잘 다룬 책들이 기억이 잘 안나는군요 허허 2008-12-23
14:27:16
  

 

상병 김예찬 
  일본은 러일 전쟁으로 많은 군비를 지출했지만 그 만큼 전쟁 배상금을 받아내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후 경제적 위기에 시달리게 되지요. 이 경제적 위기 때문에 일본 내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기도 하구요. 러일전쟁으로 인한 일본 산업의 불균형한 발전은 30년대에 이르러 대공황의 아시아적 양상을 보여주면서 결국 일본제국은 대침략 전쟁의 길로.. 2008-12-26
13:05:40
  

 

일병 이석재 
  상병 김예찬/ 사실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 1차대전 승전국으로서 더 많은걸 받아내려고 했지요, 그 '경제적 위기' 때문에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강대국들이 차지했지만, 완전히 먹는것은 금지된' 중국에서 점차 일본의 세력이 증가하자 다른 승전국들이 일본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이에 일본은 2차대전때 추축 세력에 편입됩니다. 
잘 생각해보면, 상황을 타파하고자 하는 국가들과,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국가들간의 전쟁이 1차대전, 2차대전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역시 애드온, 감사드립니다. 2008-12-26
20:45:53
  

 

상병 진성제 
  저도 에드온은 한번 달아볼게요 호호 

우리나라가 광복하게 된 그 시기가 8월 15일이잖아요. 그 날짜가 이미 정해진거나 마찬가지였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지요. 미국과 러시아가 2차 대전 중 정전협절을 맺은 것은 알고 계시죠? 그런데 그 상황에서 재미있는 조항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8월 9일이었던가?(2년전에 들었던 이야기라 정확히 기억은 안나네요) 그 기한까지 소련이 한반도에 진출한다면 한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해주겠다, 이런 조항이었다는데요. 부동항이 꼭 필요했던 러시아의 입장에서도, 2차대전을 승리로 장식해야했던 미국의 이해득실이 이런 타협을 만들어낸거죠.(사실 미국에게는 한반도가 그다지 전략적 요충지는 아니었던듯 하네요. 동북아 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시켰던 점도 상기해보면요.) 그 이후 소련은 내부상황이라던가 뭐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한반도에 진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일본의 막강함도 부담이었겠죠.) 그러다그러다 시간이 흘러서 8월이 되었는데요. 그당시 미국은 일본 때문에 굉장히 애를 먹었죠. 그래서 트루먼 당시 대통령이 원자탄 투하라는 엄청난 결정을 하게 되었지요.(여기에 재미있는 얘기가 또 있죠. 일본군이 너무나 완강히 저항하는 바람에 미국에서 데이터를 내봤답니다. 일본 본토를 점령하는데 과연 얼마나 오랜 시간과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까. 약 8개월의 시간을 소요해서 6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점령이 가능하다. 라는 결과가 나왔다더군요. 원자탄 투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연구라고 하더군요.) 
자, 당시 엄청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던 소련은 급해집니다. 원자탄을 투하하면 일본의 패전은 뻔하고 그러다보면 한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참전을 요구하니 옳다꾸나 하고 들이닥치게 됩니다. 뭐 미국 역시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지만 소련이 그 예상을 깨버리고 너무 빨리 진출한 거죠. 그러자 미국도 부랴부랴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킵니다. 그리고 원자탄 투하~ 펑! 결국 한반도는 미국의 관할하에 있는 남한과 소련의 관할 하에 있는 북한으로 분열되고 말죠. 

아주 정확한 내용이라고 확신은 못합니다. 2년 전에 수업에서 교수님이 잠~깐 언급하고 간 내용이라서 호호호. 어찌보면 일본에게는 원자탄 투하보다는 소련의 참전이 더욱 더 큰 타격이 되었겠지요. 2008-12-28
22:59:44
  

 

병장 김민규 
  전체주의와 사회주의가 친하지 않은 사이였다는 이야기가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오네요. 워낙 용어를 섞어버무려찜으로 쓰는 시대이다 보니. 허허허 2008-12-29
10:3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