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패션에 관한 잡답 - 7
상병 김무준 2008-10-18 05:23:49, 조회: 443, 추천:1
목표는 세계정복. 앗싸.
-네. 잡담입니다.
이따금 거리로 나들이를 나갑니다. 참 멋진 옷들이 많습니다. 특이한 걸 좋아하다보니 구하기 힘든 디자인의 옷이 있으면 일단 집어 듭니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마음에 들면 우선 가격을 물어보죠. 늘 그렇듯 가격은 제법 비싼 편입니다. 매장 직원은 제 업무를 충실히 하기 시작하죠. ‘이게 사실 매장에 디스플레이용으로 가지고 온 건데 손님 마음에 딱 드시나 봐요. 비매품인데 자주 오시는 분이니까 싸게 드릴게요. 근데 색은 단색…’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쇼핑도 하루 이틀 하는 거 아닙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속아 넘어갑니다. 글쟁이는 옷이 마음에 들면 거의 입어보지도 않고 사는 편입니다. 그럼 사버릴까요? 이쯤에서 이성이 한번 옷자락을 붙잡습니다. 감성은 후딱 지갑을 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지갑을 꺼내려다 멈칫. 그리고 약 3초간 생각합니다. ‘이 옷이 나한테 어울리는 옷일까?’ 눈을 감고 집에 있는 옷장을 열어봅니다. 수트, 와이셔츠, 데님, 셔츠가 눈앞에 그려집니다. 이것저것 꺼내 들고 그림을 그려봅니다. 무채색을 좋아하는지라 색감은 볼 필요가 없지만 옷 하나 입으려고 한 벌을 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옷을 입었을 때를 그립니다. 여기서 통과하면 지갑이 열리고, 포장이 되고, 흥정에 들어가고, 기어코 값을 깎은 후(제일 중요한 행위) 매장을 나옵니다.
글쟁이는 글쟁이가 별로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옷걸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 얼굴이 받쳐주는 것도 아닙니다. 대한민국 평균 키에, 평균 체중에, 평균인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옷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도 아닙니다. 공부를 위해 잡지를 읽고 트렌드를 파악하고 스크랩을 해두기는 하지만 유행 따라 옷을 사지도 않습니다. 헌데 다른 사람들은 항상 옷을 ‘잘’ 입는다고 말합니다. 트렌드 세터라는 말은 듣지 못하지만, 감각 있다는 말은 듣습니다. 원래 미술공부를 했으니 남들보다 조금 낫기야 하겠지만, 옷 잘 입는다고 말하는 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옷 잘 입는 비법이 뭐에요?’ 그냥 한번 웃어주고 말아버립니다. 학생이… 아니죠. 대학도 다니질 않는데다 군에 몸담고 있으니 군인이죠. 군인이 알아봐야 뭘 알겠습니까.
다만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스스로 옷을 사고, 입는 데에 대한 약간의 규칙을 정해둡니다. 그 첫 번째가 글쟁이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싼 옷을 입어도 몸에 꼭 맞지 않으면 그저 졸부로 밖에 보이질 않죠. 또 지나치게 작거나, 큰 옷은 몸을 불편하게 합니다. 몸이 불편하면 그게 행동으로 나타나죠. 무언가를 할 때도 옷 때문에 신경이 쓰입니다. (그래서 휴가를 나가도 친구 옷은 잘 빌려 입지 않습니다.) 내게 맞는 옷을 입는 것이 몸에 대한 예의요, 옷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옷을 바로 입는 법을 배웁니다. 영감님은 멋 내기는 학습이라 했습니다. 멋 내기 = 학습이니, 학습 = 멋 내기겠죠. 글쟁이가 클래식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지만 짬을 내어 클래식을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기본이 되는 멋 내기를 알아야 그 틀에서 벗어난 ‘자유’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늘 스타일을 고민합니다. 그리고 잡지를 펼쳐 트렌드를 ‘공부’합니다. 기초에 약간의 트렌드를 반영해 포인트를 주는 게 굉장히 신선하잖아요. (그렇다고 모모씨 처럼 수트에 뉴에라를 하라는 건 아닙니다.) 클래식 스타일이 멋의 기본이라면, 트렌드는 패션의 시작이니까요. 누군가의 표현처럼 힙한 것이 트렌드가 되고, 트렌드가 죽어서 레트로와 빈티지가 되며, 오랜 시간 지속되면 클래식과 럭셔리가 됩니다. 시대에 따라 옷을 바로 입는 법은 바뀝니다. (요즘처럼 팬티라인을 당당히 드러내는 때도 없었죠.) 자유롭고 싶지만, 시대를 역행하고 싶지는 않기에 트렌드를 파악하려 노력합니다. 패션 공부하는 사람이 유행을 모른다하면 말이 되질 않잖아요.
마지막이 마음을 바로 하는 것입니다. 몸을 항상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꾸준한 운동을 하고 식사를 조절합니다. 매일 몸을 청결히 유지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했던가요. 세계정복의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지라 늘 스스로를 다잡습니다. 고리타분하게 공자마냥 책을 읽으며 경건한 마음을 가지지는 않더라도, 옷을 입기 전 마음을 추스릅니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지만 기분과 옷의 소재, 색 등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1000개짜리 퍼즐을 맞추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화나고 짜증나도 옷만큼은 대충 챙겨 입지 않습니다. 옷을 대충 입으면 글쟁이 자신도 뭔가 어정쩡한 사람으로 비칠 테니까요. 반대로 마음이 들뜨면 말도 되지도 않는 옷을 입었다가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글쟁이는 소심해서 옷 입는 건 좋아해도 시선 끄는 건 싫어합니다. 근데 왜 체크무늬 안경 따위를 쓰느냐고요? 그건 제 머리가 복잡해서였습니다. 체크무늬 스카프를 한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참 양보하기 힘드네요. 좋아하는 옷을 입자니 남들 보는 눈이 신경 쓰이고, 남들 눈을 신경 쓰자니 내 마음만큼 옷을 못 입습니다. (결과는 뭐 입어버리지만…)
글이 살짝 샜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몇 가지 규칙을 정해두고 평소에 옷을 입기 때문에 그럭저럭 옷을 잘 입는 것처럼 보이나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글쟁이는 그냥저냥 입는데…) 하암. 쓰다 보니 어째 나름 옷 입는 비법(?) 따위가 된 것 같네요. 평소처럼 슥 쳐다보시고 생각에 맞지 않으시면 패-스 하시면 됩니다. 어디까지나- 잡담입니다.
여담입니다. 지구에 온 목적이 뭐냐고요?
그저 웃지요.
22.83.38.70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10:13
병장 박장욱
56.3.1.253 그저 웃지요. 부분에서 피식 하네요...
글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나름의 기준을 한번 잡아 봐야 겠네요.. 2008-10-18
08:25:47
병장 김태준
22.114.1.80 잘 읽고 갑니다!!! 2008-10-18
10:09:05
병장 이동석
40.6.1.206 음, 어느 부분은 동의하고, 어느 부분은 잘 모르겠는데,
(사실 모든 생각과 마주칠때 그렇겠지요)
슛- 해야합니까? 어디까지나- 잡담입니다.
그리고 저도 세계를 아우르는것이 목표입니다만,
인접하긴 해도 다른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경계하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세계를 정복하시게요?
정말 지구를? 2008-10-18
10:59:02
상병 김무준
22.83.38.70 비밀입니다. 2008-10-18
13:32:55
상병 양순호
18.17.54.125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그리고 입어보고 결정하라네요.
매장에서도 저한테만 유독 많이 그러더라구요. 입어보고 결정하라고.
그러기보다는 그냥 눈대중으로 해서 사는 편이었는데, 요근래 들어서는
많이 바뀌고 있다는걸 느끼고 있네요.
다음편도 기다릴께요- 2008-10-19
08:45:13
상병 김무준
22.83.38.70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인 것 같습니다. 글이 책마을에 맞을지 고민을 좀 했었는데... 이력서는 그냥 제가 구해다 쓰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웃음) 2008-10-20
01:23:35